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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형: 개인소장품

posted 2016.09.08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된 정금형의 개인전(8. 26~10. 23)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렸다. “개인소장품”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마네킹이나 운동기구, 굴삭기 등 자신의 퍼포먼스 소품을 비롯한 수집품들을 전시장 안에 펼쳐 놓았다. 전통적인 박물관의 진열 방식대로 흰색 좌대 위에 사물들을 분류하고 배치한 모습은 언뜻 그의 지난 작업들을 박제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안에는 작가와 관람자, 사물과 주체 사이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숨어있다.




구매자를 위한 박물관


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 습관적으로 B4 사이즈의 안내문을 집어 들자마자 방금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깨달았다. 손에 잡은 것은 카페의 메뉴판이었다. 머쓱함을 뒤로하고 전시장에 들어서며 같은 사이즈의 리플렛을 집었다. 더 이상 헤맬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때와 달리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전시장은 가벽 하나 없이 뻥 뚫려 있었다. 전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스팟 조명 대신 형광등이 밝게 빛나고, 균일한 크기의 좌대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가운데 정금형의 ‘개인소장품’이 펼쳐져 있었다. 마네킹이나 운동기구를 포함해서 성인용품이나 전기테이프와 같이 작가가 무대에서 사용한 ‘물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7가지 방법’(2009)부터 가장 최근에 선보인 ‘재활훈련’(2015)까지, 정금형의 공연을 인상적으로 봤던 관객에게 제 16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작가전으로 열린 “개인소장품”전은 남다른 감회에 젖게 할 지 모르겠다.


“정금형 : 개인소장품” 전시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2016,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정금형 : 개인소장품” 전시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2016,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전시된 사물의 관음증적 시선


그러나 그런 감상도 잠시,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를 심각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드는 순간 음악 소리에 주의를 빼앗겼다. 전시장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가 있지만 영상에는 소리가 없었다. 느슨한 라운지 음악이 새어나오는 곳은 바로 맞은 편 카페였다. 그동안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감상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인식되었을 카페 음악은 무방비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시장 안으로 흘러들었다.


“공연은 관객이 공연장에 와서 직접 보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요. 공연 관람의 시작은 공연에 대한 정보를 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연정보를 제공할 때 그 정보를 통해 관객이 무엇을 예상할지, 그것이 관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염두에 두는 편이에요.”1)


정금형은 공연장 밖에서 정보를 접하는 것부터 관람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관람자의 현전을 전제로 작업해온 정금형이 전시장에서 감각할 수 있는 단서들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페 음악은 의도적으로 허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의 정적을 깨트리며 멀리서 새어나오는 것으로서 말이다. 전시되는 ‘물건들’은 정면을 향해 진열되어 있지만(마네킹의 얼굴이 정면을 지시한다) 뒤로 돌아가서 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통유리로 된 전시장 한 쪽 벽면 너머 중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실내에 앉아 한담을 나누는 카페 손님들이 보였다. 그리고 좌대 위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고무 튜브 인형은 창문의 정 중앙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가슴털이 묘사되고 남성 성기가 부착된 인간 남성형 인형들의 시선이 카페를 향하는 것이다.


정금형, ‘7가지 방법’, 2008_2015, 퍼포먼스, 75분 정금형, ‘7가지 방법’, 2008_2015, 퍼포먼스, 75분

전시 서문은 꽤나 고무적으로, 작가가 부재하고 외부와 단절된 순백의 “진공의 공간”에서 “예술로 치환된 사물”이 “관람객 개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개인들의 욕망이 은밀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발현되는 발칙한 순간들을 ‘개별적’으로 제공”한다고 적고 있다.2) 그러나 쇼윈도우 갤러리는 개인의 욕망 속으로 침잠할 수 있는 진공이 아니라 관람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음증적인 시선의 틈입을 허용하고 유도한다. 더군다나 그 동안의 공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정금형의 사물은 욕망하는 주체의 수동적 대상에 잠자코 머무르지 않는다. 두 개의 고무 튜브 인형은 욕망하는 주체에게 구경당하는 대상에 그치지 않고 창문 너머를 구경하는 시선의 주체가 되면서 동시에 전시장 내 관람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암시한다.




