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서도호

posted 2012.07.17

서도호는 늘 현대미술 담론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작품이 제기하는 문화혼성 상황에서 야기된 전치(displacement)의 문제는 늘 신선한 화두로 여겨졌다. 천으로 만든 집들은 무겁고 단단한 건축물은 가볍고, 비물질적이고 여성적이며 어디든지 옮겨갈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서도호/작가1962년 서울 출생, 현재 뉴욕, 런던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을 졸업하고, 1997년 예일대학교 조소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작업은 ‘인연 (카르마)’, ‘관계’, ‘공간’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장소특정적인 설치작업을 통해 자아의 경계를 탐구한다. 2001년 49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하였고,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헤이워드 갤러리, 도쿄 현대미술관, 모리미술관, 서울 리움 삼성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최근의 주요 전시 및 프로젝트로는 [서도호: 집속의 집]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2012), [별똥별] (스튜어트 컬렉션,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2012), [베를린 집: 3개의 복도] (DAAD 독일학술교류처, 베를린, 2011), [서도호] (STPI 싱가포르 타일러 판화공방, 싱가포르, 2011) 등이 있으며, 일본 히로시마 현대미술관과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카르마 저글러의 옮겨다니는 집

서울 토박이 양반의 격조 있는 미감



서도호_투영 Reflection1_폴리에스터 천,금속 틀_2005~2011
서도호_투영 Reflection1_폴리에스터 천,금속 틀_2005~2011


서도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어린 시절 집에 살던 한옥을 부드러운 천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서도호의 부친은 한국화의 거장 서세옥이다. 부친은 마당에 조선 왕조의 궁궐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 따 한옥을 지었고, 아들은 그것을 정서적인 원천으로 삼아 작품을 만들었다. 한옥과 관련된 한국의 전통 문화는 집의 외형만이 아니라 그의 미감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투명한 집의 껍데기들은 환영처럼 전시장 안에 떠 있다. 그 투명성은 한옥의 창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은조사의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질감을 느끼게 하는 초록색은 고려청자의 비색과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복식의 색을 떠올리게 한다. 한 조그만 군인이 3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끈을 잡고 있는 작품 [Paratrooper V](2005)의 색감은 사월초파일 산사에 달려있던 진분홍 연등의 색을 닮아있다. 조명을 받아 이 작품은 묘하게 따뜻하고 묘하게 영적인 기운을 전시장에 퍼뜨린다.


서도호가 선택하는 색감과 조명에서 드러나는 그의 세련된 취향은 한국적의 전통적인 미감에 그 뿌리가 닿아있다. 한옥의 창살, 서까래와 기와의 무늬, 문고리, 콘센트, 전기 스위치 등 집의 내부를 채우는 소품들은 섬세하게 재현이 되었다. 이것을 보고 외국의 한 평론가는 “넋이 빠질 정도로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사소한 일상용품을 격조 있는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은 손재주의 정교함만이 아니다. 이 작품들의 핵심은 사물을 바라보는 서도호의 예리하고 서정적인 시선이다. 그것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늘 단정하게 옷깃을 여미고 삼가는 한국의 옛 선비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그들은 격조를 갖추고 절제하되, 자신의 엄격함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않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들은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미학으로 간주했었다.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유형의 인간 : 노마드


서도호는 늘 현대미술 담론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작품이 제기하는 문화혼성 상황에서 야기된 전치(displacement)의 문제는 늘 신선한 화두로 여겨졌다. 천으로 만든 집들은 무겁고 단단한 건축물을 가볍고, 비물질적이고 여성적이며 어디든지 옮겨갈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이것은 20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노마드적인 삶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실제로 미국, 한국, 유럽을 오가며 노마드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서도호에게 집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그의 노마드적인 삶은 199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상이한 두 문화를 접하면서, 가장 큰 차이를 공간에서 발견했다. 건축물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그는 말한다.



서도호_집속의 집 1/11_프로토타입_ 스테레오그래피_2009
서도호_집속의 집 1/11_프로토타입_ 스테레오그래피_2009


더 나아가 이런 자아 인식은 노마드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는 “스스로를 한 문화와 다른 문화 사이를 연결하는 그런 공간처럼”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사물을 바라보는 동양적인 시선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서도호 자신이 이런 두 문화가 흘러가고 재조직화되는 중요한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Gate)](2011)이라는 작품에 관해서 서도호는 “나는 동양문화의 핵심을 끝없는 변화, 운동으로 보았다.”고 말한다. “세상을 하나의 움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한 것으로 파악”하는 그의 사유는 서구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동양적 사유의 통합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모두는 하나의 카르마로 연결된 '우리'다


