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들이 예견한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이미 우리의 '환경' 도처에서 그 실현 가능성을 검증받고 있다. 게다가 예술이 미래 사회와 연동하여 '새로운 시각과 담론'을 생산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종종 눈에 띈다. 그것이 '더 니은' 사회를 위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결코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반목과 갈등을 품고 있는 불완전한 꿈의 사회가 제시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라는 점에는 깊이 공감한다. 여전히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고 있는, 여기 10여 명의 작가들처럼...
이른바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 드림 소사이어티 The Brilliant Art Project: Dream Society》전은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의 책 『드림 소사이어티 The Dream Society』(1999)에서 그 제목을 빌어 왔다. 이 전시의 기획자인 서진석(대안공간 루프 디렉터)은 전시 카탈로그에 실린 글 「‘드림 소사이어티’ 시대의 예술」에서, “21세기 예술은 다양성, 융합성, 전지구성의 옷을 입으며 미래의 삶과 환경에 새로운 공공적 가능성을 제기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과 담론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전시의 목적을 피력했다. 다시 말해서, 기획자의 의도에 따른다면 이 전시는 ‘보다 나은’ 사회와 문화를 추구하는 ‘꿈의 사회’를 위해 ‘소통’, ‘협력’, ‘융합’, ‘참여’, ‘교차’ 등의 가치와 모델을 제시한다. 이를 두고 섣불리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적인 전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노골적인 반목과 갈등이 도처에 나타나있고, 그렇다고 세계화를 꿈꾸는 한류 문화의 세련된 태도쯤으로 평가하기엔 지나치게 담론에 근접해있다.
그렇다면 이 전시가 오늘 한국 동시대미술의 현장에 요청한 “새로운 시각과 담론”은 무엇인가? 우리는 기획자의 위의 글에서 그 대답 또한 찾을 수 있는데, 소위 ‘환경미학(Environment Aesthetics)’이라고 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이때 환경미학이 정의하는 ‘환경’이란, 삶을 둘러싼 자연 뿐 아니라 건축물, 도시 공간, 산업 활동 등의 사회․문화적 범주까지 포함한다. 때문에 환경미학 담론에 기대어 기획된 전시 《드림 소사이어티》는 동시대 미술이 ‘지금-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잡한 사회․문화적 환경임을 보여준다.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시각문화(Visual Culture)’ 담론을 환기시키기에도 충분하다. 한편 ‘드림 소사이어티’로 이름 붙여진 미래주의자들의 용어에서도 앞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옌센에 따르면, 미래 사회인 드림 소사이어티에서는 “감성에 바탕을 둔, 꿈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보다 점점 더 커질” 것을 확신한다. 요컨대 그들이 정의한 꿈의 사회는 과거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정보사회를 추월하는 역동적인 감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감한다.
《드림 소사이어티》전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는 총 10팀으로, 미디어 아트 뿐 아니라 건축, 그래픽 디자인, 패션 디자인, 대중음악, 복합문화연구 등을 전시에 포함시켜 최대한의 다양성과 대표성을 추구했다. 전시공간인 옛 서울역사 중앙 홀에 들어서면, 입구를 등지고 설치되어 있는 사진작가 김용호의 광고사진들과 그 맞은편에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조각적인’ 의상들이 긴 좌대 위에 줄지어 놓여있다.
광고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김용호는 TV 액자 형태로 설치된 〈Live Brilliant_Diamond in my heart〉(2012)를 통해서, 그동안 작업해왔던 자동차 CF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줬는데, 그는 상업적인 광고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에 대한 진부한 물음 대신 사진의 매체적 속성을 극대화하여 대중과의 “수평적 공감”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한국근대 여성작가의 상징적인 이름을 초상사진 형태로 재연한 <나혜석>(2006)과 호숫가 풍경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연잎의 뒷면을 극사실적으로 촬영한 〈pian 2011-002〉(2011) 역시 익명의 대중들의 무수한 관념 속에 있는 그 어떤 상(象)들을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시각적 표상으로 연출했다.
