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오늘이 된 미래: 5G와 예술

posted 2019.07.24


기획 정송 기자
홍이지 독립큐레이터


에이다(Ai-Da) The robot artist Photo: Victor Frankowski

에이다(Ai-Da), The robot artist. Photoⓒ Victor Frankowski

1984년 계몽사에서 출판된 『최신학습그림과학』 전집 중 『내일의 과학』 편은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내일의 과학』은 2013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며, 3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당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소개한 학습 만화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당시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자 도형 정보망 장치’는 1989년 발명된 인터넷을, ‘국제 텔레비전 전화’는 현재의 영상통화를 떠올리게 하는 등 미래를 상상하며 쓰인 책을 읽는 일은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미래의 과학이 출판된 지 35년이 지났고, 내가 상상하던 미래는 오늘, 그리고 과거가 되었다. 2010년 4G가 발표되고 우리 삶에 변화가 가시화되기까지 많은 변화와 시도가 있었다. 4G 시대와 함께 등장한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세상의 모든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한다’는 슬로건 아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경험, 믿음,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재정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후 2011년 등장한 사진, 영상에 특화된 메신저 앱인 스냅챗(Snapchat)은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으면 바로 삭제되는 기능으로 ‘자동 폭파 메신저’로 불렸다. 이는 새로운 SNS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며 공유,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5G 시대를 맞이하였다. 엄청난 속도는 5G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실시간(Real Time) 처리가 가능해진 초연결 시대에 진입함으로써 물리적, 심리적 인식의 확장이 가능해졌다. 더욱이 올해는 인터넷이 발명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미래가 현재가 된 오늘, 우리는 예술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루이-필립 롱도(Louis-Philippe Rondeau) 리미널(Liminal) 2018  Acrylic, aluminium, camera, code, computer, leds, projector, speakers 275×245×10cm

루이-필립 롱도(Louis-Philippe Rondeau), 〈리미널(Liminal)〉, 2018. Acrylic, aluminium, camera, code, computer, leds, projector, speakers, 275×245×10cm.


에이다의 등장


인터넷의 등장 이후, 우리는 랜섬웨어나 디도스 공격, 데이터 독점 같은 새로운 두려움과 동시에 미세먼지, 기후 변화와 같은 실제적인 재난을 겪고 있다. 또한 구술 문화에서 기록 문화로 넘어오면서 보다 정교해진 사실, 혹은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정보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이 가능해졌지만, 한편으로는 가짜 정보와 정교하게 조작된 진실을 경험함으로써 기술 발전을 둘러싼 다차원적 명제의 복잡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예술은 데이터를 통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인간 고유 영역으로 선을 그었다. 예술의 영역은 그래서 좀 더 간단하거나 동시에 간단하지 않다. AI는 분명한 목푯값이 설정되어야 하는데, 예술은 그 목표가 무엇인지 입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는 것인지 어떤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지 얼마나 무엇과 비슷하게 실수 없이 해내야 하는지 말이다. 최근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등장한 인공 지능 로봇 ‘에이다(Ai-Da)’는 안면 인식 기술이 탑재된 눈으로 상대방의 형태를 인식하고 알고리즘으로 패턴을 만들어내어 그림을 그리는 ‘최초의 휴머노이드 AI 아티스트’다. 현재 영국 옥스퍼드에서는 그의 첫 번째 개인전 《불안전한 미래(Unsecured Futures)》가 열리고 있다. 그는 8개의 드로잉, 20점의 회화 작품, 4개의 조각 작품과 2개의 영상 작품을 출품했다. 이전에도 안면 인식 기술과 알고리즘으로 추상화 이미지를 만들어낸 AI 아트는 있었지만 에이다의 등장은 다시금 예술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의 외모(한 매체에서는 미국의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 같은 외모’ 라고 하였다)와 젠더를 어떻게 작품과 결부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지, 과연 그 해석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기존의 예술 작품의 해석 차원에서 얼마나 주요한 의미를 가졌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트랜스 휴머니즘’이나 ‘바이오 기술’ 등이 휴머노이드 로봇이자 그 자체가 아트 오브제인 에이다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Sophia)가 인간과 로봇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윤리적 고민을 던져줬다면, 에이다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조성’이 학습으로 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 이전에 많은 것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카렌 란셀(Karen Lancel), 헤르만 맷(Hermen Maat) Shared Senses: Intimacy Data Symphony. 2019 Interactive performance, EEG headsets, projector, computers, speakers

카렌 란셀(Karen Lancel), 헤르만 맷(Hermen Maat), 〈Shared Senses: Intimacy Data Symphony〉, 2019. Interactive performance, EEG headsets, projector, computers, speakers.

XRT, I AM/WERE HERE/THERE #2, 2018 Computer, projector, touch monitor, VR Headset 600×600×300cm

XRT, 〈I AM/WERE HERE/THERE #2〉, 2018. Computer, projector, touch monitor, VR Headset, 600×600×300cm.


