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토크

김용익 개인전

posted 2016.12.23

최근 미술계에서 원로 작가 김용익이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일민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2016. 9. 1~11. 6)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2016. 11. 22~12. 30)이 연달아 개최됐다.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그의 대표작인 ‘땡땡이’ 시리즈를 비롯, 최근 2년 간 제작한 30여 점의 회화 작업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김용익은 자신의 이전 작업을 ‘재편집’한 작업들로써 자신의 미술에 대한 미학적, 실천적 성찰을 계속해 나간다.




얇게... 더 얇게...


소위 '땡땡이' 회화의 작가 김용익이 올 한 해 동안 대규모 회고전(일민미술관)(2016. 9. 1~11. 6)과 신작 위주의 개인전(국제갤러리)(2016. 11. 22~12. 30)을 연달아 개최하며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된 개인전은 1970년대부터 40년 간 김용익이 모더니즘, 민중미술, 개념미술, 공공미술 등을 뚫고 지나온 자리를 펼쳐 보임으로써 작가의 대표작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보를 되짚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한다면, 연이어 국제갤러리에서 개최된 개인전은 김용익의 최근 2년간의 신작 30여 점을 새로이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국제갤러리 측은 이 전시가 한국현대미술에서 단색화 이후 세대의 실천적 미술과 경향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 미술 시장이 단색화 이후 세대를 어떻게 하면 시장에 성공적으로 유입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바, 김용익의 신작전은 미술시장의 이러한 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신작들이 작가의 과거 대표작들을 '재편집 및 재구성(editing)'을 한 작업이라고 밝히고 있어, 본고에서는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신작들이 지난 40년 간의 노작들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김용익, ‘모더니즘의 묵시록 #13’,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62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김용익, ‘모더니즘의 묵시록 #13’,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62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모더니즘의 묵시록


이번 전시는 '모더니즘의 묵시록',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얇게... 더 얇게...', '20년이 지난 후', '유토피아' 이렇게 총 다섯 가지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리즈들은 1990년대 김용익이 활발히 선보였던 '땡땡이' 회화를 기본으로 다루되, 김용익이 전부터 해왔던 스케치나 판화를 캔버스에 옮기고 이를 에디팅 한 것이다. 김용익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지는 ‘땡땡이’ 시리즈는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선보인 작업들이다. 캔버스 위에 보일 듯 말듯 한 그리드를 그리고 교차점마다 원형을 배열하여 반복적인 패턴을 만드는 것으로, 우선적으로 평면성과 그리드라는 모더니즘 회화의 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비로소 보이는 자잘한 글씨들, 얼룩이나 자국 등으로 인해 모더니즘 회화가 추구하는 무결한 평면을 역설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로도 읽힌다.


전시의 다섯 가지 구성 중, 우선 ‘모더니즘의 묵시록’ 시리즈에서 김용익은 모더니즘 미술을 전복시켜 모더니즘 문명의 종말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보인다. 출품작 중 ‘모더니즘의 묵시록 #13’을 보면 캔버스 위에 균일한 간격으로 배열된 원형 아래에 “시련의 시기가 오리니…”라고 시작하는 자필 글귀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그리드 위에 배열된 원형 부분만 남겨둔 채 흰색 물감으로 글씨를 덮었고 캔버스 위를 가볍게 지나간 붓질은 물감은 두껍지 않으나 제스처가 두드러져 보인다. 이와 같은 제스처를 그는 ‘정제된 미학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미술 위에 흠집을 내는 행위로 제시한다.


왼쪽) 김용익, ‘평면 오브제’, 1977, 천에 에어브러쉬, 약 200×370cm. 오른쪽) 김용익, 일민미술관 전시 전경. 앞) ‘관’ 작업, 뒤) ‘삼면화’, 2015, 혼합 재료, 157×226×16cm. 2015. 사진: 일민미술관 제공 왼쪽) 김용익, ‘평면 오브제’, 1977, 천에 에어브러쉬, 약 200×370cm.
오른쪽) 김용익, 일민미술관 전시 전경. 앞) ‘관’ 작업, 뒤) ‘삼면화’, 2015, 혼합 재료, 157×226×16cm. 2015. 사진: 일민미술관 제공

