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이혁종 : 이카루스적 꿈

posted 2020.09.11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예술적 실천의 출발


이렇게 생산된 예술 쓰레기들은 대체 어디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2003년 미대 회화과를 졸업할 즈음 이혁종은 미술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했다. 면벽 수양에 가까운 무위의 생활을 하던 끝에 그 마지막 배출의 일환으로 학교 캠퍼스에서 〈자기 설치〉(2003) 작업을 3차례 실행하였다. 세 차례의 실천은 모두 역사적 처형방식과 죽음에 직면한 신체를 모티브로 이루어졌다. 그 첫 작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 목을 제외하고 제 몸을 땅 속에 묻는 것이었다. 작가는 4시간가량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했다. 두 번째 작업은 〈지하로부터의 소리〉(2003)였다. 땅 속에 묻은 관 안에 작가는 4시간가량 갇혀 있었다. 관에서부터 땅 밖으로 연결된 가느다란 파이프를 통해 작가는 준비해 온 유인물을 낭독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내가 느꼈던 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까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막대한 재난이 (천재지변이 아니라)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재난은 법제도의 문제입니다. 재난은 행정의 문제입니다. 재난은 문화의 문제입니다. 재난은 윤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른 분야와의 소통을 통해서 재난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직업상의 구성원간의 결속을 꾀하여 이 사회의 직업상의 ‘보람 없음’ 과 개인이 떠안을 수 있는 ‘잠재적 재난’에 대해 싸워나가야 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주어진 공부만하다가 취직하여서는 기존의 부정적 질서에 순응만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재난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 작업은 학교 구내식당 앞 벽에 4시간가량 ‘역사연구’라는 문구 아래 제 자신을 걸어놓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 이곳저곳을 방랑하던 이혁종은 한국과 중국의 중간 수역에서 보름 동안 조업을 하는 대구 잡이 배에 오르기도 했다. 배 멀미로 식사를 못하는 것. 열흘 이상의 기간을 출퇴근 없이 배 위에서 생활. 10명 남짓한 선원들과의 끝없는 노동. 이 경험은 정신적 충격과 새로운 영감을 동시에 제공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노동 현장의 체험과 이를 관조하는 정서 사이의 양가성을 경험한 후, 작가는 더 늦기 전에 미술작업을 시작할 것을 결심했다.


생태주의라는 사상


2007년 인천 부평구청에서의 전시에 소개된 〈날개 달린 사람〉이 그 첫 작업이다. 이혁종은 전시장 주변의 식당들을 탁발승처럼 돌아다니면서 남은 밥을 얻어 모았다. 예술 작품의 재료라고 설명했지만, 대개의 식당 주인들은 작가에게 측은한 얼굴로 밥을 주었다. 구청 회의실 유리창에 밥알의 물기가 마르기 전에 밥알들을 붙여나갔다. 밥알들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했다. 작가가 만든 형상은 날개 달린 남자의 모습이 창문을 가득 메워 떠있는 모습이었다. 이후 날개 달린 남자는 이혁종의 작업에서 이카루스의 모티브로 발전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면 날개가 태양의 열에 녹을 것이다. 너무 높이 날지 마라”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결국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그는 에게 해에 떨어져 죽는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한다면, 이혁종은 예술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현 제도와 가치 체계 너머에 다다를 것을 꿈꿔왔다. 그에게 그 탈출의 실마리는 생태주의에 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번의 개인전에서 이혁종은 이카루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본주의와 생태 주의 사이의 접점을 예술적으로 탐색”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자본의 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물들을 사용하여 예술작업을 만들었다. 그 두 번째 전시 《마이너스 자본주의 샵》(브레인팩토리, 2010)은 가난뱅이 모임의 동료 예술가 6명과 함께, 그 사물들을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시스템을 기획한 것이다. 샵에 입점한 한 동료작가는 제 금니로 반지를 제작하고, 이혁종은 공사용 목재 파편 위에 조각을 하여 판매했다.
이 전시는 작품의 판매 수익을 공동의 자산으로 사용하자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정부 기관이나 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는 대신, 존립의 자율성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취지였다. 이혁종은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의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 On Kant and Marx)』(2003)을 읽고 다음과 같이 썼다.


“생산품에 인간의 노동이 들어있어서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상품을 내놓고 교환한 시점에서 비로소 사후적으로 가치가 형성된다. 물건을 생산하는 장인은 그 물건이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팔린다는 믿음 하나에 그 물건을 제작한다. 그것을 두고 ‘자본론’에서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술시장이라는 제도는 견고했고 작가는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얻지 못했다. 이혁종은 생산품으로서의 예술품,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그리고 예술 시장에서의 작품의 가격이라는 지점들을 제 예술 안에서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는 중이다.