한편 끊임없이 패션의 철학적 담론을 모색해왔던 임선옥은 패션에 의도적으로 조각적 양감을 덧대어 “형상과 질료의 이상적 화합”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입을 수 있는 실용적 기능을 충족시키는 그녀의 의상들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조각의 예술적 순수성을 또 다시 전복시킨다. 이렇듯 김용호와 임선옥은 광고 및 패션 산업의 기능적 완결성을 예술적 감성으로 실현시키면서, 미래학자 옌센이 묘사한 드림 소사이어티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 된다.
중앙 홀에서 옛 플랫폼 자리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르면,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의 커다란 문자 전광판이 줄 세워있다. 전광판 위에는 ‘딜레이하는☞게♣좋겠습니다’, ‘아↗요즘♥유행하는♪스타일!’ 등 즉각적인 소통을 방해하는 문자와 기호들이 반복적으로 프린트 되어 있다. 이러한 〈Recurring〉(2012) 연작은 “언어의 이해와 소통”에 대한 그들의 탐구에 바탕을 둔 작업으로, 소통의 전략을 미덕으로 삼는 그래픽 디자인의 방법론을 거스르는 제스처다. 세계화, 기계화, 산업화, 디지털화로 인해 변용된 혼성적 문자와 기호들을 그저 시각적으로 충실하게 디자인함으로써, 시각적 문자기호들은 개념적이고 다의적인 의미들을 표면에 쏟아낸다.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슬기와 민의 그간의 활동은 출판, 포스터 등 그래픽 디자인 영역부터 순수예술, 특히 전시체계에까지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동시대미술의 현장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공공성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전시 제목에서 드러나듯,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미래 사회에서 더욱 강조된다. 협업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사회적 기능을 역사적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문경원+전준호는 이번 전시에 역사적 공간을 재해석하는 퍼포먼스 영상 설치로 참여했다. 〈Monologue-Crops sans Organes〉(2013)는 카메라 프레임을 통한 확대/축소, 변형/왜곡의 영상처리 기법을 십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역사’의 궤적을 스크린에 투사시켰다. 마이미스트를 비롯한 무용수가 등장한 이 세 개의 영상은 전시공간인 옛 서울역사 2층의 대식당 공간을 무대로 삼아, 텅 빈 부재의 공간에 대한 역사성을 매우 사색적으로 풀어낸다.
정연두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사회와 문화에 깊이 ‘오염’되어 있는 예술의 창조성을 시각화한다. 그가 문제 삼은 ‘진실’과 ‘허구’는 단순히 시각적 환영만을 교란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현가능한 것과 실현 불가능한 것 등의 전복적이고 복잡한 혼성적 가치를 가시화하기 위함이다. 최근작 〈Drive-in Theater〉(2013)는 전시장에 설치된 자동차를 가짜로 운전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실시간 촬영하여, 그것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 이 때 기계적 장치를 통해 생산되는 모조의 이미지가 눈앞에 가감 없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합리적인 정보보다는 감성에 충실한 감각에 더욱 의존하여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이미 우리의 ‘환경’ 도처에서 그 실현 가능성을 검증받고 있다. 게다가 예술이 미래 사회와 연동하여 “새로운 시각과 담론”을 생산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종종 눈에 띈다.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결코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반목과 갈등을 품고 있는 불완전한 꿈의 사회가 제시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라는 점에는 깊이 공감한다. 여전히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고 있는, 여기 10여 명의 작가들처럼….
[사진제공] 대안공간 루프
홍익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졸업, 동대학원 미술비평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KBS <디지털 미술관> 방송작가로 근무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오브제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재조명: 1930년대 초기 작품을 중심으로」(『현대미술사학』 제27집, 2010)가 있으며, 2012년 [아트인컬처] 주관 ‘뉴비전 평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