그에게 있어서 모더니즘 미술은 한때 그를 ‘모더니즘의 적자’라고 불리게 했던 단색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자라 불리던 시절의 대표작인 ‘평면 오브제’ 작업에서부터 이미 그는 단색화에 대한 갈등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면 오브제’는 벽을 덮을만한 대형 천 위에 에어 브러쉬로 물감을 뿌려서 물감의 얼룩과 천의 구김이 드러나게 설치한 작업으로, 당시 김용익은 작업의 명제를 “물질과 이미지의 대립관계를 화해시키고자 하는 의도의 개진이다”라고 한 바 있다.1) 이 시리즈로 그는 스승 박서보가 주도한 “에꼴 드 서울”전에 1회(1975)부터 11회(1986)까지 꾸준히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동양적 정신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주류 제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스승과 선배들을 보면서 미술의 실천이란 무엇인가 번민할 수밖에 없었고, 점차 미술계의 다른 흐름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지 밝힌 적도 있는데, ‘평면 오브제’ 시리즈를 제작해오면서 얻어진 결론이라고 하였다. 그가 생각한 좋은 작품은 첫째, 만드는데 힘(노동력)이 적게 드는 작품, 둘째, 만드는데 돈이 적게 드는 작품, 셋째, 만드는 기술이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누구나 똑같이 만들 수 있는 작품, 넷째, 운반하기 쉽고 편리한 작품, 다섯째, 좀 찢어진다거나 더렵혀진다거나 약간 부서져도 괜찮은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작업이 이 ‘기준’에 맞아 떨어지지 않음을 고백하며, ‘반기준’ 또한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피력했다.2) ‘반기준’을 따르는 역설적인 작업으로 그는 자신의 합판 작업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러나 김용익은 자신이 제시한 ‘좋은 작업’의 ‘기준’을 계속 추구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국제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즉, ‘모더니즘의 묵시록’ 시리즈나 ‘얇게… 더 얇게....’ 시리즈, 그 외 사실상 출품된 모든 작품들이 그가 과거에 설정한 좋은 작품의 기준을 실천하고 있는 작업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얇게… 더 얇게…’ 시리즈는 상당한 육체적 노동을 감내하며 매일 반복적으로 정해진 양의 캔버스를 제작해온 결과 캔버스 위의 얇아진 표면 효과를 두고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캔버스에는 밑칠을 생략할 정도로 물감을 가볍고 얇게 쓴 것이 확연히 보인다. 그는 모던적 주체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벼운 해체적 주체로 나아감을 의미한다고도 밝혔는데, 이는 작품에 심각한 의미가 없다는 것도 뜻한다고 하였다. 출품작들이 모두 가볍고 얇은 질감의 붓질과 비교적 밝은 색채로 제작된 바,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미술적 실천이 무겁고 심각했다면, 이제는 가볍고 얇게 재전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 방법은 지난 시간 동안의 작업들의 여운을 잇는 한편, 좀 더 가볍고 경쾌한 작업으로, 그러나 그 사이의 모순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1) 김용익, ‘물질과 이미지의 대립관계를 화해’, 『공간』, 1978년 11월호(통권 137호), 『김용익: 가까이 더 가까이』 (서울: 일민미술관, 2016) p.26에서 재인용.
2) 김용익, ‘무제’, 재정, 1987년 2월( 『김용익: 가까이 더 가까이』 (서울: 일민미술관, 2016), p.69에서 재인용).


김용익, ‘얇게… 더 얇게… #16-83’, 2016, 캔버스에 혼합 매체, 91×11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김용익, ‘얇게… 더 얇게… #16-83’, 2016, 캔버스에 혼합 매체, 91×11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시평의 칭찬까지도 시집의 서문을 받은 사람까지도 내가 말한 정치의견을 믿지 않는다...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온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내 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김수영의 시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의 시작부와 중간부 구절이다. 김수영의 유작인 이 시는 김용익이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이 시의 구절들을 이번 신작들 중 일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내려갔다. 캔버스 위에서 한없이 가볍게 흘러내린 물감 자국을 따라 가느다란 펜으로 써 내려간 시의 구절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눈에 잘 뜨이지 않도록 사소한 주절거림이 되길 바랐는지도 모르나 역설적으로 그 의미심장함은 김수영의 그 유명한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를 연상시킨다. 즉, 낙서에 가까워 보일만큼 가느다란 펜글씨로 쓰여 있는 시구이지만, 그 시구가 지니고 있는 사상의 무게가 가볍게 흘러내린 물감 자국과 대비를 이뤄 역설적으로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다.


일전에 김용익은 ‘거대한 뿌리’가 여타의 해설을 듣지 않아도 그대로 자신에게 들어와 공명하는 느낌을 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시, 즉 텍스트의 무게를 어떻게 버티었을까? 평소 글쓰기와 작품하기를 등가로 여겼으며, 지난 40년 동안 작업량만큼이나 많은 글을 써왔던 그가 자신의 미술가로서의 입장을 ‘발언자’라고 했던 것에 주목해보자.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창작자의 사유와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 그는 자신이 미술제도 안에서 미술가라는 공인된 지위를 이용하여 세상에 대해 발언하는 ‘발언자’이기를 원한다고 하였다.3) 그는 자신이 제도를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래디컬(radical)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제도를 의심하기 때문에 자기모순적 입장임을 토로한다. 이는 그의 작품들에서보다는 글쓰기에서 더 잘 드러난다. 제도에 대한 양가적 입장을 드러내는 그의 글쓰기는 1980년대 이후 그가 민중미술과 공공미술을 통과해오면서 미술의 실천에 대해 해온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그가 단색화나 민중미술 중 어느 한쪽 진영에 치우쳤다기보다는 경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지만 어쨌거나 그의 고민은 권위를 중시하는 자기중심적인 미술이 아니라 시대의 현실을 마주하거나 대중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문학평론가 이강진을 인용하여 “오늘날 문학(예술)이 할 일은 우선 첫째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이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예술)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한 말은 중요하다.4) 스위스 출신 작가 토머스 허쉬호른(Thomas Hirschhorn)은 “나는 정치적인 미술을 만들기(making political art)를 거부하며 미술을 정치적이게 만들기(making art politically)를 추구한다”고 말했다.5) 김용익이 이강진의 말을 빌어 추구하고자 하는 미술은 허쉬호른이 추구하는 미술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미술은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내 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고 한 김수영의 시구처럼 역설적이며 여운이 있는 미술이자 ‘거짓말’일 것이다.


김용익,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16-40’, 2016, 캔버스에 혼합 매체, 194×259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김용익,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16-40’, 2016, 캔버스에 혼합 매체, 194×259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3) 구나연, 김용익, ‘경기창작센터 여름 아카데미 대담’, 2013 예술로 가로지르기, 경기문화재단(영상 http://www.ggcf.kr/archives/37054?cat=129, http://www.ggcf.kr/archives/37050?cat=129).
4) 위와 같음.
5) Thomas Hirschhorn, ‘Doing Art Politically: What does this mean?’, Critical Laboratory: The Writing of Thomas Hirschhorn, Cambridge: MIT Press, 2013, pp.72-76(kindle edition).

이성휘

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 KAIST 산업디자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졸업. 제2회 아트선재 오픈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