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미술전문가

K = 한국. 글로벌 미술시장이 한국을 주목하는 동안, 세계를 점령하는 한 글자

posted 2022.11.03


토마스 기르스트, BMW 그룹 문화예술부 총괄 디렉터

토마스 기르스트, BMW 그룹 문화예술부 총괄 디렉터

K-팝, K-뷰티, K-푸드… 모든 K 문화.
한국은 21세기 들어 여세를 몰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0.8%인 것은 잠시 잊자. 이러한 숙제를 앞두고 한 학생은 “AI가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나라를 방문했고 한국에 단 며칠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이처럼 선하고 진취적인 곳은 없었다. 한국은 GDP 기준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며 필자를 포함한 많은 독일인은 빠른 경제발전, 아름다운 풍경, 활기찬 대도시, 오랜 문화, 첨단 기술 경제 및 기반시설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이들은 한국에 가보길 바란다. 한국에 가본적이 있는 이들도 다시 가길 바란다. 독일은 수십 년 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분단국가의 아픔을 이해한다. 전쟁과 국가 소멸의 위협에 시달리는 기분을 안다. 필자는 역사와 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을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이 "박물관 선언문(Manifesto for Museums)"에서 말한, 국가 기관이 소개하는 국가의 역사보다 개인의 서사에 진실성이 담겨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나란히 전시된 반가사유상(6-7세기) 두 점과 성기가 과장된 나체 남성이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약 8천 년 전)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은(맨디와 레나) 자국과 많이 다른 문화권의 호텔 로비부터 존재의 기적을 경험했다. 로비에서 컨시어지가 택시기사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작은 카드에 창덕궁,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코엑스, 경복궁, 청계천 등 원하는 목적지를 한글로 적어주었는데 서양 관광객의 눈에 이 카드는 소장 가치가 있는 즉석 작품으로 보였다. 한남동에 있는 조민석 건축가의 아름다운 베이지색 건물을 방문하고, 늦은 저녁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 언더스테이지 파티에서 정호연 배우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특별한 램프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도 창경궁로에 즐비한 수백 개 매장을 거쳐, 케이블부터 연철까지 모든 공구를 팔고 있는 수십 개의 작은 공방을 지나 덕수궁 옆 성당을 방문하고, 성문과 사찰을 건너 서울광장 잔디밭에서 길거리 음식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아 헤매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 옆의 비상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고, 돈도 없이 길을 잃은 어린 학생을 포함하여 모두를 안전하게 귀가시키려 낯선이의 차를 밤에 몇 시간 동안 운전하고, LG 구겐하임 아트 앤 테크놀로지 이니셔티브를 시작한 KAMA 컨퍼런스의 박설희 문화담당자와 메모를 비교하고, 긴장감이 흐르는 DMZ에서 쌍안경으로 건너편 북한 사람들을 관찰했다.


2022 'KAMA 컨퍼런스 - 아트컬렉팅과 비지니스' 라운드테이블

2022 'KAMA 컨퍼런스 - 아트컬렉팅과 비지니스' 라운드테이블

그렇다면 미술과 컬렉션은 어떠했을까? 2023 아일랜드 비엔날레 책임자이자 큐레이터인 세바스티안 시코키 (Sebastian Cichocki)은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한 질문에 위트를 잃지 않고 인류의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를 탐구하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과 결과로 즐거움을 보여주어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는 KAMA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화하기 어려운 규모와 범위를 경험했다. 박서보, 서용선 등 저명한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작품을 향한 이들의 열의와 한국 미술을 엿보았다. 특히 현존 한국 작가 중 최고로 손꼽히는 박서보 작가가 91세의 연로한 나이에도 우리를 위해 작업실 문을 열어준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작업실에 걸린 추상적인 <묘법> 연작에서 이 독창적 예술가의 입지와 영향력이 보였다. 경기도에 있는 서용선 작가의 작업실은 서울에서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간 수고로움을 모두 잊게 만들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작가가 직접 나와 가파른 나무 언덕 사이 작은 개울 옆에 자리한 집과 작업실을 소개했다. 이곳은 그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작업한 조각과 그림을 보여주며 캔버스 이면의 맥락과 창작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독일에서 백남준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특히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때문이기도 하다. 이우환, 이불, 양혜규도 미술계에 널리 알려져 있고, 미술관과 수집가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프리즈 아트페어를 방문하고 KIAF 복도를 거닐면서 한국 미술계가 얼마나 풍부한지 깨달았다. 팬데믹 이후 한국 미술 시장은 9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성장하고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한국 작가 또한 늘어났다. 베를린 카를리에 게바우어(Carlier Gebauer) 갤러리는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인 함경아 작가의 자수 작품을 소개했다. 이러한 기세는 사방에서 모여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작가 간, 작가와 기업 간, 전세계 도시 간 교류와 협업 그리고 갤러리와 작가의 작업실 간 전환을 더욱 장려해야 할 때이다. 장학금, 교환 프로그램, 레지던시, 어워드 등 방법은 많다. 인지도와 가시성을 높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도 활용해야 한다. 이 모든 수단을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한국은 다른 탈공업사회 국가보다 비교적 공립 미술관이 부족해서 그런지 삼성 리움 미술관, 울산 현대 미술관 같은 사립 미술관이 눈에 띈다. 또한 홍콩 예술 시장이 침체되면서 페이스(Pace), 페로탕(Perrotin), 에스더 쉬퍼(Esther Schipper), 글래드스톤(Gladstone), 타데우스 로팍 (Thaddeus Ropac )등 세계 유명 갤러리들이 한국으로 거점을 옮기고 있다. 이들 갤러리는 모두 K 아트의 연속성과 사업성, 아름다움을 믿고 한류의 최전선에 올라탄 것 같다. 한국 작품은 80년대에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잠재력이 높은 신흥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현대, 삼성, 기아, LG, SK 홀딩스 및 포스코 등 대기업을 선두로 글로벌 먹이사슬에 뛰어들었고 번개처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도시 경관 자체만 보더라도 놀랄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 중 박서보 작업실 방문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 중 박서보 작업실 방문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 중 서용선 작업실 방문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 중 서용선 작업실 방문

