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라. 당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무엇이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지 궁금해하라. 호기심을 가져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말처럼 우리는 더 이상 우주의 세계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비대면의 생활화는 가상과 초월의 세계로 확장되어 갔고,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 같은 세상이 삶의 전반에 공존하고 있다. 편집부는 궁금해졌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그래서 이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다. 먼저 미래 삶의 화두로 거론되는 메타버스, 멀티버스의 개념이 무엇인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 알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이 예술계에서는 어떻게 확장되고 비전을 형성하는지 살피며 인식의 폭을 확장해나간다. 끝으론 미술계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대체 불가능 토큰(NFT)의 강점과 효과가 무엇인지, 과연 NFT가 미술시장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톺아본다. 그저 막연하고 어렴풋하게만 느껴졌던 다중우주의 세계, 지금 함께 떠나볼 시간이다.

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메타버스 이전의 초월 욕망, 사이버공간
물리적 세계의 한계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것, 즉 물질 초월(physical transcendence)의 인간 욕망은 꽤 오래됐다. 아니 유사 이래 계속되지 않았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가령 인간 의식과 논리의 심연인 무의식과 꿈에 대한 탐험, 시공간 제약을 초월하는 타임머신 시간여행, 지구 밖 미지의 우주 행성과 또 다른 평행 우주의 관찰 등 따져보면 끝이 없다. 이들 ‘초월’의 차원들은 인간에게 그저 주어진 물리적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는 또 다른 미지로의 상상과 초월의 입구와 같았다.
무엇보다 물질 초월은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욕망의 발현이기도 했다. 현실 세계가 짓누르는 물질적 고통과 무질서에 대한 불만은 인간에게 새로운 초월 욕망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특히 ‘기술’을 창의적으로 다뤄 문명 세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인간만의 종적 능력은 이와 같은 초월 욕망을 현실로 투사하는 실행력이라 볼 수 있다.
인간 역사에서 기술로 매개된 물질 초월의 이상은, 디지털 인터넷이 발명되면서 좀 더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인터넷은 현실의 존재론적 조건이 주는 한계와 부족함을 초월하는 최적의 기술적 실제 같았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터넷의 태동을 마주하며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혔던 현실 물질세계의 땀, 고통, 가난, 빈곤, 전쟁 등이 사라지고 ‘마찰 없는(friction-free)’ 자본주의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할 정도였다.
‘사이버공간(cyberspace)’은 1990년대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했던 은유적 용어가 됐다. 인터넷이 당대의 기술 현실이었다면, 사이버공간은 인간의 초월 욕망이 투사된 문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사이버공간은 물질 초월의 비유적 데이터 공간개념으로 쓰였다. 알려진 것처럼, 사이버공간이란 말은 1984년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뉴로맨서(Neuromancer)』란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원래 소설에서 사이버공간은 컴퓨터 네트워크들의 광범위한 전자 접속망인 ‘매트릭스’로 매개되는 인간과 기계 변형의 미래 세상을 묘사한다.

메타버스의 탄생
이번에는 ‘메타버스(metaverse)’가 그 시절 사이버공간을 대신해 인터넷 기술을 상징하는 새롭고 강력한 용어로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초월(메타)’과 ‘세계(유니버스)’가 합쳐진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사이버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은유적 개념처럼 느껴진다. 물론 기술적으로만 보자면, 물질 초월의 가상 시지각 실제감이 과거 그때보다 더 깊어진 신기술 현실을 반영한 개념이다. 그동안 ‘거울세계’, ‘혼합현실’, ‘세컨드라이프’ 등 유사 개념들이 출현하기도 했으나 유독 메타버스가 이를 흡수하는 가장 강력한 주류 용어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충격이 인간의 온라인 비대면 현실을 강요하면서 메타버스의 논의 강도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메타버스 개념은 최초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란 사이버 펑크 작가가 1992년에 쓴 공상과학(SF)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소개되고 있다. 이는 고글과 이어폰 등 시청각 출력장치에 연결된 마치 실재하는 것 같은 디지털 시뮬레이션 세계로 묘사된다. 여기까진 명칭만 달리할 뿐 사이버공간의 유래나 특징과 흡사해 보인다.
