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디렉터
2018년 10월에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의 작은 폐건물에서 《솔로 쇼(SOLO SHOW)》라는 아트페어 형식의 전시가 열렸다. 16개의 전시 공간이 참여한 이 행사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누린 것은 장소에서 풍기는 독특함도 한몫했지만 참여 갤러리 16곳이 모두 한 가지 성격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공간은 대형 상업화랑, 중소형 상업화랑, 대안 공간, 신생 공간 등 서로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다양한 성격의 공간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이 한자리에서 같은 미술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모양새였고 이러한 풍경은 많은 전문 미술인과 일반 관람객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참여 공간은 각 한 명씩의 작가만을 소개했다. 이는 관람객에게 해당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작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인상을 주었다. 각 공간과 작가들의 성격이 다른 만큼 관람객의 층위가 다양했다. 작가, 기획자, 미술관 큐레이터, 일반 관람객, 컬렉터 등 각 갤러리에 주로 찾아오는 관람객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행사 기간 내내 문전성시를 이루며 화려하게 그 막을 내렸다. 이 행사를 기획한 협동작전 팀인 필자를 포함한 3인(정재호, 김인선, 여준수)은 이 행사를 ‘콜렉티브’ 형식이라고 이야기한다. 기획팀 세 명은 각각 영리 공간과 비영리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이들이었고, 기존의 거대한 아트페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각각 다른 성격과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공간들의 협업 플랫폼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만들어낸 행사이기 때문이다.
연남동에서 2016년 설립된 씨알콜렉티브의 경우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미적 노동을 통하여 개개인의 평등성을 실현하여 서로 나누는 사회를 꿈꾸는 낭만적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는 개념을 실천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이 기관은 전시 공간이다. 그 이름을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따옴으로써 잠재력 있는 씨알, 즉 창작자들의 사회참여-비판적인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이 기관의 경우는 많은 이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한 협력자들에 의하여 만들어내고 있다. ‘씨알교외학교(CR Out-of-School)’라는 프로그램은 ‘옥상 프로그램’과 강의 등으로 구성되어, 도심에서 농사를 짓거나 의상을 제작하고 무용을 배우거나 음식을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가 구성된다. 지식의 공유를 통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에 동참하는 예술가들이 씨알콜렉티브의 프로그램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 콜렉티브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자신 본연의 위치로부터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필요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일반 수강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이를 만들어나가는 지식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씨알콜렉티브에서 사례비로 보답하는 시스템이다.
통의동의 갤러리 팩토리는 그간 대표 1인 체제로 진행하였던 공간 운영을 2018년부터 ‘팩토리2’로서 3-4인의 기획자 그룹의 운영과 기획으로 만들어나가는 공간으로 변화를 주었다. ‘팩토리 콜렉티브’의 구성원 각자의 주제로부터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음악가, 무용가 등 다양한 이들과의 협업 지점을 만들어내면서 출판, 퍼포먼스,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협업체의 중심은 2018년에는 서새롬, 안아라, 여혜진, 이경희 등 4인이었고 2019년에는 여혜진, 김그린, 김다은 등 세 명을 주축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개인의 희생이나 공공기관의 지원금 의존도를 최소화하면서, 팩토리가 쌓아온 가치와 콜렉티브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간이자 커뮤니티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팩토리2라는 콜렉티브 기획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다. 2003년 설립 초기부터 워크숍이나 강연 프로그램을 통하여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대표의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전환이기도 했다. 순수미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디자인, 공공예술 등 폭넓은 콘텐츠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프로젝트들은 그 성격에 맞는 작가, 기획자, 디자이너 그리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참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다.
앞서 예를 든 프로젝트성 콜렉티브나 콜렉티브 기관으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을 위한 협업 콜렉티브 등 최근 미술계에서 이 ‘콜렉티브’라는 용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많은 매체에서 소개해 온 옥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 믹스라이스 등 ‘따로 또 같이’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협업 또한 ‘콜렉티브 그룹’이라는 용어가 익숙하다. 특히 2018년에는 국내에서 열렸던 주요 국제행사인 광주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동시에 콜렉티브 기획 시스템을 표방함으로써 미술계에서 이러한 형식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지금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작가, 기획자 등 창작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경향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워낙 미술 작가는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나가는 활동으로 점철되어 왔음에도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활동 방식은 어찌 보면 보다 폭넓은 미술 활동이 가능해지고 있는 동시대성의 현상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는 미술가들의 활동 환경이 열악한 미술계의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지속성 있는 자생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면서 더욱 왕성한 생명력을 발현하게 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처에서 발생하는 콜렉티브 시스템이 가져다줄 긍정적 효과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심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빈약한 예술 활동 조건 속에서 서로 기대고 협조하여 예술 활동을 구현해 나갈 수 있는 든든한 지지체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콜렉티브 형식이 어제오늘 만들어진 최근의 경향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통 한국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두레, 품앗이가 옛 어른들의 지혜가 발휘된 공유경제 개념이자 현재의 콜렉티브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품삯을 지불하는 대신 자신의 노동력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최소화된 재원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현재의 미술계에서의 콜렉티브는 여러 개체의 모임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결과물을 위한 집단체제라는 단순한 정의보다는 예술적 담론,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 정치 현상에 대한 관심과 철학을 공유하여 그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제 활동으로까지 나갈 수 있는 창작자 연대의 실천적 입장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콜렉티브는 미술의 생태계에서 지속성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낙관적인 해결책이기만 한 것일까. 