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최우람

posted 2012.07.17

도시에서 발견된 새로운 기계생명체들의 생태계에 대한 상상이 최우람 작품의 출발점이다. 그의 작품들은 Opertus Lunula Umbro처럼 사이비 학명을 가지고 있고, 전시장은 '기계 생명체 연합 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URAM)이르는 작가의 이름을 다시 풀어서 붙인 이름)'의 연구 발표장이 된다.




최우람 / 조각가,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1993년 중앙대학교 조소과 졸업, 1999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취득. 어린 시절부터 기계를 유난히 좋아했던 작가는 조각에 ‘움직임’을 도입한 ‘로봇 아트’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동경의 모리미술관,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뮤지엄, 호주의 존커튼 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상하이 비엔날레, 리버플 비엔날레 등에 초청받는 등 주로 해외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일렉트릭 애니미즘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새로운 생태학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조각가 최우람이 만들어낸 이 SF적인 사이비 생태학에 푹 빠지게 된다. 작품의 캡션 대신 학술적인 설명서가 붙어있고, 어두운 전시장에는 기계 생명체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 문명의 거대한 집산지인 도시는 갖가지 통신망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복잡한 회로로 연결된 유기적인 생명체 같은 존재이다. 도시에서 발견된 새로운 기계생명체들의 생태계에 대한 상상이 최우람 작품의 출발점이다. 그의 작품들은 Opertus Lunula Umbro처럼 사이비 학명을 가지고 있고, 전시장은 ‘기계 생명체 연합 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 URAM이르는 작가의 이름을 다시 풀어서 붙인 이름)’의 연구 발표장이 된다.



최우람_Varietal Urbanus Female_2007
최우람_Varietal Urbanus Female_2007


최우람의 작품은 경계 없는 무한 상상력과 치밀한 테크닉의 결합이다. 미술사는 언제나 당대 최고의 과학을 흡수하며 진보해왔으며, 동시에 과학에 다양한 상상력을 제공해왔다. 미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의 결합은 그의 유전자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 모두 미술을 전공하였고, 그의 할아버지는 1955년 한국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최우람 자체도 체계적으로 발전해온 유전자들의 완벽한 결합체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하고 한때 로봇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가 펼쳐 보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새로운 생태학'은 화석을 통해서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생명체들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의 작업에 대한 역발상이다. 현대의 도시문명 바탕으로 미래의 생명체들을 상상함으로써, 우리의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일이다.


일렉트릭 애니미즘 Electric Animism



최우람_Una Lumino_2008
최우람_Una Lumino_2008


집적된 기계문명에 대한 일종의 공포, 일종의 기계에 대한 애니미즘적인 사고에서 그의 작품은 시작된다. 인공지능으로 발전한 기계문명이 인간을 압도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1997년 5월IBM의 딥 블루 슈퍼컴퓨터가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 Garry Kasparov를 이겼다. 고도로 발전한 기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단순한 상상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현실적인 근거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잠시나마 공생으로 보였던 관계는 육만오천년만에 진화의 속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기계에 의해 깨어져간다.......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이 그들(기계)의 숙주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전율을 느낀다. 인류가 이룩한 기계문명의 바다는 태초의 지구에 생명을 탄생시킨 '코아세르베이트' 가 만들어지기에 충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기계 자신들을 위한 기계가 출현하고 있을지 모른다."



최우람_Una Lumino_2008
최우람_Una Lumino_2008


최우람이 상상하는 무기생명체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예컨대 기계 생명체Mudfox은 지하철 통로에서 살며 지하철 노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들의 사는 지하철 통로는 인간의 손에 만들어졌지만, 인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기계생명체들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다가 우연적인 발견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존재를 드러낸다. 최우람의 SF적 상상력의 밑바닥에는 비유기체적 사물을 죽은 것,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 파악하는 애니미즘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애니미즘의 기원은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인격화시켜서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설명할 수 없는 해괴한 일이 갑자기 벌어지는 것은 도깨비의 장난질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도깨비, 몽달귀신, 빗자루 귀신 등등은 애니미즘의 대중화된 형태들이다. 예전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이 이런 애니미즘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애니미즘적인 사고가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했다. 도시 문명과 과학문명의 급격한 발전은 일반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복잡하고 두려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일렉트릭 애니미즘의 발생 근거이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는 '기계생명체'들의 비유적인 세계이다. 로봇은 비록 반란을 일으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지라도 처음에는 인간의 통제와 조작 하에 존재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는 기계문명의 발달의 결과이지만, 결코 의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인간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파악 불가능한 어떤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최우람의 일렉트릭 애니미즘적인 사고는 극에 달하는 것이다.



