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왜 걸작들은 사립기관 소장일까

posted 2020.06.10


이한빛 헤럴드경제 기자


미술관의 존립 목적이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을 수집 및 보존, 발굴하는 데 있다면 소장품은 기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와 같다. 그리고 소장품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은 각 미술관의 성격을 대변한다. 우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 소장품에 관한 기획을 마련했다. 먼저 대표적 문화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미술관 소장품 의미와 역할을 살펴본다. 귀족과 국가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의 대명사’ 프랑스, 시민들의 소장품과 민간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현대미술의 심장’ 미국에서 소장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운영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어 한국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현황을 짚어본다. 이 특집은 비단 미술 강국들과 견주어 현실을 자각하는 데 그치고자 함이 아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른 두 나라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제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끝에 얻어지는 단단함으로 국내 국공립미술관이 더욱 앞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기대, 자체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수장고 공예 소장품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수장고 공예 소장품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공립미술관 “재원 부족” 1순위 꼽지만 미술관 조직의 비전·방향 모호, 관료적 의사결정 구조도 문제


“해외에서 귀빈이 온다. 의전을 해야 한다. 문화적 소양이 상당하다.” 가끔 이런 주문을 받을 때가 있다. 문화부 기자들의 숙명이다. 대개는 무척 급한 상황이다. 얼른 동선을 추천해야 한다. 이런 이들은 한국이 처음이거나 혹은 몇 번 와 봤지만 고궁과 인사동은 싫다는 경우다. 공연은 영문 서브 스크립트가 있는 걸 원한다. 언어가 필요 없는 클래식이나 발레, 국악공연은 늘 좋은 후보들이다. 그러나, 주문자의 한 마디가 더 떨어진다 “거, 늦게 끝나는 거 말고!” 공연이 답지에서 사라질 때, 부옇게 흩어지는 머릿속을 뒤지면 나오는 답은 늘 비슷하다. “미술작품 좋아하시면 리움 미술관 가세요. 공예를 좋아하시면 가구박물관이요."


미술관과 박물관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 국가의 문화 저력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라서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여행을 가면 짬을 내 국가 대표 미술관과 박물관을 돈다. 이른바 ‘너네집 금송아지’를 보기 위해서. 이 때문인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 1월 ‘2020년 박물관·미술관인 신년교례회’에서 “국내 박물관·미술관이 전 세계 한류 열풍의 전진기지가 되고, 외국인 관람객 유치를 확대하도록 외국인 대상 전시 안내 서비스, 홍보 마케팅을 강화하는 데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지난 3월 공개된 ‘2020년 업무계획 4대 전략·12대 과제’엔 사립박물관·미술관 전문인력 지원도 포함됐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 문화 저력의 핵심을 보여줄 수 있는 곳’하면 사립기관이 먼저 떠오를까. 물론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 무조건 대표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전 세계에서도 영국 테이트(Tate) 다음으로 크다는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시립미술관도 첫손에 꼽기엔 망설여진다. 굵직한 소장품을 내세운 상설전시가 없고 대부분 기획전이나 특별전으로 운영되기에 맥락을 모르는 이에게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들 ‘미술관의 정체성=소장품’이라고 말한다. 소장품을 통해 기관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고. 100%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루브르’하면 모나리자를 위시한 르네상스 고전 작품을, MoMA하면 현대미술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미술관들은 어떤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고, 소장품 수집의 절차와 기준은 무엇일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수장고 소장품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수장고 소장품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구매 예산 연간 50억 원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2020년 4월 현재 8,562점이다. 소장품들은 구입하기도 하고, 수증 받기도 하며 혹은 관리 전환에 의해 국립현대미술관 품에 들어온다. 대상은 한국 근현대미술, 동시대 미술, 국제미술 등 미술사적 가치 및 연구 중심의 작품들이다. 어떤 작품들을 가졌는지는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체 8,562점 중 정리가 되지 않은 일부 작품을 제외한 8,540건을 장르별, 제작연도별, 수집연도별 등으로 찾아볼 수 있다. 작품명이나 작가 이름으로도 검색할 수 있다. 수집연도로도 정렬이 가능하기에 특정 해에 어떤 작품을 소장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엔 222건을, 2019년엔 174건을 소장했다.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나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 혹은 미술사적 의의, 작품 컨디션 등 깊이 있는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작품 제작 시기나 사이즈, 재료 등 기본정보는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으로는 김환기의 〈새벽#3〉, 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 장욱진의 〈독〉, 강익중의 〈삼라만상〉, 이중섭의 〈세 사람〉, 유영국의 〈작품(산)〉, 윤형근의 〈다색〉 등 한국 작가 작품들을 비롯해 외국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춤추는 사람들〉, 빌 비올라(Bill Viola)의 〈불의 여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여행용 가방〉이 있다. 이중 김환기의 〈새벽#3〉은 2017년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둥까지〉 전에서 선보였으며, 당시 공개한 작품가는 10억 원이었다.