가상현실 미술관


스웨덴 출신의 큐레이터 다니엘 번바움(Daniel Birnbaum)이 스톡홀롬 현대미술관의 관장직을 그만두고 VR 회사의 예술 감독이 된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모두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그가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으로 선택한 ‘아큐트 아트(Acute Art, 이하 아큐트)’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했다. 아큐트는 2017년 스웨덴 아트 컬렉터인 제라드 드 기어(Gerard De Geer)와 그의 아들 제이콥 드 기어(Jacob De Geer)에 의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몰입형 작품을 제작, 판매하는 갤러리 모델로 시작되었다. 이후 2019년 1월 다니엘 번바움이 공식적으로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아큐트는 가상현실 미술관이자 플랫폼으로 세계적인 작가들과 제작한 커미션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프 쿤스(Jeff Koons),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와 같은 자신의 시각 언어가 확실한 작가들에게, 그들이 이런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들이 꿈꾸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아큐트와의 협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1) 예술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판단 아래 아큐트에서 제작하는 VR 커미션 작업은 핸드폰에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거나, HTC VR 기기 혹은 카드보드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기존의 작품 세계와는 다르게 기술적 실험을 토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의 작품은 물론, 예술적 상상이 기술과 만나 미래에 도래할 재난에 대해 메시지를 주는 작품도 있다. 안토니 곰리 작업의 경우, 우주인이자 예일대 교수인 프리얌바다 나타라잔(Priyamvada Natarajan) 박사와 달을 여행하는 시각적 상상력과 실제 사이를 경험해 보기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블랙홀 시뮬레이션 전문가인 나타라잔 박사와의 협업을 통해 미지의 공간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구성했다. 이러한 기술적, 매체적 시도와 협업은 신체의 이동, 물리적 환경의 한계를 벗어난 근본적인 조건들에 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룸톤(ROOMTONE), In the Gray, 2018 Virtual Reality and video Installation, computer, oculus rift, projector, speaker Dimensions variable 6’00

룸톤(ROOMTONE), 〈In the Gray〉, 2018. Virtual Reality and video Installation, computer, oculus rift, projector, speaker, Dimensions variable, 6’00.

더글라스 쿠플랜드(Douglas Coupland)는 TV의 등장이 20세기 미디어아트를 가능케 한 것처럼 VR이 인터넷 아트의 주요 매체가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2) 이렇듯 미래에 대한 해답은 기술과 함께 사유할 때만 도출이 가능하며 예술은 이러한 기술적 구현에 의한 상상력을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보이도록 만들 것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에 따르면 철학이란 ‘자기 시대를 정신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3) 우리는 가상의 존재들과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철학자 육 후이(Yuk Hui)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어떠한 기술 문명과 정신 문명을 건설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사유할 때, 좀 더 새로운 상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예술가는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 익명의 누군가가 불렀던 음악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 구술로 전해온 이야기까지도 재구성하여 작품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예술은 정형화되지 않았기에 예측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아름답고 숭고하다. 결국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 그리고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 미래라도 결국 그것을 다루는 것은 우리 인간이다. 정교하게 연결되고 기록되는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예술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지점은 인간만이 만들어내는 ‘인적 오류(Human error)’에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작은 수의 법칙(Law of Small Numbers)’에 집중하는 이유4) 역시 이러한 작은 표본과 차이가 결국 가장 인간적인 것, 글이나 말로 해석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 따른 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그 안에서 나오는 비합리적인 오류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디지털로 매개된 미술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동시대 미학의 등장을 기다린다.


노랩, 노스 비주얼, 우디 보넨(Nohlab & NOS Visuals with Udi Bonen), Deep Space Music, 2019 Realtime visual performance 32’00 Organized and sponsored by Art Center Nabi

노랩, 노스 비주얼, 우디 보넨(Nohlab & NOS Visuals with Udi Bonen), 〈Deep Space Music〉, 2019. Realtime visual performance, 32’00, Organized and sponsored by Art Center Nabi.


1)아트뉴스, 2018년 7월, https://news.artnet.com/art-world/acute-art-daniel-birnbaum-1314710.
2)다니엘 번바움, 미셸 쿠오(Michelle Kuo) 『More than Real: Art in the Digital Age』, 2018, Koenig Books.
3)허욱,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2019, p.36.
4)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Seth Stephens-Davidowitz), 『모두 거짓말을 한다(Everyone Lies)』, 2018,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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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GDF 2019] 새로운 도구는 작가의 창의력을 확장한다, 문준용 작가」, 동아닷컴, 2019년 7월 19일


이은주, 「강렬하고 우아한 '첨단 폭우', 세계적 설치작품 '레인룸'온다」, 중앙일보, 2019년 7월 31일



※ 이 원고는 퍼블릭아트 2019년 7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퍼블릭아트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홍이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큐레이팅을 공부하였다. 디지털 매체 연구와 동시대 미술의 조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미팅룸에서 큐레이팅팀 디렉터로 활동하며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연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