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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그리고 - (2) 참여, 개방, 공유의 신세계

posted 2021.07.01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메타버스(Metaverse)’는 갑자기 세상의 판도를 흔들며 등장한 새로운 무언가가 아닌 가상세계가 확장되고 진화하며 구축된 개념으로, 1992년 SF 소설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가상현실로 구현한 인터넷’으로 묘사하는 단어로 등장시켰다. 메타버스는 2000년대 초반 ‘혼합현실’과 ‘사이버 비즈니스’ 등의 개념과 함께 다시금 대두되었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이원론에서 벗어나 가상공간을 현실 세계로 옮겨 실제 생활과 동일한 활동, 즉 재화 가치 창출, 공동의 경험 구축을 가능케 하며 실시간으로 현실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확장된 의미로 사용된다.


흔히 가장 유명한 초기 메타버스의 예로 세컨드라이프를 언급한다. ‘린든 랩(Linden Lab)’의 CEO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이 앞서 언급한 『스노 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한 세컨드라이프는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 서비스로, 사용자는 세컨드라이프를 통해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린든 달러’라고 하는 가상 화폐를 통해 가상 부동산은 물론 디지털 오브젝트를 제작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2006년 당시 전 세계를 열광시키며 폭발적으로 사용자가 늘어났지만, 이듬해 아이폰 3G의 등장과 함께 트위터와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잊혀졌다. 그러나 세컨드라이프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메타버스가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9년 국내에 소개된 ‘다다월드(Dadaworlds)’는 광운대 건축공학과 신유진 교수가 구축한 가상공간 플랫폼으로,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타버스처럼 다다월드 내에서 상거래가 가능했으며 평당 10만 원에 400개의 점포도 분양했었다. 당시 삼성증권, 외환카드(현재 하나카드), 한양대 병원 등이 다다월드 내에 분원을 운영하여 진료, 증권거래가 가능했고 서울경찰청은 사이버 파출소 설치를 추진한 바 있다. 다다월드는 현실의 공간을 그대로 구현한 ‘디지털 트윈’을 꿈꿨던 가상공간이었던 만큼 사이버 시민들이 사는 다다월드 연방국에는 자유마을, 행복마을 등이 있었다. 대통령은 물론 중앙정부청사와 교회, 심지어 지하철도 있었다. 그러나 다다월드는 가상 거래에 대한 불신과 함께 ‘IT 버블’이 꺼지면서 자금난을 겪게 되었고, 그 당시 인터넷 인프라 여건에 비해 너무 앞서간 서비스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채 2000년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다월드가 등장했던 1999년은 웹 1.0 시대였으며 ‘싸이월드’ 같은 정보를 모아서 축적하는 것 외에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던 웹 2.0 이전에 구축된 메타버스였던 만큼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서비스였다. 신유진 교수팀은 이후 2007년 ‘터23’을 선보이며 가상 화폐가 아닌 휴대폰 결제, 신용카드 결제, 계좌이체 등 실제 화폐 통용과 주택 청약 및 분양도 가능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공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로블록스(Roblox) 스크린샷 roblox.com. 퍼블릭아트 이미지 제공.

로블록스(Roblox) 스크린샷 roblox.com. 퍼블릭아트 이미지 제공.

2000년대 초기 메타버스 모델들을 살펴보면 현재의 모습과 비슷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메타버스는 확장 현실로 인식되며 현실에서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케 했다. 차이점이라면 당시에는 가상에서도 가능한 현실의 간접 체험으로서 플랫폼이 어필되었다면 2019년 코로나 이후의 메타버스는 대안이 아닌 유일하고 안전한 공간으로의 인식의 변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빠르게 익숙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터23’에서도 서울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쇼핑이 가능했지만 2020년 닌텐도사의 게임 ‘동물의 숲’을 통한 선거 운동과 집회 시위, 패션 회사들이 개발한 게임을 통한 패션쇼 등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모일 수 없고,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메타버스와 체험은 기존에 부정적이었던 게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냈다.


나, 너, 우리가 함께한다는 경험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 개최된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의 콘서트 영상 스크린샷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 개최된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의 콘서트 영상 스크린샷

