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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푸동×배영환 : 대구미술관 ‘양푸동’, 플랫폼-엘 ‘양푸동&배영환’

posted 2016.07.26

중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양푸동의 역대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6.11~10.16)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양푸동과 함께 한국작가 배영환의 개인전을 동시에 개최했다.(5.12~8.7) 비슷한 세대, 다른 공간 속에서 상이한 체제와 역사를 경험한 두 작가는 각기 자신이 당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성찰하면서, 작품을 통해 그 치유 가능성과 구원의 길을 모색한다.




초현실적인 풍경, 그리고 새들의 나라에서 펼쳐질 구원의 서사


“양푸동, ‘장군의 미소’, 2009, 멀티채널 영상 설치, 대구미술관 전시 장면 양푸동, ‘장군의 미소’, 2009, 멀티채널 영상 설치, 대구미술관 전시 장면

동시대의 인간이 마주한 현상과 문제에 대한 사유를 시각화해 온 중국의 대표적인 영상 사진작가 양푸동의 개인전이 한국의 대구미술관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두 곳에서 개최되었다. 대구미술관의 전시는 양푸동의 역대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1993년 그의 대학시절 실험 작품 ‘낯선 곳’부터 2014년 작 ‘내가 느낀 빛(The Light That I Feel)’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 그의 주요 작품을 한국의 관객에게 선보였다. 양푸동 고유의 대규모 다채널 비디오 영상 설치 등 10여 편의 작품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그의 대표작 ‘죽림칠현(竹林七賢, Seven Intellectuals in Bamboo Forest)’은 22점의 사진으로만 전시했다.


이에 앞서 서울의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야심찬 개관전으로 양푸동과 배영환의 개인전을 열었다. 양푸동은 이 전시를 “천공지색(The Colored Sky)”이라 이름 붙이고 그의 최초 HD 컬러필름 ‘신여성 II’, 한 작품만을 지하의 넓은 공간에 다섯 개의 스크린으로 구성하여 설치했다. 배영환은 이번 개인전에 “새들의 나라(Pagus Avium)”라는 제목을 내걸고 ‘말, 생각, 뜻’이라는 앵무새와 사각의 지구본으로 구성된 설치작품, 그리고 새의 깃털을 뒤집어 쓴 한 인간의 신명나는 춤을 담은 4-채널 영상설치 ‘추상동사(Can You Remember Me?)’ 등을 선보였다.




양푸동의 초현실적 필름풍경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 통제되었던 중국 문화혁명의 말기에 태어난 양푸동은 통제에 대한 저항으로, 강력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던 1세대 비디오/사진작가들과는 달리 중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중층적 사유를 예술적 표현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상 속에 담아왔다. 그는 전통을 벗어난 시네마토그래피, 회화 같은 구도, 시적감성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미술계에서는 실험적 영상설치 작가로, 영화계에서는 중국 실험시네마의 개화기를 이끈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일찍이 통찰했듯이 과거 특정한 시간과 사건을 모조해 동시대의 관람자의 눈앞에 펼쳐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공을 넘어선 무한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매체이다. 시공의 경계를 초월한 시간과 장소성을 배우의 그럴듯한 연기와 뛰어난 미장센으로 구축하여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잊게 하는 시뮬라크르적 유희는 영화의 큰 매력이다.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맞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야장(夜將, The Nightman Cometh)’은 이러한 영화적 가상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감독의 주도 아래 완결된 ‘한 편’으로 완성되고, 관객 모두에게 똑 같은 길이의 시간으로 주어지고, 아무리 여운이 남거나 오픈 엔딩이라고 해도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양푸동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완결구조, 무엇보다 관객의 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한계를 미술의 영역으로 편입시킴으로써 관객의 독립적인 감상을 보장한다. 그는 미술가로서 영화와 이미지의 차이를 명확히 규정한다.


