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양정욱 : 삶의 이야기꾼

posted 2020.09.07


김소라 OCI미술관 선임큐레이터


미술가, 설치미술가, 키네틱 아티스트 양정욱. 양정욱을 일컫는 몇 가지 호칭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종종 움직이고, 비정형적으로 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어찌 되었건 물성을 지닌 조형물의 형태로 나타나니까 딱히 그른 말은 아닌데, 어딘지 양정욱이란 사람의 ‘직업’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듯 석연치 않다.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닌데 성급히 그를 미술 내 영역으로 포¬섭한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사물은 양정욱이 지어낸 것 중 지극히 일부분일 뿐 정작 본체는 커다란 그림자처럼 버티고 있는 상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야기가 우선 만들어지고 나머지 조형적 요소는 이로부터 파생된 선택적 결과물로서 그의 미술 작품은 이야기의 극 중 상황이나 등장인물이 분한(incarnation) 것이다. 그러하기에 양정욱의 작업 발상과 전개 과정을 놓고 본다면 그는 오히려 서사에 중점을 둔 ‘이야기꾼’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Standing Works #11_180×120×120cm_wood, motor, mixed media_2015.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Standing Works #11〉_180×120×120cm_wood, motor, mixed media_2015.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움직이는 삶의 리듬


평범한 일상을 세심하게 주시하여 펼쳐내는 양정욱의 이야기는 늘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떤 사람에 대한 관찰과 상상이 기반이 되거나,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며 빚어지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지는 식인데, 최근에는 더욱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과 허구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연작 〈서서 일하는 사람들〉(2015-2016),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2017- ), 〈매번 잠들지 않고 배달되는 것들〉(2018- ) 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 작업이 일종의 상황극이었다면 근래의 연작은 단막극과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이 세 편의 연작에 대하여 작가는 “직업에서 시작되는 리듬을 3가지 방식으로 풀어보았다”라고 말한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람, 소박하지만 절실한 꿈을 좇는 사람, 안타깝지만 흔하디흔한 불운을 안고 있는 사람 등 열심히 일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그러면서도 하릴없이 운명에 떠밀리고 세상과 엇박자를 놓는 사람들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인간상이다. 쉽게 ‘소시민’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이들에게 양정욱은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덧붙여 구체적인 삶을 부여한다. 이 사람이 이전에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쩌다 꿈꾸던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나 버렸는지, 왜 지금은 이런 움직임과 패턴을 지니고 삐걱거리며 일상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것인데, 그리하여 이들 삶의 리듬은 생득적(生得的)인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몸에 밴 체득적(體得的) 감각이라는 설득력을 얻는다. 직업적 습관을 통하여 삶을 대하는 ‘태도’를 고찰하는 그의 작업은 동시에 삶의 ‘메커니즘’을 탐색하는데, 여기에는 결국 삶의 불안정성 (precariouseness)이 보편적인 원칙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그 불안정성은 아주 개별적이고 특수한 방식으로 경험된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기술의 발전, 불의의 사고, 혹은 누군가의 요청에 의하여 살짝 어긋나버린 일들은 오늘의 일상을 과거의 일상과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며, 삶을 이동시키고 변형시킨다. 큰 맥락에서는 대동소이한 삶의 한 양태(mode) 일지언정 개인에게는 연금술과도 같은 성질 변화이다. 이와 같이 양정욱이 지어내는 ‘그래도 일상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 감상자는 작품에 적극적으로 감정이입하며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경험의 영역에서 상상의 진폭을 형성한다. 가령, 양정욱의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 No.11〉(2017)에서 삐죽 튀어나온 나무 막대기를 보면서 ‘저것은 희망을 쓰다듬는 정성 어린 손길이다’라고 감상자가 믿어버리는 것은 작가의 설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그런 간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닮음의 구조