전체 소장품 중 기증작품은 2019년 12월 기준 약 45%며, 구매한 작품과 관리 전환한 작품은 각각 52.5%, 2.5%다. 구입하는 작품들은 한국 근현대미술 50%, 동시대 미술 45%, 국제미술 약 5% 비율로 수집하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미술관이기에 소장품 구매 절차도 여러 단계를 거친다. 먼저 내부 2인, 외부 3인 이상의 인사가 참여하는 ‘가치평가위원회’와 외부인 3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가격자문위원회’에서 의견을 수렴한다. 이어 관장, 학예실장, 학예 관련 부서장 등 5인 이상이 참여하는 ‘수집심의’에서 앞서 두 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미술관 측은 위원회 구성원에 대해 “명단은 공개할 수 없지만, 분야별 미술전문가 인력풀이 있고, 이 안에서 선정한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예산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6년 61억 원이 배정된 뒤, 2017년 61억 원 유지, 2018년 55억 7,000만 원, 2020년 53억 2,900만 원으로 점차 감소했다. 지난해 한국 대표작가인 김환기의 <우주>가 132억 원에 낙찰됐음을 기억한다면 큰 금액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소장품 수집의 어려움에 대해 “국회와 예산부처의 이해 부족으로 최근 3년간 구입예산이 계속해서 삭감 중”이라며 “구입예산의 한계로 중요한 근대미술 등 대표작품의 수집 적기를 놓치고 있다. 또한 현대미술 특성상 대형 설치작품 등이 많은데 작품보관의 물리적·공간적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특별수장고_한기석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특별수장고__한기석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_

서울시립미술관, 기관 정체성 확립할 수 있는 수집체계 마련 착수


서울의 또 다른 대표적 국공립 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은 동시대 현대미술 수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술관 측은 “문화시민 도시 서울의 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 수집을 통해 지역 및 지역 간 소장품 교류 추진을 위한 특화 컬렉션 구축을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든 소장품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다. 4월 14일 현재 5,173점이 등록돼 있으며, 작품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렬한 국립현대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일부 컬렉션을 큐레이팅해 선보이는 서비스가 있다. 1998년 천경자 화백이 93점을 기증하며 만들어진 ‘천경자 컬렉션’과 2001년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기증한 ‘가나아트 컬렉션’, 서울시립미술관 대표작품 200선을 선정한 ‘SeMA 컬렉션 200’ 등이다.


대표적 컬렉션으로는 백남준의 〈서울랩소디〉(2001), 〈자화상〉(1998), 〈Beuys Vox〉(1961-1986)와 김환기의 〈Untitled(15-Ⅶ-69#90)〉(1969), 유영국의 〈WORK〉(1967), 이우환의 〈항(項)-대화〉(2009) 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한다는 점이다. 강서경, 김지평, 신미경, 양혜규, 이수경, 정은영, 차승언 등 여성 작가 작품이 약 24%에 달한다. 서울시립미술관도 매년 소장품 구입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2009년과 2010년 45억 원 책정 이래 2011년부터는 평균 20억 원, 2018년부터 2020년은 16억 원이다.


