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고사리 : 흔적을 지우는 일과 흔적을 지키는 일, 그 사이

posted 2020.07.03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딱딱한 한자 이름에 이어 1980년대 전후로 순우리말로 이름들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다. 초롱이, 나래, 송이 같은 고운 단어들이 주로 쓰이곤 했는데, 여기, 조금 다른 느낌의 우리말로 된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작가 고사리.


고사리는 공룡이 살던 옛날 옛적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오래된 양치식물의 이름이자,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나물의 이름이다. 슴슴한 듯하지만 다른 나물에 없는 고유한 향이 있고, 몸에 좋은 풀의 이름이다. 예명이라는 의심을 종종 받지만 작가의 아버지께서 식당에서 고사리나물을 먹다가 정하셨다는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작가에게 여러모로 꽤 잘 어울린다.


고사리에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버려진 것, 오래된 것,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는 것들을 지켜보는 시선과 그 사물과 풍경들을 가만히 품는 태도이다. 〈버려지는 일기〉(2009-2010)는 매일 그날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서 촬영한 기록 모음이다. 하루 동안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요구르트 통, 아이스크림 봉지, 땅콩 껍질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살아가는 일은, 내 몸에 필요한 것들을 취하고 난 후 쓸모없는 것들을 내 몸과 내 환경 밖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1인 가구인 작가가 버리는 쓰레기의 양은 사실 평균보다 훨씬 적을 텐데도, 그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어딘가 불편해진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며, 쉽게 분해되지도 않을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나의 하루를 위한 대가로 치러졌다는 정확한 사실 때문이다.


고사리, 〈이사〉, 2018.

고사리, <이사>, 2018, 비닐, 가변설치, 260㎡ (성북동 빈집, 서울).

등촌동의 연립주택(2017)과 성북동의 단독주택(2018)에서 두 차례 실시한 〈이사〉 프로젝트는 고사리의 작가적 지향과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재건축을 앞둔 연립주택에서 작가는 빈집을 비닐로 꼼꼼하게 감쌌다. 특별한 건축물도 아니고, 특징 없이 지어진 소규모 연립주택의 방과 부엌, 거실 등을 반투명 비닐로 덮었다. 밖에서 물이나 바람이 뚫고 들어갈 수 없도록 막은 것 같지만, 기묘하게도 비닐로 덮인 집이 내쉬는 숨이, 집에 머금고 있는 온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잘 여며 놓은 듯하다. 이제 곧, 건축폐기물이 사라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기억, 그 집이 기억하는 것들을 잠시나마 붙잡아 보살피는 행위처럼 보인다. 한편, 성북동의 단독주택은 1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주택으로, 작가가 프로젝트를 하기 전, 12년가량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오래전 사람이 떠난 집, 온기가 거둬진 집을 얇은 비닐로 덮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비닐로 덮으면서 공간에 말을 건네고, 숨을 불어넣는 것 같다. 오래 혼자 누워있었던 사람의 몸을 어루만지듯, 휑한 집 안에 숨을 불어넣었다.


공간과 그 속에 머물렀던 사람의 흔적, 그리고 남겨진 사물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예민하게 살피는 고사리의 감각은 유난한 편이다. 숙박업을 하는 어머니는 손님들이 드나드는 것에 맞춰 매일 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정리하셨단다. 한편, 건축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여러 물건을 수집하여 집 한쪽에 쌓아 두셨다고 한다. 매일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방을 비우고,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을 지우는 행위와 남들이 버리라고 해도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행위, 그 두 극단을 일상에서 보았다. 사실 그 두 극단은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반복하는 기본적인 행위들이다. 흔적을 지우는 일과 흔적을 지키는 일, 그 사이를 오간다.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한 작가는 ‘고양레지던시’라는 공간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동료 입주 작가들과 함께 밤에 손전등을 들고 컴컴한 관산동 언덕 탐험을 나가기도 하고, 레지던시 앞마당 텃밭에 채소를 심어 기르고, 스튜디오에 유난히 많은 벌레가 죽으면 모아두기도 한다. 대단한 관광지나 명승지가 아니지만, 일 년 좀 안 되는 기간 인연을 맺은 이 공간에 온전히 머무르기 위해 걷고, 텃밭을 가꾸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서 떠날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사람이 잘 쓸 수 있게 정갈하게 뒷정리를 하고 나갈 것이다. 고양에 처음 살지만, 원래 거기 살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다른 곳에 옮겨서도 작은 짐을 풀고 마음을 붙이고, 그곳만의 특징과 이야기를 찾아낼 것이다. 전시나 프로젝트에 욕심내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공간 혹은 사물을 만났을 때,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곳을 찾았을 때 ‘작업’을 할 것이기에 아마도 고사리는 다작하는 작가는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마주한 순간에 온 마음을 다해 보듬은 그 이야기는 분명,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담백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그 이름처럼 말이다.


※ 이 원고는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작가 비평모음집』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