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2018 비엔날레 프리뷰: 대담(3)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클라라 킴(Clara Kim) / 정연심

posted 2018.08.20

Gwanju Biennale 2018 Poster ©Gwanju Biennale

2018광주비엔날레 포스터 ©광주비엔날레

제1회 광주비엔날레(이하 광주) 주제가 ‘경계를 넘어서’였다. 23년 만에 기획된 올해의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다. 이 주제는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에서 나온 제목이다. 비단 이 책과 그 제목이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만큼 인문학에서 크게 회자되어서, 이번 광주의 주제가 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정치적 상황이나 난민 문제, 정세 등이 항상 그러하듯이 불안정하여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다. 동시대성을 반영해온 광주는 이 소용돌이 같은 세상의 수많은 문제에 일일이 답을 하기보다, 그 근원적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한다. 애초에 우리가 서있는 이 곳과 그 방식이 하나의 상상이 아니었나. 수많은 굳건한 믿음과 단단한 가치들이 사실은 집단적 환영일 수 있음에 대해.


여기에 광주는 11명의 큐레이터의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를 다시 담는다. 궁금한 지금의 질문- 균열에 선 모더니티에 수많은 조각의 답들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1-2인의 감독체제나 소수의 결정체계를 벗어나,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11명의 큐레이터가 각자의 서사와 공간을 만들고 있다.


11명의 큐레이팅 그리고 해외기관과의 협업 등. 일견 이미 너무 커져버린 광주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은 이번 전시는 사실상 ‘작은 전시’이다. 다수 큐레이터 방식은 거대해진 비엔날레의 규모를 각각의 알차고, 다른 이야기로 채우는 새로운 ‘작은 비엔날레’를 실험하는 것. 동시에 주제에 관한 일차원적인 재현을 넘어서, 다차원의 퍼즐의 방식을 옮기는 시도이기도 하다.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 『래디컬 뮤제올로지(Radical Museology)』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규모화되고 관제화되고 자본화되는 미술 전시의 흐름은 분명 되짚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작은 전시로 거듭하여, 동시에 지역의 문맥에서도, 세계 미술의 담론에서도 유효한 의미의 생산과 교환의 장이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광주의 숙명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서서 관람한 1회 비엔날레에서부터, 지역 미술계, 세계 미술 담론의 장에서도 광주의 목소리는 언제나 주목되어왔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엔날레라는 광주 자신의 역사, 또한 도시 광주가 가진 역사성과 지역적 문맥 역시, 염두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가볍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으며,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제안하는 전시이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도 지구 반대편의 미술전문가와도 소통하고 공명해야하는 것. 광주가 주목받아온 만큼, 기대도 질타도 커져온 지금. 광주는 곧 그만의 결과물을 대답하기 직전에 서있다.


오는 가을의 초입에서 만나게 될 어렵고도 막중한 2018년의 광주의 대답.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모더니티를 구획하는 수많은 경계에서 서성이며 반문하는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굳건히 믿어온 가치체계의 환영에 대해 우리는 수만 가지의 생각의 조각들과, 공간적 재현과, 그림과 퍼포먼스를 보게 될 것이다. 균열, 반문 혹은 때때로 희망인 것들에 대해. 어쩌면 그 광주를 향한 수많은 기대와 질타가 시작한 시선과 맥락으로부터 홀연히 떠나버릴 수많은 질문을 다시 던질 수도.




대담; 클라라 킴(Clara Kim) & 정연심

균열하는 현실위에 다시 찾는 새로운 대안의 조각들
Clara Kim 클라라 킴(Clara Kim) /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2018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권역을 담당하고 있다.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REDCAT에서 큐레이터를 역임한 바 있다. 2014에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수석연구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주요 전시로는 2015 상하이 록번드뮤지엄 《마크 브래드포드 개인전》을 기획하였다.
Yeon Shim Chung 정연심 / 홍익대학교 교수, 2018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SUNY)의 미술사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광주비엔날레 2018, '상상된 경계' 공동큐레이터(2017), 광주비엔날레재단이사/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 『한국 동시대 미술을 말하다』(에이엔씨, 2016),『세상을 바꾼 미술(세계사 가로지르기 17)』(다른, 2016),『단색화 미학을 말하다』(공저, 마로니에북스, 2015),『비평가 이일 앤솔로지(상), (하)』(편저, 미진사, 2013), 『현대공간과 설치미술』(A&C, 2014)등이 있다.



