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곽세원 기자

김현진 1975년 출생했다. 홍익대에서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스웨덴 룬드대 말뫼 아트 아카데미에서 크리티컬 스터디즈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1999년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제7회 광주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2006), 아르코미술관장(2014~15)을 역임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카디스트 아시아 지역 수석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전시로는 《사동 30번지》(인천 사동, 2007), 《십 년만 부탁합니다 - 이주요 위탁 프로젝트》(계원갤러리 27, 2007), 《Tradition (Un)Realized》(아르코미술관, 2014), 《두세 마리 호랑이》(베를린 세계문화의집, 2017) 등이 있다.
현존하는 비엔날레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베니스 비엔날레의 58번째 개막이 5월 11일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한국관은 독립 큐레이터, 비평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김현진 큐레이터의 지휘 아래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작가가 함께한다. 100여 일이 남은 시점에서 비엔날레 준비에 한창인 김현진 예술감독을 만나 2019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구성과 주제 ‘동아시아 근현대를 탈주하고 재구성하는 수행적 여성 서사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를 작품으로 구현해줄 세 여성작가의 출품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지난해 6월 예술감독 선정 소식이 발표되어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축하의 말과 함께 소감을 묻자 김 감독은 “그간 제가 해온 국내외 전시들에 비해 아무래도 베니스비엔날레가 국제적 위상이 높고 또한 대중적으로도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진 행사라 그런지 준비 단계에서부터 많은 분의 응원과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죠. 기분 좋게 임하고 있습니다”며 감사를 표했다.
올해 한국관은 기획자와 참여작가 모두 여성 미술인으로 여성이 꾸려간다. 기자는 이 점이 괄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발표된 김 감독의 전시 주제, “동아시아 근현대를 탈주하고 재구성하는 수행적 여성 서사들”을 보고 그러한 생각이 보다 명료해졌다. 가부장 사회인 아시아 국가에서 서구/ 남성 중심으로 기술되어 온 역사의 이면을 젠더 복합적 시각으로 조명하는 일은 김 감독의 오랜 관심사였다. 그간 전시 구성에서 비판적 젠더 의식을 도입한 프로젝트들이 종종 있었으나, 전시 전면에 ‘여성과 퀴어’를 내세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2013년 일민미술관에서 기획한 《탁월한 협업자들》, 《애니미즘》 이후로 리서치에 기반을 둔 지식생산형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온 김 감독은 ‘근대성’, 그중에서도 ‘아시아의 근대화’에 주목해 ‘발명된 전통’으로 고착된 개념에서 자유로워지는 전통의 언어들을 재발견하거나 그 밖에도 아시아 근대의 다양성을 조명하는 기획과 리서치에 천착해왔다. 특히 2017년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큐레이터와 함께 베를린 세계문화의집(HKW)에서 기획한 《두세 마리 호랑이 2 or 3 Tigers》는 그가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아시아의 역사를 여성작가의 시선으로 접근하자고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 “참여작가를 선정할 당시 저와 안젤름 프랑케가 작업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바로 ‘젠더 밸런스’였어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젠더 밸런스는 여전히 불균형한 상황이죠. 여성작가의 비중을 고려하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환경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윤리적, 정치적 행위입니다. 호 추 니엔이나 박찬경 같은 아시아의 역사를 다루는 남성작가들 못지않게 동일한 무게와 존재감을 지닌 여성작가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이미 국제적 입지가 탄탄한 작가와 한다면 주목도가 높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예술성과 역사적 인식을 두루 지닌 제 세대의 여성작가들의 수적,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이번 한국관 전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김 감독은 90여 분간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기자에겐 이 말이 그가 앞서 언급한 그 어떤 유익한 말보다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안락과 안정보다는 진보와 실험을 거듭해가는 김현진이 올가을 세 명의 여성작가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과 만들어낼 예술적 하모니는 또 어떻게 우리의 사유를 건드릴지 기대해본다.
월간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