소장품 구매 절차도 국립현대미술관 못지않게 복잡하다. 먼저 구입대상 작품은 공모를 통해 접수를 받고 미술관 내부 학예직의 조사 및 연구에 기초한 수집 제안, 미술관 자체 제안으로 구성한다. 이렇게 들어온 후보군을 놓고 수집선별 회의를 거쳐 일부를 뽑아내고, 소장작품 추천위원회를 열어 우수작품을 추천받는다. 이어 가격평가심의위원회가 가격을 평가하고 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모든 위원회는 미술관 내외부 인사들 5-10명으로 구성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올해 기관 의제로 ‘수집’을 설정했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수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까지 수집한 5,000여 점에 명확한 방향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미술관 측은 “기 소장품 분석을 통해 4년 단위 ‘중기 소장품 수집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컬렉션의 경쟁력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수집 방향과 단계별 중점 수집 대상을 설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퍼포먼스와 같은 비물질적 예술 활동의 기록 및 수집에 관한 체계 수립, 수집 당시 작성하는 ‘저작물 이용허락서’를 비물질적 형식, 다중 저작과 같은 동시대 미술 환경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도 주요 과제다.


좌 로잘린 드렉슬러(Rosalyn Drexler) <죽음의 위협속의 마릴린(Marilyn Pursued by Death)> 1963 Acrylic and silver gelatin photograph on canvas, 49 7/8×40in (126.7×101.6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the Painting and Sculpture Committee 2016.16. © 2019 Rosalyn Drexler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and Garth Greenan Gallery, New York 우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죽음의 공포(The Fear of Death)> 2007 혼합재료 13.6×20.5×18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로잘린 드렉슬러(Rosalyn Drexler) <죽음의 위협속의 마릴린(Marilyn Pursued by Death)> 1963 Acrylic and silver gelatin photograph on canvas, 49 7/8×40in (126.7×101.6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the Painting and Sculpture Committee 2016.16. © 2019 Rosalyn Drexler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and Garth Greenan Gallery, New York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죽음의 공포(The Fear of Death)> 2007 혼합재료 13.6×20.5×18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화려한 라인업 자랑 삼성미술관 리움·파라다이스


걸작 컬렉션을 선보이는 미술관으로 치면 단연 삼성미술관 리움(이하 리움)이 최고다. 비록 2017년부터 홍라희 관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 뒤 상설전만 이어지고 있지만,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그저 가격이 비싼 작품들일 뿐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동서고금 가장 중요한 작가들의 작업과 문화재들이 소장돼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리움은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배우자 만찬 장소로도 쓰이기도 했다. 리움 컬렉션의 규모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만 5,000점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홈페이지에서도 컬렉션 일부를 볼 수 있다.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솔 르윗(Sol LeWitt),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김환기, 이우환, 박수근, 이중섭 등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심지어 작가의 주요작과 대표작들을 수집해 미술관의 품격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고미술 컬렉션에도 수작들이 들어찼다. 2016년 기준 리움과 호암미술관엔 국보 37점, 보물 115점이 소장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95건과 보물이 236건보다는 적지만 사립기관 중에서는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삼성가의 컬렉션 막후 이야기를 풀어낸 책 ‘리 컬렉션’(2016)의 저자인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출간 당시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이건희 회장은 값을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다. 전문가 확인만 있으면 결론을 냈다”며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위상이 올라간다’는 지론에 따른 결과였다”고 전했다. 리움의 블록버스터급 컬렉션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는 단연 ‘재력’이 꼽힌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보는 시각은 약간 다르다. 단순히 경제적 능력만으로 이러한 미술관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홍라희 전 관장의 경우 해외 유수 미술 잡지에서 미술계 파워피플로 곧잘 선정됐다. 작품을 보는 그의 안목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유네스코 친선대사인 다나 피라스 요르단 공주(Her Royal Hîghness Princess Dana Firas)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2018년 방한 당시 그는 “재력만으로 이 같은 컬렉션이 완성되지 않는다. 문화재를 아끼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높은 안목과 노력에 감명받았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편, 리움의 수장이 갑작스럽게 떠나며 진공상태에 놓인 사이, 한국 미술계에서는 파라다이스 그룹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전필립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의 부인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이 서 있다. 파라다이스의 컬렉션도 전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주요 작품들은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와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골든 레전드〉,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의 〈무제〉,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GREAT GIGANTIC PUMPKIN〉,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CONTINENTAL SPLASH〉, 카우스(Kaws)의 〈Together〉, 제프 쿤스(Jeff Koons)의 〈게이징 볼 (FARNESE HERCULES)〉 등이 꼽힌다.