“동시대 미술가들은 그들이 영화(film)를 만든다기보다는 이미지(image)를 만든다고 말한다. 이미지라는 개념은 더 많은 자유와 가능성을 허락한다.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필름처럼 완결된 한편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 위한 여행, 즉 모험을 하는 것이다.”1)


왼쪽) 양푸동, ‘내가 느낀 빛’, 2014, 8-채널 영상설치, 8~14분 오른쪽) 양푸동, ‘죽림칠현’, 2003-7, 사진, 120×180cm 왼쪽) 양푸동, ‘내가 느낀 빛’, 2014, 8-채널 영상설치, 8~14분
오른쪽) 양푸동, ‘죽림칠현’, 2003-7, 사진, 120×180cm

양푸동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영화에 매료되어 ‘백생천당(陌生天堂, An Estranged Paradise)’(1997)을 제작 할 때만 해도 “정말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극장에서 상영될 법한 영화다운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5년간의 제작기간을 통해 5부작으로 구성된 그의 대표작 ‘죽림칠현’(2003-2007)을 제작하면서 ‘백생천당’의 영화적 형식은 점차 해체된다. ‘죽림칠현’에서는 회화적 요소가 더욱 풍부해지고, 몽타주가 강화되고, 스크립트와 대사가 없어져 갔다. 그는 ‘죽림칠현’을 제작할 때는 “추상 필름,” “구조적 시네마,” 혹은 “감각의 시네마”를 상상하며 접근했다.2) 그는 그의 작품이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추상 필름’이 되기를 원했는데,3) 이는 구체적인 묘사 대신 모호한 구성과 표현으로 관람객의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고자 함이다. 이러한 전통은 동양 수묵화의 표현양식이기도 한데, 사물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고 오히려 여백을 남김으로 추상성을 극대화하는 수묵화의 전통은 그의 흑백필름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중국전통회화는 언제나 그리지 않고 남긴 공간인 여백을 강조해왔다. 나에게 있어서, 비디오를 만들건 영화를 만들건, 같은 개념을 적용한다...작품에서 묘사하지 않은 공간은 관객이 작품을 보고 해석할 때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기 위해 존재한다.”4)


작가의 의도를 풀어놓고 작품의 의미를 규정하지 않으며 관객이 채울 공간을 만들어 놓는 ‘추상 필름’이라는 개념은 그가 ‘설치 필름’, ‘공간 필름’, ‘마인드 필름’, ‘센스 필름’ 등으로 명명하는 ‘메타 필름’이라는 독자적인 작품세계에 이르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 몽타주 기법의 효과적인 사용 또한 추상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추상성은 이질성과 낯선 느낌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한데, 여러 샷을 섞어 배치하는 몽타주 기법은 그의 필름에서 시간성과 장소성을 흐리게 하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초현실적인 예술성은 그의 다중채널 설치와 컬러작품에서 더욱 확장된다.


대구미술관 어미홀 전체를 차지한 ‘내가 느낀 빛’(2014)은 관객과 자신의 작품의 만남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양푸동이 과감하게 새로운 실험을 단행한 8-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그는 각각의 채널을 상영하기 위하여 소극장과도 같은 목조설치물 여덟 채를 짓고 한 영상이 구조물의 안과 밖 양면에서 보이는 양면 스크린을 설치했다. 관객은 각 구조물의 안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마주대할 수밖에 없는 친밀한 상황에 놓이지만, 밖에서는 멀티스크린 배열과도 같이 한 공간에서 여덟 개의 스크린을 보게 된다. 설치미술과 시네마를 결합하여 관객과의 특별한 만남의 공간을 창안한 이번 설치는 관객에게 산만한 관람과 집중된 관람, 두 가지를 제공한다.


양푸동, ‘신여성 II’, 2014, 5채널 비디오 설치, HD 컬러, 12분~15분 47초 양푸동, ‘신여성 II’, 2014, 5채널 비디오 설치, HD 컬러, 12분~15분 47초