얼기설기 늘어진 실, 때가 탄 나무 막대기, 심지어 청테이프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양정욱이 만들어낸 형태는 사실 실제 사람이나 사물의 외형과 시각적으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치 어린아이가 돌멩이 몇 개를 가져다 놓고 진지하게 소꿉놀이에 몰입하는 것처럼 임의적이고 자의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순진하게도, 양정욱의 설치를 보며 그가 펼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수긍해버린다. “어머, 그래, 맞다. 저 서 있는 모습이 꼭 쟁반에 음식 서빙하는 것 같지 않니?”, “여기 사슴이 있네. 봐봐, 저기 곰도 있어.” 이렇게 양정욱이 쳐놓은 주술에 꼼짝없이 걸려드는 것은 감상자가 ‘닮음’을 조형적 유사성의 정밀도로 파악하기보다 암시적 의미로서 직관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더 큰 까닭이다. 벤야민(Walter BENJAMIN) 이라면 ‘비감각적 유사성(nonsensous similarity)’이라 불렀을 상응 관계로, 양정욱은 조형 언어와 문학 언어를 상호보완적으로 구사하며 그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정서적인 감응을 구한다.


양정욱의 작업에서 문학 언어는 주로 설치 작품에 덧붙여진 문장형의 제목이나 짧은 글로 제시된다. 특히 〈서서 일하는 사람들〉과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은 시리즈마다 하나의 큰 주제를 공통으로 가져가되 매번 주인공 바뀌는 앤솔로지 드라마(anthology series)로, 작품 사이에 연속성은 없으나 하나의 에피소드가 각 작품 내에서 완결되게끔 이루어져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작품마다 주어진 개별 글이다. 겉모습만 보면 ‘이게 뭐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심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글과 설치, 이야기의 삼각 구도를 연결하며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감상자의 상상력이자 ‘닮음’에 대한 인정이다. 하지만 이 ‘닮음’은 외형에 대한 일치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형 언어와 문자 언어의 종합으로서 이야기가 실제 삶과 얼마나 닮아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Scenery of Dialogue #2_200×900×200cm_wood, object, mixed media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Scenery of Dialogue #2〉_200×900×200cm_wood, object, mixed media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그런데 양정욱이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매번 잠들지 않고 배달되는 것들〉에서는 그 형식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작품 한 점마다 누군가의 삶을 대변하는 독립된 이야기가 있던 것에 비하여, 새 연작은 한 편의 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설치 작품이 연속적으로 증식되어가는 방식이다. A라는 사람의 일상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A′로 변하게 되었다는 레퍼토리는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자칫 감상자가 빠지기 쉬운 비극성과 신파성을 지우고 대신 불현듯 떠오르는 무의지적 기억 파편에 의존한 해석과 상상의 영역을 넓혔다. 더불어 전작에서는 감상자가 작품을 하나의 인격체처럼 대하며 몰입하려던 경향이 있던데 비해, 이제는 작품을 사물로 바라보며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게끔 유도된다. 작품의 시간도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던 것이 미래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매번 잠들지 않고 배달되는 것들〉은 〈서서 일하는 사람들〉과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처럼 과거를 회상하며 오늘을 이야기하는데 그치는 대신, ‘다음에는 어떤 것이 배달될 것인가?’라는 기대감과 함께 다가올 날을 기약한다. 이런 변화는 드디어 양정욱이 단막극에서 장편극으로 옮겨가는 체질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아직 시작 단계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모르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둔 미완의 이야기야말로 불확실한 삶을 닮지 않았는가? 문제는, 이 이야기가 얼마나 긴밀하게 구축되고, 또 그 구조가 시각적으로도 연출될 수 있느냐이다.


우리말 ‘사람’이라는 단어는 ‘살다’라는 동사가 파생된 명사이다. 양정욱이 다루는 사람과 삶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살아간다’는 공통분모가 주는 보편적 친밀성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다른 방식일지라도, 아니, 다르기 때문에 이야깃거리는 넘쳐난다. 이 삶의 이야기꾼인 양정욱이 지금까지 짧은 호흡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작업의 전환점을 마주한 그가 앞으로는 더욱 연속적이고 장대한 이야기를, 오페라만큼, 서사극만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날을 조심스럽게 기다려 본다.


※ 이 원고는 『2018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소라

김소라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거쳐 현재 OCI 미술관에 재직하고 있으며,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