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장서영의 드리프트 드라이브

posted 2020.04.08


최희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장서영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개인전 《블랙홀바디》(2017)를 통해서다. 제목 그대로 그의 작업은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 같은 잔상을 남겼다.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 공허, 냉소의 감정은 연민과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작품 대부분이 무기력해 보이지만 실은 버티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밝힌 영상과 내레이션, 입체와 같은 표면적인 매체에 시간과 공간이란 내재적 매체가 어우러지는 장서영의 작업을 만나보자.


장서영은 1983년 출생했다. 이화여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베를린예술대학에서 Art in Context를 전공했다. 《무력한 불안》(2010 스페이스집 갤러리), 《In the Box》(2012 경남도립미술관), 《블랙홀바디》(2017 씨알콜렉티브), 《Off》(2019 두산갤러리 뉴욕), 《시작하자마자 끝나기 시작》(2019 두산갤러리 서울) 제하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14회 서울 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 뉴미디어아트, 제8회 부산 국제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있다.


〈슬립스트림〉(사진 왼쪽) 2채널 영상 15분10초 2019 사진: 홍철기,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 개인전《시작하자마자 끝나기 시작》 전시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슬립스트림〉 2채널 영상 15분10초 2019 사진: 홍철기,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 개인전《시작하자마자 끝나기 시작》 전시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장서영의 작품에는 거듭해서 드러나는 반복의 정서가 있다. 마치 줄이 아주 긴 그네를 타고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올라갔다가 뒤로 다시 물러나는 감각 같다고 비유하면 적절할까?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잠깐의 정적과 함께 피부 속을 얕게 파고드는 중력의 불안함,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와중에 목덜미에 닿는 공기의 속력, 몸이 마치 거대한 시계추가 된 듯한 움직임으로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감각 등이 장서영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그의 영상에서 느릿하게 회전하는 인물이나 물체의 이미지, 타원형 서킷을 주행하는 차의 모습, 나선형 계단을 따라 끊임없이 걸어 내려가는 시선 등 무한한 회전의 감각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작업이 명확한 시작과 종료가 아닌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는 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반적인 작품 속에서 이러한 반복을 거듭하며 장서영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일까?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각각 있음과 없음의 어떤 상태로 두고, 그 양극 사이를 빙빙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태어남과 사라짐, 둘 중 어디에도 닿지 않는 미세한 거리를 유지하며 노화, 질병, 변화하는 몸의 감각, 유전자의 전달 등에 대해 계속해서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리감으로 장서영의 작품은 결론에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나아갔다가 속절없이 처음으로 돌아오는 모습처럼 보이곤 한다. 그리고 결국 매순간 늙어가는 존재인 ‘나’로 돌아오기에 작업을 보는 사람이 무력감이나 공허한 느낌을 받는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늙어감, 죽어감, 사라져감 등에 대해 말하는 장서영의 작품은 시간 자체를 매체로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지니는 요소들을 한데 모아 교차하게 만든다. 그의 2019년 작품 〈유어 딜리버리〉는 현상 중인 폴라로이드 사진들 위로 네덜란드어를 구사하는 소녀의 내레이션이 겹쳐지는 영상이 중심을 이룬다. 어슴푸레한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 톤의 사진들에는 그것이 눈밭의 푹 파인 구덩이인지 몸속에서 자라난 혹인지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드러나 있고 내레이션은 무덤덤한 어조로 선대인 나의 유전자가 오랜 시간을 지나 너(안젤리나)에게도 배달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편지의 형식을 빌려 서술한다. 이 선대가 보내온 애정 어린 경고장은 전시장에 상영됨으로써 유전자라는 몸의 작은 부분이 개인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시간, 영상이 러닝타임 속에서 재생되는 시간, 전시장 안에서 실제로 흘러가는 시간과 교차하며 보는 사람 앞으로 도착한다,


<〈유어 딜리버리〉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분19초 2019, 사진: 57스튜디오,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2019.6.20~2019.9.1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인 작품 설치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유어 딜리버리〉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분19초 2019, 사진: 57스튜디오,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2019.6.20~2019.9.1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인 작품 설치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한편 작가에게 노화라는 주제는 시간을 경험하며 낙후되는 신체와 신체가 늙어가며 달라지는 시간 감각,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서영의 최근 개인전 《시작하자마자 끝나기 시작(2019.11.20~2019.12.21, 두산갤러리 서울)》 출품작들은 이러한 작가의 관심사를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채널 영상으로 제작된 〈초속〉(2019)에서 작가는 안무가에게 시계를 보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일상적인 행동을 노인의 신체로써 수행하는 듯한 안무를 주문했다. 그리고 같은 안무를 원래의 속도로 추고 그대로 재생한 영상, 느리게 추고 빠르게 편집한 영상, 빠르게 추고 느리게 편집한 영상의 구조로 나란히 보여주었다. 그 결과 각각의 화면에는 마치 시계 초침의 움직임과 같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퍼포머의 동작과 그로 인한 초속의 압축, 늘어짐이 드러나게 된다.


