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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펙트럼 2016

posted 2016.06.22

"아트스펙트럼"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격년제로 개최되는 전시다. 리움의 큐레이터와 외부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10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열고, 그 중 1명의 작가에게는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여한다. 특정 장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은 채 펼쳐지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 속에서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황과 흐름을 접할 수 있다. 김영은, 박경근, 박민하, 백정기, 안동일, 옥인 콜렉티브, 옵티컬 레이스, 이호인, 제인 진카이젠, 최해리 총 10팀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5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개최된다.




‘미래’보다 불확실한, ‘오늘’의 미술/하기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시작해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이어지며 올해로 6회를 맞이한 "아트스펙트럼"은 리움의 큐레이터 및 외부 전문가 추천을 통해 선정된 작가들로 구성되는 격년제 전시이다. 청년 미술가들을 위한 ‘직접’ 지원 제도가 축소되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서 "아트스펙트럼"이 제공하는 전시 규모는, 젊은 작가들에게 도전적인 조건일 테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도 큰 미술관에서 공력이 깃든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볼 수 있다는 쾌감은 매우 크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인지 공식적인 참여작가 발표 전부터 선정 작가들에 대한 추측이 오가고, (지난 5회부터 도입된) 작가상을 누가 수상하게 될지를 점치게 한다.


위) 아트스펙트럼 2016 전시전경 (앞: 옵티컬 레이스, 가족계획, 2016,  뒤: 백정기, Akhaedokdan, 2016) 아래 왼쪽) 박민하, Timespace, 2016, Single channel video, 23:23 아래 오른쪽) 제인 진 카이센, Reiterations of Dissent, 2011/2016, 8 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B&W, sound, 77:26 위) 아트스펙트럼 2016 전시전경 (앞: 옵티컬 레이스, 가족계획, 2016, 뒤: 백정기, Akhaedokdan, 2016)
아래 왼쪽) 박민하, Timespace, 2016, Single channel video, 23:23
아래 오른쪽) 제인 진 카이센, Reiterations of Dissent, 2011/2016, 8 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B&W, sound, 77:26

“아트스펙트럼 2016”에 참여하는 열 팀의 작품들은 추천을 통해 선발되었단 공통점을 제외하곤 하나로 묶일 수 없고, (주최 측이 매체의 다양한 안배를 고려한 만큼) 주제의식, 방법론 등에서 서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이라는 전시의 전제를 한 눈에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된다. 특히 올해는, 사회적 제도적 비판성이 뚜렷한 발언이나 이야기가 드러났던 2년 전과 비교해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양상이다. 올해 선정작들은 사회적인 관심을 지니면서도 작금의 조건을 다양한 매체/미디어를 경유해 구축/재구성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을 나서며 떠오른 첫인상은 한바탕 인터넷 웹서핑을 한 것만 같은 기시감이었다. 아이튠즈를 재생시키면서 시작된 이 ‘항해’는, ‘헬 조선’의 오늘을 그래픽화하고 타임라인에 밀려 사라지는 다양한 문서들을 펼쳐 놓는다. 역사적 사건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가상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는 무국적 공간을 떠돌면서,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선 상황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가시성의 가능성


