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김아타

posted 2012.07.17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라는 말은 김아타의 전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유이다. 작품들은 보존 - 해체 - 보존 - 궁극적인 해체라는 일련의 변증법적 구조를 가지고 전개되어왔다. 최근작은 여기서 그는 한단계 더 나아갔다.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시리즈에서 캔버스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관계한다." 라고 김아타는 말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진 것 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존재는 다시 생생하게 숨쉬고 있는 생명의 대순환을 보여준다. 이것이 그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의 이치"의 일부이다




김아타/사진작가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 초청 특별전을 및 2008년 리움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개인전, 2006년 6월 뉴욕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개인전을 개최2002년 제25회 상파울루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가하였으며 2004년 뉴욕 아파추어파운데이션(Aperture Foundation)에서 The Museum Project, 2006년 베를린 Steidl/ICP에서 ON-AIR, 2009년 베를린 하체칸츠(HATJE CANTZ)에서 모노그래프 『Atta Kim』, 위즈덤하우스, 학고재 등에서 12권의 책을 발간하였으며, 국내외 유수한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음. The Museum Project, ON-AIR Project 에 이어 2010년부터 자연이 그리는 그림 The Project - Drawing of Nature 를 진행하고 있다.



Attaism:예술로 구현된 동양사상

세상의 이치를 받아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겨울을 재촉하던 2011년 11월 초 강원도 점봉산 곰배령에서 나는 아주 각별한 체험을 했다. 2010년 6월부터 시작된 자연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근 1년 반이 넘는 시간은 캔버스 위에 다양한 흔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형태도, 그 기원도 설명할 수 없는 얼룩들이 쌓여가면서 거기에 추상화 같은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러는 캔버스에 핀 곰팡이 꽃, 빗물이 흐른 자국, 벌레가 지나간 흔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숨결과 구름 사이로 수없이 드나들던 햇빛의 형적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들이 남긴 것들이었다. 이것은 2009년부터 시작한 김아타의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김아타_The Project Drawing of Nature -deep forest in Korea-1 현재 진행중
김아타_The Project Drawing of Nature -deep forest in Korea-1 현재 진행중


이 프로젝트는 점봉산 곰배령, 향로봉, 인디아 보드가야, 갠지스의 강가, 그리스 철학의 모태인 파로스 섬, 동양사상의 발원지인 중국 허난성의 황하강변, 뉴욕 맨하탄, 뉴멕시코 인디언보호구역, 산타페, 히로시마, 도쿄, 베이징, 베네치아, 스위스, 시베리아, 칠레, 프랑스, 티벳 등 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세계 30 여 곳에 빈 캔버스를 설치하고 자연의 흔적을 채집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전작인 [인달라] 시리즈의 시작은 전세계의 도시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도시들은 무형의 회색으로 빨려 들어가버린 것 같지만 그 뉘앙스는 모두 미묘하게 달랐다. 그렇듯이 자연이 그린 작품들도 모두 다 달랐다. 2년 혹은 3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전 지구적으로 동일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 시간이 육화되는 공간의 구체성이 다르므로 시간은 다른 흔적들을 남겼다.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미묘한 파동 등,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 것이 김아타의 작품이다. 작품을 시작하면서 김아타는“The Project Drawing of Nature 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상과 세상 이치를 그물질 할 것이며, (서양에서) 뜬구름으로 부르는 동양사상의 진면목으로 세상의 이치를 받아”쓸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철학이다.


철학자 이기상은 [영상문화시대와 통합적 상상력]이라는 논문에서 김아타를 “사진술을 넘어, 사진학을 넘어 사진철학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사람 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기상은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의 말을 빌어 “텍스트를 갖고 철학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형상을 갖고 철학을 시도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영상문화의 시대에 사진은 철학적 개념화와 사유의 최적화된 수단이 될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김아타는 첨단의 서구적 매체인 카메라로 동양사상의 심오함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고, 이에 아타이즘(Attaism)이란 용어로 붙었다. 그에게 사진은 “자신이 해석한 세계를 드러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더 나아가서 또 다른 필요가 생긴다면 그는 언제든지 카메라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에서 마침내 김아타가 카메라를 놓았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으로 김아타는 세계적인 사진 작가로서의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김아타의 이런 행보는 모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김아타의 일관된 논리적 발전의 결과였다. 김아타는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 는 (전작인) ON-AIR Project 의 해체이자 부활이다” 라고 말한다.