주목할 만한 큐레이토리얼 시스템의 변화


정연심(정): 올해는 집단 큐레이터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또 많은 전시가 다양한 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런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어떤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클라라 킴(킴): 다수 큐레이터 방식은 최근에 다양한 곳에서 시도 중인 것으로 알고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경우도 그렇고.


정: 《상파울루 비엔날레》도 여러 명의 큐레이터가 있지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콜렉티브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킴: 살펴서 볼만한 주목할 만한 현상인 것 같다.


정: 보통 한두 명의 예술감독이 진두지휘하는데 반해 다수가 진행하는 경우 6명이 넘기도 한다.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6명이었던 것 같다.


킴: 큐레이터가 6명이고, 예술감독이 1명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콜렉티브 방식은 아니다. 우리가 전체를 아우르는 총감독의 일을 한다기보다 11명 각자가 자신의 전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전시의 경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했던 전시에서 시작한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한, 독립적인 내용이다.



시간의 층위 위에 서있는 작업들과 큐레이토리얼


정: 그 전시를 봤는데, 여러가지로 흥미로웠다.


킴: 게티 재단(Getty Foundation)PST: LA/LA 이니셔티브의 일부인 전시로 시작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맥락이 많은 부분 들어왔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와 라틴 아메리카 간의 관계성은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 때 《컨뎀드 투 비 모던(Condemned to be Modern)》이라는 전시를 했는데, 강력한 모더니즘 건축 역사의 일부인 브라질, 멕시코, 쿠바의 모더니즘 건축의 역사를 고찰하는 전시였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역사적 관점에서가 아닌 현재에서, 현재와 과거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역사가 고정된 것이고 현재 일어나는 일과 관련이 없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차곡히 쌓여있는 일종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와 생각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랄지, 문화의 단면일지. 그런 많은 것들이 가까운 과거인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물려 받은 세상들 위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 지점에서 건축은 역사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고, 현재를 증거하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 건축은 역사를 보는 흥미로운 방식이다. 단순히 디자인이 순수하게 미적가치의 디자인만을 포함할 것이라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다. 건축이나 디자인은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명백한 하나의 언어이다.


이를테면, 국가주의에 기반한 한국인, 브라질인과 같은 국적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러한 종류의 이데올로기는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염두해둔 채 설정되었다. 문화의 결, 역사의 복잡성, 식민지 경험의 특수한 맥락 등의 수많은 개별적이고 복잡한 지점과 관계없이 계량화된 언어로 서술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단절된 역사를 이해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 모더니티의 유토피아적 가정은 세상에 지나치게 희망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이런 모더니티의 세계관은 제 1세계(미국과 유럽)의 체재에 적합한 것이지, 여타의 제 3세계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브라질, 멕시코, 이라크, 필리핀과 같은 국가들에서 겪은 역사의 증상은 모더니티 세계관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과거가 아닌 현재로부터, 지금의 시점에서 역사를 다시 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그 단서가 건축이었다.


* 《컨뎀드 투 비 모던(Condemned to Be Modern)》 - 《PST: LA/LA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클라라 김이 큐레이터를 맡았던 전시로, 모더니즘의 상충된 유산을 다루는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소개되었다.

정: 건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부연한다면. 그리고 같이 전시한 작가들은 누구인지?


킴: 앞서 말한 것처럼 건축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한 리서치를 하러 라틴 아메리카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로스앤젤레스나 유럽의 건축물이 그다지 다르지 않고,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화된 형태와 설계에서부터 공통된 아이디어가 그랬다. 전체의 구조에 대한 모더니티 건축의 설정 같은 것들이었는데, 일종의 모더니즘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이 도입된 시기, 그 변혁의 시기에 세계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격변이 있었고 건축은 그런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로, 현재 준비 중인 전시에도(2018광주비엔날레) 출품될 라이스 미라(Lais Myrrah)의 작품이 있다. 작가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브라질 건축가 니어마이어(Neimeyer) 건물의 세부를 촬영했다. 이번에 전시될 사진은 브라질 대통령 공관의 기둥을 찍은 작업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브라질 건축가 니어마이어의 건물이 라이스 미라의 사진에서, 척도 1:1 비율의 휴먼스케일 규모로 재현되었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규모로 거대한 건축물을 새롭게 재현한 것이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거대한 건축물의 일부분인 셈이다. 또한 건축양식은 식민지적 특수성을 보여주는데, 건물의 기둥이 그렇다. 그러니까 모더니즘이 브라질에 오긴 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브라질의 기반은 여전히 식민지적 현실이었다는 현상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사실 모더니즘이 그리는 이상향 속의 평등도 없고, 경제적 진보도 브라질에서는 없었다. 여전히 식민지 맥락과 브라질 사회 면면에, 건축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라이스 미라(Lais Myrrah), 〈Alvorada Palace Columns〉, 1958. 건축가: 오스카 니어마이어(Oscar Niemeyer), 엔지니어:Joaquim. Ⓒ작가

