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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ASEAN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3) : 아세안 미술 전시들과 그 맥락 짚기

posted 2018.07.23

크리틱

교류-없는 교류전 연구-없는 연구전을 지나오며


글쓴이 조주리(독립큐레이터)


광복 이후 어느 때건 국가 간의 교류 전시, 혹은 지리적 경계로 획정되는 블록형 국가 전시가 꾸준한 주기로 이어졌다. 꽤 긴 세월 효력을 발휘한 문화 원조와 공보의 어휘들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나 협력전시 같은 용어들로 치환됐고, 전시라는 외형적인 아웃풋 외에도 큐레토리얼 리서치나 레지던시를 기반으로 한 예술가 교류, 각국 플랫폼 간의 수평적 연대 등 다양한 층위로 계발, 이행되어왔다. 미술제도의 분화와 새로운 공간들의 출현, 비엔날레의 확장세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큐레이터 집단의 성장 또한 지정학적 전시 생산과 교류형 플랫폼 사업에의 모멘텀이 이어져 온 한 축이 아닐까 싶다.


이런 속에서 특정 지역과 국가, 나아가 국가들의 연합체에 관한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기획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경계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전 방식의 교류전시사를 되돌아보면 내용적 성취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하나의 기관주도형 ‘장르’로 고착된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 의미 있는 전시들이 조직된 사례도 얼마간은 있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미술을 통한 이해나 교류에 기여한 측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정학적 구도를 전제로, 미술을 경유하여 표명하고자 하는 문화정치 논리가 기저에 깔린 기획전이란 결국 기관의 정책적 판단과 그 내외부에서 기용된 기획자들 개인의 제한된 지식지에 의해 구성되고, 그들이 지지하는 미술의 언어로써 대리-홍보되는 관제적 전시의 성격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축적된 연구와 교류의 서사들, 거기에서 길어 올린 전시기획의 독창성, 전시라는 중간지대를 통과하면서 새롭게 발굴, 해석된 지식과 담론의 구성, 미술 창작을 통한 사회적 발언이 이루어진 전시는 과거에도 많지 않았다. 또한, 지금까지의 전시 만들기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도래할 전시의 풍경들로부터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시감과 뻔하다는 인상을 걷어내기란 요원해 보인다.


아시아, 아세안, 우리


최근 10여 년간 아시아에 집중해온 기관들과 기획자들의 열띤 관심 또한 앞서 서술한 국제교류전에 대한 비평적 분석과 아시아 미술, 혹은 미술 속 아시아를 둘러싼 국제미술계의 복합적 동세 안에서 독해되고 자각되어야 한다. 서구의 큐레이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 일정 부분 아시아를 대안적 플랫폼으로, 근현대 역사문제를 전시의 소재로, 나아가 아시아성 그 자체를 선취해야 할 미술담론으로 소비하지 않았던가. 우리 자신이 그 내부에 있으면서도 때때로 유체 이탈하듯 아시아를 대상으로 메타 큐레이팅을 하려는 충동은 경계와 탈경계, 식민과 탈식민의 서사를 썼다 지우며 아시아성을 규명하거나 부정하는 분열적 양상으로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아시아 네크워크와 교류의 당위를 설파해온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 가운데, 아세안(ASEAN)은 최근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아시아 내 경제, 문화 공동체이다.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아시아 내의 전략적 구성체이며, 우리에게는 중국에 버금가는 경제 교류지다. 이미 개인들의 국경 없는 여행과 이주, 국제 취업과 결혼 등 저마다의 이유로 아세안 내의 모빌리티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분명 우리의 문화적 인식과 예술적 교류일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우리 앞에 다가온 수많은 삶의 현안은 오늘의 경제지표나 내일의 선린외교 성과와는 다른 결에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큰 화두이다. 문화연구와 예술실천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면 바로 이 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는 것을 모르기, 모르는 것을 알기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아세안문화원의 객원 큐레이터로서 문화연구와 전시기획에 참여하면서 줄곧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적어도 이 영역에서만큼은 아세안을 ‘집단명사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10개국의 총합이 아세안도 아니며, 반대로 아세안이란 틀이 어떠한 개별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처럼 대체로 국가, 민족, 인종이 합일되지 않고 종교와 경제권, 국제 정세에 따라 복잡한 분포와 이산의 경향을 지닌 아세안 내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대한 섬세한 이해 없이는 아세안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전근대적이라고도 여겨질 수 있는 왕정이나 그에 가까운 종교적 지배체제 등 많은 부분이 절대적 무지와 오해, 배격의 지대에 놓여있거나 또 다른 이국적 신화로서 신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니, 이제야 겨우 아세안과 이웃 국가들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수준의 지식과 최소한의 분별력이 생겼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다. 전통에 대한 보편적 통찰과 그 안에서 이뤄진 특수성에의 이해 위에서, 누천년에 걸쳐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생경한 이미지와 오브제의 나열이 아닌, 그것들을 예술적 심상으로 번역하고 전시의 구조로 제유해내는 일. 전시 끝에 다다르게 될 희미한 목표점이다.