이는 실제로 실천해보기 전까지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 콜렉티브 시스템 자체는 이상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이를 다루는 이들은 제각각일 테니까. 예의 《솔로 쇼》의 경우 세 명의 콜렉티브는 각각의 역할이 명확했다. 모든 결정은 세 명이 함께 하되 진행을 위하여 맡은 역할은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참여 공간 섭외, 자료 수합, 홍보, 커뮤니케이션, 행사 공간 관리 등의 다양한 업무들을 각각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을 분명히 나누었기 때문이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팀의 완벽한 동의가 있어야 하므로 일일이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할 경우에는 이러한 방식은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이 행사뿐 아니라 각자 본연의 업무가 따로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회의 시간을 잡는 것 자체가 일이 되어버린다. 실제 행사 기간에 참여한 공간 간의 협업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도 모종의 조건이 따랐다. 《솔로 쇼》와 같이 작품 판매를 위한 성격의 행사에서 가장 큰 성과는 투자 대비 수익 정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수익을 위한 치열할 경쟁적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하여 각 공간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된다. 즉 이를 주도하는 이들의 업무와 노동력이 최대화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해 국내에서는 국제 규모 비엔날레들이 곳곳에서 개최된 와중에 가장 큰 규모인 광주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본격적인 콜렉티브 체제의 기획을 선언하였는데, 이러한 시스템의 긍정적 열의를 반영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 또한 불러일으켰다. 대규모 미술 행사에서 콜렉티브 개념은 어떻게 소화될 수 있을까에 대한 주시가 사뭇 실망스러운 결론에 다다랐던 것은 개념과 실천 사이에서 발생한 틈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던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콜렉티브 제의 특징인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곧이곧대로 적용되었으나 발전적인 논의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보긴 힘든 행사였다. 특히 퍼블릭아트 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양지윤 큐레이터의 글 "불발된 계략"에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인용해 볼 수 있겠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는 잡지 편집자, 환경 운동가, 청년 벤처사업가 등 비예술인이 참여 작가로 초대받았다. 그러나 작품 선정이나 예술성에 대한 일관성 있는 기준과 관점이 존재하기보다는, 콜렉티브 멤버들 각각의 개인적 취향이나 ‘정치적 올바름 과시’ 같은 것들을 늘어놓은 느낌을 준다. 철 지난 문화 상품과 공허한 캠페인 문구들이 현대예술 작업과 뒤엉켜 있는 산만한 작품 배치는 이를 더욱 가시화한다.”
위의 실제적인 행사들을 개입 혹은 관찰해보면서 콜렉티브제를 실천하기 위한 몇 가지 여건들을 도출할 수 있다. 긍정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콜렉티브 시스템의 가장 큰 조건은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개체 각자의 역할이 명확해야 한다. 능력치가 다르고 다루기 가능한 자신만의 영역이 명확하여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다른 이의 능력이 채워짐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개념에서 출발하여 실천의 단계로 들어가면 그 과정에서 겪는 변수들이 발생하게 된다. 구성원의 동등한 입장이 발휘되는 때는 각자의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을 때인데, 자신과 다른 의견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특정 의견을 탈락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구에게는 이를 맞추는 과정 자체가 지루할 수 있고 누구에게는 지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누군가의 의견과 주장에 대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안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구조를 쉽게 흔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여건인 자신의 영역을 명확히 해야 하는 단계, 즉 실무의 단계에서 그 역할에 대한 열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 단계의 열의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물리적 구현은 완성될 수 있을지라도 예상한 결과와는 상이한 갈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약점이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위태롭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누군가가 소위 총대를 멘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진행의 정도가 일정과 잘 맞물려 나아가고 있는지, 서로 보완할 점은 없는지 끊임없이 주시해야 한다. 개체가 많을수록 이 관리의 업무는 커진다. 동등한 조건이 약속된 듯 보이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과 노동량, 업무의 질을 배분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조건을 간과하였을 때 트러블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혹은 누군가는 과중한 업무 상태인데 이를 외면하고 각자 다 동등하다고 여겨버린다면 이러한 문제는 반복된다. 결국 ‘모두가 동등하게 함께’라는 이상적 시스템 속에서도 최소한의 위계체제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미레이 래드만 우켈레스(Mireille Lademann Ukeles)는 1973년도 퍼포먼스 〈Hartford Wash: Washing, Tracks, Maintenance-Outside and Inside〉에서 미술관 안팎에서 시설물과 건물 바닥 등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그가 청소하는 스텝인지, 작가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평소처럼 관람을 하며, 작가 또한 관람객의 여부에 상관없이 자기 일에 몰두했다. 이는 미술관·박물관의 다양한 업무를 맡은 수많은 스텝의 역할이 미술관의 큐레이터나 작가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또 각자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임을 드러낸다. 콜렉티브 체제라는 것이 같은 목적을 향하여 연대하고 협력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녹록치 않은 여건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해 본다면 이 퍼포먼스가 시사하는 점 또한 주목해볼 만하다. 자신이 속한 기관이나 자신이 하는 활동에서 자체의 역할에 충실하고, 그것이 결국 미술계라는 큰 영역 안에서 중요한 역할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열악한 미술 환경 속에서 더욱 긍정적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역할이 분명해야 하고 어떤 역할이든 하나의 운영 체제를 갖추는 데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은 동등함을 강조하는 콜렉티브 시스템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꽤 성공적인 콜렉티브를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김인선은 이화여대 조소과 및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미술사학과를 석사졸업했다. 1999년 대안공간 루프를 시작으로 광주비엔날레 코디네이터(2001~2), 부산비엔날레 코디네이터(2000)와 공동 큐레이터(2006), 국제갤러리 부디렉터(2003~4),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 대림미술관 학예실장(2006~7), 인터알리아 전시실장(2007~2009)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윌링앤딜링 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www.willingndeal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