정: 사진 작가 중 L.A를 찍은 작업을 한 또 다른 작가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킴: 마우로 레스티프(Mauro Restiffe) 사진 작가로, 도시 브라질리아를 촬영했다. 현대 건축의 방식이 빠르게 세계에 보급된 시점의 브라질리아를 찍었다. 그 시절의 수많은 순간들이 흑백 사진으로 담겨있다. 흑백사진으로 찍은 모더니즘 건축은 굉장히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건축 이외에도 마우로 레스티프(Mauro Restiffe)는 엄청난 지지를 받은 룰라 대통령의 시간을 찍기도 했다. 2003년 룰라 대통령 취임식의 장면들과 같은 브라질의 희망의 순간들을 작업했다. 작가가 이러한 사진을 찍은 2003년까지는 브라질의 또 다른 큰 희망의 순간이었다. 사실 2003년부터 그 이후 15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고, 룰라 대통령은 감옥을 가고, 또 다른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참으로 수많은 격변을 겪었다. 그런 역사의 장을 담는 건축과 그 건축을 담는 사진 작업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건축이나 디자인을 순수한 미적 가치로 보는 건축 전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순수한 디자인에 방점을 찍은 지점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은 대중 안에 살아 있다. 건축의 본질은 사람이다. 그래서 디자인과 의도 면에서 가장 순수한 사고일지라도 자연의 모든 힘, 인간의 행동, 정치에 매우 민감하다. 개인적으로 무기명의 공간이 사람의 장소로 되는 것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브라질리아에 가서 보면 많은 건물이나 도시계획이 꽤 온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건축의 부분들이 무차별적으로 개조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버려지는 공간들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시작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머물러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것. 지금 이 공간과 건축, 디자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리고 왜 50년 전에 이렇게 설계했을까? 그들의 모더니티의 유토피아는 무엇을 지향하고, 왜 그것을 원했던걸까와 같은 질문들이 중요하다.


마우로 레스티프(Mauro Restiffe), 〈Empossamento#9〉, 2003. Ⓒ작가

정: 전시의 처음 제목이 ‘국가를 상상하다(Imagine the Nations)’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킴: 제목을 바꾸려고 했지만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많은 프로젝트가 정부가 현대 건축 양식을 사용하고, 어떤 이데올로기 시전을 위한 것임을 상기해서 제목을 지었다.


정: 많은 국가들의 상태가 7/80년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점이 있다.


킴: 맞다. 그 시절에 대한 서현석 작가의 〈잃어버린 항해(The Lost Voyage)〉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서울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에 서울시에서 지은 세운상가 건물을 촬영했다. 1킬로미터 길이의 건물이었다. 일종의 상업용 주거지로 지어진 고전적 의미의 건물로, 그 당시 지식인들이 거주했다. 그 후 청와대에서 사건이 있었고 모든 개발이 한강 이남으로 옮겨가면서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다. 강남이 개발된 것이 그 때다. 거대한 세운상가 건물의 예전의 영광은 버려지고 이전처럼 사용되지 않았다. 서현석 작가는 특히 80년대에 암시장의 중심지로 사용되고 음악가들이 연주하러 그곳에 갔던 시기에 관심이 있었다. 건물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건물이 시대를 어떻게 관통해 왔는지 보여주는 궤적이다.