플랫폼-엘에 전시한 컬러 필름 ‘신여성 II’는 양푸동 추상필름의 정점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그는 1920년대와 30년대 상하이 시네마의 미학적 특징을 차용함으로써 대상의 추상미와 시간의 초월성을 표현한다. 그가 최초로 고화질 컬러로 제작한 이 작품은 구식 수영복을 입은 여인들 때문에 초창기 컬러사진이 풍기는 인위적인 회화성을 느끼게 한다. “1920년대 상하이의 모습이 아닌 실제로 가짜이고, 관객에게도 가짜처럼 보이도록”5) 하고 싶었던 그는 시네마적 ‘인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짜 해변에 비현실적인 구조물, 셀로판지를 입혀놓은 듯한 투명한 색면 분할로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는 전작인 <신여성>에서 1920년대 상하이의 전위적 예술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꿈과 현실과 괴리를 나타내고자 했다.”6) 그의 인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동양 미인들과 서구 초현실주의 회화와 바니타스 정물을 연상시키는 세트의 이질적 만남은 관객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과 언캐니(uncanny)의 세계로 인도한다.


양푸동은 특별히 정해진 스크립트가 없이 진행되는 촬영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한 상황의 진정성을 그의 작품에 담고자 한다. 즉흥성은 예상 못한 놀라움을 낳는데, 정해진 디자인과 치밀한 계획으로는 그러한 창작적인 과정을 실현하기 힘들다. 그가 관객을 위한 우연성의 공간인 여백을 남겨둔 만큼, ‘신여성 II’를 보는 관객은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가는 색채와 감각의 향연에 던져진다. 전시장을 막 들어선 관객은 사면에 투사되는 다섯 개의 스크린 중 어디부터 보아야할지 어리둥절하다. 모든 화면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관객의 감각은 분산되기 시작한다. 다섯 개의 화면 속 색채와 이미지의 향연은 시작도 끝도 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관객은 이 작품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이며 얼마의 시간을 소요할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제 2의 디렉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왼쪽) 배영환, ‘말, 생각, 뜻’, 2016, 혼합재료, 210×225cm 오른쪽) 배영환, ‘바벨-I’, 2016, 사운드 설치, 50×230cm 왼쪽) 배영환, ‘말, 생각, 뜻’, 2016, 혼합재료, 210×225cm 오른쪽) 배영환, ‘바벨-I’, 2016, 사운드 설치, 50×230cm



배영환의 ‘새들의 나라’


1969년생인 배영환은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자리잡아가고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해오는 사회상황에서, 자신의 고백대로라면 한 달에 반은 예술가로 반은 무능력자로 자발적 소외의 삶을 살았다. 자신과 사회를 직시하면서 혼돈의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배영환의 작품세계가 오늘날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의 시선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인 빈부격차의 현상 속에서 신음하는 소외된 사람들,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모든 가치 기준이 돈이 되어버린 비정한 사회, 비도덕적인 관료들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회유와 억압에 눌려 저항을 잃고 길들어져가는 시민들, 이 같은 사회 시스템을 이어가기를 강요당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향해 있다. 가진 자보다는 없는 자의 문화라 할 수 있는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2012), 빈부격차의 실제적 결과물이자 상징인 노숙자를 조명한 ‘소수자 프로젝트: 노숙자 수첩-거리에서’(2000), 무한경쟁의 희생자를 대변하는 ‘남자의 길’(2005),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프로젝트 내일(來日)’(2009), 화려하지만 소비와 쾌락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샹들리에로 대표되는 ‘불면증’(2008) 시리즈 등 배영환의 시선의 방향은 지금까지 작업의 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1969년생인 배영환은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자리잡아가고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해오는 사회상황에서, 자신의 고백대로라면 한 달에 반은 예술가로 반은 무능력자로 자발적 소외의 삶을 살았다. 자신과 사회를 직시하면서 혼돈의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배영환의 작품세계가 오늘날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의 시선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인 빈부격차의 현상 속에서 신음하는 소외된 사람들,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모든 가치 기준이 돈이 되어버린 비정한 사회, 비도덕적인 관료들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회유와 억압에 눌려 저항을 잃고 길들어져가는 시민들, 이 같은 사회 시스템을 이어가기를 강요당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향해 있다. 가진 자보다는 없는 자의 문화라 할 수 있는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2012), 빈부격차의 실제적 결과물이자 상징인 노숙자를 조명한 ‘소수자 프로젝트: 노숙자 수첩-거리에서’(2000), 무한경쟁의 희생자를 대변하는 ‘남자의 길’(2005),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프로젝트 내일(來日)’(2009), 화려하지만 소비와 쾌락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샹들리에로 대표되는 ‘불면증’(2008) 시리즈 등 배영환의 시선의 방향은 지금까지 작업의 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배영환, ‘추상동사-Can you remember?’, 2016, 4채널 영상, 6분 37초, 플랫폼-엘 전시 장면 배영환, ‘추상동사-Can you remember?’, 2016, 4채널 영상, 6분 37초, 플랫폼-엘 전시 장면