그러나 당장은, 나 혼자는, 지금의 구조 속에서는 어려운 목표 설정이기도 하다. 특히 서양미술사 연구와 서구의 문화이론을 기반으로 성장한 미술기획자들이 갖는 관점의 제약과 세계관, 전시의 문법과 윤리에 대해서 스스로 경계할 점이 적지 않다.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각 국가별로 전문적 지식과 연구역량을 갖춘 아세안 전문 학자도 많고, 아시아를 주무대로 활약하는 국제적 기획자 수도 늘고, 가까이는 아시아의 지식 창고를 표방하는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과 아세안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부산 아세안문화원이 개원하여 과거에 비해 연구와 기획 생태계가 두터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적 자원과 기관의 성장이 곧바로 질 높은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 기획자 개인의 창조성이나 과잉 노력에 기댄 전시 생산은 어쩌면 요행일 것이고, 그런 요행이 반복되는 것은 불행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기획생산의 기회가 주어지고 일정한 순도와 밀도를 갖춘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생산되는 협력적 구조가 이상적일 것이다. 행정이 예술적인 수준으로 올라오고, 기획 또한 현실적 상황에 맞닿아 있다면, 반복되어 온 엇박자도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긴급한 페이스로 조직되는 전시를 되도록이면 미루고, 기초적인 지식교류와 생산의 구조를 고민해 볼필요성이 대두된다. 일반적인 지역학, 민속학 기반의 학술 연구와 달리,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연구 혹은 연구기반 기획생산이란 기획자와 작가들로부터 제안되는 예술적 연구이며, 당장의 효용가치보다는 느슨하게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모델이다.


근본적으로는 아세안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당위성과 연구윤리부터 찬찬히 되짚어 보고, 전시를 중간-산물로 하여 견인되는 다양한 스케일의 중장기 연구와 출판, 학술 프로그램, 공동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함은 상식선의 문제이다. 또한 교점을 가진 기관끼리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되묻게 된다. 학계와 미술계, 외교기관과 문화예술기관, 공공기관과 대안기관, 기관 큐레이터와 개인 연구자들의 연구 및 기획 자원이 자유롭게 순환한 때가 있었던가 싶지만, 향후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전시기획자를 포함한 문화생산자들 스스로가 아시아의 문제, 특정하자면 아세안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인식, 그나마 알고 있는 것들조차 부박한 편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자기 성찰은 이미 기저에서 공유되는 인식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별로 네트워킹을 할 만한 미술공간에 대한 목록화가 전개되고, 해당 신(scene)을 대표하는 이름 있는 기획자 리스트가 파악되고, 국제 전시의 성격에 적합한 안정적 작가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다고 해도, 그것이 전시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희귀해 보이거나, 새로 획득한 정보에 득달같이 접속하여 무엇이든 자원으로 포획하고 콘텐츠로 연출하고자 하는 전시에의 충동을 자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제어하게 된다. 얕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특정한 네트워크에 먼저 노출되어 있다고, 여행과 출장 몇 번 다녀왔다고 해당 지역 전문가연하며, 이름 옆에 슬며시 지역전문 기획자 크레딧을 덧댄 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볼썽사나웠던가.


아시아로 구획 지을 수 있는 가상적이며 유동하는 지금의 판 위에서, 곳곳을 행선지로 한 연구공모와 트래블링 프로그램, 교류전시에 기금을 대는 문화정책과 현미술제도의 종합적 포석 안에서, 기획자들과 작가들 또한 자신이 제안하는 문화생산이 작동되는 좌표를, 그것을 통해 기여하는 의미를, 그것을 넘어 연대되는 지점들을 가늠하고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 과거 문화공보의 어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교류-없는 교류전, 연구-없는 연구전, 전시 아닌 홍보 행사에 저도 모르게 복속하게 될 테니 말이다.