서현석, 〈잃어버린 항해(The Lost Voyage)〉 Ⓒ작가

서현석, 〈잃어버린 항해(The Lost Voyage)〉 Ⓒ작가

서현석, 〈잃어버린 항해(The Lost Voyage)〉 Ⓒ작가

도시 개발 프로젝트 이외에, 건물 설계와 이데올로기 관계성을 주목한 작업도 있다. 작가 테렌스 가워(Terrance Gawer)는 미국이 대사관 건물과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지에 대한 작업을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사관 건축 프로그램을 검토하며, 미국적 시각과 건축에 대해 다시 본다. 미국 정부는 그 당시 세계 공동체 내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고, 냉전 기간이었던 50년대에 대사관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연히 냉전 시대의 면면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로 미술사에서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미국식 미술사를 전달하려는 노력이나,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가치가 세계에 보급되는 방식과도 비슷했다. 당시의 모더니즘 건축가를 고용하여 미국의 가치관을 전달하고 상징하며, 설계에서 자유나 민주주의의 상징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종의 프로파간다의 선전인 셈이다. 그래서 순수한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가정한 모더니즘의 건축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물은 역사를 읽고 현재와의 관련성을 읽는 일종의 컨테이너가 된다.


테렌스 가워(Terence Gower), 〈New US embassy, Saigon〉, 1967. 내셔널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 워싱턴 DC. Ⓒ작가

Ala Younis,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계획(Plan for Greater Baghdad), 2015, 2차원 및 3차원 프린트와 모델. Alessandra Chemollo의 사진.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알라 유니스(Ala Younis), 〈더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계획(Plan for Greater Baghdad)〉, 2015. 2차원 및 3차원 프린트와 모델. 사진 ⒸAlessandra Chemollo.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제공.

Ala Younis,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계획(Plan for Greater Baghdad), 2015, 2차원 및 3차원 프린트와 모델.  David Heald의 사진 © 2016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알라 유니스(Ala Younis), 〈더 위대한 바그다드를 위한 계획(Plan for Greater Baghdad)〉, 2015. 2차원 및 3차원 프린트와 모델. 사진 ⒸAlessandra Chemollo.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제공.

*전시 소개
제목: 상상된 국가들(Imagined Nations) / 모던 유토피아(Modern Utopias)
큐레이터: 클라라 킴(Clara Kim)
모더니즘 건축을 살펴보면서 20세기 중반의 식민지적 현실에 대해 살펴본다. 독립운동, 혁명, 식민지화 이후의 민족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과 건축과의 관련성,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사회 정치적 혼란의 시기에 모더니즘, 건축, 국가 건설 사이의 교차점을 조사한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도시 계획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수도, 정부 건물, 대사관, 대규모 공공 주택, 대학 도시 건설과 같은 일련의 국가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유토피아적 꿈을 다시 논의한다. 모두를 위한 성장과 평등에 대한 달콤한 약속과 희망에 속은 그러한 역사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예술가, 사진작가, 비디오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품을 통해 이 섹션은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살펴봄으로써 모더니즘의 논리를 현지화하고 재정의하고자 한다.

Sala de Lectura Coppelia (prototipo), 2013. 코르텐강 38,4 x 132,1 x 132,1 cm © Los Carpinteros Los Carpinteros 제공, 사진: Eduardo Morera

로스 카핀테로스(Los Carpinteros), 〈강연실-코펠리아(Sala de Lectura Coppelia (prototipo))〉, 2013. 코르텐 스틸, 38.4x132.1x132.1cm Ⓒ작가. 사진ⒸEduardo Morera

Shezad Dawood, 미래의 도시(전시), 2010. 뭄바이 쉬몰드 프레스콧 로드에 설치된 모습

셰자드 다우드(Shezad Dawood), 《미래를 위한 도시(Cities of the Future)》, 2010. Chemould Prescott Road, Mumbai 설치 전경. Ⓒ작가

정: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충돌하는 경계들》에서 사진작가인 백승우염중호는 군대, 광주병원, 기념비 등을 찍었다. 염중호 작가의 작품에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의 사진은 공간과 내부 공간의 파편 같다. 마치 인간의 피부를 의미하는 일종의 건축 표피와 같다. 건축의 내부를 꺼내어 외부가 되고,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장면을 담는다. 이 작업을 전라남도 컨퍼런스 홀에 놓을 예정이다. 전라남도 컨퍼런스 홀의 지하는 5.18때 무기의 저장고이기도 했다. 특별한 역사성을 갖는 곳에 어떻게 전시할지 고민하고 있다.


