포커스 / 동향

2018 비엔날레 리뷰(1) 광주, 부산

posted 2018.11.27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전시 전경, ACC 문화창조원 복합2관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전시 전경, ACC 문화창조원 복합2관



기획·진행 미술세계 편집부


미술세계 로고




① 2018 광주비엔날레

광주의 유토피아니즘, 경계 없는 예술의 상상력을 자극하다


글쓴이 김정아 기자
이미지 제공 (재)광주비엔날레


《2018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2018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2018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2018 광주비엔날레》가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주제로 66일간의 대장정을 떠난다. 43개국 165명의 작가가 참여해 30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비엔날레는 단일 감독 체제가 아닌 11명의 큐레이터가 참여하면서 개최지 광주를 새롭게 조명함과 동시에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 대응책을 모색하는 다층적인 전시 기획을 선보인다. 이에 전시공간도 국내 현대미술의 발신지 역할을 했던 광주시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이하 비엔날 레관)에서 확장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활용되었다. 11명의 큐레이터가 꾸미는 7개의 ‘주제전’과 함께 광주의 역사성을 반영한 장소특정적 신작 프로젝트 ‘GB커미션’, 해외 유수 미술 기관 참여의 위성프로젝트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로 구성되면서 현대미술의 층위를 더욱 견고하게 엮어내고자 했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5·18민주화운동의 사적지인 구 도청 회의실과 구 국군광주병원이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일시적으로 개방되어 이목을 끌었다.


‘주제전’은 ‘상상된 경계들’에 대한 해석이자 평등한 시각적 집합체로서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11명 큐레이터의 다양한 시각은 ‘경계’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풀어나가기엔 적절했으나, 전시 장소가 비엔날레관과 ACC로 나뉘어 응집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클라라 킴(Clara Kim,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의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Imagined Nations/Modern Utopias)》, 그리티야 가위웡(Gridthiya Gaweewong, 짐 톰슨 아트센터 예술감독)의 《경계의 환영을 마주하며(Facing Phantom Borders)》, 크리스틴 Y. 김 & 리타 곤잘레스 (Christine Y. Kim & Rita Gonzalez, 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의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The Politics of Participation in the Post-Internet Age)》, 데이비드 테(David Teh, 싱가포르국립대학 교수)의 《귀환(Returns)》 등 4개 섹션은 비엔날레관에서 펼쳐지고, 정연심(홍익대학교 교수) & 이완 쿤(Yeewan Koon, 홍콩대학교 교수)의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Faultlines)》, 김만석(독립큐레이터 겸 공간 힘 아키비스트) & 김성우(아마도 예술공간 큐레이터) & 백종옥(독립큐레이터 겸 미술생태연구소 소장)의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The Art of Survival: Assembly, Sustainability, Shift)》, 문범강(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겸 작가)의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North Korean Art: Paradoxical Realism)》 등 3개 섹션은 ACC 문화창조원에서 선보인다. 이 7개의 섹션이 얼마나 상호보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가가 ‘상상된 경계들’의 최대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상상된 경계들’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민족주의에 대한 저서인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차용됐다. 저자는 상상의 공동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앤더슨의 관점은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가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는 시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류학적 명제를 따른다. 냉전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남과 북은 최근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장막을 걷어내려는 노력을 시작했지만, 남북 관계 이외에도 난민 문제나 핵 문제 등으로 인해 국경이나 국가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상상된 경계들’은 확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간이 구축해온 국가, 민족, 영토의 경계뿐 아니라 어느 곳이든 존재하는 심리적, 정서적, 감정적 경계들을 다룸으로써 ‘경계’에 대한 담론을 다층적인 범위로 넓힌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제1회 《1995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이기도 했던 ‘경계를 넘어’를 되짚어 봄과 동시에 비엔날레의 역사를 반영한 것이다.


비엔날레는 전 세계 미술의 새로운 현장을 보여주는 장(場)이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비엔날레의 낯선 미술을 이해하기 어렵고, 전문가들은 비엔날레에서 더 이상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관람에 과부하가 걸리는 규모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전문가들에게도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는 전제 하에, 이러한 비엔날레의 숙명적인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다 주체적인 관람 경로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경계’의 다양한 개념들을 명료하게 구분해서 펼쳐낸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취향과 기호에 따른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섹션의 ‘파트1 대칭적 상상력’ 전시 공간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공간적으로 가장 잘 구현했다고 생각된다. 전시장 입구인 어두운 터널에는 무등산의 사계절을 환상적으로 재해석한 영상 설치 작품이 자리 잡고 있고, 관객은 수직으로 걸린 스크린 사이를 통과하게 된다. 전시 관람 후 출구로 향하면 문 양쪽에서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가 몽환적으로 뒤섞인 영상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이로써 관객은 전시장 입구와 출구에서 같은 작가의 영상 작품을 보게 되는 셈이다. 상상력으로 충만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특별한 진입로로 전시장을 상정했을 때,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경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관객 자신의 몫이다. 관객의 마음에 심어진 사유의 이미지가 ‘경계’ 없는 예술적 상상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일 테니 말이다.


한국의 난독적인 비엔날레 동향 속에서 《광주비엔날레》는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 아래에는 전시의 핵심 개념을 담은 대주제어를 다각도로 심화·확대함으로써 여러 소주제로 펼쳐낸 ‘주제전’의 주목할 만한 작품을 #해시태그로 선별한 ‘에디터스 초이스’가 소개되고, ‘GB커미션’과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살펴본다. 2018년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자 한 ‘상상된 경계들’을 통해 미래의 비엔날레를 희망적으로 전망해볼 수 있길 바란다.