정신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라는 말은 김아타의 전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유이다. 작품들은 보존 - 해체 – 보존 - 궁극적인 해체라는 일련의 변증법적 구조를 가지고 전개되어왔다. 1980년대 무형문화재들을 찍은 시리즈는 정신을 보존하려는 행위였다. 그 후에 이어진 <해체> 시리즈는 알몸의 사람들을 논밭과 고속도로변에 “볍씨를 뿌리듯 세팅”하고 촬영한 충격적인 장면들이다. 인물들은 사회적인 지표들을 모두 버리고 자연에 툭 던져짐으로써 들판의 돌멩이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자기에 대한 모든 규정이 부정이 된다. 기존의 관념의 해체는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시작되는 서구 사회의 근대적 사유와 실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의 시작이었다.


1995년부터 발표한 [뮤지엄 프로젝트] 시리즈는 유곽의 창녀들, 상이군인들, 사랑을 나누는 남녀, 평범한 가족들이 마치 뮤지엄에 보존된 기념물들처럼 아크릴 박스 속에 담겨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이 작품들은 중요한 것들만을 보존하는 뮤지엄의 개념을 해체하며 거꾸로 제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뮤지엄에 보존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불교적인 사고와 오버랩되는 이 이미지들은 한국문화사에서 김아타가 차지하는 자리를 보여준다. 1990년 대 초반까지의 한국의 정신문화적 지형도에서 '종교적인 테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성동, 이문열, 이청준, 고은, 박상륙 같은 한국 대표 문인의 작품들 모두 종교와 죽음이라는 묵직한 테마를 다루었다. 1970~80년 당시의 정치적 억압 속에서, 종교적인 테마는 현실의 비속함을 넘어서려는 정신적 투쟁의 표현으로 우리 문화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1990년대 초반 고은의 소설 [화엄경]은 이런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세상에서는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만이 진리다"라는 명제와 더불어 대화엄의 세상에서는 마침내 구도의 주체도 사라져 간다. ‘모든 것은 그러나 사라진다(all things eventually, however, disappear’라는 문장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아마 이 문장에서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러나 however'라는 단어이다. 이 '그러나' 속에는 사라지기 직전의 모든 개체의 중요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뜻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뮤지엄 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궁극적인 해체에 이르기 직전에 달성된 개체의 인정과 보존의 과정이었다. 고은 이후 한국 문학이 대서사문학의 위대함을 버리고 소소한 일상에 몰두하는 사적인 세계에 탐닉할 때도 김아타는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시각미술의 확장성과 보편성으로 그는 사유의 지역성과 시간성을 넘어서게 만들고 오히려 그의 사유는 한국적인 문화사적인 맥락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갔다.


2006년의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전시에서는 [온 에어 ON AIR]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선 보였다. '다중인화 Superimposition', '얼음의 독백 Monolog of Ice', '장노출Long exposure', '인달라 Indala'라는 네 개의 작품군으로 구성된 [온 에어 ON AIR] 시리즈는 “모든 것은 그러나 사라진다”는 명제를 다양하게 시각화한 작품이다. Monologue of Ice 역시 뮤지엄 해체 작업의 일환이다. 세상에서 가장 숭배 받는 것들, 영원한 가치로 추앙 받는 것들을 그는 얼음으로 조각한 후, 그것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과정을 작품화하였다. 김아타는 지금도 사회주의 우상인 마오도, 자본주의 예술의 상징인 마릴린 먼로도, 김아타 자신도 사라지게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회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서건 모든 강고한 것들은 해체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이 자신의 보존 가치를 강력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김아타의 해체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김아타_ ON-AIR EIGHTHOURS New York 110-7_2005
김아타_ ON-AIR EIGHTHOURS New York 110-7_2005


얼음으로 녹여 사라지게 하기 이전에 시간 속에 스스로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장노출을 사용한 작품 시리즈에서는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은 포착되어 화면에 남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차들로 번잡한 뉴욕의 타임 스퀘어를 8시간을 촬영한 결과 건물들은 남았으나 달리는 차들과 사람들은 몇 줄기 빛의 흔적과 어른거리는 그림자로만 남았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졌다. 사라지면서 그것은 또한 남았다. 김아타는 양립불가능할 것 같은 존재와 부재를 한 화면에 동시에 양립하게 했다. 존재의 진실성 있는 기록으로 신뢰를 받던 사진이 기록한 것은 사라짐, 부재였다. 이로써 김아타는 어떤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인달라 속으로 사라진 세상, 세상 속에 드러난 인달라의 얼굴