백승우, 〈연상 시스템(A Mnemonic System)-#184〉, 2018.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100x133cm, ⒸArtist

백승우, 〈연상기억법 #184〉, 2018.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100x133cm. Ⓒ작가

염중호, 〈내막(Under the skin)〉, 2017-2018,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0 프레임 사진, 각 40x60cm, 3개 사이트별 설치, ⒸArtist

염중호, 〈피부 깊숙이〉, 2017-2018. 디지털에 잉크젯 프린트, 40x60cm. Ⓒ작가

다미언 오르테가(Damian Ortega), 〈Jirones/Shreds〉, 2018. Ⓒ작가

다미안 오르테가(Damian Ortega), 〈Jirones/Shreds〉, 2018. Ⓒ작가

킴: 다미안 오르테가(Damien Ortega)도 건축의 피부(Skin)에 대해 작업하는 작가이다. 멕시코의 화산지대위의 주거지역의 작업인데, 이 지역은 자연 환경이 깨끗하고, 주변의 특별한 돌들로 기하학적인 주택과 건축물을 지었다. 이러한 주택 중 상당수는 현재 버려지고 파괴되거나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변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주택 공간의 실루엣을 추적하여 가죽으로 잘라냈다. 그 가죽 패턴을 자원봉사자들이 입고, 입지 않을 때는 고기 조각처럼 고리에 매달려 있다. ‘스킨: 더 스킨 아이 리브 인(Skin: The Skin I Live In)’라는 작업이다.


Yoan Capot, 〈Muro de Mar(방파제)〉, 2018. 7개 콘크리트 패널, 목재, 금속 구조물, 못, 수천 개의 낚시 바늘, 각 패널의 크기: 272x150x30cm. ⒸArtist ⒸJack Shainman Gallery ⒸBen Brown Fine Arts. Henrik Toggenburger 지원

요안 카포테(Yoan Capote), 〈방파제(Muro de Mar)〉, 2018. 7개 콘크리트 패널, 목재, 금속 구조물, 못, 수천 개의 낚시 바늘, 각 패널 272x150x30cm. Ⓒ작가 ⒸJack Shainman Gallery ⒸBen Brown Fine Arts. Henrik Toggenburger 지원

정: 쿠바 작가인 요안 카포테(Yoan Capote)의 작업도 흥미로운데, 그의 작품은 7개의 콘크리트 패널을 엮어, 방파제를 만든 것이다. 〈방파제(Muro de Mar)〉라는 작업으로, 쿠바에서 어업이 금지였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당시 미국의 제재 조치가 있었고, 해안선에 방파제를 만들어 장벽을 만들었다. 바다에 접근할 수 없는 쿠바 어민들은 낚시 바늘로 생계를 이어갔다. 어떤 면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완고하고, 타협 불가능한 욕망을 닮은 설치물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 작업을 이번에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아르나우트 믹(Aernout Mik), 〈이중구속〉, 3스크린 비디오 설치, 2018. 가변크기, ⒸCarlierGebauer, Berlin Made possible with support of the Mondriaan Fund and the Netherlands Film Fund, Collection of Maeil Dairies Co., Ltd

킴: 잠시 주제에 대해 다시 돌아가 얘기하자면,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의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arders)과의 어떤 관련성은 각 전시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공유된 국적, 소속감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때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와 상상된 세계를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현대 건축도 그 단서가 된다.
이를테면 민족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모더니티에서 생산해내고, 그 개념을 규정해서 스스로 어떤 국적의 개념에 안주하는 것도 그 사고 방식이, 현대 건축에도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상상이다. 한명의 개인이 자신의 자아, 소속된 집단, 국가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만들어내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실 국가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 부실한 면이 있기에, 그러한 국가주의적 개념은 국가의 존립에 필요충분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구별짓기를 통한 수많은 파벌과 배타적 집단성이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전시 소개
제목: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Faultlines)
큐레이터: 정연심, 이완 쿤(Yeewan Koon)
판 구조력의 결과로 균열의 양쪽에 있는 암석이 서로 지나쳐 미끄러지는 지각의 균열인 ‘단층’이라는 지질학적 개념을 빌려 이 섹션은 오래된 균열을 악화하거나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상처를 유발하는 현대 문제에 대해 다각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 인류가 지구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정의된 새로운 시대인 인류세에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 즉 사회적 분열 증상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은 경험에 비추어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해답을 줄 것이다. 3가지 측면, 즉 인체, 환경, 표면에 초점을 맞춘 이 섹션에 등장하는 작품은 제1회 《광주비엔날레》 ‘경계를 넘어(Beyond the Borders)’(1995)에서 공통의 탐구로 볼 수 있다. 경계가 없는 유토피아 세계를 상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이 섹션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인류의 생존에 대해 깊이 논의할 것이다.