좌 이주경 〈갈색 배경의 누드〉 1935 캔버스에 오일 73×53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우 김지원 〈맨드라미〉 2006 오일에 린넨 228×182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이주경 〈갈색 배경의 누드〉 1935 캔버스에 오일 73×53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김지원 〈맨드라미〉 2006 오일에 린넨 228×182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공립미술관 컬렉션, 단순히 돈만의 문제일까


이처럼 주요 미술관 사례를 살펴보면, 컬렉션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전제조건이 재원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기관의 방향성과 정체성도 주요 팩터다. 윤해정 이화여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미술관은 단지 소장품을 보관하는 용기가 아니다. 지역, 국가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일원으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이에 맞는 미션과 비전을 수립해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에 맞는 소장품을 수집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로 감동과 상상력이 넘치는 사회’를 비전으로, ‘미술 문화를 나누는 세계 속 열린 미술관’을 미션으로 하고 있다. 윤해영 교수는 “좋은 단어들이나, 미션이나 비전이 모호해 조직의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판단 근거로 작용하거나, 궁극적 지향점이 되지 못한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추상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국공립미술관이 놓여있는 맥락적 한계도 존재한다. 독립기관이 아니라 대부분 산하기관이기에 관장 선임 등을 놓고 늘 정치적 논란에 시달린다. 정권이 바뀌면 예정됐던 전시 방향도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더 그렇다. 관료제 특유의 위험 회피적 성격도 있다. 공모-추천-선정위원회를 거치며 컬렉션 후보들을 추려 나가지만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하는 의문은 늘 제시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위원들의 개인적 취향을 누를 만큼 공평한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또 큰 작품을 하나 사면 다른 작품들을 살 수 없는데, 이 같은 리스크 테이킹을 하기가 국가기관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장품 연구 강화도 주요 과제다. 이미 학예사들이 연구를 통해 주요 작품을 선별해 내고 있지만, 이들의 권한 및 책임 확대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임우근준 평론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은 걸작선을 지향하는 건 아니고, 국가미술관이 그래야 한다는 당위도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시대 대표성을 갖는 작품을 축적했기에 나름의 미술사적 얼개를 보여줄 수 있다. 앞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했다.


Collections exhibition 〈Stories of Finnish Art〉 at Ateneum Art Museum Photo: Finnish National Gallery Hannu Pakarinen.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Collections exhibition 〈Stories of Finnish Art〉 at Ateneum Art Museum Photo: Finnish National Gallery Hannu Pakarinen.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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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국가와 공공 유산으로서의 소장품 : 프랑스」, 퍼블릭아트 5월호
김미혜, 「기부와 후원의 결정체 미국」, 퍼블릭아트 5월호


※ 이 원고는 퍼블릭아트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퍼블릭아트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이한빛

헤럴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