■ 주제전


#모더니즘건축


“나는 모더니즘 건축 역시,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의 발현 시점에서든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내리는 시점에서든, 근대 사회의 상상력을 북돋는 데 강력한 도구로 기능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국민국가 및 국가 공동체의 형성 기반이 위협받는 오늘날이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이러한 역사와 모더니즘 기념비를 재고하며 뒤를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에 적절한 시기이다.” -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큐레이터 클라라 킴(Clara Kim)


레오노어 안투네스(Leonor Antunes), 〈호젓하고 쾌적한 땅. 나는 이 땅에 살고 싶다〉, 2014.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 클라라 킴 | 광주비엔날레 1전시관


특정 모더니스트 인물들이 구사하는 형태와 기하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모던 건축 및 디자인 역사를 고찰한다. 천장의 격자판으로부터 늘어뜨린 형태들은 브라질 원주민이 천연 섬유를 사용하는 다양한 직조 및 고리 연결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레오노어 안투네스(Leonor Antunes), 〈호젓하고 쾌적한 땅. 나는 이 땅에 살고 싶다〉, 2014. ©김정아

레오노어 안투네스(Leonor Antunes), 〈호젓하고 쾌적한 땅. 나는 이 땅에 살고 싶다〉, 2014. ©김정아

알라 유니스(Ala Younis), 〈더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페미니스트) 계획〉, 2018.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 클라라 킴 | 광주비엔날레 1전시관


석유 수익 증가로 야심찬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이어지던 1950년 대의 바그다드를 살펴본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하고 1980년 사담 후세인 정권 아래서 완공된 실내 체육관의 건설을 둘러싼 여타 정치•사회•문화적 권력 구조를 쫓고, 그 제작 과정에 관여한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건축적 서사를 구축한다.


알라 유니스(Ala Younis), 〈더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페미니스트) 계획〉, 2018.

알라 유니스(Ala Younis), 〈더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페미니스트) 계획〉, 2018.

이토 바라다(Yto Barrada), 〈아가디르〉, 2018.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 클라라 킴 | 광주비엔날레 1전시관


1960년 모로코 서부의 모더니즘 도시인 아가디르를 파괴한 엄청난 지진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재난 이후 재건의 과정을 다루는 방식을 고찰한다. 개인적 서사와 정치적 이상을 한데 엮어내는 작가는 아가디르를 재건하기 위해 채택되었던 브루탈리즘 양식의 건축을 통해 과도기 도시의 복잡한 초상을 보여준다.


이토 바라다(Yto Barrada), 〈아가디르〉, 2018.

이토 바라다(Yto Barrada), 〈아가디르〉, 2018.


#난민


“거대 민족 국가 서사에 맞서는 작은 서사를 그려낸 작가들은 우리에게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국경과 이주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작금의 난민 위기에서 생겨나는 인도주의 및 윤리 이슈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큐레이터 그리티야 가위웡(Gridthiya Gaweewong)


러쉬디 안와르(Rushdi Anwar), 〈언젠가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시리즈, 2018.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 그리티야 가위웡 | 광주비엔날레 2전시관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쿠르디스탄 아르바트 난민촌을 찾은 작가는 그곳의 일상생활과 평범한 삶을 자세히 살펴본다. 작품 제목은 난민촌의 낙서에서 따온 것으로 난민들의 집에 대한 불안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러쉬디 안와르, 〈언젠가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시리즈, 2018.

러쉬디 안와르(Rushdi Anwar), 〈언젠가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시리즈, 2018.

할릴 알틴데레(Halil Altindere), 〈우주 난민〉, 2016. 外 1점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 그리티야 가위웡 | 광주비엔날레 3전시관


터키 내 소외된 지역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적 수수께끼를 다루는 이 작품은 풍자적인 유머로 시리아 난민촌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목적지를 제안하면서, “지구상에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국가가 전무하다면 화성으로 보내면 어떨까?”라는 가정적 질문을 던진다.


할릴 알틴데레, 〈우주 난민〉, 2016.

할릴 알틴데레(Halil Altindere), 〈우주 난민〉, 2016.

스튜디오 리볼트(아니다오 요외 알리 AnidaoYoeu Ali, 스가노 마사히로 Masahiro Sugano), 〈앉으세요〉, 2018.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 그리티야 가위웡 | 광주비엔날레 3전시관


‘스튜디오 리볼트’는 아니다오 요외 알리와 스가노 마사히로에 의해 2011년 미디어연구실로 설립되었다. 2000년 초 프놈펜으로 이주한 두 작가는 그곳에서 태국 난민촌에서 태어나 미국에 정착한 많은 국외 추방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비디오 설치 작품은 트럼프 행정부 내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부상과 그것이 미국의 이민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한다.


스튜디오 리볼트(아니다오 요외 알리, 스가노 마사히로), 〈앉으세요〉, 2018.

스튜디오 리볼트(아니다오 요외 알리 AnidaoYoeu Ali, 스가노 마사히로 Masahiro Sugano), 〈앉으세요〉, 2018.

스베이 사례스(Svay Sareth), 〈침묵&외침〉, 2018. 外 1점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 그리티야 가위웡 | 광주비엔날레 3전시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 위치한 난민촌에서 13년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전쟁, 민병대, 그리고 실향민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비디오 작품과 더불어 카모플라주 천과 연꽃을 두른 자화상 조각이 함께 전시된다.


스베이 사례스, 〈침묵&외침〉, 2018.

스베이 사례스(Svay Sareth), 〈침묵&외침〉, 2018.