[인달라] 시리즈에서는 느리게 사라지는 그 모든 것들 조차 사라져버렸다. 이 작품은 종교적인 숭고를 느끼게 한다. 각 도시의 가장 활기 찬 모습을 만장이나 찍어서 모아 합쳤으나 그 결과는 역설적으로 제로, 공(空)이 되고 말았다. 색즉시공이라는 말을 이렇게 적확하게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다. “서양에서의 공(空)은 텅빈 것이지만, 동양에서의 공(空)은 꽉 찬 것이다.” 모든 사라짐은 존재를 근거로 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결국 사라진다. 순환론적인 동양사상적 존재론이 그의 사진 속에서 이미지 아닌 이미지로 구현되었다. 이 행위는 도덕경, 노자, 서양 미술의 명작들로 대상을 넓혀갔다.



김아타_ ON-AIR Indala series- Vincent Van gogh_2009
김아타_ ON-AIR Indala series- Vincent Van gogh_2009


[인달라] 시리즈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섰다. 사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피사체, 카메라, 작가 중에서 기본적인 대상이 되는 피사체가 사라졌다. 피사체가 사라짐으로써, 사실 사진이라는 장르를 넘어섰다. 장르가 스스로를 해체하고 넘어서 버렸다. 피사체가 사라진 사진 속에는 색채의 분별도 사라졌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회색이라고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것은 색이 사라진 후의 색이면서, 동시에 빛의 수렴으로서의 색이 화면에 쌓인 흔적이다. 김아타의 사진 속에는 그 어떤 색도 형태도 남지 않았다. 인달라는 모든 이미지의 원칙이 소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안에 모든 이미지가 함축된 이미지다. 모든 형상의 원리가 사라지고 장르가 장르를 넘어서며 '무수히 찍는다'는 구도적 행위만이 남게 되었다.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에서는 마침내 무수히 찍었던 구도적인 카메라와 작가 자신 조차 사라졌다. 자신의 철학을 구현하는 수단인 카메라를 놓을 준비를 그는 언제든지 하고 있었다. 또 이 때 작가의 사라짐은 1960년대의 주체의 종언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마치 고은의 [화엄경]처럼 대화엄의 세상에서 구도의 주체마저 사라져갔듯이,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가 사라져간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만이 진리다"라는 말을 김아타는 그대로 실천하였다. 이것을 그는 작품의 내용들에서 뿐 아니라, 작품을 하는 과정 자체,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하였다. 김아타가 물러서자 세상이, 자연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탁 트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작용이지만, 놀랍게도 캔버스는 균질하지 않았다. 특정 부분은 얼룩이 더 짙었으며 특정 부분은 흰 점꽃들이 더 많이 피어 있었다. 이 불균질한 형태들은 바로 자연이 스스로 지휘해서 그려낸 것인데 그 원인을 굳이 찾아보니 주변의 사소한 존재들이었다. 큰 나무가 있는 부분과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부분이 달랐고, 캔버스의 앞면과 뒷면이 달랐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주변에 있는 조그만 돌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서로 미세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거기에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객관성의 신화에 사로잡힌 서구철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가시적 세계의 확장에 도움을 주었으나, 여전히 그것들은 이성에 의해서 접촉된 존재들로 객관성의 신화를 지속하게 하는 근거일 뿐이다. 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의 존재론에는 도달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서구적 발전의 끝은 지금 현대 문명의 위기로 도처에서 표현되고 있다. "서양 철학과 서양 미학이 쇠퇴하고 그 대안으로 동아시아 사상이 거론되는 오늘날"의 현실은 김아타의 작품을 더욱 절실히 원한다. 캔버스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관계한다.“ 라고 김아타는 말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존재는 다시 생생하게 숨쉬고 있는 생명의 대순환을 보여준다. 이것이 그가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를 시작하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의 이치”의 일부일 것이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문학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 미술과 문학 사이>,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월간 [톱클래스]에서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를, [중앙 SUNDAY]에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국내에 소개가 미진했던 러시아 화가들을 알리는 『러시아 미술사』(민음in 2007)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비평집 『미술의 빅뱅』(민음사, 2010), 아트 에세이 『아름다움에 기대다』가 있다. http://blog.daum.net/kmedi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