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함양아의 몽타주와 콜라주

posted 2019.11.25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함양아는 삶의 단면들을 관찰하고 재구성한 서사를 바탕으로 영상 작업을 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 2019 3부 2019》 (9.7~ 2020.2.9)와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개인전 《함양아 :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9.27~10.27)에서는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각 인간 군상들이 직면한 불안과 위기의 상황들을 콜라주한 파노라마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각각의 인간군상에 부여된 시점들을 총체적인 서사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함양아 작가. 사진 박홍순

함양아 작가. 사진ⓒ 박홍순

함양아 1968년 출생했다. 서울대에서 회화, 동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후 뉴욕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작가는 한국, 네덜란드, 터키 등의 여러 지역에 거주하면서 이런 경험을 토대로 사회시스템 안에서 존재하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화된 자연에 대한 작업을 해 오고 있다. 《트랜스 - 저스티스》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2018), 아시아아트 비엔날레 (대만국립현대미술관, 2017), 《올해의 작가상》 (국립현대미술관, 2013), 《형용사적 삶>넌센스 팩토리》 (아트선재센터, 2010) 등 여러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4년 다음작가상,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2008년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작업을 해 온 함양아 작가에게는 “인간의 삶을 기저로 한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은유적으로 서술하는 방식”(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소개 페이지)을 탐구해 왔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무빙 이미지 작품을 설치해 온 작가로, 통용되는 용어로 말하자면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앞의 수식어는 주제에 집중한 것이고 뒤의 수식어는 작품의 매체 또는 형태에 집중한 표현이다. 사실 사회의 여러 단면을 은유적으로 서술하는 동시대 국내 미술가는 여러 매체와 예술 형태를 가로질러 너무나 많은 관계로 이것만으로는 함양아 작가의 고유함을 명백하게 식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작가의 작품 궤적, 그 속에서 전개해 온 일관성과 변주의 변증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의 주제적 모티프와 관련하여 비디오를 다루어 온 방식을 추적해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함양아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영상작가’로 불리거나 자신이 굳이 영상작가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무빙 이미지 작품을 제작해 온 동시대 작가에게 해당되는 과제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개최된 《함양아: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전과 《국립현대미술관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3부 2019》에 소개된 여러 작품은 작가를 중심으로 주제와 매체 간의 관계를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했다.


함양아, 〈주림〉, 2019.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함양아, 〈주림〉, 2019.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루프에서의 개인전에 소개된 작품은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작가가 2018년부터 스케치한 2차원적 정부 조직도 및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혼돈을 겪는 인간 군상의 이미지를 작가의 지인들이 그린스크린을 배경으로 연기하게 하고 이를 촬영한 〈정의되지않은 파노라마 2.0〉(2019)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버전 1.0은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3부 2019》에 전시 중이다), 그리고 식량 부족과 소비의 불평등으로 인한 계급 격차를 동일한 기법으로 형상화한 〈주림〉(2019)을 포함한다. 둘째 범주는 작가가 2010년부터 발전시켜 온 프로젝트 〈넌센스 팩토리〉에 포함된 두 편의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이다. 이들 각각은 한국조폐공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및 지폐 제작 과정을 관찰자적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포착한 〈넌센스 팩토리 - 쿠폰룸〉(2013~2017), 그리고 쳇바퀴가 포함된 기계적 구조물 안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쥐의 모습과 그 쥐의 뇌세포 활동 및 뇌파 변화를 실시간으로 가시화하는 그래픽 영상을 교차시키는 〈넌센스 팩토리 – 미래의 팩토리를 위한 도면을 그리는 방〉(2013~2017)이다.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2019.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대안공간 루프 설치 전경.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2019.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대안공간 루프 설치 전경.