#포스트인터넷


“이 프로젝트들 대다수가 ‘여러 층과 세부 사항으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 더미’처럼 보인다. 거짓된 이데올로기의 입장을 가정하고, 온라인 저항 문화의 극단으로 질주하고, 현재와 미래의 결과물들을 상상하면서, 이 예술가들은 21세기에 세계화로 가는 멀고도 위험한 여행에 대한 대안적인 역사를 제공한다.” -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 정치》 큐레이터 크리스틴 Y. 김 & 리타 곤잘레스(Christine Y. Kim & Rita Gonzalez)


선우 훈, 〈평면이 진정한 깊이다〉, 2018. 外 1점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 정치》 | 크리스틴 Y. 김 & 리타 곤잘레스 | 광주비엔날레 4전시관


선우 훈의 매체는 비디오, 디지털 또는 설치가 아니라, ‘픽셀’이다. 작가의 관심은 기술 도구의 평평함과 사회적 이슈 간 변증법적 관계라는 사실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작품은 집단적 커뮤니케이션과 포스트 인터넷 환경이 내재하는 특성 안에서 새로운 공적 영역이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선우 훈, 〈평면이 진정한 깊이다〉, 2018.

선우 훈, 〈평면이 진정한 깊이다〉, 2018.

자크 블라스(Zach Blas), 〈주빌리 2033〉, 2018. 外 3점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 정치》 | 크리스틴 Y. 김 & 리타 곤잘레스 | 광주비엔날레 4전시관


〈주빌리 2033〉은 자멸한 실리콘 밸리의 잔재에서 만들어진 퀴어 사회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민주주의와 권력의 탈 집중화와 신자유주의의 태동과 촉진을 가져왔다고 해석하는 테크노크라시를 근거로 제작된 이 작품은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 개인과 허상, 과거, 현재, 미래가 충돌하면서 포스트 인터넷 존재의 평평해진 현실을 소환한다.


자크 블라스, 〈주빌리 2033〉, 2018.

자크 블라스(Zach Blas), 〈주빌리 2033〉, 2018.

미아오 잉(Miao Ying),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17.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 정치》 | 크리스틴 Y. 김 & 리타 곤잘레스 | 광주비엔날레 4전시관


중국 인터넷의 각종 제한에 비판적인 작가는 급성장하는 상징 언어와 유머 공간, 그리고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에 주목한다. 이 설치 작품은 무역 엑스포에서 신상품 촉진에 사용되는 디자인 공간 등 홍보 부스를 함께 선보인다.


미아오 잉,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17.

미아오 잉(Miao Ying),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17.


#테러리즘


“폭력의 유산들은 그것이 충돌의 역사이건 상처 입은 현재를 뒤로한 돌이킬 수 없는 문화의 이동이건 간에 우리 전시의 작품들을 마치 그림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2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예술에 일종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에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모든 경계에서의 경험들을 트라우마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예술이 갖는 의미의 불안정성을 배가하는 열린 결말을 추구한다.” -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큐레이터 정연심 & 이완 쿤(Yeewan Koon)


아르나우트 믹(Aernout Mik), 〈이중구속〉, 2018.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 정연심 & 이완 쿤 | 5•18민주평화기념관 3관(옛 전라남도청)


이 작품은 파리의 테러 발생 이후 프랑스와 다른 유럽 도시에서 어디서나 경찰을 볼 수 있는 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동시대 도시의 불안을 보여준다. 유령 같은 경찰의 존재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신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참아내는 고통과 불안의 상태에 접근한다.


아르나우트 믹, 〈이중구속〉, 2018.

아르나우트 믹(Aernout Mik), 〈이중구속〉, 2018.

니나 샤넬 애브니(Nina Chanel Abney), 〈무제〉, 2018.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 정연심 & 이완 쿤 | 전일빌딩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작가의 첫 현수막 작업인 이 작품은 허용된 폭력과 그에 반대하는 공격의 피해자들 사이에 놓인 경계를 드러 낸다. 전일빌딩은 아직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운동 투사들을 향해 군 헬리콥터가 쏘았던 총알 자국 수백 개가 남아 있다. 애브니의 작품이 보여 주는 활기는 이 장소와 시점에 대한 강력한 인상을 남기면서 세계화된 현대사회의 군사 폭력에 관한 전반적인 질문을 던지게끔 한다.


니나 샤넬 애브니, 〈항상 준비된 항상 그곳에〉, 2018.

니나 샤넬 애브니(Nina Chanel Abney), 〈항상 준비된 항상 그곳에〉, 2018.


#개인과집단


“《파트 2. 한시적 충동》은 개인과 집단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추동하는 힘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가 그동안 구축해온 이분법적 사고가 설정한 고정된 경계를 피하고, 사회적 위력 행사의 작동 체계 안에서 개인의 목소리와 그것이 하나로 단일화된 집단적 발화의 구조와 역학을 살피며, 그것이 다시 또 만들어내는 사회 내부의 층, 경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중 《파트 2. 한시적 충동》 큐레이터 김성우


강서경, 〈검은자리 꾀꼬리〉, 2016-17.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중 《파트 2. 한시적 충동》 | 김성우 | ACC 문화창조원 복합5관


〈검은자리 꾀꼬리〉는 조선시대 궁중무인 ‘춘앵무’에 그 개념적 기반을 둔다. 춘앵무는 한국 구중무용 중 극히 드문 형식의 1인 안무로서, 약 2m 면적의 ‘화문석’이라는 자리 위에서 이루어지는 춤이 다. 본 작업에서 이 화문석을 의미하는 ‘검은 자리’는 곧 무용수에게 허락된 움직임을 위한 공간이자 한편으로는 움직임을 제한하고 규율하는 조건이다. 또한 한 개인이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끔 제공된 최소한의 공간이자 개인의 움직임에 따라 범위를 달리 하는 확장 가능한 기본 그리드다. 결국 ‘자리(mat)’란 작품의 조형 언어를 위한 기본 문법인 동시에 개인이 사회 안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맥락과 조건에 대한 탐구이다.