서도호의 통합적 사유를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카르마”라는 개념이다. 365cm의 거대한 크기의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 작품 [Karma](2010)는 사람들이 서로를 붙잡고 끝없이 이어지는 형상이다. 이전 작품인 [Some/One](2001), [Cause and Effect ](2007) 등에서 보는 것처럼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커다란 형상을 만드는 것은 서도호의 작업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대승적 자아라는 동양적인 관념에서 바라보면, ‘나’라는 개인은 수 많은 다른 타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네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카르마이다. 지금의 ‘나’는 혼자 이룩된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도호_낙하산병 V Paratrooper V_리넨, 폴리에스터, 콘크리트, 플라스틱 혼합재료_2005
서도호_낙하산병 V Paratrooper V_리넨, 폴리에스터, 콘크리트, 플라스틱 혼합재료_2005


2003년 발표된 한 작품은 바삐 걸어가는 구두를 신은 신사의 발걸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발 밑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도 함께 바삐 뛰어가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도 [카르마]이다. 짐짓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거대하고 우월적인 존재가 약소한 사람들을 짓밟고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도호가 정작 관심을 갖는 것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무수히 많은 타인들의 존재이다. 나는 수 많은 타인들의 지지에 의해서만 걸을 수 있고,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더 나아가 나를 낮춤으로써 우리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나를 다시 높게 만들 줄 아는 세련된 겸손함의 표현이며, 겸손은 익히 배웠던 한국의 옛 선비들의 덕목이다. ‘나’는 무수한 타인과의 인연의 집약점이라는 것은 작품 [Paratrooper V](2005)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조그마한 군인은 제 몸의 수백 배가 되는 커다란 낙하산을 당기고 있다. 그 낙하산의 끝에는 3,000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이 조그만 군인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의 끈이 닿은 사람들이다. 이 조그만 군인은 크기가 말하듯, 그는 그렇게 작고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때로 아주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그는 우주의 한 결절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서도호_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_스테인레스 스틸, 알루미늄 혼합재료_2007
서도호_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_스테인레스 스틸, 알루미늄 혼합재료_2007


성장하는 노마드적인자아


서울·뉴욕·베를린·런던 어디에서 무엇을 만나건 그것은 인연(karma)으로 그의 삶의 일부가 되고, 그의 자아는 식물처럼 무한성장을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나 충돌하지만, 서도호의 작품에서 충돌의 결과는 투쟁과 극복이 아니라 융합과 상생이다. 한옥은 양옥 속에 들어가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의 형태가 돼 완벽하게 평온한 투명성을 다시 회복했다. 최근에는 그는 [서울집/서울집]을 발표했다. 서울에 있는 본가의 본채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0여 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이 오래된 신작은 위풍당당하게 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천으로 된 집의 시작이 되었던 작품은 연경당을 본뜬 마당의 사랑채를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제 사랑채의 소년은 본채의 어른이 되었다. 단단해진 자아는 자신이 던져진 곳을 기억 속으로 더듬는 수동적인 상태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완벽한 집-다리 프로젝트]는 서도호가 만드는 세상의 첫 시리즈이다. 노마드적인 삶을 사는 그는 ‘완벽한 집’인가를 계속 찾아왔다. 작업을 위해 서울과 뉴욕을 쉼 없이 오가면서, 한가운데에 집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완벽한 집-다리 프로젝트]다. 중간지점인 태평양 한가운데에 집을 짓겠다는 엉뚱한 발상에서 작품은 시작한다. 바다 위의 집이다 보니 집보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의 건설이 더 중요해졌는데 생물학자·건축가·SF 작가들과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풀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에 다리를 놓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판타지가 아닌가? 당연히 아니다. 부동산인 집을 들고 다닐 수 있는 동산으로 바꿀 수 있는 사고의 유연함이 있다면, 사유가 물질적인 것에 갇히지 않고 비물질적인 세계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면 예술에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는 더 이상 동양에서 날아와 서양에 떨어진 ‘별똥 별’이 아니다.


2012년 그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이 침실로 쓰던 덕수궁의 함영전 관련 작업을 진행할 것이고,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광주라는 장소의 특성을 염두에 둔 작업을 할 예정이다. 개인의 기억에서 집단의 역사로 그의 관심사가 전환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다음에 만날 서도호는 주어진 세상에서 옮겨 다니는 노마드가 아니라 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스스로 세상을 만드는 노마드적인 건설자일 것이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문학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 미술과 문학 사이>,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월간 [톱클래스]에서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를, [중앙 SUNDAY]에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국내에 소개가 미진했던 러시아 화가들을 알리는 『러시아 미술사』(민음in 2007)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비평집 『미술의 빅뱅』(민음사, 2010), 아트 에세이 『아름다움에 기대다』가 있다. http://blog.daum.net/kmedi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