모더니티의 균열


정: 국가라는 개념은 모더니티의 시대에 개발된 개념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킴: 맞는 말이다. 지극히 모더니즘에서 나온 상상의 개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과연 타당한 개념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 그래서 모더니티를 다시보는 지점에서, 내가 하는 전시에서 시작점은 지진의 단층선(Faultlines)이었다. 서로 다른 단층 사이의 교차, 변위, 이동에 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한국어로는 다르게 번역했다. 단층선은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용어는 전문가들이 주로 쓴다. 최근에 포항지진이 있었긴 하지만, 여전히 생소한 단어이다. 그래서 단어 ‘지진’을 사용했다.
이 모더니티의 수 많은 개념이 단층선의 균열처럼, 공고하지 않다는 점. 이를테면, 그런 맥락에서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전통'의 개념 역시 과연 타당한지 다시 봐야 하는 부분이다. 부연하자면 전통이 있는 그대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일종의 기획된 개념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앤더슨의 사유가 우리가 사는 현실에 보다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킴: 아르헨티나 출신의 발터 미뇰라(Walter Mingnolo)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탈식민성에 대해, ‘한 면이 근대성이라면 다른 면은 식민주의’라는 것이다. 동일한 것에도 본질적으로 양면이 있다. 이런 양면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국가가 현대화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모더니즘이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식민주의와 모더니즘은 같은 동체를 가진 두가지 얼굴을 가진 현실이었다.


정: 한국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적 근대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또다른 복잡한 맥락이 추가된다. 식민성과 근대성을 넘어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용어는 버내큘러언스(토착성, vernacular-ense) 혹은 인디지니어스(indigenous)이다. 어떤 문화를 구성함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식민성은 시대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쉽사리 분리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킴: 발터 미뇰라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정: 어떤 용어를 사용하면서 논리를 전개했는지?


킴: 인디지너티(indegeneity). 나는 어디에서나 토착성이나 전통적 뿌리에 대해 돌아가는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성은 모더니즘에 대한 새로운 대안에 대한 요구이다.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모더니즘은 불협화음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제3세계 출신의 주목할만한 건축가들이 아프리카 뿌리, 토속적 전통, 천연 재료로 건축하는 방식 등 보다 토착적인 뿌리로 돌아가고 있다. 전시에서 이런 부분을 반영해서 구성하기도 했다.


정: 건축에서는 많이 일반화된 방법론이기도하다. 많은 건축가들은 실제로 지역적 특수한 기법이나 공간 구성을 차용한다.


킴: 하지만 동시에 현대적이면서, 지역적 오래된 특수성이 보이는 것. 이 조합은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면, 브라질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인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와 같은 건축가의 경우가 그렇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아이디어인 서구 모더니즘을 잘 알고 있지만, 무작정 브라질에 이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르디는 장소와 재료가 다르고 역사와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을 살펴보고, 그 기반 위에 설계를 시작했다. 그래서 브라질의 아프리카 뿌리로 돌아가 이를 염두에 두고 천연 소재로 만들기도 했다. 또 다른 건축가인 레오노르 안투네스(Leonor Antunes)는 리나 보 바르디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매듭과 낚시 그물을 만드는 방법과 같이 사물과 형태를 만드는 전통적인 토착 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다르게 참조하고 있다. 모든 것이 첨예하고 날선 상황만은 아닌 것이다. 다채로운 해답들이 세상에 있기도 하다.


레오노르 안투네스(Leonor Antunes), 〈A secluded and pleasant land, in this land I wish to dwell〉, 2014. Ⓒ작가


비엔날레의 방식과 그 가능성


정: 이번 비엘날레에서 다수 큐레레이터 방식은 어떤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일하는 것과, 물론 비엔날레는 다르겠지만 다른 큐레이터들과 협업하는 것에 관해 재밌는 비교지점이 있을 것 같다.