강서경, 〈검은자리 꾀꼬리〉, 2016-17.

강서경, 〈검은자리 꾀꼬리〉, 2016-17.

안정주, 〈스모크〉, 2018.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중 《파트 2. 한시적 충동》 | 김성우 | ACC 문화창조원 복합5관


〈스모크〉는 역사적 사건에 접근하는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일곱 편의 영화를 선정하고, 구체적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장면이 아닌, 인물들의 사적 대화를 중심으로 내용을 추출한다. 영화의 스토리와 장면의 맥락으로부터 이탈하여 자유롭게 유영하는 대사는 서로 맞물려 오케스트레이션되고, 동시에 작품을 위해 협업한 작곡가의 선율과는 충돌과 조화를 반복한다. 이는 사회, 정치적인 맥락 안에서 특정 이념이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개인의 목소리를 빌리는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공식적 역사에서 소멸된 개인의 주체적 목소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안정주, 〈스모크〉, 2018.

안정주, 〈스모크〉, 2018.


#비장소


“《파트 3. 집결지와 비장소》의 작업들은 집결 방식의 변화가 초래한 문제들을 다루되 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원리에도 불구하고 전시 공간이라는 비장소를 통해 삶을 가능성으로 전환하려는 노력들이다.” -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중 《파트 3. 집결지와 비장소》 큐레이터 김만석


박세희, 〈여행자들〉, 2018.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중 《파트 3. 집결지와 비장소》 | 김만석 | ACC 문화창조원 복합2관


작가는 전시장을 공항의 ‘라운지’나 ‘트랜짓’ 공간으로 전환시켜 삶이 매번 이동과 이주의 연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한편으로는 문제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장소들로부터 연원하는 감각들과는 다른 감각들이 생성될 수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전시장이 단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비장소이지만 매번 새로운 작품들이 집결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박세희, 〈여행자들〉, 2018.

박세희, 〈여행자들〉, 2018.

정유승, 〈랜드마켓, 랜드마크〉, 2018. 外 4점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중 《파트 3. 집결지와 비장소》 | 김만석 | ACC 문화창조원 복합2관


광주의 성매매업소는 2014년 기준으로 알려진 것만 2,500여 곳에 이른다. 작가는 이 가운데 대표적인 성매매집결지를 여성들이 사용하는 약품을 사용해 지도 모형으로 제작하고, 관람할 때마다 빛과 사운드가 흘러나오도록 설치했다. 작가는 광주를 성매매라는 시야를 통해서 파악함으로써 광주를 떠받치는 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매매일 수 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한다. 작가의 이러한 시각은 광주를 폄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광주에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함께 질문하는 과정이다.


정유승, 〈랜드마켓, 랜드마크〉, 2018.

정유승, 〈랜드마켓, 랜드마크〉, 2018.


#북한미술


“조선화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이 북한미술을 ‘있는 그대로’ 혹은 통섭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길 바라며, 북한의 복합적인 문화와 다양한 표현의 미술을 일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큐레이터 문범강


김남훈 外, 〈자력갱생〉, 2017.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 문범강 | ACC 문화창조원 복합6관


김남훈 外, 〈자력갱생〉, 2017.

김남훈 外, 〈자력갱생〉, 2017.


■ GB 커미션


GB커미션은 광주정신의 지속가능한 역사와 이를 둘러싼 담론의 시각화를 위한 신작 프로젝트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문화예술로 치유•승화시킨다는 광주비엔날레의 창설배경을 도시의 역사 현장과 결합한 작품들을 통해 세계 시민사회에 재천 명하면서 민주, 인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이번 GB커 미션에서는 아드리안 비샤르 로하스(아르헨티나), 마이크 넬슨(영 국), 카데르 아티아(프랑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이 참여하여 실체적이고도 정신적인 역사 재소환 작업을 펼친다. 특히 마이크 넬슨, 카데르 아티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장소특정적 작업을 만나게 되는 구 국군광주병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 국군광주 병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문 받았던 일반인들을 치료하고 일반 부상자를 위해 약물과 혈액을 지원했던 장소다. 군인 병원 이전, 후 사용하지 않은 채 비어 있었고 일반인에게는 산책로만 개방되어 있던 장소인데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병원 일부와 교회가 전시장으로 쓰인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폐허처럼 되어버린 구 국군 병원에 빛이나 소리, 영상 등의 개입을 통해, 마이크 넬슨은 병원 에서 떼어낸 60여 개의 거울을 이용함으로써 공간에 축적된 시간을 예술 작업으로 전환한다. 또한 정신병동으로 사용되었던 병원 에는 카데르 아티아의 조각이 마치 그 공간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처럼 놓인다.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장소에서 관객들은 그 장소가 가진 의미를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카데르 아티아, 〈영원한 지금〉, 2018. ©한혜수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영원한 지금〉, 2018. ©한혜수

마이크 넬슨, 〈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 2018. ©한혜수

마이크 넬슨(Mike Nelson), 〈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 2018. ©한혜수


■ 파빌리온 프로젝트


광주비엔날레는 동시대 현대미술 담론을 생산하고 국가 간 문화교류와 네트워크의 장(場)이자 시각예술 플랫폼으로 기능해 왔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라는 도전적 과제와 이벤트성 전시행사가 갖는 한계성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와 독립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Today Will Happen)》 | 팔레 드 도쿄



