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최윤석 : 곧장 진입할 수 있음

posted 2020.07.29


박수지, 큐레이터 / AGENCY RARY


2013년부터 운전을 시작했으니 벌써 7년차에 접어들었다. ‘베스트 드라이빙은 안전운전이다’를 모토로 매번 핸들을 잡는다. 빨간 신호일 때는 멈추고 녹색 신호일 때는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한다는 규칙 말고도 도로 위에는 암묵적인 약속들이 난무한다. 여하간 운전이란 제법 흥미로운 퍼포먼스인 것이 틀림없다. 동시에 한 도로에 있는 예측 불가능한 낯선 퍼포머들과의 거리나 속도를 조절하며 운전한다는 것은 꽤 관계적이고도 사려 깊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차 안이란 때로는 집보다도 더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장소로써 도로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지금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놓고 데시벨을 한껏 높일 수 있는 곳이다. 서두부터 개인의 운전사와 운전론을 밝히는 이유는 요컨대, 작년에 만난 한 드라이버 최윤석 씨의 운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함이다.


최윤석 씨로 말할 것 같으면 작년에 내가 조수석에 누군가를 태우고 길을 잘못 들었을 때에 뒷좌석에 앉아 헤매는 나를 지켜보았던 사람으로, 운전자에 대한 최윤석 씨의 아량은 이미 익히 체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최윤석 씨의 운전 이력은 어떠한가. 곰곰이 들여다보니 최윤석 씨의 운전은 일이기도 하고 생활이기도 한데, 공식적으로는 2001년 예술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그는 서양화를 전공하며 매일같이 국도를 달렸다. 선생들의 낡은 노-트에 쓰인 ‘운전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차도 없는 선배들에게 괜한 ‘드리프트’ 같은 뽐내기 기술을 전해 듣던 때였다. 그러나 무릇 이곳의 예술학교란 ‘좋은 차 고르는 법’만을 일 순위로 생각하는지라 도무지 ‘운전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쉬이 고민을 나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운전의 퀄리티란 무엇인가? 운전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부분은 운전자들에게 있어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영역으로, 근사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최윤석 씨의 운전에 대해서 탄복한 부분은 분명한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나 그는 처음에 거의 매일같이 차를 그려대곤 했다. 일전에 그의 집에 가서 그 드로잉 북을 본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의 그림이 잘 알려지지 않다는 사실이 내심 아쉬울 따름이다. 또 언젠가 최윤석 씨는 몇 년에 걸쳐 한 해 동안 운전을 하며 휴게소에서, 주유소에서, 식당에서, 톨게이트에서, 카페에서, 다 기억나지 않을 각각의 장소에서 돈을 쓰고 받은 영수증을 모아서는 그것을 여러 가지로 엮어낸 바(〈올해의 질량〉(2009-2013)) 있다.


최윤석 〈깊은 잠이여 오라〉, 2017, 양모극세사, 200 x 140 cm. 〈Come Heavy Sleep, Come〉, 2017, wool micro-fiber, 200 x 140 cm

최윤석 〈깊은 잠이여 오라〉, 2017, 양모극세사, 200 x 140 cm.