최우람_Kalpa_2010
최우람_Kalpa_2010


새로운 미술 - 로봇아트


앞서 지적한 대로 그의 작품은 일종의 진보한 키네틱 아트로, 미술적 상상력과 테크닉의 완벽한 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계와 과학의 발전은 예술을 새로운 단계로 추동해 내는 중요한 힘이었다. 원근법의 발명, 카메라 옵스쿠라, 새로운 화학적 발전에 따른 신소재의 발견,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최근의 미디어 아트의 발달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적 철학적 영역에서뿐 아니라 재료와 소재라는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실제로 미술은 당대의 최고의 과학기술과 함께 해왔다. 특히 컴퓨터 기술의 발명으로 작가들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소프트웨어 지향적이다. 이와 달리 최우람의 작품은 혹은 로봇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이는 발전된 키네틱 아트의 일종이다.


최우람의 작품은 고전적인 조각품이 갖는 위엄과 독립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것들은 완결된 스토리와 SF적 기원을 가진 독자적인 물체(thing)이다. 최우람의 작품은 우선 형태론적인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2000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디테일은 매우 세련되고 아름다운 기계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머리 속의 환상이 충만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하나의 실체, 조각이라는 구체적인 미적인 향유의 대상, 즉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최우람 조각의 느리고 유연한 동작은 레베카 호른의 기계 조각과 비견할 만 하다. 레베카 호른의 기계 조각은 사실 매우 간단한 조작으로 움직이는 수공업적인 기계이다. 단순한 기계적인 제어장치로만 움직이는 레베카 호른의 작품이나 이보다 발전한 최우람의 작품에 예술성이 깃드는 것은 서정성이 기술력을 철저히 통제하고 상호 조응하기 때문이다. 로봇 조각들의 예술성은 서정성과 기술력의 황금비례를 가지고 결합할 때이다.



최우람_Opertus Lunula Umbra (Hidden Shadow of Moon)_2008
최우람_Opertus Lunula Umbra (Hidden Shadow of Moon)_2008


"기계 생명체의 등장은 사람의 욕심이 끝을 모르고 커지게 된 결과라는 점에서 시작했다. 문명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비판이 작품에 담기길 바란다." 과학기술의 발전방향은 정확하게 자본의 흐름과 일치한다. 이익을 창조하지 않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최우람이 개발하는 기술 자체는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최우람 작품의 느린 속도는 자본주의가 고무하는 경쟁의 속도에 반하는 것이다. 그는 기술 개발자가 아니라 새로운 관념을 보여주는 예술가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형상을 통해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다”라고 최우람은 조각가를 설명한다. 최우람은 금세기 장 고양된 예술가의 지위, 창조자, 그것도 한 생태계의 창조자로서의 지위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과학적 발전을 예술적으로 길들이기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들은 느리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그런 움직임은 생존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다가는 모두 천적에게 먹혀버릴 것이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법칙이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라는 정글의 세계에서는 그런 움직임은 생존에 불리하다. 최우람이 만든 기계생명체의 생태계에는 천적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SF물이 경악할 만한 대량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면서 현실 갈등의 대리전을 치루내지만, 최우람의 세상에는 전쟁은 없다. 다만 그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추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비유와 이미지로 보여주는 예술적 소명에 충실하다. 2008년 리버풀 비엔날레에 선보였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는 전체 길이가 5.70m에 750㎏의 중량을 가진 거대한 작품이다. 초승달 형태의 이 작품은 노처럼 생긴 갈비살을 서서히 움직이며 전시장을 헤엄쳐 갔다.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달빛이 환한 밤에 항구도시 리버풀의 부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수면 위로 한 생명체가 떠오르는 것 같다"며 "옛날 리버풀 바다 속에 가라앉은 배와 기계들이 이 작품으로 재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는 '숨겨진 달 그림자'라는 뜻이다. 차가운 기계 생명체에 그는 클래식하면서도 서정적인 이름을 붙이면서, 문명 속에 잃어버린 신화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한다.



최우람_.Arbor Deus(Treeof God)_2010
최우람_.Arbor Deus(Treeof God)_2010


최근에 그는 새로운 이야기에 입각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Arbor Deus (Tree of God)]는 기계문명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광신과 욕망을 비판하는 스토리는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신화적인 세계는 인간의 무관심과 과도한 욕망으로 끊임없이 손상될 위기에 처해있다. 멸종의 위기에 처한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의 이야기 역시 비극성이 배가되어 있다. 작은 구멍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세계가 서로 닫히지 않도록 지키는 기계생명체가 바로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이다. 이들이 멸종의 위기에 처한 것은 다름아닌, 다른 세계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점차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 희망을 전한 사람은 바로 예술가, 최우람 자신이다. “어제밤 나의 작은 마당에 마지막 남은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뼈에서 유니쿠스(Unicus)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예술가가 있는 한, 끊임없이 현실 속 더 깊은 현실을 상상하는 예술가가 있는 한 세상은 자기교정을 거치면서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이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문학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 미술과 문학 사이>,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월간 [톱클래스]에서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를, [중앙 SUNDAY]에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국내에 소개가 미진했던 러시아 화가들을 알리는 『러시아 미술사』(민음in 2007)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비평집 『미술의 빅뱅』(민음사, 2010), 아트 에세이 『아름다움에 기대다』가 있다. http://blog.daum.net/kmedi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