지난 2015년 재개관한 광주 근대 건축물인 광주시민회관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저항한 시민군이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 전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현대미술 전시관인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이 공동 제작 및 공동 기획했다. 한 시인이 빌려준 하나의 작품이 번역되고, 독특한 노래의 형태로 바뀌는 과정은 전시에 참여하는 초청 작가 및 관객과 공유된다. 그들은 각자의 말과 몸짓과 시각언어로 초기 텍스트를 흐리게 만들고, 그 의미를 새롭게 창출하면서 언어적•문화적 경계를 파괴시킨다.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 전시 전경, ©김정아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 전시 전경, ©김정아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 참여 작가 타리크 키스완손의 퍼포먼스, ©김정아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 참여 작가 타리크 키스완손의 퍼포먼스, ©김정아

《허구의 마찰(Fictional Frictions)》 | 헬싱키 국제 아티스트 프로그램



헬싱키의 대표적인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1998년 설립된 비영리 예술가 연합인 핀란드 헬싱키 국제 아티스트 프로그램 HIAP - Helsinki International Artist Programme’은 광주시 서구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에서 《허구의 마찰》을 선보인다. 광주비엔 날레 주제 ‘상상된 경계들’의 다양한 양상들과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조각과 사운드 기반 설치작업이 주를 이룬다.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 미시적 시건과 거시적 사건 사이의 경계들, 즉 상상된 경계의 다양성에 질문을 던지는 공간을 형상화한 전시는, 무각사의 건축적 환경과 전시의 문화적 맥락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공간과 작품은 상호 의존성과 연속체를 강조하고 시적-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모습으로 제시된다.


《허구의 마찰》 전시 전경, ©김정아

《허구의 마찰》 전시 전경, ©김정아

《핫하우스(Hothouse)》 |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



필리핀 현대미술기관 연합체인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 (Philippine Contemporary Art Network)는 ‘Hothouse’라는 타이틀로 올해 초 개관한 광주 남구 양림동 이강하미술관 및 북구에 위치한 핫하우스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필리핀관 큐레이터, 《2008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을 역임한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 대표인 패트릭 D. 플로레스가 기획을 맡았다. 제철이 아닌 식물을 자라게 하는 구조를 뜻하는 단어 ‘Hothouse’는 생명체가 예외적으로 빠르게 자라게끔 조성한 자연과 인공 사이의 접촉지대이며 유리로 된 환경인 온실을 의미한 다. 전시는 ‘뜨거움(hot)’이라는 감성적 요소와 ‘집(house)’이라는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상황에 주목한다.


《핫하우스》 전시 전경, ©김정아

《핫하우스》 전시 전경, ©김정아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장서윤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장서윤





② 2018 부산비엔날레

가능성으로서의 분리


글쓴이 옥다애 기자
이미지 제공 백지홍 편집장, 장서윤 기자


《2018 부산비엔날레》 포스터

《2018 부산비엔날레》 포스터


《2018 부산비엔날레》가 9월 8일 개막했다. 11월 11일까지 65일 간 이어지는 이번 비엔날레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위치한 동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던 이전까지와 달리, 전시의 거점을 서부산으로 옮겼다. 서부 원도심으로의 이동은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 있는 동부산과의 지역적 격차를 줄이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균형을 꾀하기 위함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장은 올해 6월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된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로, 두 곳의 장소에 66명(팀)의 12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공개모집 방식을 통해 선정된 전시감독 크리스티나 리쿠페로(Cristina Ricupero)와 큐레이터 외르그 하이저(Jörg Heiser)가 내세운 주제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 전시감독 공모 당시부터 핵심 주제를 ‘분리’로 삼았던 두 공동 기획자는, 영토의 분리로 인해 초래된 심리적 측면, 즉 분열된 영토를 심리적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전략을 취한다. 분열, 분단, 분할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이고 군사적 권력이 촉발한 새로운 차원의 심리적, 물리적 측면의 분리라는 층위를 더해 지금 이 시대의 문제로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역사의 무수한 맥락 가운데, ‘비록 떨어져 있어도’라는 미완의 문장은 어떻게 완성되고 있을까?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백지홍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백지홍

떠올리기 쉬운 하나의 심상을 마련하기 위해, 《2018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작품 중 하나인 칼리드 바라케의 설치작업을 먼저 경유하여 이번 비엔날레의 여정을 시작해보자. 부산현대미술관 2층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칼리드 바라케의 작품은 조각과 사진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북아일랜드의 도시 런던데리(Londonderry)에 세워진 모리스 해론(Maurice Harron)의 공공기념물 〈화해/분열 너머로의 악수(Hands across the divide)〉(1991)에 대한 역전된 대답과도 같다. 북아일랜드는 통일 아일랜드를 구성하기 바라는 민족주의자(대부분 가톨릭교도)와 영국 연합왕국 내부에 아일랜드가 계속 속해 있기 바라는 친영국주의자(대부분 개신교도)의 반목이 이어져 정치적 문제로부터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분쟁까지 얽혀 있는 지역이다. 해론의 청동 조각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고 있지만 두 손이 맞닿지 않은 상태에서 정지한 모습의 두 인물을 형상화함으로써 타협점을 찾지 못한 북아일랜드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칼리드 바라케는 두 인물이 뻗은, 그러나 포개어지지 못한 손의 공간을 물질적으로 떠내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이라는 조각으로 제시하고, 두 청동상을 회전하면서 스캔한 30미터의 사진 〈악수-기억의 비계(飛階)〉를 수직으로 세워 조각을 둘러싸게 했다. 실제로는 비어 있는 두 손 사이의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를 물질적으로 가시화하고, 두 진영을 상징하는 청동 인물상을 평면의 사진 이미지로 보여주는 작가의 전략은, 시간적/공간적 차원을 뒤집어보려는 시도로 읽힌다. 1991년 모리스 해론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북아일랜드의 분쟁이 여전히 평행선을 이어오고 있음을 보여줬다면, 칼리드 바라케는 두 청동상이 떨어져 있는 원인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이를 연결하는 가능성으로 읽어낼 수 있는 ‘거리감’을 역설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2018 부산비엔날레》의 주제인 ‘비록 떨어져 있어도’라는 어구(語句)에서 암시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 거리감이다. 이때의 거리감은 단순히 분리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라케의 조각이 거리감을 드러내 보여준 것처럼, 분리의 가시화는 벌어진 차이를 분석하게 하고 다가가기를 가능하게 하는 이중적인 움직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두 공동 기획자는 주제의 시작점으로 물리적 영역의 분리인 영토와 국가의 분리를 내세웠고 이와 같은 분열이 전쟁이나 식민지화, 적대적 외교 관계 등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것에 주목했다. 때문에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여전히 잔혹하게 분열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일단락된 것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품고 있는 곳까지 수많은 분리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난민, 디아스포라, 학살의 피해자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대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통해 국가, 인종,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그러모은 작품들을, 이번 비엔날레는 또 어떻게 연결 짓고 있을까? 작가들의 작품 속에 이 분리는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며, 어떤 전복을 일으키고 있을까? 하나의 결론으로 회귀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작품에 내재하는 맥락을 충실히 읽고 그 면면들 들여다보기로 하자.


