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오버레이: 회화적 질감을 탐구하는 시선

posted 2022.09.06


이미지01

〈무제(빙하 풍경 시리즈)〉, 2013, 캔버스에 유채, 90.9×72.7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어떤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관습적으로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추측’이 시작되는 순간, 그림을 보는 행위는 어떤 ‘정답’을 찾기 위한 시도로 귀결해 버린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그림을 재미없게 만들어 버리는 자가당착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다. 김하나의 작업을 처음 봤을 때, 나 역시 ‘추측’의 기제를 먼저 들이밀었다. 그림을 보고, 제목을 보고, ‘빙하’에 앉아있는 사람의 형상을 그린 것이리라 어렴풋이 어림잡았었다. 이후 현장에서 ‘보통의’ 회화적 선택과는 다른 실험으로서 그의 행보를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캔버스를 지지하는 프레임을 상단부에만 짜 넣고 하단부는 천 채 늘어뜨려 매달아놓거나 캔버스를 겹쳐 (그림을 잘 볼 수 없을 만한) 모서리에 걸어놓는 등의 모습이 그 시작이었다. 이즈음 ‘추상이라는 범주, 나아가 회화의 자장 안에서 그의 그림을 읽는 것이 온당한 선택일까?’라는 의심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였다.


김하나가 발표해온 작업은 관습적으로 읽어 내려져 온 (혹은 학습된) 회화의 독해법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가장 먼저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눈에 파악되지 않고, 그림에 답을 내리기 위한 쉽고 빠른 선택으로 (정신성을 위시하는) ‘추상’의 범주에 밀어 넣어버리기엔 어딘가 온당치 않은, 무언가 원시적인 감각마저 느껴진다. 이토록 ‘낯선’ 그림은 보는 이를 다시 한번 ‘추측’하고 ‘관찰’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느껴지는 생경하고도 이질적인 감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그림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글은 김하나의 작업을 마주하며 품어온 추측과 관찰 그리고 이질적인 감각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한 작은 시도이다.


이미지02

〈브라운, 블루, 실링, 쉬핑 #3〉, 2020, 캔버스에 유채와 콜라주, 72.7×90.9cm, 90.9×72.7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감각을 건드리는 일


색채, 염색, 풀, 모, 섬유, 직물, 광물질, 보석, 돌, 모래, 물, 바다, 빙하, 파도, 포말, 빛, 반짝임, 신기루···. 김하나의 작업에서 발견한 사물/상태이다. 그것의 단서는 제목에서, 작가의 말에서, 그리고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의 눈을 사로잡은 것들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발견된 사물/상태’ 간의 공통점인데, 형상보다는 질감으로 인식하게 되는 재료들이자 개념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들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물/상태들은 기념품 엽서 속 설산, 가보지 못한 빙하의 이미지, 영화 속 어느 아프리카 해변가의 외인부대 풍경 등 실제로 가보지 못한, 그러나 지금 여기를 이루는 감각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품은 듯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작가를 낯선 감각의 세계로 이끄는 트리거가 된다. 구체적 대상/풍경으로부터 출발한 감각을 (비)가시적 형태로 치환해 나가는 그의 작업은 2020년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에서의 전시 《브라운, 블루, 실링, 쉬핑》을 기점으로 보다 더 원론적이고도 초월적 대상인 하늘과 땅, 바다 등으로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대상들은 구체적 형태 없이 항상 변화하는 것들, 그러나 분명히 이 세계에 실재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발견된 사물/상태를 감각하는 작가의 태도- 형태보다는 질감으로 인식한다는 점-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그는 이 사물/상태에서 포착한 감각을 캔버스로 끌어와 자신의 방법론-흘리기, 굳히기, 덮기 등-으로 재형상화를 시도한다. 결국 이는 재현할 수 없는 (한눈에 붙잡아 둘 수 없는) 대상을 캔버스 위에 붙잡아두려는 시도이자, 그렇기에 ‘형태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선택이 되겠다.