따져보면 둘 사이에 내적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시지각의 질적 변화다. 가령, 가상/증강(VR/AR) 기술의 발전은 ‘집’이라는 단어와 같이 빈약한 상징을 주고받는 대신에 우리에게 3차원 환경의 주택을 거닐며 ‘집’을 음미할 수 있게 했다. 가상현실을 처음 고안하고 상용화한 재런 러니어(Jaron Lanier)는, 우리가 ‘탈상징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이버공간 속에서 집은 언어적 상징 대신 인공 사물 그 자체 안에서 거주를 체험하는 의미로 신체 감각된다.

메타버스에 이르면, 사이버공간 속 가상의 집 개념을 한 단계 더 밀고 들어간다. 이는 단순 가상 체험을 넘어선다. 누군가 원하면 메타버스에 직접 집을 설계해 짓고 살면서 친구를 초대해 파티를 열 수 있다. 집을 가상 자산화해 지적 재산으로 경매 거래 가능한 무형의 부를 창출할 수도 있다. 단순 초월 욕망과 달리 메타버스는 가상에서 다시 현실 논리로 회귀하는 기술 감각을 강조한다.
사이버공간은 물질계 논리를 인터넷 기술을 통해 디지털계로 확장하려는 욕망에 가까웠다. 어찌 됐건 중심축은 현실이었다. 메타버스로 오면, 물질과 디지털 논리가 서로 혼합되고 때론 뒤집힌다. 자주 디지털과 가상의 권력 논리가 현실보다 우세하고 압도한다. 이를테면, 메타버스의 입장을 위해 누군가 아바타(avatar, 가상 캐릭터)를 만든다. 이 아바타는 나 대신 가상의 사무실에 출근한다. 그곳에서 출근을 알리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른 아바타들과 회의한다. 일과 후 파티에도 참석한다. 물론 인간 아바타들이 이와 같은 신체 접촉 활동을 대리한다.
보통 사이버공간에서는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 그곳에 머물고 그것의 현실 구속력이 적었던 반면, 메타버스의 가상 인간 활동은 헛되게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물질적 조건, 즉 경제 수익, 인간관계, 사회 영향력으로 직접 연결되고 되먹임된다. 가상이 실제가 되는 것이다.

상업적 욕망의 확장태, 메타버스
오늘날 메타버스를 주도하는 주체가 주로 빅테크와 문화산업임을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메타버스는 가상의 증강 현실 속에서 오락, 쇼핑, 사회, 경제 활동을 생생하게 연결하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들 흐름의 한 축에는 전통 게임업계가 있다. 닌텐도의 ‘동물의 숲’ 게임에는 바이든 대통령 대선 시기 선거 캠프가 차려지고 온라인에서 이는 아바타들을 향한 유세 창구가 된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기 어려워진 대학생들은 가상의 블록 건축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자신들의 대학 캠퍼스 건축물을 재현했다. 그곳에서 수업을 하고 가상졸업식을 개최했다. ‘로블록스(Roblox)’란 오픈 게임 플랫폼에는 현재 이용자 중 200만 명 정도가 게임 개발을 위해 온라인으로 출근하고 그 안에서 ‘로복스’란 가상화폐를 거래한다. 일상 정치, 대학, 직장이 게임과 만나 혼합되고, 게임 속 활동이 일상이 되고 현실 생존을 위한 벌이와 연결된다.
문화산업의 변화 또한 눈에 띈다. 에픽게임즈(Epic Games)는 액션 슈팅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에 만든 ’파티 로얄’이란 콘서트 무대를 활용해 뮤지션을 끌어들였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은 이곳에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총 5회 공연으로 수천만의 관객을 모으고 수백억 원의 관람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2억 명 유저를 지닌 제페토(Zepeto)에는 ‘블랙핑크’ 아바타들이 가상 팬 사인회를 열어 수천만 명이 넘는 케이팝 팬들을 모으기도 했다.