〈슬립스트림〉(2019)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한층 더 직접적이다. 영상은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에 따라 운전하는 인물의 시점에서 목적지인 실버타운까지의 길을 건조하게 비추며 흘러간다. 2채널로 제작된 영상은 서로 마주 보게끔 설치되었고, 한쪽 영상에는 차의 전면 창과 백미러의 풍경을, 맞은편 영상에는 후면 창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어 관람자가 운전석에 앉아있는 듯한 시선을 취한다. 오류와 감정이 난무하는 안내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차는 지하주차장에서 고속도로로, 터널로, 실버타운으로 이동하며 죽음에 이르는 역행할 수 없는 선(線)과 거기에 좌표점처럼 탑승하고 있는 우리의 시간에 하이라이트를 비춘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이하는 미래의 시간과 이미통과하여 과거가 된 풍경, 그 사이를 초(秒)마다 갱신하는 관람자를 통해 일종의 시간의 레이어가 만들어진다.


〈미래를 만지듯〉 단채널 영상 5분16초 2019 사진: 57스튜디오. 사진제공 월간미술

〈미래를 만지듯〉 단채널 영상 5분16초 2019 사진: 57스튜디오. 사진제공 월간미술

영상과 공간의 조우

앞서 살펴본 시간의 문제와 맞물려 있기에 공간을 끌어들이는 방식 또한 장서영의 작품에서 눈여겨 살펴볼 부분이다. 그의 영상은 영화적 미감이나 연출만을 최우선에 두고 있지 않으며, 작품이 보이는 환경을 자신의 매체로 다루고 있기에 단순히 그를 영상작가로 보는 것은 잘못된 분류일 것이다. 특히 작가는 다수의 영상과 입체를 한 공간에 배치하고 중심이 되는 영상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입체의 형식을 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2019.6.20~2019.9.1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전시에는 총 4점의 영상 〈유어 딜리버리〉, 〈미래를 만지듯〉(2019), 〈렌즈탑〉(2019), 〈마운틴뷰〉(2019)와 1개의 조각작품 〈구멍 난 치즈에서 치즈를 뺀 나머지〉(2019)를 설치하였다. 각각의 영상은 독립적이면서도 특정 장면과 분위기, 전반적인 구성이 〈유어 딜리버리〉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조각은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희고 가볍고 연약한 부피감으로 실존시킴과 동시에 영상의 사이마다 흩어놓은 이미지들을 다시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주었다.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사운드나 빛의 간섭이라는 위험을 안고서라도 장서영은 공간을 작품에 끌어들인다. 사실 이와 같은 환경의구성은 관람자의 몰입을 돕기보다 그것을 방해하기 쉬운데 이러한 반몰입의 상태는 작가가 작품 전반에서 보여주는 회전, 반복, 끝까지 가지 않고 되돌아오는 정서와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을 다루지만 공간 자체에 대한 과한 연출이 장서영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또한 이런 이유로 볼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질펀해지거나 찐득해지는 것을 피하려 하는 장서영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영상에서 시간이 무한함을 상징한다면, 조각은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을 환기시킨다. 글의 초반에서 언급했듯이 영상의 러닝타임이 계속해서 루핑 하는 시간이라면 장서영의 조각 혹은 입체작품은 현실의 시간을 전신으로 반영하는 존재다. 두산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초속〉, 〈슬립스트림〉, 〈햄버거〉(2019)와 함께 입체작품인 〈실버〉(2019)와 〈헤이플릭 한계를 지나고 있습니다〉(2019)가 같은 공간에 전시되었다. 전자의 경우 노약자용 의료 보조 기구의 기본 구조를 본뜬 것이며, 후자는 〈슬립스트림〉의 한 장면을 커튼 형식으로 출력하여 물리적으로 압축된 시 공간을 주름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그의 영상과 조각은 서로의 뉘앙스를 하나에서 빚어낸 뭉툭한 감각을 다른 하나에서 좀 더 섬세하게 다듬어내는 방식으로 받아치고, 전달하고 확장시킨다.


〈이름없는 병〉 2채널 영상, 루프 2016 사진: 이지양. 사진제공 월간미술

〈이름없는 병〉 2채널 영상, 루프 2016 사진: 이지양. 사진제공 월간미술

이와 같이 장서영은 영상과 내레이션, 입체와 같이 표면에 드러난 매체와 시간과 공간이라는내재된 매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지는 분할되고 연결되며, 작가가 전달하려는 감각은 더욱 날카로운 단면을 지닌 것으로 다듬어진다. 그의 작품은 죽음의 냄새를 지니지만 죽음은 아닌 것, 끝까지 남은 거리로부터의 가능성, 모호하지만 분명한 존재감 등을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다. 카레이싱에서 빠르게 주행하는 앞 차 뒤에 바짝 붙어 저항을 줄이고 추월의 에너지를 모으는 전략인 슬립스트림과 같이 장서영은 이런 반복 속에서 드리프트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언어는 〈초속〉에서의 째깍거리는 움직임과 같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것은 매일의 노화처럼 금방 눈에 띄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의 주행법을 아주 유심히, 천천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20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최희승

최희승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하였고, 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주로 전시를 기획하고, 즐겁게 본 작가와 전시에 대해 글을 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MMCA, 2019), 《동시적 순간》(MMCA, 2018), 《층과 사이》(MMCA, 2017), 등을 기획했고, 고고다다 큐레토리얼 콜렉티브로 활동하며 《둥둥 오리배》 (오퍼센트, 2019), 《세 번 접었다 펼친 모양》(브레가 아티스트 스페이스, 2018)을 공동 기획했다. 현재 두산갤러리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