칼리드 바라케,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 2013-2018. 도자기, 23×17×15cm. ⓒ백지홍

칼리드 바라케(Khaled Barakeh),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 2013-2018. 도자기, 23×17×15cm. ⓒ백지홍

마우리시오 디아스&발터 리드베그, 〈냉전 이야기〉, 2010. 4채널 비디오, 7분(루프), ⓒ장서윤

마우리시오 디아스(Mauricio Dias) & 발터 리드베그(Walter Riedweg), 〈냉전 이야기〉, 2010. 4채널 비디오, 7분(루프), ⓒ장서윤

사실 비엔날레의 시작점이 되는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서부터 관람객의 방문은 손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입구 앞에 설치된 에바 그루빙어(Eva Grubinger)의 작품 〈군중〉이 차단봉으로 전시장 입구를 향하는 길을 구불구불 굽어지게 만들어 짧은 거리를 몇 배로 돌아가도록 관객의 동선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꽤나 지루하고 고생스러운 이 여정은 다수의 인간을 관리하고 감독하기에 편리하도록 신체를 억압하는 권력 구조를 상기시킨다. 불편을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이 작품은 강제적인 이주와 이동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의 상황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시 구조 상 이 불편한 통로 끝 가벽 너머의 블랙박스(black box)에는 마우리시오 디아스와 발터 리드베그의 영상 설치 〈냉전 이야기〉가 마주하고 있는데, 영상에서는 냉전 시기의 정치적 지도 자인 마오쩌둥, 체 게바라, 존 F. 케네디, 니키타 흐루쇼프의 모습을 한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 인형이 등장한다. 소리 높여 외쳤던 이들의 선언적인 연설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지만, 형형색색의 둥근 프레임 속 유명 연예인의 모습이나 광고의 짧은 영상이 진지한 정치적 수사 위를 가볍게 떠다니면서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교란하고 이들이 형성했던 불안정한 균형관계를 부조리하게 구현한다. 이 비틀린 감각과 함께 이 작업의 위치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보다 암시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지상 2층과 지하 1 층으로 이어지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의 1층 중앙에 〈냉전 이야기〉가 위치하게 됨으로써 사방으로 흩뿌려진 작품들의 원인 혹은 흑막으로 은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7분이라는 짧은 호흡의 영상 클립이 끝없이 반복 재생되며 조롱 섞인 풍자를 일삼는 감각 또한 같은 공간의 다른 작품과 대비되는 이 작품만의 두드러지는 특성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은폐된 곳에서 현란하게 펼쳐지는 〈냉전 이야기〉를 벗어나면, 다른 작품들이 고요하게 말을 건넨다. 전시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수잔 필립스(Susan Philipsz)의 작품 〈파트 파일 스코어〉는 대형 프린트된 오선 기보와 사운드가 공간을 둘러싸고 번갈아가며 배치되어 있는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하나의 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은 음들이 다채널의 스피커에서 띄엄띄엄 흘러나오고, 사람의 키보다도 더 크게 확대되어 출력된 기보 위에는 검고 굵은 펜으로 글자를 지운 흔적과 ‘SECRET’이라 찍힌 도장, 타자기로 정리한 인적사항 등이 작곡가가 그려놓은 음표를 가리며 감시의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기보는 작고한 사회주의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가 남긴 흔적들이다. 라이프치히 출신의 한스 아이슬러는 나치가 주적으로 삼았던 유대인이자 공산당원이었고,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망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럽 각지를 떠돌다 머물게 된 미국에서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반공산주의 물결이 미국에 불기 시작하여 아이슬러는 미국 내에서도 공산주의 밀고자로 의심받으며 블랙리스트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독일공산당에 입당하며 사회의 개혁을 꿈꿨지만 유대인으로서 독일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공산주의자란 이유로 미국에서도 감시 당한 아이슬러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수잔 필립스는 자필 기보 위를 뒤덮은 비밀 해제된 FBI 문서 프린트와 해체한 뒤 다시 녹음한 아이슬러의 곡을 통해 암시적으로 전달한다. 작품 속 흩뿌려진 그의 삶을 추적해보는 과정 속에서 아이슬러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개인이 겪어내야 했던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공간을 채우는 분절된 그의 음악처럼 어렴풋하게 밀려들어온다.