전시를 지연시키는 동안, 비전문가임을 인정하는 동안, 긴급한 목적 없이 느긋하게 호기심을 키우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우리에게 아직 많이 남아 있다.


2017년 아세안 창설 50주년 및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를 축하하고 아세안문화원 개원을 기념하고자 마련된 〈화혼지정(華婚之情)〉(2017.9.1~12.3)의 전시광경. 조주리 큐레이터가 객원으로 참여해 아세안 회원 국가의 ‘혼례문화’를 주제로 진행한 기획전시. 인류보편의 제도인 혼례에서 파생된 각국의 역사성과 특수성 나아가 현재적 의미를 성찰하였다.

2017년 아세안 창설 50주년 및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를 축하하고 아세안문화원 개원을 기념하고자 마련된 《화혼지정(華婚之情)》(2017.9.1~12.3)의 전시광경. 조주리 큐레이터가 객원으로 참여해 아세안 회원 국가의 ‘혼례문화’를 주제로 진행한 기획전시. 인류보편의 제도인 혼례에서 파생된 각국의 역사성과 특수성 나아가 현재적 의미를 성찰하였다.


아세안 미술 전시(1), 리뷰

《선 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글쓴이 김주원(미학, 前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Apichatpong Weerasethakul+Chai Siris 〈Sunshower〉Mixed media 2017 Installation view: 〈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Mori Art Museum, 2017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차이 시리(Chai Siris), 〈선샤워(Sunshower)〉, 2017. 설치, 혼합재료. 《선 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설치전경, 신아트센터 도쿄(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 사진ⒸKioku Keizo Ⓒ모리미술관

Korakrit Arunanondchai 〈Painting with history in a room felled with people with funny names 3〉 2015 Installation view: 〈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Mori Art Museum, 2017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Mori Art Museum, Tokyo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 〈페인팅 위드 히스토리 인 어 룸 펠드 위드 피플 위드 퍼니 네임즈 3(Painting with history in a room felled with people with funny names 3)〉, 2015. 《선 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설치전경, 신아트센터 도쿄(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 사진ⒸKioku Keizo Ⓒ모리미술관

기간 및 장소

2017.7.5~10.23. 신아트센터 도쿄, 모리미술관
2017.11.3~12.25.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개념의 ‘추상성’과 현실의 ‘구체성’ 사이


지리적 경계로서 ‘아시아’의 개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립항으로서의 ‘서양’ 같이 추상적 성격을 갖는다. 개념의 이와 같은 추상성은, 문화적 다양성과 정치경제적 불균형, 역사적 굴곡 등 그 사실이 지닌 개별성과 구체성을 가려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고려할 때,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서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을 조망한 대규모 기획전 《선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이하 선샤워)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전시는 도쿄 국립신미술관모리미술관, 그리고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젝트로, 14명의 큐레토리얼 팀이 3년 동안 아세안 10개국 16개 도시의 현지를 리서치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참여 작가 89인의 작품 190점은 국가별로 구획되거나 소개되지 않고 국가와 시대를 횡단하는 9개의 각기 다른 주제 아래 배치됐다.


전시는 이른바 트랜스내셔널적 문화연대로서 ‘동남아시아’라는 추상적 공간개념이 가리고 있던 엄존하는 현실들, 그 공명하는 팩트(fact)들의 개별성과 구체성을 드러내고 조망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가 아닌 타자, 특히 비서구권의 아트신을 다루는 이런 유의 전시에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글로벌화한 현대미술의 유행을 전시하고 이를 쉽게 물신화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지역과 국가를 동일시함으로써 특정한 지역미술을 대상화하는 위험한 시도를 저지른다. 적어도 《선샤워》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한 것 같다. 도쿄 국립신미술관과 모리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주축이 된 큐레토리얼 팀은 지금까지 개최된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전시와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동남아시아 출신 작가 모두를 고려했다고 밝힌다. 더불어 1927년생부터 1987년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작가를 포괄했다고 언급한다. 이로써 이들이 겪은 다층적인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상황에 대한 기억과 비평적 관점을 주목하고자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초국적인 문화 활동들이 과연 어떤 지점에서 자기 목소리를 적확하게 발화하고 있는지를 보고자 한 셈이다.


