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MIND MAP_갤러리 디렉터 인터뷰 part1 - (G갤러리, 갤러리광명 오분의일, 갤러리2)

posted 2023.08.25

이대형 큐레이터와 13인의 갤러리스트가 만났다. 갤러리 디렉터로서, 그들의 예술, 삶,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예술가들이 이 시대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질문하고 답했다. 특히 이번 인터뷰는 전시 ⟪다이얼로그⟫의 두 번째 에디션, ⟪마인드 맵⟫ 기획에 큰 영감을 주었다.


데이터기반 숫자에 의존한 상업적인 접근이 아닌, 예술가들 하나하나 다양한 철학적, 인문학적 생각의 뿌리, 그리고 그것들이 구체화되는 과정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했다. 이대형 큐레이터는 갤러리스트들의 마인드 맵을 추출하여 그들의 통찰력과 철학적 사고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13개의 이너뷰”는 단순한 인터뷰 시리즈를 넘어서, 우리 시대에 공명하는 핵심 신념과 예술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일종의 여정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도출한 13명 갤러리스트의 비전과 작가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현대 미술 작가들의 철학적, 인문학적 고민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G 갤러리

정승진 (지 갤러리) X 이정민


“뉴미디어 시대 급격한 기술진화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특히 메타버스와 NFT와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발전은 그 관심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이정민은 대담하게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파워포인트라는 단순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도구를 사용해, 뉴미디어의 역설적인 방향성에 맞서 그녀만의 독특한 시공간을 만들어 낸다. 매일 깜짝 놀라게 하는 기술 혁신의 화려함 속에서, 이정민의 작품은 고전을 추구하는 신선한 시도이며, 타협하지 않는 기본에 대한 오마주이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비유적으로 "천리를 가는 느린 걸음의 소",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시간 수집가",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가는 길"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정승진 (지 갤러리 디렉터)


이정민은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선을 쌓아 길을 만들고, 식물을 그리고, 기둥을 세우고, 건물을 짓는다. 건축적 요소인 벽, 모서리, 기둥, 문 등을 단지 선과 면, 그리고 이차원 이미지만을 사용해 컴퓨터 화면 속에 마우스로 겹겹이 쌓고 그려내며 3차원 공간의 투시도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사물의 시간을 표현하며, 외부의 절대적인 시간과는 다른 흐름으로 재현한다. 부정확하고, 애매한 인간의 속도로 사물의 시간을 재현하는 작가는 각각의 공간에서 사물의 시간을 수집해 한 화면에 병치시키고, 중첩 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중첩된 화면은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온전한 이미지가 아닌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의 영상으로 전달되며 작가의 시간을 관람자가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간 선보인 일상적인 공간과 사물이 특별하게 인식되는 순간과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이전 작업의 주제를 벗어나 공간의 흐름이나 사물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맥락의 공간과 사물을 병치, 중첩하여 상대적인 시간성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에 등장하는 각 장소는 작가가 이를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의 순간을 드러내지만, 장소 간의 서사는 존재하지 않고, 동시에 공존하는 다수의 공간이나 공간에 대한 다수의 시점을 보여주는 분절적 재현을 표현한다. 나아가 각 공간에서 경험한 시간을 수집한 뒤 이를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실제 공간에서 직접 경험한 시간과 작품 제작에 소요된 시간, 작품의 러닝타임, 그리고 관람하는 시간까지 다양한 시간성이 공존하는 현상을 세밀하고 밀도 있게 담아낸다.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경험의 공간은 축적되어 ‘선택되고 제거된 공간’과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물’, ‘아날로그적 작업방식’,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시간의 공유’로 형식화된다. 디지털 매체를 작업의 툴로서 활용함에도 아날로그적이고 인고의 시간을 수반하는 노동집약적 작업방식으로 제작된 이정민의 작품은 작가의 순간과 공간에 대한 개인적 포착을 보는 이로 하여금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수정_이정민, 〈수집된 시간-한강〉, 2020,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55” _ Lee Jungmin, Collected Time-Hanriver, 2020, Powerpoint animation, 55”.jpg
그림1. 이정민, 〈수집된 시간-한강〉, 2020,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55” _ Lee Jungmin, Collected Time-Hanriver, 2020, Powerpoint animation, 55”


2. 갤러리 광명(오분의 일)

권일순 (갤러리 광명/오분의 일) X 최은철


“공감과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동시대적 관점을 쉽게 반영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한 예술작품을 감상 할 때면,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사로잡는 여러 층위의 스토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들이 감동을 증폭시킴을 알게 된다. 최은철의 작업은 바쁜 일상 속에 종종 가려졌던 시간의 축적을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 모두를 가슴 아프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며 우리 스스로의 삶과 역사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소재인 '설탕'처럼, 그의 예술적 정체성은 그의 창작물의 출발과 과정 그리고 결과물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의 작품은 무수한 감정과 심오한 의미를 캡슐화하는 설탕의 결정체 형태를 취하며, 우리에게 투명함을 발산한다.” - 권일순 (갤러리 광명/오분의 일 디렉터)