리나 린(Lana Lin)과 H. 란 타오 람(H. Lan Thao Lam)이 결성한 듀오 린+람(Lin+Lam)도 떠난 이들의 흔적과 사람들이 떠나고 남겨진 장소의 오브제를 모아 제시함으로써 삶의 미시적인 편린을 통해 거시적인 역사를 끌어왔다. 차이점이라면 보다 역사적인 장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의 작품 〈내일이면 나는 떠나요〉에서 다루고 있는 장소는 홍콩과 말레이시아에 조성되었다가 현재는 폐쇄된 베트남 난민 캠프다. 냉전 이데올로기로부터 발생한 베트남 전쟁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많은 난민을 발생시켰고, 인권유린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수만 명의 사람들이 베트남을 떠났다. 린+람은 바다를 타고 정처 없이 떠다니던 이들이 머물렀던 홍콩과 말레이시아의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작품의 제목으로 삼은 동명의 베트남 가요 ‘응아이 마이 엠 디(Ngày Mai Em Đi)’의 가사를 엽서에 적어 보냈다. 그 가요는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환송될 때 울려 퍼지던 노래이기도 한데, 캠프가 폐쇄되어 이제는 들리지 않는 노래의 가사를 문자로 옮겨 캠프에서부터 날아오도록 한 것이다. 엽서 중 일부와 지금은 비어있는 수민 수용소의 사진, 또 그곳에서 가져온 깨진 그릇, 산호초, 조개껍질, 담뱃갑, 수저 등의 오브제는 사라지기 쉬운, 혹은 사라졌어야 할 이들의 삶과 공명하는 흐릿한 흔적으로 제시된다.


헨리케 나우만, 〈2000〉, 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장서윤

헨리케 나우만(Henrike Naumann), 〈2000〉, 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장서윤

임민욱, 〈만일(萬一)의 약속〉, 2015-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장서윤

임민욱(Minouk Lim), 〈만일(萬一)의 약속〉, 2015-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장서윤

하비에르 테레즈, 〈허공 위를 날다〉, 2005. 싱글채널 비디오 투사, 컬러, 사운드, 11분 30초, ⓒ장서윤

하비에르 테레즈(Javier Téllez), 〈허공 위를 날다〉, 2005. 싱글채널 비디오 투사, 컬러, 사운드, 11분 30초, ⓒ장서윤

전쟁이나 학살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지역을 떠나게 되거나 한 지역이 반목하고 분리되는 것은 또 다른 배제와 고립이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찢어지고 분열된 영토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절박한 상황으로 사람들을 내몰았다. 정치적인, 종교적인, 경제적인 이유로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지역이 분단과 분리를 경험했고, 가로막는 장벽은 더없이 견고하기만 하다. 이와 같은 현실이 비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지만, 하비에르 테레즈는 이와 같은 무기력한 상황을 유쾌하게 전복시키는 시도를 감행한다. 〈허공 위를 날다〉라는 영상은 작가가 기획한 퍼레이드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 행사는 멕시코의 한 지역 정신병원 환자들이 참여한 행진이었다. 병원이라는 격리된 영역을 넘어 거리로 나온 이들은 동물 가면을 쓴 채로 “정신이상은 과학에 의해 지능에 우선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와 같은 메시지를 담은 팻말을 들고 행진한다. 무거울 것만 같은 이 행진은 오히려 축제 분위기다. 동물 가면이나 모자를 쓴 이들의 걸음은 트럼펫, 트롬본과 같은 소리 높은 악기와 함께였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서커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대포에 실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스미스 씨가 탑승하여 영상이 촬영되는 멕시코에서부터 미국을 향해 발사된다. 스미스 씨는 대포에 탑승하기 전 구경하는 사람 들을 향해 여권을 펼쳐 보여주는데, 그가 발사체로서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통해 부각되는 것은 그 행동의 적법성 여부보다는 국경이라는 상징적인 경계의 덧없음과 경계의 견고함을 무너뜨리는 전복성이다. 어쩌면 옳음과 그름의 구별로, 선과 악의 대립으로 옮아가버린, 정상과 비정상, 이곳과 저곳의 경계는 완벽하게 사라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과 달리, 여권 하나만 챙겨 경계선 위를 가볍게 날아 넘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은 보다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번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또 다른 장소인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과는 다른 차원의 거리감을 실험한다. 부산현대미술관의 작품들이 영토에서부터 시작된, 다시 말해 보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분리에서 전시를 시작하고 있다면, 구 한국 은행 부산본부의 전시는 ‘미래’라는 시제를 내세워 시간의 거리감을 설정하고자 했다. 시간의 거리감, 즉 시차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분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보다 유연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거리감은 사건을 외면하고 잊어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왜곡을 통해서만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지점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현재에 한 발을 딛고 미래를 상상하거나 반대로 미래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과거로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지금은 폐쇄된 과거의 공간인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 이들이 상상하는 중첩된 시간들은 어떤 미래를 가리키고 있을까?


이들이 그려내는 상상적 결과물로서의 미래는, 우리가 흔히 미래라는 시간에 기대하는, 갈등이 해결되거나 희망을 꿈꾸게 하는 모습은 아니다. 벽면 전체에 걸쳐 중년 남성의 두 눈만을 강조하여 그려진 장-뤽 블랑(Jean-Luc Blanc)의 벽화 〈비록 떨어져 있어도〉, 동독시절 비밀경찰 조직인 ‘슈타지’의 옛 도청 시설 모습을 카메라의 기계적인 움직임과 리듬으로 담아내는 제인 & 루이스 윌슨(Jane & Louise Wilson)의 4채널 영상 작업 〈거짓 양성, 거짓 음성〉은 오히려 권력과 감시의 협력 관계가 견고해지는 감시 사회로의 도달을 경고하려는 것 같다. 한편, 날개를 펼친 채 전시장 바닥에 누워있는 검은색 깃털을 가진 거대한 〈새〉 (라우라 리마(Laura Lima), 제 카를로스 가르시아(Ze Carlos Garcia))나 검게 변한 대지 위에 드럼 통과 흰 포대가 나뒹굴고 거품이 끓는 물이 고여 있는 〈딜리트 비치〉(필 콜린스 (Phil Collins))는 전 세계를 파괴할 만한 대규모의 전쟁이나 환경오염, 원전사고로 인한 폐허로서의 미래를 촉각적으로 제시해준다.