전도유망한 한국 시각 예술계이지만, 필자의 가장 최근 저서인 "All Time in the World"의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이 책은 우리를 수십 년,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독일 사진작가 오도 마르콰드(Odo Marquardt)가 말했듯이 “모든 미래는 과거가 필요하고” 한국 작가는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유산을 밀어내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부터 약 150년 전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우리가 책, 예술, 음악을 통해 수십 년,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전과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2천 년 전에 쓰여진 책에서 깊은 울림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고 문화의 힘이다. 시간에 관한 이 책은 필자가 몇 년 전 뉴욕타임즈에서 읽은 다소 슬픈 만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만화에는 두 행성이 나온다. 하나는 지구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 없는 행성이다. 이름 없는 행성이 지구를 보고 “어떻게 된 거야? 너 아파보여.”라고 말한다. 지구는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났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름 없는 행성은 "걱정하지 마. 곧 없어질거야."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인류는 아프리카를 기점으로 4-5만 년, 어쩌면 1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에 살고 있다.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집어 삼킬 때까지는 50만 년이 걸리겠지만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을까? 세계는 지속될 것이고 우리도 계속 있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아름다운 것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전쟁, 오염, 가부장제, 독재와 같은 추한 것들은 항상 퍼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독재자와 외국인 혐오, 검열,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통제 등 우리가 매일 접하는 모든 추한 것들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예술이 도덕적 잣대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예술은 지구상 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 우리가 직접 체험하지 않더라도 붓과 글로 표현된 미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함으로써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추함이 확산되면 미(美)를 보호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술이 단순히 미학적 측면에 머무른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600억 달러에 달하는 화려한 예술 시장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고,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란 무엇인가? 은신처 즉 미와 죽음, 의미와 평화의 성역, 일상의 분주함을 피해 쉴 수 있는 천국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신없는 번잡스러움을 탐닉한다. 자본주의라는 터보 엔진이 달린 이 “번자생존”은 우리를 이 광란의 세상에서 멈춰 세웠다. 지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단 멈춤 상태에 있지만 앞이 안 보이는 광란을 원한다. 더 좋고, 더 부유하고, 더 강력한 결과 중심의 신념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파비오 마우리(Fabio Mauri)가 말했듯이 예술은 생각과 느낌, 인상, 경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 눈 앞에 보여준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외로워할 필요가 없으며, 한밤중에 해안가에서 불빛을 쏘는 등대처럼 문화와 연령을 가로질러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한국은 인접한 중국, 일본, 북한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위대한 예술은 항상 국경을 초월한다. 이외 다른 모든 것은 잘못된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이고 이는 지정학적 긴장이 높은 이 지역에서 언론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등대로 불리는 이 나라와 어울리지 않는다.


토마스 기르스트(Thomas Girst)

함부르크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와 미국학 및 현대 독일문학을 전공했다. 하버드대학교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지도 하에 뉴욕 예술과학 연구소의 책임자로 일했다. 2003년부터 BMW 그룹의 국제문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으며, 뮌헨예술원 명예 교수를 맡고 있다. 2016년 '올해의 유럽 문화 매니저상'(European Cultural Manager of the Year)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