먼저, 동시대 사회적 현실에서 출발해 현실을 이루는 관념(가령, 예술가의 존재방식이나 에코 세대의 결혼, 소리 등 비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가시성을 구축하려는 형태적인 시도들이 눈에 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작업을 이루는 형식과 방법론의 문제이지만, 오늘날의 ‘미술하기’는 과거의 전형성 안에 머물지 않고, 작품에 대한 묘사 역시 종전의 틀로는 설명-해석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지점은 옥인콜렉티브와 김영은 그리고 옵티컬 레이스의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오늘날 불안정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낭만화, 추상화되는 예술가들의 존재 방식에 줄곧 질문을 던져온 옥인콜렉티브의 신작 ‘아트 스펙트랄’은, 작업하기와 미술가-되기를 둘러싼 고민 그 자체에 대한 작업이다. ‘사라지는’ ‘유령’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가가 전시장에 특정한 상황(‘바닥, 영상, 소리, 책’으로 구성된)을 만들고 자신들이 섭외한 필자들의 글을 통해 그 의도/언어를 구체화해 관객들이 경험하게 만드는 식이다. 이는 ‘무엇’을 작업하기에 앞서 ‘어떻게’라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면서 예술(가)을 퍼포먼스화하는 것 같다. 그리고 관객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옥인 콜렉티브, 아트 스펙트랄, 2016, Wooden floor, books, sound, single channel video, microwave, rice pillows, Dimensions variable ⓟ Hyeonsu KIM옥인 콜렉티브, 아트 스펙트랄, 2016, Wooden floor, books, sound, single channel video, microwave, rice pillows, Dimensions variable ⓟ Hyeonsu KIM

김영은의 ‘1달러어치’는 디지털 ‘음원’이라는 (시장 안에서 특정한 값어치를 부여받은) 상품을 매개로 ‘소리’ 자체를 물질화시키는 일종의 실험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언어적 관심이 동원되는데, 노래의 구성 요소를 두고 재생시간은 ‘길이’로, 음정은 ‘높이’로, 주파수 대역은 소리의 ‘폭’으로 간주해 1.29 달러 가격의 음악을 ‘1달러’ 짜리로 변형시킨다. 이 같은 작가의 실험은 ‘두부를 자르듯이’ 소리를 분절하고, ‘종이를 오리듯이’ 그 길이를 재단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1달러라는 자본을 축으로 한 산술적인 계산으로 인해, 노래는 끊기거나 소리가 얇아지는 등 어딘지 어색한 소리로 변화한다. 허나 양적인 가치의 감소가 단지 시장가치의 하락이나 소리의 변화만을 지시하지는 않을 거란 의구심이 남는다.


옵티컬 레이스가 고안한 ‘가족계획’은 통계 자료를 연구, 분석, 배열, 가공, 재구성하여 인포그래픽 형태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 다수에게 당면한 구체적 현실이면서도 ‘도래할’ 현실을 통계적 근거를 기반으로 시각화한 이들의 작업은, 사회적 현실과 조건을 재료화하지만 그에 대한 작가 자신의 태도나 입장을 내세우는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규범적인 가족 형태, 주택 소유 여부, 결혼 등 작업에서 제시된 조건은 사실상 규범적인 가족 형태가 해체되고 결혼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할 수 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최종 판단은, 자신의 경제적 지표에 해당하는 다이어그램을 찾아가란 작업의 주문/요구에 반응하는 관객 개인의 경험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왼쪽) 박경근, '군대 60만의 초상' 전시전경 오른쪽) 2016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 박경근왼쪽) 박경근, '군대 60만의 초상' 전시전경
오른쪽) 2016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 박경근

‘군대: 60만의 초상’의 박경근 역시 ‘군대’라는 한국 사회의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그에 대한 감독의 의도나 주제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전작 ‘철의 꿈’에서 역시 철저히 철의 ‘즉물성’에 주목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있는 것 같다. 꽉 짜인 프레임 안에서 제시하는 시각적인 단서들이 한국 사회를 중층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따라서 ‘닫힌 문’을 기준으로 17분간 반복 재생되는 이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공간을 꽉 채운 거대 스크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령, 스펙터클한 긴장감을 주던 의장대 도열 장면에서 훈련소 교회 풍경으로 화면이 전환되어, CCM 걸그룹의 율동이 집단적 동작으로 확산되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실소와 수치, 불편함 등 다양한 감정을 끌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이와 유사한 감정의 역학은 이호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호인의 화면은 일상적인 풍경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어딘지 의심스러운 ‘낌새’가 느껴진다. 롯데타워, 국회의사당, 다리, 미세먼지에 뒤덮인 도심 등의 풍경이 일으키는 그 상상의 여지는 작품의 제목에서도 읽힌다. 그리고 화면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2015년 개인전 제목이 지시하는 의태어) ‘번쩍’이는 빛은, 그 의심에 대한 확증적 단서가 된다.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명암과 달리 인공 불빛에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는 기실 자기 자신을 반영(反映)한다는 점에서, 이 ‘빛’은 한국 사회의 강력한 표백력 속에 묻힌(힐) 기억을 불러내는 작가의 주술과도 같다.