말을 대신할 문제해결 방식은 ‘추상동사’에 나타난다. 추상동사는 움직임 이면에 다른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 동사이다. 새의 깃털 옷을 입은 무용수는 말이 없다. 음악에 맞춰 신명나게 역동적으로 몸을 움직일 뿐이다. 신명나는 음악과 무용수의 몸의 리듬에 이입된 관객 역시 말을 잃는다. 새의 춤이 일으키는 몸체의 궤적은 악령을 털어내려고 하는 무속인의 굿판(exorcism)을 연상시킨다.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말 대신 신명을 담은 몸짓으로 털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야말로 ‘동사’ 이면에 담긴 배영환이 말하고자 하는 ‘추상’일 터인데, 그것은 우리 사회를 둘러싼 악령들, 즉 빈부격차, 억압적인 교육시스템, 생명경시, 물신주의, 경쟁과 도태 등이 아닐까. 일체의 모순과 억압을 털어내려는 의지를 담은 새 춤은 배영환이 도달하고자 하는 나라를 향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진정성을 담은 신명의 몸짓은 말만이 아닌 구체적 실천이야말로 ‘새들의 나라’ 너머로 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자, 가야할 길이라고 제시하는 듯하다. ‘추상동사’는 몸의 구체적이고 야성적인 실천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그 원초적 몸짓을 기억하라고 한 판 제의(祭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 구원의 서사


양푸동과 배영환의 작품은 시차가 있지만 공히 구원의 서사를 말한다. 그들은 모두 권력의 억압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공안의 감시가 횡행하는 삶의 터전에 대해 저항하고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백생천당’, ‘죽림칠현’ 등에서 양푸동은 새로운 나라를 찾아 헤매다 다시 처음의 그곳으로 돌아왔다. 그의 결론은 떠나온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지만 그곳이 새로운 나라는 아니다. 그 곳을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후 더욱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신여성’ 시리즈 등은 그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모호한데, 나는 그가 결국 정신적 이상향을 꿈꾸고 있다고 여긴다. 배영환은 아직 섣부른 귀환을 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 차이는 전적으로 그들이 속한 체제의 표현의 자유의 정도에 따른 결과일 뿐 작품의 미학적, 역사적 가치나 작가의 사회의식의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시대의 산물인 작가로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동시대의 현상과 문제에 대해 숙고하고, 구성원들 간의 진정한 의사소통과 화해의 구현이 말만으로는 불가능한 현대사회의 치유 가능성과 방식에 대해 탐구해온 한국과 중국의 두 작가가 꿈꾸는 세상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그것은 초현실적이고 탐미적인 양푸동의 하늘이자 세상이고, 세상의 그릇된 잣대와 억압을 털어내고자 몸부림치는 인간 새들이 자유롭게 날개 짓을 할 배영환의 세상이자 하늘이다.




1) Yang Fudong interviewed by Christen Cornell, Artspace China, University of Sydney,
http://blogs.usyd.edu.au/artspacechina/2011/04/interview_with_yang_fudong_by_1.html
2) “Twin Tracks: Yang Fudong” (Shanghai: Yuz Museum, 2015), 41.
3) https://www.youtube.com/watch?v=mGUIv4BFHw (2016.07.20.접속)
4) http://betweenthescreens.acmi.net.au/chapter4.html (2016년 7월 20일 접속)
5) http://news1.kr/articles/?2657844 (2016.07.20.접속)
6) 위 글

이필 / 미술사, 미술비평

시카고 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 미술사학과에서 현대미술과 사진을 전공으로, 미술관학을 부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시카고 대학교 미술사학과 강사, 시카고 예술대학 전임강사(Lecturer, SAIC)를 역임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