최은철은 한국과 독일을 기반으로 현대사회의 내재된 양극화와 관련된 아이러니한 이슈들을 드로잉, 설탕을 재료로 한 공간설치와 영상 작업을 통해 표현한다. 기후 변화, 탁상공론적인 정치 대립, 사회적 양극화, 자기 자신과 타자와의 대립에서 찾을 수 있는 간극들의 유사점에 주목하여 이를 시각화 하고 쟁점화 시킨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문제가 갖는 이면의 그림자를 조명하는 작업에 집중해왔으며, 개인 활동 외에도 독일 작가와 한국 작가들과 협업하며 실험적인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작가는 〈흘러내리는 유물들I, II, III〉 시리즈의 제작에 있어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 중 지하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최초의 금속활자가 담긴 도자기 유물을 작품의 모티브로 차용했다. 그리고 이를 가변적인 물성을 지닌 설탕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도자기로 재현해낸다. 땅의 일부로 여겨지는 흙이라는 존재를 주 재료로 하는 도자기는 과거 식재료의 저장이 주된 문제로 작용했던 사회에 식기와 보관 용기로 소유자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했고 때로는 제조 기술에 따라 다양한 장식으로 표현되는 계층적 상징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징성을 지니는 도자기를 작가는 현재 보이지 않는 노동력의 착취와 달콤한 그림자로 표현되는 설탕이라는 재료로 구현해내며 과거와 현재를 통관하는 좁혀지지 않는 양극화의 간극에 주목한다.


최은철은 이렇게 재현된 설탕 도자기를 전시기간 동안 할로겐 조명을 통해 서서히 녹이고 도자기의 형태적 변화를 다중 노출 사진 기법을 통해 기록한다. 그리고 설탕으로 만든 도자기가 시간에 의해 흘러내리는 모습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공개한다. 녹아 없어지는 물질의 물리적 특성을 통해 유물에 내재된 고유의 일시성은 다양한 지면의 층 형태로 흘러내리며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는 지상으로부터 탄생한 유물이 다시금 지상으로 돌아오는 해체의 과정을 표현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형태가 주저앉고 자연으로 회귀 하는 유물의 과정을 상상하게 만드는 작가만의 시각적 표현방식은 궁극적으로 도자기가 갖는 지위 혹은 권세의 와해를 시사한다.


수정-최은철, 〈역사적이지 않은 유물〉, 2022, 설탕, 이소말트, 설탕 캐스팅, 가변설치 _ Choi Euncheol, unhistorical Artifact, 2022, Sugar, isomalt, sugar casting technique, Variable dimensions.jpg
그림2. 최은철, 〈역사적이지 않은 유물〉, 2022, 설탕, 이소말트, 설탕 캐스팅, 가변설치 _ Choi Euncheol, unhistorical Artifact, 2022, Sugar, isomalt, sugar casting technique, Variable dimensions


3. 갤러리2

정재호 (갤러리2) X 박주애


“예술이 유행과 패션에 굴복하는 시대, 박주애의 작품은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서 있다.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하는 가혹한 정직함의 힘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일종의 열린 책으로, 각 페이지는 삶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어떠한 꾸밈이나 속임수가 없다. 박주애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솔직함과 날카롭고 매력적인 재치를 바탕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의사소통 능력을 선보인다. 그녀의 예술은 막연하고 모호한 세상에 빛나는 등대와 같다. 인간의 본질과 교감하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흔들림 없는 빛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꾸밈도 없다. "넘쳐나는 정직함"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결합된 시너지만 존재한다. 박주애 작가의 작품세계로 기꺼이 따라가보자. 그곳에서의 예술은 단순히 관찰 대상이 아니다. 관객과 깊이 연결되는 특별한 대화이다.” - 정재호 (갤러리2 디렉터)


박주애는 자신의 갈등과 결핍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아 회화 작업과 함께 봉제 인형 형태의 오브제 작업을 병행한다. 동물과 인간이 결합된 형상과 초현실적인 상황이 표현되는 그림과, 그림의 고질적인 관습으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을 채택하면서도 대상을 묘사하는 세밀한 선과 가상의 형상을 통해 표현되는 봉제 인형의 연결성이 특징이다. 뉴욕 레지던시 생활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캔버스 천에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고 솜으로 채운 인형 작업의 계기가 되었고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흙으로 담아낸 토템적인 도자기 작업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필사적으로 탐색한 과정을 선보이며 특별히 제주도의 곶자왈에 대한 주목을 이야기한다. 곶자왈은 화산 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 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경작이 불가능한 버려진 땅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이끼와 덤불 등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을 이루는 숲이다. 작가는 넝쿨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이끼가 돌에 붙어 악착같이 살아가는 곶자왈의 모습을 보며 자연이 갖는 무질서와 강한 생명력을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과 그림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에 대입하고 이를 화면에 옮겨 담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주애가 그곳의 자연을 그려내는 행위는 곧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연결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자연에 대한 연결성을 입체작업에서부터 자연에 접근하는 고유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자연의 선과 형태를 직접 캔버스에 옮기기 전, 와이어를 구부려 줄기를 구현하고 직접 바느질한 천으로 잎사귀를 만들어 곶자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넝쿨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그 후 이 입체 작품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겨내는 상상을 통해 담아낸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그림은 곶자왈의 나무와 넝쿨, 그리고 빛이 잘 들지 않는 그 공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검은색, 파란색, 녹색의 어두운 색조가 주를 이루며 복잡하게 얽힌 넝쿨은 작가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캔버스 앞의 고민을 상징한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체와 장르를 확장하며, 매체를 습득하고 표현하는 과정 자체를 새로운 영감이자 삶의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