임영주, 〈객성〉, 2018. 2채널 비디오 12분 30초, ⓒ장서윤

임영주, 〈객성〉, 2018. 2채널 비디오 12분 30초, ⓒ장서윤

필 콜린스, 〈딜리트 비치〉, 2016. HD애니메이션, 컬러, 사운드 실내 해변, 고무, 타이어, 리퓨즈, 액체 웅덩이, 빛, 21분, ⓒ백지홍

필 콜린스(Phil Collins), 〈딜리트 비치〉, 2016. HD애니메이션, 컬러, 사운드 실내 해변, 고무, 타이어, 리퓨즈, 액체 웅덩이, 빛, 21분, ⓒ백지홍

비엔날레의 주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다룬 작품은 부산현대미술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임영주 작가와 이민휘&최윤 작가가 분단의 문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복잡한 층위를 은유적으로 제시 했다. 임영주 작가의 2채널 영상 〈객성〉에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의 영상 클립이 삽입되어 있다. 음소거된 채 영상으로만 송출되었던 두 남북 정상의 보도다리 회담 클립을 영상 픽셀이 깨지도록 과하게 확대하는 행위는, 소통에의 열망과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넘을 수 없는 벽을 함께 드러낸다. 이민휘 & 최윤 작가의 협업 프로젝트 〈오염된 혀〉는 파편적인 이미지와 음악으로 구성된 6편의 짧은 ‘음악 영상’이다. 이들은 “처단하라!”, “살기 위해 살기를 품는다.”, “옆집 동그라미가 총살을 당했다네.”와 같은 폭력적인 상황과 “몰랐니? 정말 몰랐어?”, “입에서 귀로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에서 감지되듯 각종 소문과 비밀에 둘러싸여 진실을 알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날카롭게 포착해냈다. 서늘한 농담에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불현듯 느껴지는 불길한 아득함에 정신이 든다. 마지막 장 ‘울고 웃는 미래를 믿지 마시오’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것 참 가짜”인 “리얼 퓨처” 뿐인 것일까?


오래 방치된 회의실 공간을 시청각 자료실처럼 연출한 밍 웡(Ming Wong)의 〈대나무 우주선에서 전하는 이야기들(파트1)〉에서는 중국 오페라극의 역사와 그 안에 침투한 중국 내•외부적 문맥들을 정리하여 펼쳐 보여준다. 다각도로 진행된 그의 리서치는 중국 오페라극이 시작된 기반에서부터 극에서 다루는 신화, 남/여성으로만 구성된 극단의 성 문제, 중국 정부의 탄압과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 등 오페라극에 얽힌 문화사의 여러 줄기들을 촘촘히 읽어냈다. 그의 연구는 마치 역사학자의 그것과도 같은데, 섬세하게 사료를 발굴하여 잊히거나 의도적으로 은폐된 이야기들의 연결고리를 재구조화하여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19세기의 역사부터 시작된 이 조사의 마지막 부분이 2046년이라는 미래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때이다. 2046년은 홍콩의 자치권이 유지되는 마지막 해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 미래의 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인 혼란이 예상되는 이 불투명한 미래를 제시하는 데 있어 밍 웡은 중국, 홍콩, 대만, 동남아권에 걸쳐 존재하는 신화 속 바다의 여신이나 중국 오페라 속 이야기 등 고전에 해당하는 자료에 2199년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 SF 애니메이션 ‘우주 전함 야마토’와 같은 공상과학의 자료를 함께 흩뿌려놓았다. 미래라는 시점에 걸맞게, 보다 암시적으로 제시되는 자료는, 이를 연결 지어보는 여러 시나리오를 촉발하게 된다.


이민휘&최윤, 〈오염된 혀〉,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6개의 비디오 프로젝트 (#Virallingua), 15분, ⓒ장서윤

이민휘 & 최윤, 〈오염된 혀〉,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6개의 비디오 프로젝트 (#Virallingua), 15분, ⓒ장서윤

밍 웡, 〈대나무 우주선에서 전하는 이야기들(파트1)〉, 2018. 혼합재료, 가변 크기, ⓒ장서윤

밍 웡(Ming Wong), 〈대나무 우주선에서 전하는 이야기들(파트1)〉, 2018. 혼합재료, 가변 크기, ⓒ장서윤

밍 웡(Ming Wong)의 자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2046〉(2004)의 주인공인 주모운의 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2046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2046년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곳이면서 저곳이며, 현재이면서 미래가 되는 예술의 영역에서 이를 기록하고 새롭게 직조해보려는 행동 그 자체가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벌어진 시간의 틈을 엮어냄으로써 변화될 가능성을 기대하는 질문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 이어지는 '2018 비엔날레' 기사는 2018년 12월 2주차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이 글은 미술세계 2018년 10월호(407호)에 수록되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미술세계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미술세계

기획·진행 미술세계 편집부

① 2018 광주비엔날레 김정아 기자
② 2018 부산비엔날레 옥다애 기자
③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장서윤 기자
④ 2018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한혜수 객원기자
⑤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 백지홍 편집장
⑥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이주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