이미지03

〈브라운, 블루, 실링, 쉬핑 #2〉, 2020, 캔버스에 유채, 75.7×93.9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이미지04

〈브라운, 블루, 실링, 쉬핑 #1〉, 2020, 캔버스에 유채, 72.7×454.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일견 추상의 옷을 입고 있는 듯 보여온 초기 작업은 점차 화면을 더욱 비워 나가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그의 작업은 어떤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회화의 조건, 물질성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림이 놓이는 상황, 공간과의 조응에 보다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캔버스 프레임이나 두께의 변용은 물론이고 종이, 동판, 나무, 유리, 가죽, 거울 등을 유화의 지지체로써 실험하며, 그림이 놓인 곳을 관람자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것을 둘러싼 상황을 능동적으로 관찰하도록 유도하고[《Brown, Blue, Ceiling, Shipping》], 그보다 앞서서는 한옥 마루의 높낮이 등을 활용해 관람에 있어서의 시점 변동을 요구한 바 있다[《그림과 조각》(시청각, 서울, 2018)]. 일견 그의 작업에서 그림은 ‘걸린다’ 보다 ‘놓인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해 보인다. 벽에 온당히 걸려 있어야 할 그림들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놓여있는 상황은, 그림을 보러 온 관객들이 으레 기대했던 바를 어긋내며 작가가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바로 그 ‘낯선 감각’을 관람객에게 전이시킨다.


이러한 작업 흐름 안에서, 2019년 열린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의 개인전 《Beau Travail》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전시 명과 동명의 연작 〈Beau Travail〉은 ‘캔버스’와 ‘유화 물감’이라는 기본 재료나 벽에 오롯이 걸리는 ‘수직성’ 등 오랫동안 회화가 가져온 고유한 특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관람자가 이 그림을 여전히 회화의 자장 안에서 이해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람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이것이 회화인가, 그렇다면 과연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품도록 하는, 재귀적 상태로 돌려놓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화면 속 이미지를 넘어 캔버스 그 자체가 하나의 조각적 물질과 같이 드러나는 상태를 표지하거나[〈Beau Travail 4(2019)〉], 콜라주된 캔버스 한 조각이 그림 위에 올라 붙어있는 상태[〈Beau Travail 1〉(2019)], 적극적인 빛의 개입[〈Beau Travail 7〉(2019)]에 의지해야만 비로소 드러날 (비)가시적 레이어를 둘러놓는 일련의 선택들은 ‘회화적 제스처’라기보다는 ‘그림이 놓여진 상황’에 조응하는 ‘지지체실험’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전의 흐름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이상하다(Le beau est toujours bizarre)


달라진 지지체에서 고유의 질감이 드러나는 순간, 그의 손은 멈추고 작업은 완성된다. 물감이 캔버스에 흐르고 덮이고 고이게 하는 과정 끝에 완성되는 〈Glacier Landscape〉연작과 형상을 지우고 펄 컬러 오일 파스텔을 덧씌우는 등 의외의 색으로 (비)가시적 레이어를 생성하던 〈Little Souvenir〉연작을 지나 〈Beau Travail〉 연작까지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오버레이(Overlay)가 아닐까. 그는 붓에 의해 계획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닌 평면이라는 이차원 공간 안에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흘러 덮이기를, 그리고 이 ‘오버레이’의 궤적이 굳어져 하나의 물질로서 존재하길 일관되게 시도해 왔다. 빙하가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파도가 높이 올랐다 내리길 반복하는 것처럼, 김하나가 손에 쥔 지지체 위에서 물감이 흘러 고이고, 그것을 보는 이의 시선과 동선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 ‘동적인 상태’는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동시에 이를 볼 관객에게 요청하는 하나의 태도일 것이다.


이 흘리고 흐리고 붓는 행위는 어느 정도의 우연성을 전제로 한다. 그의 작업에서 일견 ‘추상적’이라 쉬이 호명되어온 그것은, 오히려 (정신적이고 이성적인 것의 반대급부로서) 경험적이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가장 오래된 매체, 절대 평면이라 호명되어온 추상 회화에서 벗어나 그 의미를 재전유(reappropriation)하기 위한 시도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김하나의 작업이 낯설고 이상한 것에의 이끌림이자 그것을 눈앞에 드러내 보이려는 회화적 시도라면,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이상하다”라는 보들레르(Joseph-François BAUDELAIRE, 1759-1827)의 오래된 말처럼, 그 이상한 것은 언제나 우리를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 이 원고는 『2020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보고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신지현

신지현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Post-Pictures》(갤러리175, 서울, 2015), 《3×3: 그림과 조각》(시청각, 서울, 2018), 《10Pictures》(WESS, 서울, 2020), 전명은 개인전 《Floor》(SeMA창고, 서울, 2019), 노은주 개인전 《Walking-Aside》(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9) 등을 기획하였다. 뉴미디어 시대 안에서 전통적 매체의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를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연구과제로 삼고, 전시와 글 등을 통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