메타버스는 ‘온라인 게임’과 개념상 많은 특징을 공유한다. 최근에는 ‘포트나이트(Fortnite)’ 게임 내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며 동시 접속 1,200만 명을 이끌어낸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의 경우나 플레이어가 직접 자신의 맵과 콘텐츠,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Minecraft)’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게임을 프로그래밍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Roblox)’ 등이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렇듯 최근의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을 구분 짓지 않는 융합된 세계 내에서 문화체험, 네트워킹, 디지털 연대, 경제적 활동 등의 높은 자유도를 부여함으로써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메타버스를 점차 게임의 형식 차용에서 분리시켜 본격적으로 현실로 진입시키기 위한 보다 전략적인 선택으로 보여진다. 세컨드라이프나 초기 가상세계의 모델보다 현재 메타버스가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도 두 개의 삶을 살거나 대체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닌 동시에 양립하는 세계관이 자유롭게 현실과 호환되는 점 때문일 것이다. 즉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대안적인 세계가 아닌 ‘이것도 나, 저것도 나’인 동시에 스크린 안의 나와 현실의 내가 물리적인 제한이나 시차 없이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확장된 시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5세대 이동통신이 등장하면서 눈부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던 디지털 이원론(Digital Dualism)은 이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으로의 이행을 앞두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와 미래학자들은 미래의 소비자가 메타버스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메타버스에서 친구와 만나 쇼핑을 즐기고 가상세계 인플루언서를 통해 팁을 얻고 메타버스에서 구매한 아이템을 현실에서 배송받는다. 과거에 ‘또 하나의 세상’을 표방한 디지털 공간은 이제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의 주인공 웨이드의 말처럼 사용자의 정의에 따라 의미를 가지는 유일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확장현실(XR), 전자 상거래의 활성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함께 코로나라는 상황 또한 메타버스에 대한 진입을 가속화시켰다. 비대면 공연과 쇼핑, 각종 문화 활동과 커뮤니티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자유도가 높은 오픈 월드에서 만나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제약 없이 만날 수 있으며 빠르다는 장점 때문에 10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제페토(Zepeto)’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IT 산업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패션 산업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생활공간으로의 연결을 유도한다. 졸업식에 갈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미국의 한 대학은 마인크래프트에 캠퍼스를 그대로 구현하여 졸업식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최근 건국대학교는 대학 축제를 메타버스로 구현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바타를 이용해 현실과 똑같이 구현된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관람하고, 게임도 즐길 수 있도록 제공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메타버스는 타인과 연결되는 일상의 공간이자 현실보다 흥미로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줄리에타 길(Julieta Gil)  Lumen Prize 2020 Gold Award. 퍼블릭아트 이미지제공.

줄리에타 길(Julieta Gil) Lumen Prize 2020 Gold Award. 퍼블릭아트 이미지제공.

미술계 역시 코로나로 인해 VR 갤러리, VR 아트페어뿐만 아니라 메타버스를 통해 대화와 네트워크가 가능한 플랫폼을 선보였다. 전염병으로 인해 비엔날레, 아트페어, 해외 인적 교류가 차단되었던 2020년을 지나 디지털을 활용하는 공급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며 디지털 공간에서 전시를 관람하거나 작품을 거래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작품 제작, 운송 혹은 전송, 홍보, 판매, 프레젠테이션, 구매)이 디지털 내에서 가능한 메타버스의 활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초기 다다월드나 세컨드라이프에서 시도했던 물물교환, 재화 가치 생산이 가상에서의 행위가 현실과 연결되는 개념에 집중했다면 최근 메타버스와 디지털 공간은 ‘대체 불가능 토큰(NFT)’이라는 가상 자산화 기술과 더불어 디지털로 예술작품을 사고파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상업 갤러리와 아트페어의 경우, 보다 빠르게 기술을 접목하여 NFT 거래를 통해 시장 활성화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NFT의 불안정한 가치 변동과 예술작품이 가지는 원본성과 아우라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 같은 NFT 거래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이러한 디지털 예술작품에 대한 예술적 가치 평가와 비평보다는 화제성과 투자 목적이 부각되면서 예술의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견해와 예술작품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시각 차이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리조마틱스X일레븐플레이(Rhizomatiks X ELEVENPLAY)  2021 Installation view of <rhizomatiks_multiplex> 2021,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Photo : Muryo Homma(Rhizomatiks). 퍼블릭아트 이미지 제공.

리조마틱스X일레븐플레이(Rhizomatiks X ELEVENPLAY) 2021 Installation view of 2021,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Photo : Muryo Homma(Rhizomatiks). 퍼블릭아트 이미지 제공.

기술과 플랫폼의 발전과 변화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시공간 인지 조건을 변화시켰고 우리 자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앞으로도 메타버스, 멀티버스, NFT 등 마케팅과 최첨단을 앞세운 생경한 단어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이를 둘러싼 기술과 환경은 촘촘하게 이어져 연쇄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과거와 연결해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도, 분석도 구체적인 방안과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 거품일 뿐이다 등과 같은 단편적인 판단은 경계하고 과거에 머무르는 것에서 벗어나 사이버 공간, 가상공간, 디지털 공간, 메타버스를 거치며 어떤 유의미한 것들이 발전했고 새로운 세대와 환경은 무엇이 가능해질 것인가에 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관심과 비판은 우리가 소속되어 함께 살아가는 경험과 연결 그 자체를 단단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라 믿는다.


※ 이 원고는 퍼블릭아트 2021년 6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퍼블릭아트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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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큐레이팅을 공부하였다. 디지털 매체 연구와 동시대 미술의 조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미팅룸에서 큐레이팅팀 디렉터로 활동하며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연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