구매자로서 관람객의 욕망


이전 글에서 나는 정금형이 “‘신체의 오브제화’라는 지난 시대 퍼포먼스의 강령을 작가의 죽음 혹은 주체성의 죽음으로 탈바꿈”시키며 “오르가즘을 욕망하는 주체의 자리를 사물에 넘기거나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작가의 모습을 수동적인 것으로” 나타낸다고 서술했다. 또한 작업을 위해 유압굴삭기 자격증을 땄다는 점에 주목하며 작가가 “성적 욕망의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수동적 주체성을 드러내면서 그러한 수동적 주체가 불가능한 욕망에 도달하기 위하여 ‘학습’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3) 이러한 ‘학습’이라는 주제는 “개인소장품”전에도 반복된다. 전시장 한 편에는 의학 전문 서적이나 기계 공학 관련 수험서와 같은 ‘인쇄물’이 놓여있고, 천장에 매달린 여섯 개의 모니터에는 좌대 위 사물의 ‘사용법’이 영상으로 담겨 있다. (참고로 작가는 일반적인 작품 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아카이브를 간단히 다섯 가지로 구분해서 지칭한다. 1. 광고 영상(구입을 고려했던 물품), 2. 광고 영상(구입한 물품), 3. 인쇄물, 4. 물건들, 5. 사용법)


“정금형: 개인소장품”전 전시품들, 2016, 가변크기,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정금형: 개인소장품”전 전시품들, 2016, 가변크기,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학습’에 새로운 맥락이 추가된 듯하다. 우선 ‘인쇄물’은 관람자가 펼쳐보지 못하도록 지킴이가 관리하는데, 작가의 학습 자료인 참고 서적이 관람객에게는 쉽게 만질 수 없는 귀중품으로 인식되면서 작가와 관람자의 시점이 분리된다. 정금형이 내놓은 사물은 아무리 낯설고 기이해보여도 레디메이드이지만,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질문하게 만드는 전통에서 벗어나서 예술가의 아우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개인소장품으로서의 레디메이드이다. 이때 관람자는 작가의 부재를 대체하는 사용자가 될 수 없다. 사물은 오직 작가의 아우라, 달리 말하자면 작가의 연출 아래서만 드러난다.


반면 ‘사용법’은 정금형의 공연이 지닌 아우라를 철저히 해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러닝타임이 160분에 이르는 ‘재활훈련’에서 길고 집중력 있게 공연의 호흡을 극대화시켰던 정금형은 공연 기록 영상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광고의 호흡으로 짤막하게 편집해서 여섯 개의 모니터에 반복 재생시켰다. 또한 작가는 제품 사용법이 담긴 두 편의 기성 ‘광고 영상’을 제시하고 구입을 고려하거나 구입했음을 밝힘으로써 작가의 구매자로서의 면모를 환기시킨다. ‘광고 영상’을 닮으려는 ‘사용법’은 ‘물건들’을 ‘판매용 상품’에 비교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용법’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학습자보다 ‘구매자’에 가까워진다. 게다가 ‘인쇄물’의 전략을 고려하면 여기에서 구매자는 그저 단순한 물건의 사용자가 아니라 상품의 아우라를 탐하는 자로서 부각된다.


정금형, ‘재활훈련’, 2015, 퍼포먼스, 160분, Photo: MINGU JEONG 정금형, ‘재활훈련’, 2015, 퍼포먼스, 160분, Photo: MINGU JEONG

전시에서 관람객이 작가를 대체하는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관람객이 추구하는 욕망은 어떤 것일까? 그러한 욕망은 채워질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구매자로서 작가의 ‘물건들’을 탐내게 될까? 만약 상품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면 그것은 관람자-주체의 능동적인 욕망인가, 아니면 작가의 연출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수동적인 욕망인가? (잠재적) 구매자로 상정된 관람객은 전시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인가? 건너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 잔 주문하기만 해도 작품에 참여하게 되겠지만, 그런 참여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용법’은 관람객의 구매를 촉진하는 실용적 지침서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사용법’은 광고의 산만한 호흡을 따를 뿐 주체의 능동성이나 자율성은커녕 수동성과 죽음을 암시함으로써 욕망하는 주체의 환상을 부추기는 데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를 통해 “개인소장품”전은 정금형의 지난 공연을 한 데 모아 박제하지 않고 전시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닐까. 다만 공연에서 시공간의 익명성이 전제되었다면, 전시에서는 결과적으로나마 일종의 장소특정성에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 흥미롭다.




1) 안소연, 「1인 인형극을 통한 행위와 시각의 불편한 유희, 작가 정금형」(인터뷰)
2) 김윤경, 「엉뚱하고 기괴한 그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telier Hermès Review #5, Private Collection: Jeong Geumhyung's Solo Exhibition』, p. 11.
3)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발행한 자료집 『2015 SeMA-하나 평론상,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2015. 12)에 수록되었으며(본문 내용은 pp. 73-74 참고), 개인 블로그에도 공개했다.

김정현 / 미술비평가, 독립큐레이터

김정현은 비평과 창작이 서로 개입하는 형식과 구조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며 전시를 만든다. 서강대학교 영문학, 심리학, PEP(정치/경제/철학) 학사 및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2015 SeMA-하나 평론상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AYAF 시각예술 큐레이터로 선정되었다. 전시 《산책일지》(공동), 《연말연시》, 공연 《아무 것도 바꾸지 마라》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