이호인, Crossing, 2016, Oil on canvas, 227 x 181.6cm이호인, Crossing, 2016, Oil on canvas, 227 x 181.6cm

초조함과 무심함 사이


더 이상 동일한 시공간으로 삶이 해석되지 않는 상태는 어쩌면 지금 세대의 필연적 조건일 것이다. 앞선 작업들이 이른바 ‘헬 조선’의 현실적 층위를 다루었다면 수집된 재료/자료를 토대로 가상적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가들도 있다. 박민하는 다양한 영상 속 장면을 재료로 ‘우주 탐사’를 둘러싼 역동적인 시선을 재배열시킨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백정기는 ‘기우제’ 전통과 자신이 직접 고안한 기술적 장치를 연결시켜 주술과 과학이 결합된 기념비를 구축한다. 최해리 역시 전통 회화를 지금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데, 과거 맥락 속에 현재를 틈입시키려는 관심은 안동일에게서도 보인다. 제주 4.3 사건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제인 진 카이젠의 작업은, 민족/국가주의, 냉전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강하게 작동되는 한국 사회에서 망각된 역사 속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다루면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을 제안한다.

왼쪽) 안동일, Our Land of Korea, 2016, Color on Korean paper, 290.9 x 197㎝ 오른쪽) 최혜리, Bamboo in Snow, Plum Blossom in Summer, Orchid in the Cold in Zero Gravity Seen from All Directions 2016, Ink on Korean paper, gold pigment, 210 x 117 x 4㎝왼쪽) 안동일, Our Land of Korea, 2016, Color on Korean paper, 290.9 x 197㎝
오른쪽) 최혜리, Bamboo in Snow, Plum Blossom in Summer, Orchid in the Cold in Zero Gravity Seen from All Directions 2016, Ink on Korean paper, gold pigment, 210 x 117 x 4㎝

여기까지 거칠게 살펴본 작품 대부분은, 동시대 미술의 주된 경향인 리서치를 기반으로 고도화된 전문지식들이 총합되어 그 완성도를 높인다. 그리고 이러한 세공적 말끔함은 관객이 작품에 틈입할 공간을 만들기보단 작업 논리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지시/설득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은 ‘더는 새로울 것 없는’ 예술적 실험과 역사를 다시 창안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잡식적으로 삼키면서 무수한 아이디어, 제안과 조건들을 가공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잡종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비단 매체 사용이나 방법론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미술하기를 둘러싼 혼종적 역할과 고민, 위치성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이 발생하는 순간을 그 어떤 영감으로 확신할 수 없기에 모리스 블랑쇼는 예술가로 하여금 “초조함과 무심함 사이”에 있을 것을 제안한다. “가능성, 앞날, 다음 단계...” 전시 서문에 등장하는 미래를 향한 제언의 다른 지평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오늘’에 집중하는 어떤 세태를 본다. 차라리 오늘날 ‘미래’(未來)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오지 않는다’는 뜻이 더 정확한 건지도 모른다(정희진). 다가서면 뒤로 물러나는 오늘날의 지평은 그 너머를 상상하기 어렵다. 때문에 오늘의 미술하기는 부재하는 내일이 아니라 충실한 현재를 뒤섞으며 펼쳐지고 도약한다.

조은비 / 독립큐레이터

KT&G 상상마당 갤러리를 거쳐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파동, The Forces Behind》(공동기획, 두산갤러리, 2012), 《아직 모르는 집》(아트 스페이스 풀, 2013), 《여기라는 신호》(갤러리팩토리, 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2016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연구자로 입주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