Room for Icarus Plan_Pax Egoria Documenta_Incheon Art Platform Gallery B, Incheon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Room for Icarus Plan〉_《Pax Egoria Documenta》_Incheon Art Platform Gallery B, Incheon_2018. Image Courtesy of Incheon Art Platform

예술적 실천의 중간보고


2018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개인전 《자아제국의 박람회》에는 ‘자기 배양을 위한 스스로 회고전’ 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대학 졸업 이후의 지역 커뮤니티 아트 활동, 개인 예술가 작업까지를 전 방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다. 작가는 이를 “제 삶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욕망을 포함한 여러 욕망들이 연합된 하나의 풍경”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주요한 예술적 실천 중 하나가 도봉구 방학동 지역에서 있었던 도깨비 연방(2011-2014)과 황새둥지 (2014-2017)라는 이름으로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정부 기관의 지원을 일부 받아 진행한 작업이다. ‘도깨비 연방’은 방학동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에서 구성된 주민 커뮤니티다. 이웃의 집수리와 이사를 돕는 ‘119방’을 비롯하여 도깨비방, 안방, 규방, 천연방, 꽃방 등 여러 ‘방’들이 연합한 집합체다. 그 성과가 ‘모범사례’로 알려지면서, 자치구에서는 지원을 확대했다. 도깨비 연방이라는 이름은 참가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다. ‘황새둥지’에서 작가들은 도봉구 지역의 주요한 산업 폐기물인 양말목을 사용한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업사이클 직조를 개발하여 지역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잉여물을 지역을 상징하는 예술의 표상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작업에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자주적 공동체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활동가와 예술가의 입장은 다르기 마련이었다. 여기에는 헌신적인 리더와 헌신하는 봉사자들의 대가 없는 노력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관성이 존재했다. 또한 지역 공동체에 대한 비평적 개입 보다는, ‘정감 있고 유익한 공동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홍보하려는 관성이 존재했다.
이는 비평적인 동시에 자유롭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태생적 성격과는 거리가 있었다. 결국 현장 활동가는 예술가들의 적극적 참여가 부진하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였다. 결국 참여 예술가들은 제 예술이 갖는 모종의 예술적 성취보다는 당면한 운동의 참여도에 중요성을 두는 현실 공동체 운동의 관성 앞에서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 경험은 이혁종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을 남겼다 그는 새로운 공동체를 디자인한다는 행위 자체에 제 미학적 성취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적 행위와 공동체 운동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관행 안에서 그의 예술적 실천마저도 결국 신자유주의적 생활 운동으로 구분된다는 결과를 남겼다.
2011년 방학동에서 서울시는 민간 주택을 매입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한 ‘두레주택’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는 주방과 거실 등의 공동 공간과 방과 화장실, 욕실 등의 개별공간으로 구성된 주택이었다. 가격이 저렴해도 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여전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이혁종은 이 주택이 리모델링된다는 소식을 듣고 시 당국에 건물 전체를 예술가 레지던시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일부 수용되어 지층 커뮤니티만이 ‘황새둥지’라는 예술가 정주형 커뮤니티 공간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행정의 미흡함으로 인해 두레주택 큰집에는 70대 남성 노인과 30 대 여성 예술가들이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결국 2년 후 여성 세입자들은 이사를 나가고 70대 남성 세입자 1인만이 남게 되었다. 두레주택에서 거주했던 30대 여성들은 모두 현재 세대가 명확히 분리된 원룸형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당시 이혁종은 시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것, 공공과의 협의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하는 것이 지금 한국에서 예술가가 맡아야 할 새로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구상한 ‘거버넌스 아트(governance art)’ 는 현실적으로 행정과의 소통, 지역의 정치적·문화적 관계, 협상력의 한계로 결렬되었다.


“ … 추구할 만한 가치는 되지만 현실의 한계는 너무 크다는 뉘앙스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예술의 의제를 발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 ”


이후 그는 현장에서 치부되었던 개인성과 현실에서 격하된 예술가의 위상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한다.
2017년부터 이혁종은 ‘레지던시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전국 레지던시 유랑기를 수행하는 중이다. 2017년 3개월간 전라도 완주 복합문화지구 누에 레지던시에 참여한 이후,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에 입주 중이다. 그는 이곳에서 이카루스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 개인 예술가의 미학적 성취와 공공 예술가의 공동체적 성취 사이에서, 예술의 자생과 자립이 존립할 수 있는 현실적 방식을 고민하는 중이다.
“생태주의 운동이 할 일은 ‘삶을 바꾸는 일’, 즉 인간적 자율성과 사회성의 공간을 얻어내도록 노력함으로써 삶을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체계와 체계의 관리자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라고 앙드레 고르(André GORZ)는 『에콜로지카(Ecologica)』(2008)에서 말한다. 자본주의가 끝없이 조장하는 파괴적 성장을 저지하고, 생산적 탈 성장을 성취하는 것. 이를 예술 안에서 실천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이혁종의 지난 15년간의 성취와 실패의 기록일 것이다.


※ 이 원고는 『2018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양지윤

양지윤은 현재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수석큐레이터, 코너아트 스페이스의 디렉터로 활동했고, 암스테르담 데아펠 아트센터에서 큐레이터 과정에 참여했다. 기존 현대미술의 범주를 확장한 시각문화의 쟁점들에 천착하며, 이를 라디오, 인터넷,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공공적 소통으로 구현하는 작업에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