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두 가지 불안정성- 이윤이의 〈메아리〉와 〈샤인 힐〉

posted 2020.09.09


김정현 미술평론가


미술관에서 마주치는 영상은 관람객을 종종 곤혹스럽게 만든다. 단 하나의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영화관과 달리 미술관에서는 십분 이상 머물기 불편한 객석과 한 건물 안에서 관람을 기다리는 수많은 다른 작업의 존재가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이런 형편을 고려하면 ‘조각적인 영상’, 즉 시간적 감상을 요하기보다는 단번에 파악 가능한 무빙 이미지로서의 영상 작업은 미학적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전시 공간에 부합하는 적절한 형식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열악한 관람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속감상을 요구하는 (대부분 응답받는데 실패하는) 영상 작업들이 있다. 다양한 프로젝션 방식으로 전시되는 작업들 중에서, 특히 어떤 싱글 채널 영상들은 어쩌면 영화처럼 감상되기를 꿈꾸지 않는가? 전시 영상 보다는 ‘실험영화’의 역사 속에서 검토되기를 기다리면서.


Exhibition view of 2018 Art Sonje_Project #3: Yi Yunyi - CLIENT_Art Sonje Project Space, Seoul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Exhibition view of 2018 Art Sonje_《Project #3: Yi Yunyi - CLIENT》_Art Sonje Project Space, Seoul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이윤이의 개인전 《2018 아트선재 프로젝트 #3: 이윤이 - 내담자》(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8)는 복합적이다. 아트선재센터 1층의 블랙박스 전시장에 상영된 약 20분 길이의 싱글채널 영상 작업 〈샤인 힐〉(2018)은 분명 일정한 길이의 시간적 감상을 요청하지만, 자연조명이 투과되는 라운지에 설치된 구조물은 영상 작업의 컨셉을 이어받으며 작업이 싱글 채널로 완료되지 않았음을, 얼마든지 연장되고 보충될 수 있음을 지시한다. 〈샤인 힐〉은 이렇게 공간적으로 구축-완성되어야 할 시각성의 재료로서 그 자체로는 미완성의 것일까? 작가가 2년 전 《푸쉬, 풀, 드래그》(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2016)전에 출품한 전작 〈메아리〉(2016)는 〈샤인 힐〉과 마찬가지로 약 20분 길이의 영상 작업이다. 이 작업은 다른 설치물 없이 싱글 채널에 집중하도록 설치되었다.


〈메아리〉와 〈샤인 힐〉의 설치 방식은 왜 달라졌을까? 이들은 ‘형식적으로’ 다른 작업인가? 이를테면 전자는 실험영화이고 후자는 설치영상인가? 영상 작업이 기획마다 다르게 설치되고 다양하게 재배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최초의 전시 형식은 그 작업의 개념에 관해 중요한 단서를 품는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외부적인 요인 탓에 자기 의도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작가가 결과물을 자기 작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먼저 밝히자면 작업의 예술사적 맥락을 밝히는 것보다 좀 더 흥미로운 것은 작업의 복합적인 미학적 특질로부터 형식적 차이의 근거를 추론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작가론은 작업 관심의 일관성을 찾아 단일한 작가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하지만 여기서는 차이에 주목해보려 한다. 이런 차이를 진보나 퇴보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변곡점을 표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단위가 셋인데 반해 여기서는 단 두 가지만 비교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단지, 2년을 사이에 두고 이윤이의 사고를 왕복시켜보며 천천히 흘러갈 시간의 길목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메아리〉(2016)


〈메아리〉는 독백의 정서적인 측면을 환기시킨다. 크레딧에 의하면 〈메아리>에는 두 사람이 출연한다고 하지만 주인공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을 제외하고 다른 인물(들)은 얼굴이 가려지거나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바람에 거의 1인극 처럼 보인다. 따라서 산을 오르는 주인공의 뒷모습으로 시작하여 산과 바다를 서성이는 이 꿈 같은 영상의 내레이션은 설명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뒤섞여있지만 어느 것이나 독백처럼 들린다. 말없이 흐르는 이미지 사이에 띄엄띄엄 흐르는 말들 중에는 독백 이외에 대화도 있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비틀거리며 부대끼는 컷에 흐르는 대화의 주제는 꿈에서 본 부모님이다. 주로 한 사람(작가)이 이야기를 주도하지만 비슷한 꿈 경험을 나눠가진 두 사람은 연신 맞장구를 친다. 주인공 이외의 두 인물의 목소리가 이렇게 실제 대화를 녹음한 파일로 풀어지지만 이것이 작업의 몽환적인 분위기 또는 환영적인 재현의 구조를 흩트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목소리는 영상 후반에 텍스트로 표시된 것처럼, 영상 초반에 먼저 산에서 목소리를 낸 주인공의 메아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린 메아리 메아리예요. 서로가 멀리로 울리는 메아리들이예요.”