전시가 말하고자 한 것


서양과 동양, 유럽과 아시아,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등 특정한 지역을 표상하는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에드워드 사이드(E. Side)가 저서 『상상의 지리(imaginative geo-graphy)』에서 제시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지리적 타자의 설정과 그에 대한 특정한 타자성 부여 과정에서 실제와 상상의 혼합을 통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분법적 구조에 기반을 둔 사이드의 제시가 ‘여우비’라는 기후현상을 동남아시아 현대미술과 동일시한 이 전시 《선샤워》와 무관한가 여부에 있다.


‘선샤워’라는 타이틀로, 공명하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특정한 타자성을 부여한 전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일본의 주요 기관들에 의한 전시라는 특수성이 전제되고 있다. 일본의 미술잡지 『미술수첩(美術手帖)』에 ‘어디에 서있는 동남아시아를 말하는 것인가’ 제하의 글로 《선샤워》전 리뷰를 게재한 아이치현미술관(APMOA) 큐레이터 나카무라 후미코 역시 이 지점을 우려하고 비판한다. 후미코는 ‘대동아공영’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한 제국주의 역사를 소환해 일본 주요 기관들의 프로젝트로서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타자성을 부여하고 기획하는 게 타당한지 반문하고 경계한다. 이러한 후미코의 경계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전시는 ‘유동적 세계’ ‘정열과 혁명’ ‘아카이브’ ‘다양하게 공존하는 정체성’ ‘일상의 삶’ ‘성장과 상실’ ‘예술은 무엇이며, 왜 하는가?’ ‘명상으로서의 매체’ ‘역사와 대화하기’ 총 9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전통적인 정치경제 구조에 배어 있는 권력구조를 드러내는 이이 란(Yee I-Lann)의 〈유동적인 세계〉(2010)를 시작으로 전시된 작업들은 그 형식과 내용에서 긴장과 균형을 잃지 않는다. 작품과 작품 간, 섹션과 섹션 간의 유기적 관계 설정이나 미학적 균형감은 전시 디스플레이가 배태하고 있는 작품과 전시내용에 대한 큐레이터들의 연구 깊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정치 전략적으로 제국의 시대 이후 아시아에 관한 한 해석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일본의 의지는 그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의 컬렉션 정책과 트리엔날레,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적극적인 활동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타자성을 부여하는 이 전시에서 출품작 상당수가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등 일본의 미술관 컬렉션이라는 사실은 ‘일본’ 대 ‘동남아시아’ 시각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러한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전시의 미학적 완결을 향한 세심한 배려와 조형적 디테일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섹션별 전시설명문과 라벨들은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 라벨의 일반성 내지는 평범성(?)에서 벗어나 전시 전체의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데 한몫했다. 라이프사이즈의 목재판에 검은 먹으로 쓰여진 섹션별 전시설명문은 동남아시아 특유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였던 것 같은데, 오히려 일본적 오리엔트, 아니 남방 취향이 고조된 인상이 강하게 풍겼음은 부인할 수 없다.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린 〈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오프닝에서 선보인 작가 리웬(Lee Wen)의 퍼포먼스 현장 Exhibition view 〈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FukuokaAsian Art Museum, 2017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린 《선 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오프닝에서 선보인 작가 리웬(Lee Wen)의 퍼포먼스 현장, 2017.

Navin Rawanchaikul 〈A Tale of Two Homes〉 2015

나빈 라완차이쿨(Navin Rawanchaikul), 〈어 테일 오브 투 홈즈(A Tale of Two Homes)〉, 2015.

Installation view: 〈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Mori Art Museum, 2017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선 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설치 전경, 신아트센터 도쿄(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 사진ⒸKioku Keizo Ⓒ모리미술관

어떤 의미에서 ‘동남아시아를 새롭게 발견’하는 도정에 다양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문제를 ‘여우비’로 규정하고, 통일적인 그림을 선명하게 보여주고자 한 이 전시에 대한 후미코의 경계를 재고해야 하는 건 (그녀가 염려했듯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소환되는 듯한 인상 때문이다.


‘선샤워’가 함의하는 것


전시 타이틀 ‘선샤워’는 그야말로 ‘변덕스러운’ 동남아시아의 전형적인 기후현상을 의미한다. 이 전시에서 부여하는 타자성으로서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은 11개국 약 6억 명에 달하는 인구와 다양한 민족·역사·종교 등이 중첩되어 가히 여우비와 같이 혼란스러운 양상과 같다고 판단한 듯하다. 다시 말해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특수성으로 정의하려는 《선샤워》전에 드러난 일본의 시도는 단지 3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속으로 수렴할 수 없다.