킴: 이번 광주 비엔날레를 별도의 프로젝트로 큐레이터 각자 자기 전시를 진행한다. 그래서 협업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이 특이점이고 장점이랄까. 때론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경우 여러 공동 큐레이터들과 함께 자유롭게 전시를 전개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필요한 진행 시간이 충분해야 할 것 같다. 이번 광주에서는 그러한 총체적인 협업 프로젝트를 하기에 일정이 촉박했다고 본다. 그리고 비엔날레 자체 규모도 꽤 커진 것 같다.


정: 테이트 모던도 그렇지 않나.


킴: 테이트와 비엔날레는 여러모로 다른 조건에 놓인 거라 본다. 사실 테이트도 점점 커지고 있지만, 사용하는 시설은 수십 년, 때로는 수 세기에 걸친 오래된 것들이다. 테이트는 지속적인 시간 위에 사회와의 연계지점을 그리며, 미술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테이트는 1897년 세워졌고, 테이트 모던은 2000년에 문을 열었다. 테이트에서 만든 모든 것은 컬렉션과 함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무언가 고려해야 할 때, 전시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2~3년이 걸린다. 매우 천천히 움직인다. 박물관과 비엔날레의 기능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엔날레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테이트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까 미술관과 비엔날레는 지금 사회에서 아주 다른 기능을 하고 있다. 둘 다 점점 커지고 있고, 20년 전 내가 큐레이터로 예술을 시작할 때 없었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만큼은 공통점이다. 20년 전만해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박물관에 많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가는 곳이다.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일을 통해 생각하고 국제적 기관인 테이트를 위해 다양한 현대 미술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넓고 광대한 방식으로 세계의 미술담론을 어떻게 말하는지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내 일의 보람이기도 하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세계를 다시 보고, 수많은 세상과 장소를 바라보고 면면이 다시 생각해보는 작업을 지속하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비엔날레의 경우는, 미술관과 달리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신속하게 일할 수 있으며 현대적 문맥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창의적이며 많은 작가들과 관련 전문가와 협력하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비엔날레의 특별한 면모인 것 같다.


정: 그리고 미술관 전시회는 종종 국가와 대륙과 같은 유연하지 못한 구획으로 나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테이트의 경우는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을 벗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킴: 테이트는 예를 들면, 중국이나 라틴 아메리카와 같은 구획을 만들지 않는다. 문화권역별, 담론의 맥락별로 다르게 살펴본다. 단지 한 지역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서울과 도쿄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들 간에 일어나고 있는 연결성을 좋아한다. 아쉬운 점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찰하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또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빈틈없이 계획되고 있기 때문에 명확히 상황을 조감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온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특히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은 정말 복잡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시는 규모가 적당하거나 좀 더 참여적인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비엔날레가 실제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90년대부터 성장했다. 국제 전시가 그리 많지 않았고, 우리가 지금처럼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았고, 또 미래에대한 대단한 희망이 있었으며, 세상을 뛰어넘고 싶은 열망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전 세계에 자본의 집중이 과열된 경향이 있다. 미술관, 비엔날레를 아우르는 미술계도 너무 자본주의화 되어있다. 예술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고 가는지에 수치에 관한 뉴스가 쏟아진다. 그러나 미술관, 문화기관, 비엔날레는 모두 각자의 문제가 있고, 이는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디선가 균형점을 잃은 상황이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는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술계의 자생력을 잃게되고, 사람들은 떠나갈 것이다. 동시에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정: 당면한 수많은 문제가 있음을 동의한다. 마지막 질문으로는 비엔날레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문제가 있지만 해결책을 찾는 것도 매우 어렵다. 여러 큐레이터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저런 시도가 효과가 없어 다시 예전으로 회귀하는 경우까지 있겠다. 이를테면, 한 명의 예술 감독체제랄지.


킴: 비엔날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실험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 부분이 미술관이나 기관과는 다른 부분이다. 현재의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늘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 중요한 것이 30년 후에도 중요할지 확인해야 한다. 미술관은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하지만 비엔날레는 다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비엔날레인가를 정의 내리기 쉽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것을 내려놓고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반영해서, 계속되는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비엔날레의 가능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