또한 최윤석 씨의 드라이빙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퍼포먼스는 주로 차 안의 블랙박스를 활용해 스스로를 직접 촬영하는 방식으로, 최윤석 씨는 아주 사적인 운전을 선보이는 경우가 잦다. 여덟 시간 동안 한 도로를 계속 달리며 그 운전 하는 소리를 공개하기도 하고(〈Untitled(8 Hours of Drawing)〉 (2011)), 무려 12년 동안 휴게소나 졸음 쉼터에서 최윤석 씨가 자는 모습을 지인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보여주기도 한 바(〈Sleep Book〉(2004-2015)) 있다. 차 안의 시트 먼지들을 그러모아 영상을 만들거나(〈Bed Scene〉(2012)), 차 안에 공기청정기를 들여놓고는 한 시간 동안 그 청정기의 모습을 다시 보는(review) 하는 등(〈Air purifier Review〉 (2019))의 퍼포먼스 또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최윤석 씨의 블랙박스 아카이브 센터(〈유튜브 채널 Homemade LAB〉(2019-))에 들어가 보았던 나는 최윤석 씨가 출근길에 AM 라디오를 즐겨듣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운드에 대한 그의 엄격한 취향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윤석 씨가 즐겨 통행하는 도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 하나는 IC(Interchange)로 우리가 흔히 ‘아이씨’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연결해주는 출입로로 대부분의 경우 요금소(TG; Tollgate)와 함께 설치된다. IC를 지나며 최윤석 씨는 일로서의 운전과 생활을 도모하는 것으로서의 운전에 대한 고민이 여간 깊어진 것이 아니었는데, 이때 최윤석 씨가 지불하는 ‘톨비’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오직 최윤석 씨만 알고 있다. 아무튼 생활을 도모하는 것으로서의 운전 덕분에 도로의 이면을 자주 보다 보니, 최윤석 씨는 운전자들의 묘한 습성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은 최윤석 씨가 JC(Junction)를 애용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우리가 흔히 ‘정션’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아마 다수의 운전자들조차 이 정션을 모를 것이 허다한데, JC이란 고속도로와 고속도로를 연결해주는 도로로, 통행하는 차량들이 서로 교차 접속하는 곳의 입체 교차 시설로 알려져 있다. 최윤석 씨는 왕왕 이 JC를 곧잘 애용하곤 했는데, 이른바 운전자 교육방송 (렉쳐시리즈 〈유리거울〉(2016-2018))이 그것이다.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이들의 속도를 알고 있음에도 부드럽게 JC로 운전자들을 인도하는 최윤석 씨의 견인술은 기존의 운전자들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라 하겠다.


요는, 최윤석 씨가 달리는 도로가 국도이건, 고속도로이건, 교차로이건, 일 년에 몇 번의 IC를 통과하며 ‘톨비’를 지출해야 하건 간에, 또 도로에 진입해 다른 운전자와 뒤섞일 때 어떤 JC를 이용하든 간에, 휴게소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다 고속도로에 재진입하는 것이건 간에, 이 최윤석 씨의 운전이 언제나 그렇듯 예술적 상태로의 진입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최윤석 씨도 운전대를 잡고 정처 없이 도로를 지나치다 보면 ‘내가 여기 왜 와있지? (Why am I here?)’를 스스로 되묻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올해 동안은 최윤석 씨가 종종 고양시를 향해 운전대를 잡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일전에 내게 고양의 한 빌딩에 있는 그에게 할애된 작은 스튜디오에 가면 이내 ‘예술가적 상태에 곧장 진입할 수 있음’을 진술한 바 있다. 올해가 가기 전 그의 스튜디오를 향해 나 또한 한 번 더 운전대를 잡아보리라. 나는 최윤석 씨 같은 운전자와 이따금 도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기쁘게 여긴다.


※ 이 원고는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작가 비평모음집』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박수지 / 비아트 에디터, 독립큐레이터

현 <비아트> 에디터, 전 ‘대안문화행동 재미난 복수’ 큐레이터이자 독립큐레이터. ‘아지트집 문화예술특구프로젝트Ⅰ/Ⅱ’(2013, 아지트X 외), ‘전방위예술프로젝트: 환대’(2014, B-Gallery), ‘경매프로젝트:호가’(2014, B-Gallery), ‘비아트마켓2015’(2015, 구 해운대역), ‘민중미술2015 잠수함 속의 토끼’ (2015, 대청갤러리) 등 전시 기획 참여. 음주가무 좋아하면 조르바 되는 줄 알았다가 그저 필요조건임을 깨달은 사랑장땡주의자. 피로사회에서 소진되지 않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