사실, 우리가 현재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에 대한 지리적 경계는 메이지 시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서 정해졌다. 당시 일본의 ‘남진(南進)’ 정책에 의해 아시아주에 편입된 현재의 동남아시아는 1941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통해 남방공영권이란 거대한 지역 질서가 형성되었던 역사로부터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근대화단에서 남방지역은 다이쇼(大正) 시기부터 미술가들의 관심대상이었다. 프랑스 화단의 원시주의나 자포니즘처럼, 일본 화단에서 남방지역, 즉 동남아시아는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문명권에 속하지 않은 신세계로서 새롭게 인식된 것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서구의 식민지배 아래 노예처럼 질곡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아시아는 하나’ ‘대동아공영’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호응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만들지만 그러나 그것을 자기 뜻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의 역사를 자기 자신이 선택한 환경 속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이미 이루어진 과거에서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이 악몽과도 같이 산 사람의 넋을 억누른다.”


대단히 시적인 이 문장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하고 그 역사에 대해 표피적 인식만을 가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전시 《선샤워》를 리뷰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할 때 떠오른 통찰이다.



아세안 미술 전시(2)

《디지털 아트 인 포스트 디지털 아시아》


Installation view: 〈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Mori Art Museum, 2017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수 휘유(Su Hui-Yu) 〈더 워커(The Walker)〉, 2017. 멀티채널, 19분.

기간 및 장소

2018.5.28~6.28. 대구예술발전소
2018.6.15~7.22. 대안공간루프


참여작가

김웅현, 권하윤, 나쓰미 아오야기, 료 히라노, 베이든 페일솔프, 수 휘유, 쉔신, 아흐멧 오굿, 야손 바날, 유안 케루, 웡핑, 조규빈,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 퀸동


아시아 창작공간 간의 상호교류에 힘써온 ‘인비트윈 컨퍼런스’와 협력해 진행하는 '투데이스 아트 스페이스 네트워크(Today's Art Space Network)' 행사의 일환으로 아시아 각국의 협력 큐레이터 9인이 추천한 작가들의 영상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시. 포스트 인터넷 시대 아시아의 젊은 디지털 무빙이미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가늠해본다. 같은 주제로 오는 6월 6일에는 현대인의 삶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온 디지털 기술이 문화예술에 미친 영향을 다방면으로 살펴보는 세미나를 개최한다. 예술의 제작부터 발표와 배포 방식에 발생한 변화를 살펴보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다음 날에는 국내외 민간 비영리공간 30곳이 참여하는 '인비트윈 컨퍼런스-차기 어젠다 회의'가 열린다. ‘아시아 비영리 예술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아시아의 독립성, 실험성, 비영리성에 기반을 둔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협력 방안과 나아가 동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새로운 담론 생성을 도모한다. 해외공간 및 서울 창작공간 큐레이션을 담당한 대안공간 루프에서는 《무브온아시아》 제하의 전시로 6월 15일부터 진행된다.


〈Today's Art Space Network〉가 열리는 대구예술발전소 입구

'투데이스 아트 스페이스 네트워크(Today's Art Space Network)'가 열리는 대구예술발전소 입구

조규빈 〈목적어 없는 일기〉 2018

조규빈, 〈목적어 없는 일기〉, 2018.


아세안 미술 전시(3), 리뷰

《정글의 소금》


글쓴이 안소현(아트스페이스 풀 디렉터)


아트 레이버 〈자라이 이슬 해먹 카페〉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5~현재

아트 레이버, 〈자라이 이슬 해먹 카페〉, 2015~현재. 혼합매체, 가변크기.

아트 레이버 〈자라이 이슬 해먹 카페〉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5~현재

조혜진, 〈도시루 아카이브 연작〉, 2016. 종이에 아크릴릭 프린트, 가변크기.

