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미래는 항상 지금, 여기 미술가들의 응답

posted 2020.01.09


장나윤 미술사


올 한해 런던에서 본 전시들을 돌아보면 AI(인공지능)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 환경을 주제로 다룬 전시가 유독 많았다. 그중에서도 증강현실 기기를 활용한 설치작품으로 눈길을 끈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서펜타인 갤러리 전시 《파워 플랜츠(Power Plants)》, 로렌스 렉(Lawlence Leck)을 비롯해 VR 등의 신기술을 적용하는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180 스트랜드(180Strand)의 《트랜스포머(Transformers: A Rebirth of Wonder)》등은 특히 흥미로웠다.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전시된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도 포함되어,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인간의 삶과 예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국제 현대미술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연말을 앞둔 지금 런던에서는 이처럼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해 발언하는 전시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Hito Steyerl 〈Power Plants〉 Installation view, 11 April–6 May 2019 Serpentine Galleries AR Application Design by Ayham Ghraowi, Developed by Ivaylo Getov, Luxloop, 3D data visualisation by United Futures Courtesy of the Artist,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and Esther Schipper Gallery(Berlin) Photograph © 2019 readsreads.info

Hito Steyerl, 《Power Plants》 Installation view, 11 April-6 May 2019, Serpentine Galleries. AR Application Design by Ayham Ghraowi, Developed by Ivaylo Getov, Luxloop, 3D data visualisation by United Futures. ©the Artist,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and Esther Schipper Gallery(Berlin). Photo© 2019 readsreads.info.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From ‘Apple’ to ‘Anomaly’〉 Installation view The Curve, Barbican 26 September 2019~16 February 2020 © Tim P. Whit by / Getty Images

Trevor Paglen, 〈From ‘Apple’ to ‘Anomaly’〉. Installation view of 《The Curve, Barbican》, 26 September 2019-16 February 2020. ©Tim P. Whit / Getty Images.

바비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의 전시는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트레버 페글렌은 감시용 카메라와 드론으로 상징되는 보이지 않는 감시망과 감시사회의 진화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AI 연구자인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와 협업하여 ‘이미지넷 룰렛(ImageNet Roulette)’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인터렉티브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이미지넷’은 인공지능 기계들의 이미지 인식 훈련에 활용되는 온라인 최대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이다. 트레버 페글렌의 이미지넷 룰렛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이미지넷에 내재된 인종차별적, 여성혐오적 경향으로, 이는 이미지넷 설립 초기 이미지 분류에 관여했던 자원봉사자들의 인종, 성차별적 편견이 데이터베이스가 확장됨에 따라 확대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트레버 페글렌의 작품은 이미지넷 룰렛을 활용한 설치작품 〈커브(The Curve)〉로, 〈채무자〉, 〈알코올중독자〉, 〈범죄자〉 등 이미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들이 오직 인종, 성별과 관련된 정보를 토대로 이미지 식별 카테고리로 활용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올여름 바비칸의 동일한 전시 공간에서 열린 AI 전시 〈AI: More than Human〉이 새로운 기술환경의 도래를 환영하고, 보다 나은 예술의 미래를 희망하는 일종의 축제 성격을 띠었다면, 트레버 페글렌의 전시는 이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할 수 있다.


Nam June Paik 〈Sistine Chapel〉 1993 Install view, Tate Modern 2019 Medium Video projectors, metal, wood, custom video switchers and four video channels, colour, sound Courtesy of the Estate of Nam June Paik

Nam June Paik, 〈Sistine Chapel〉, 1993. Installation view, Tate Modern, 2019. Medium Video projectors, metal, wood, custom video switchers and four video channels, colour, sound. ©the Estate of Nam June Paik.

한편 테이트모던에서는 비디오 아트 선구자로 불리는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백남준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의 기술, 미디어 환경을 수십 년 전에 내다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그가 1974년 창안한 개념인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는 백남준이 미래에 다가올 인터넷 시대의 소통 방식을 일찍이 예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자주 소개되곤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그의 실험적인 초기작부터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각종 국제 전시에 소개되었던 대형 설치작품을 재현한 작품들까지 총 200여 점의 사진, 영상, 아카이브 자료 등이 공개되었다.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조작된 텔레비전 시리즈부터 각종 영상 및 설치작품, 그와 플럭서스(Fluxus)그룹의 구성원들이 함께 진행했던 수십여 회의 전위적 퍼포먼스 영상 기록물은 예술과 기술 사이의 급변하는 관계를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전위적인 예술언어로 실험하고 표현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아낌없이 모두 보여준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전시 리뷰에서 백남준이 ‘박식한 철학자’였다고 평하며, 백남준의 작품이 갖는 힘은 특유의 가벼움과 낙천주의적인 시각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백남준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미국에 널리 퍼져있던 기술 발전 낙관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Nam June Paik(10.17~2020.2.9) at Tate Modern, 2019. Install view

Installation view of Nam June Paik, Tate Modern, 2019.

만약 백남준이 고도로 정보화된 미래 사회에서 누구도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을 꿈꾼 것이 사실이라면, 트레버 페글렌의 전시는 이러한 백남준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다소 냉정하게 선언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트레버 페글렌은 백남준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올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선정하는 국제예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금 런던에서 동시 진행 중인 두 작가의 전시를 바라보는 것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백남준이 활동하던 시절에 팽배했던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적 시각은 이미 잊힌 지 오래이며, 데이터 베일런스(dataveillance, 데이터 감시 능력을 뜻하는 단어로 신용카드, 휴대전화, 인터넷 사용 내역과 같은 개인정보 흔적을 개인의 생활을 감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개인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인류 전체의 난제가 되었다. 백남준과 트레버 페글렌의 두 전시를 나란히 놓고 보려는 시도가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맥락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두 작가 모두 이처럼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단순히 관조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예술언어로 승화시키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트레버 페글렌의 작품은 데이터 감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지속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러한 감시체계 형성 및 운영에 활용되는 기술들의 작동 방식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백남준이 꿈꾸던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오늘날 동시대 미술가들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백남준의 말을 빌리자면 ‘미래는 지금(the future is now)’이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계속해서 깨어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19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장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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