메타버스를 통한 비즈니스의 정점은, 가상의 디지털 사물을 모두 실물 자산처럼 사고파는 움직임에 있다. 이미 자본주의의 지적 재산권은 새롭게 지식과 데이터를 사유화하는 강제 법체계로 작동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 추종자들은 디지털 사물에 화폐 가치를 매겨 분양하거나, 특정의 암호화폐 기술을 가미해 가상의 아이템에 현물 자산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한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물론이고, 이른바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이하 NFT)은 메타버스를 떠받치는 무형 자원의 실물 자산화 기제로 자리 잡고 있다. 비트코인이 일반 돈처럼 교환 가능한 화폐 역할을 한다면, NFT는 자산 가치는 있으나 각 아이템의 가치가 다른 고유값이 다른 등기부 등본이나 집문서와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블록체인 기술을 써서 원소유자와 거래 이력이 정확히 명시돼 배타적 소유가 분명한 무형 자산이 된다. 그래서 NFT는 메타버스에서 만든 그 어떤 무형의 게임 혹은 소셜 아이템이나 디지털 아트 작품들을 거래하는데 최적화된 기술이자 화폐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세속주의의 전망을 넘어
메타버스와 함께, 우리 주위에 ‘멀티버스(Multiverse)’란 물리학 용어가 유사 개념으로 심심찮게 쓰인다. 우리가 아는 관찰 가능한 우주는 지구 행성을 포함한 유일한 ‘단일(유니)’버스 개념이다. 단일 우주를 초월한 ‘다중(멀티)’우주는 이 세계의 모습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 더 큰 우주의 일부이거나 중첩되고 어긋나있는 수많은 우주 혹은 여러 겹겹의 평행 우주를 가정한다.
특히 신기술의 발전과 관련해 보자면 멀티버스는 기술로 축조된 또 다른 시뮬레이션 된 디지털 우주의 생성 가능성을 뜻한다. 현실 물질 초월(메타)의 맥락보단 여러 세계의 다층(멀티)적 공존을 강조한다는 점이 색다르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주어진 세계 밖 또 다른 무수한 세계들의 공존에 대한 믿음과 이를 신기술에 의지해 또 다른 상상의 시뮬레이션 세계들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긍정이 깔려있다.
따지고 보면 사이버공간, 메타·멀티버스 개념 모두에는 인간 기술에 대한 무한한 낙관이 깔려있다. 기술을 통해 현실의 구질구질한 물질세계의 질곡과 신체의 한계를 초월해 인간 영생과 부 축적의 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열광이 그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메타버스 문화는 인간이 아바타에 의지해 또 다른 정체성을 구성해 새로운 주체 감각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대면 관계 속에서 사회적 소통의 감각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디지털 경제 활동이 이곳에서 이뤄지면서 메타버스 관련 직업이 늘어날 가능성 또한 높아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메타버스의 징후들은, ‘메타’와 ‘멀티’ 우주라는 단어들이 주는 상상력의 층위나 감각만큼 그리 신선해 보이질 않는다. 오래전 사이버공간의 구상에 비해서도 그 내용이 초라하다. 메타버스는 소비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상업화된 시뮬레이션 공간으로 축소되고, 주로 개미 투자자들의 ‘수혜주’로만 각광받는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맥락에서 보면, 메타버스의 비전을 축조하는 지배적 주체들은 게임, 문화, IT업계 플랫폼 장치를 지닌 닷컴기업이 지배적이다. 이미 플랫폼 알고리즘 논리가 우리의 현실 속 문화 취향을 조정하고, 배달노동자의 실시간 동선을 통제하며며, 우리 의식의 편견을 강화하는 맥락 속에서 메타버스의 특징적 징후를 읽어야 한다. 이는 가상과 현실이 역전된 또 다른 진혼곡 같은 우울한 미래를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고 있다. 메타버스는 초월과 자유의 감각보단 외려 다중 정체성의 혼란, 과잉 시장화, 가상 자산과 부의 논리 확대, 아바타들의 데이터 권리 오남용 등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사이버공간이 기술 이상주의에 경도됐다면, 안타깝게도 오늘 메타·멀티버스는 디지털 세속주의의 결정판이다. 메타버스로부터 본말이 전도된 기술 과잉의 왜곡을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빅테크의 기술 전망에 비해 메타버스에는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 기술과 인간 호혜의 공동체적 전망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라도 예술의 기술미학적 감수성이 요구된다. 이는 메타버스의 세속화 논리를 그 중심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기술비판 정서와 공통감각을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 그리고 - (2) 참여, 개방, 공유의 신세계
메타버스 그리고 - (3) 대체 불가능한 시도들
이광석(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은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상호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비평, 저술과 현장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비판적 문화연구 저널 『문화/과학』 공동 편집주간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일한다. 주요 연구는 기술문화연구, 예술 행동주의, 플랫폼과 커먼즈, 인류세, 포스트휴먼 등에 걸쳐 있다.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의 배신』, 『데이터 사회미학』, 『데이터 사회 비판』, 『옥상의 미학노트』, 『뉴아트행동주의』, 『디지털 야만』, 『사이방가르드』 등이 있고, 기획하고 엮은 책으로는 『사물에 수작부리기』,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불순한 테크놀로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