아트 레이버 〈자라이 이슬 해먹 카페〉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5~현재

《정글의 소금》전시 광경. 사진Ⓒ이의록 Ⓒ한국국제교류재단

기간 및 장소

2017.8.17.~10.18. KF갤러리
2017.12.15~2018.2.9. 아세안문화원
2018. 7월 초-말 하노이 여성박물관(예정)


참여작가

김보민, 더 프로펠러그룹, 도 타잉 랑, 린+람, 믹스라이스, 아트 레이버, 염지혜, 응우옌 득 닷, 응우옌 반 푹, 응우옌 프엉 링, 임영주, 이은새, 조혜진


《정글의 소금》이 열어놓은 것들


한국과 베트남의 작가 13인(팀)으로 구성된 전시 《정글의 소금》은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사실 ‘국가’는 예술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큰 제도여서 주제로서 적절치 않은 단위라고 생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관한 전시를 만드는 것은 의지와 의무와 매료를 구분할 수 없는 이상한 ‘미션’이었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는 국가를 주제로 한 기획이 대부분 그러하듯 먼저 양국의 역사적 공통점에 주목했다. 식민, 남북분단, 냉전갈등 등 교집합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기획자가 그런 주제들을 ‘역사가 된 사건’으로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은 양국 사이에서 현재진행형인 문제이며, 많은 경우 한국이 가장 직접적인 폭력의 가해자였으나 아직 충분한 인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는 역사적 판단을 앞세우기보다는, 동시대 미술을 통해 양국의 현재 혹은 가까운 과거에 대해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전시는 베트남 작가 7인(팀)-도 타잉 랑, 린+람, 응우옌 득 닷, 응우옌 반 푹, 응우옌 프엉 링, 더 프로펠러 그룹, 아트 레이버-과 한국 작가 6인(팀)-김보민, 염지혜, 이은새, 임영주, 조혜진, 믹스라이스-으로 구성되었다. 베트남 참여 작가들은 1986년 개혁 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이후 세대로 불리며, 한국 작가들 역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이다. 이들이 세대론적 접근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개발, 해외여행과 유학 등의 경험으로 인해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가치관을 보인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이런 방식의 접근을 늘 기꺼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작품에서는 분명 개발, 환경, 전통, 노동, 이주, 여성 문제 등과 관련하여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시선이 엿보였다. 작가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전통, 환경, 소수민족의 문화가 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유입된 서구 문화나 자본주의의 전형적 현상들을 즐기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들은 선명한 찬반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태도를 갖기보다는 그런 현상들에 얽힌 정서들을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포착하려 한다. 예를 들면 베트남의 황폐화된 고무나무 농장을 서정적 영상으로 스케치하거나(응우옌 프엉 링), 경조사 화환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나무 잎사귀인 일명 ‘도시루’(당종려의 일본식 발음)를 둘러싼 미적, 산업적, 역사적 자료들을 수집하기도 한다(조혜진). 베트남의 경제부흥과 함께 도로변에 나타난 운전기사들을 위한 해먹 카페를 전시장으로 옮겨와 핍박받는 소수민족이 생산한 커피를 마시게 하기도 하고(아트 레이버), 이주 노동자들의 고된 손동작을 즐거운 춤으로 만들기도 한다(믹스라이스). 이들은 현상의 가치를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 현상에 계속 주목하고 때로는 즐기고, 때로는 사유하기를 요청한다. 전시 제목 ‘정글의 소금’ 역시 포스트 도이모이 세대로 불리는 베트남 작가의 소설 제목에서 빌린 것인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탈이분법적 태도를 확인할 수있다.


우리에게 베트남은 ‘타자’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조심스러운 대상이다. 베트남에게 한국은 여전히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가해자의 나라이면서도, 가장 많은 수의 결혼 이주여성을 보내는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양국 사이에서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는 끝이 없으며, 《정글의 소금》은 그런 이야기들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이 전시는 2017년 서울 KF갤러리(2017.8.17~10.18.)와 부산 아세안문화원(2017.12.15~2.9.)을 거쳐, 오는 7월 하노이의 여성박물관(Vietnamese Women's Museum)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외교와 문화교류 맥락에서 시작된 전시가 베트남 여성의 삶이라는 맥락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어쩌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과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야말로 애초에 이 전시가 열어놓기를 바라던 것이기도 하다. 《정글의 소금》이 문화교류의 차원을 넘어 기억과 질문들에 가닿기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불편함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기를 바란다. 아마도 바로 그 불편함으로부터 아직 시도하지 못한 베트남의 역사적 기억에 관한 연구와 전시들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 미술 전시(4)

《불확실한 경계》


Lai Dieu Ha 〈Under the Skin〉 건조된 돼지껍데기, 영상 설치 가변크기 2017

라이 지에우 하(Lai Dieu Ha),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 2017. 건조된 돼지껍데기, 영상 설치, 가변크기.