이 두 범주의 작품을 비교하면 주제적 모티프와 관련해서는 어떤 작가적 일관성을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양아의 작업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써온 강수미가 〈넌센스 팩토리〉를 두고 “가상의 공장을 무대로 해서 실제 우리 삶의 구조와 속성, 우리 각자와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체제적 관계”1)를 보여준 프로젝트라고 평했음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루프 개인전을 기획한 양지윤이 첫 번째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을 히로니무스 보스의 혼란스럽고 다층적인 중세적 종교화를 디지털로 업데이트한 버전으로 간주하면서 “신자유주의 체계가 역사를 걸쳐 인간에게 늘 있었던 일반적인 상황인 양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지금을 비판”2)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관점 또한 주제적 일관성의 차원에서 보탤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비평은 함양아의 주제적 모티프에 대해서만 말할 뿐, 그가 다루어 온 매체의 형태와 기법에 일어난 변화 및 그럼에도 유지되는 – 또는 가설적으로 상정할 만한 – 일관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다. 과연 이 두 범주의 작품은 어떻게 공명하고 불화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나는 〈넌센스 팩토리 – 쿠폰룸〉과 〈넌센스 팩토리 – 미래의 팩토리를 위한 도면을 그리는 방〉을 개별적인 작품인 동시에 일종의 2채널 비디오 설치작품으로 간주한다. 전시 공간에서 이 두 작품은 30인치 남짓한 모니터에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그런 이유로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둘을 같은 시점과 비평에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나는 이러한 배치가 작가의 의도라고 가정한다). 〈쿠폰룸〉에서 함양아의 카메라는 지폐의 대량생산 과정을 이끄는 컨베이어 벨트, 완성된 지폐, 그 지폐를 빠른 손놀림으로 검수하는 여성 노동자의 손과 눈, 그가 처리하는 돈뭉치를 클로즈업해 응시한다. 특히 점프컷으로 반복 강조되는 손의 이미지는 작가의 관심이 화폐는 물론 이를 다루는 노동하는 신체임을 드러낸다. 하루에도 열 번에서 열두 번 이루어지는 노동을 ‘일상의 루틴’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다루는 지폐를 ‘돈이 아니라 상품’이라고 말하는 노동자의 인터뷰가 이 점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함양아의 카메라는 노동이 교환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가시화하지만, 오른쪽에 동시에 전송되는 〈도면을 그리는 방〉의 이미지와 중첩될 때 관객은 노동자의 손과 눈 너머의 비가시적인 차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노동자의 손과 눈이 쳇바퀴 안에서 움직이는 쥐의 뇌세포 활동 및 뇌파 변화를 기록하는 그래픽 이미지와 겹쳐질 때, 그 반복적인 노동의 비물질적이고 비의미적인 차원, 최근 미디어 연구의 관심사를 적용하자면 지각하고 행동하는 신체의 신경학적인(neurological) 차원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파생된다. 이러한 의미는 비판적 지식과 상위의 이념을 생산해 온 영화적 전통은 물론 동시대의 많은 다채널 영상 설치작품이 추구해 온 – 그러나 모두가 성공적이지는 않은 – 지적 몽타주 효과에 근거한다.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 – 미래의 팩토리를 위한 도면을 그리는 방〉, 2013-2017. 컬러, 사운드, 3분 30초.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 – 미래의 팩토리를 위한 도면을 그리는 방〉, 2013-2017. 컬러, 사운드, 3분 30초.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 – 쿠폰룸〉, 2013-2017. 컬러, 사운드, 5분 11초.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 – 쿠폰룸〉, 2013-2017. 컬러, 사운드, 5분 11초.

이를 염두에 둔다면 보다 최근 작품을 포함하는 첫 번째 범주는 몽타주에서 콜라주로의 기법적인 전환을 알리는 것처럼 다가온다. 일종의 2채널 비디오 설치작품으로 상정할 수 있는 두 번째 범주와 마찬가지로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과 〈주림〉은 공간적 동시성의 논리에 근거하며, 관객은 관료제, 금융, 정치적 소요, 노동, 난개발, 재난 등으로 산포된 독립적인 형상들을 엮어 오늘날의 불안정한 세계와 그 속에 놓인 인간 군상의 감정에 대한 하나의 서사를 여러 방식으로 구축하게 된다. 적어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층위에서 불균등하게 폭발하는 위기의 징후들에 각각의 시점을 부여하고 이 징후들을 엮을 수 있는 총체성의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다층성과 총체성의 공존이 중세적인 세계관의 재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상대적으로 모던한 〈넌센스 팩토리〉 연작의 작품과 비교할 때 함양아의 포스트모던한 접근을 보여준다고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콜라주로의 이러한 전환이 온전히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작품의 제목과 달리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과 〈주림〉은 미디어로서의 파노라마가 갖추어야 할 360도 조망을 제시하지 않고 간헐적인 형상의 교체와 일부 형상의 미세한 움직임만을 포함한 평면적인 타블로처럼 보인다. 또한 디지털 합성 기법을 통해 종교적, 철학적 모티프로 동시대의 혼란을 해석한 다수의 영상을 콜라주처럼 결합하거나 이러한 영상을 정교하고 역동적인 디지털 회화로서의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마르코 브람빌라(Marco Brambilla)의 〈문명(메가플렉스)(Civilization[Megaflex]〉(2008)이나 미아오 샤오춘(Miao Xiaochun)의 〈소우주(Microcosm)〉(2007~2008)에 비하면 이 두 작품은 기술적, 미학적 한계를 뚜렷이 보인다. 작가가 디지털 합성에 근거한 콜라주 기법을 향후 작업에서 연장하고자 한다면(양지윤에 따르면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연작은 앞으로 몇 년간 버전을 달리하며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1)강수미, 〈비/의미: 함양아의 미술에서 사회적 삶〉,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3 작가 소개 홈페이지, http://koreaartistprize.org/project/2013/
2)양지윤,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 http://altspaceloop.com/exhibitions/undefined-panorama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