〈메아리〉에서 실내 공간은 특정한 의미로 사용된다. 복층 실내의 계단 주위에서 반투명한 반짝이 장막으로 인물을 가리거나 반쯤 뒤집어쓰고 벌이는 퍼포먼스는 짐짓 엄숙한 시 낭송과 어우러지며 노골적인 작위를 연출한다. 연신 실제와 환영 사이를 오가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이 직접적으로 재현적 환영임을 강조하는 순간이다. 반면 음반이나 책과 포스터가 가득한 누군가의 방은 실존 인물의 현전을 암시하는 흔적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면의 배경인 녹음실에는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 전자 기타를 울리는 여성의 내면적 침잠이 담겨있다. 〈메아리〉는 개인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려 하면서도 실은 타인이 온전히 접근할 수 없는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내면의 구조를 긍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개인의 견고한 내면은 작가와 대상, 주체와 타자 사이의 단절과 불안보다 공감의 정서를 이룬다. “원본을 자궁 속 어디에 두고 온 걸까. 배 속에선 처음이고 나와서는 닮음을 산다. 음으로 선으로 렌즈를 통해 우리는 쌍을 이루고.”


Hearts Echo like Mercury_19min 13sec_video, color, sound_2016.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Hearts Echo like Mercury〉_19min 13sec_video, color, sound_2016.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샤인 힐〉(2018)


관계에 대한 관심을 주체의 고립이나 타인과의 갈등보다 평화로운 공존이나 배타적인 친밀성 속에서 풀어내려는 이윤이의 시도는 〈샤인 힐〉에서도 반복된다. 이 작업은 주인공 허승연의 가족이 운영하는 샤인힐 골프장과 교외의 주택 등을 배경으로 한다. 두 주인공 허승연과 본향은 실제로 만나기 전에 서로를 꿈에서 먼저 만났다는 것을 깨달으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터뷰 형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로 다가온다. 꿈을 일종의 계시로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행하는 두 사람은 비합리적인 믿음에 빠져있다고 할 텐데, 바로 이러한 비합리적인 믿음이야 말로 두 사람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근거로 보인다. 허승연과 본향의 관계는 논리를 벗어난 초월적, 종교적, 미신적인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 이윤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샤인 힐〉의 주인공 허승연은 자본(가족사업인 골프장), 종교(불교신자), 예술(미대 졸업생)의 세 축을 가로지르는 인물이다. 작가는 주인공과 미술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며 사적인 친밀함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주인공들을 비판하고 대상화하지 않고 이들이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유지하는지에 주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예술이 어떻게 자본과 종교와 화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보통 현대미술과 자본과 종교가 모순이나 갈등을 내포한 것으로 인식되는 데 반해, 세속적 지혜와 종교적 환상을 통해 예술적 주체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샤인 힐〉에도 초현실적인 변신을 암시하는 소도구를 이용하는 작위적인 퍼포먼스가 삽입된다. 인터뷰로 인물 소개를 한 다음에 오는 퍼포먼스 장면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벌이는 놀이처럼도 보인다. 영상은 조감도 시점으로 골프장을 내려다보며 시작해서 어두운 밤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골프장 안에서 두 친구가 경사진 필드를 걸어 내려오며 끝난다. 작가는 골프가 사교와 배려의 스포츠라는 맥락에서 골프장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러나 골프장은 한국식 자본주의의 토템적 공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샤인 힐〉은 내밀하고 사적인 관계를 포착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촬영되는 순간과 달리 전시를 목적으로 편집되는 때에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갈등이 커지지 않을까. 이윤이가 고백하듯이 전시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의 취약성이 노출되고 관람객에게 쉬이 대상화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샤인 힐〉의 과장된 연극적 엔딩은 이들의 관계를 환상적이고 환영적인 것으로 연출하여 이러한 위험을 완화시키려는 듯하다. (그리고 싱글 채널에만 집중하는 이 글에서는 생략하지만 《내담자》의 설치 작업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야 할 듯하다.) 그러나 <메아리> 의 폐쇄적인 개인 주체와 달리 〈샤인 힐〉의 배타적인 관계의 구조는 사적인 관계망을 넘어 작업으로 갈무리되어 전시라는 공적 장에 놓이는 순간 갈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의 영상이 주체의 시적 충동을 표출하는 것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영상은 개인의 내면 이외에, 어떻게 관계의 내·외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될 수 있을까. 이윤이는 〈메아리〉와 〈샤인 힐〉 이후, 어떤 방향의 불안정성을 더욱 파고들 것인지 변곡점을 찍어 보여줄까. 아니, 왕복 운동이라 할지라도 그 진폭이 더욱 커지지는 않을까.


Shine Hill_2018 Art Sonje Project #3: Yi Yunyi - CLIENT_Art Sonje Project Space, Seoul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Shine Hill〉_《2018 Art Sonje Project #3: Yi Yunyi - CLIENT》_Art Sonje Project Space, Seoul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 이 원고는 『2018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정현 / 미술비평가, 독립큐레이터

김정현은 비평과 창작이 서로 개입하는 형식과 구조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며 전시를 만든다. 서강대학교 영문학, 심리학, PEP(정치/경제/철학) 학사 및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2015 SeMA-하나 평론상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AYAF 시각예술 큐레이터로 선정되었다. 전시 《산책일지》(공동), 《연말연시》, 공연 《아무 것도 바꾸지 마라》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