기간 및 장소

2017.3.3~31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하노이 헤리티지 스페이스


참여작가

기슬기, 라이 지에우 하, 백현주, 부이 콩 칸, 우담 짠 응우옌, 이우성, 조혜진, 피 피 와잉


한-베 수교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로, 양국에서 활동 중인 3,40대 작가 8인이 ‘경계’를 주제로 한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소개하였다. 전통과 현대, 이상과 현실, 개인과 사회등 한국과 베트남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해석을 엿볼 수 있다.


Uudam Tran Nguyen 〈License 2 Draw – Laser Target Shooting〉 Robot, app, electronics, arduino, webcam camera, ip cameras, canvas, color pens, Mac laptop, installation, lasers, paper, fan 설치전경 가변크기 2016

우담 짠 응우옌(Uudam Tran Nguyen), 〈라이센스 2 드로우 – 레이저 타깃 슈팅(License 2 Draw – Laser Target Shooting)〉,2016. 로봇, 앱, 전자기기, 아두이노, 웹캠 카메라, 아이피 카메라, 캔바스, 컬러 펜, 맥 랩탑, 인스톨레이션, 레이저, 종이, 팬, 가변크기.

백현주 〈성북구 성북동〉(스틸컷) HD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설치 20분 23초 2014

백현주 〈성북구 성북동〉, 2014. HD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설치, 20분 23초, 스틸컷.


아세안 미술 전시 (5)

《시민을 위한 노래: 인도네시아, 음악, 정치》


전시 광경

전시 광경

기간 및 장소

2018.3.3.~4.8. 아트선재센터


참여작가

디알리타, 라라스, 루앙루파, 멜랑콜릭 비치, 카르티카 자자


인도네시아의 사회정치적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음악과 정치가 어떻게 긴밀한 관계를 맺는지 주목한 전시. 대중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싸움에 동참하는 대중음악계부터 정치적 이슈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표현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scene)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방식으로 국가에 저항하는 음악가들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Kartika Jahja&Dialita〈펠라칸(다시 만날 거예요)〉 천위에 비디오 프로덕션 2018 커미션: 아트선재센터

카르티카 자자(Kartika Jahja)&디알리타(Dialita), 〈펠라칸(다시 만날 거예요)〉, 2018. 천위에 비디오 프로덕션, 커미션: 아트선재센터.

LARAS 〈칸타타 타과, 이완 팔스, 로마 이라마에 대한 사례 연구〉 공연 기록 영상, 아카이브, 책, DVD, VCD

라라스(LARAS), 〈칸타타 타과, 이완 팔스, 로마 이라마에 대한 사례 연구〉 공연 기록 영상, 아카이브, 책, DVD, VCD.


아세안 미술 전시(6)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


Marco Kusumawijaya

마르코 쿠수마워자야(Marco Kusumawijaya)&루작 센터 포 어반 스터디즈(Rujak Center for Urban Studies), 〈나의 작은 회상록〉, 2018.

기관 및 장소

2017.7.21.~9.3. 아르코미술관
2018.3.8.~29. 김해문화의전당
2018.9.13~29. 인도네시아국립갤러리
2018.10.3~31. 자카르타역사박물관


참여작가

마르코 쿠수마워자야&루작, 배영환, 최선아, 슬기와 민, 임종업, 이르완 아흐멧&티타 살리나, 티모데우스 양가완 쿠스노, 포럼 렌텡


2014년부터 진행되어온 7 1/2프로젝트를 발전시켜 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인도네시아 두 나라가 우연히 공유하는 근현대사의 역사적 파편을 재구성하였다. 문화역사 공동체로서의 도시와 객관적, 보편적인 사실과 주관적, 선택적인 기억들이 만들어내는 간극으로서의 서사적 아카이브를 이야기한다.


전시 광경

전시 광경

Irwan Ahmett&Tita Salina〈메시지이동〉 워크숍 작품 제작 과정

이르완 아흐멧(Irwan Ahmett)&티타 살리나(Tita Salina), 〈메시지이동〉 워크숍 작품 제작 과정.


※ 이 글은 월간미술 2018년 6월호(401호)에 수록되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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