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김나희(작가·미국통신원)

2021년 초반, 미술계와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모두 뒤흔들었던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이하 NFT)’1). 요즘 ‘NFT 한다’고 하면 ‘디지털 기반의 작업을 암호화폐로 파는구나’하는 정도의 의미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만, NFT 자체의 개념은 추상적인 데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분위기다. 또한 반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하며 예술 시장에 전례 없는 금액으로 디지털 에셋(Digital Asset)의 NFT가 판매된 사례가 생겨나고 있어 복잡한 배경 기술을 충분히 탐구하기도 전에 일단 작품부터 올려봐야겠다는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NFT 거래 시장의 주된 참여자가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작동 원리 측면에서 생소한 플랫폼으로부터 일종의 소외 현상을 겪게 된다. 이에 더해, 이더리움(Ethereum) 기반의 NFT 거래가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적 영향력 역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본 고에서는 NFT 거래가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해외의 사례를 중심으로 보다 비판적인 방식으로 NFT를 디지털 작업의 생태계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NFT 판매 플랫폼 개발 자체가 기존 미술 시장에 대한 코멘터리, 전복적인 대안으로서 하나의 작업이 될 수 있는 시도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응원하고자 한다.
NFT는 이미지, 영상, 사운드 등의 디지털 에셋에 대한 메타 데이터(미디어 자체, 제작자 이름, 제작일 등)와 연결된 고유한 토큰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웹의 분산화된 버전으로 볼 수 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등록한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실상 작품의 NFT 거래가 일어나는 것은 작품 자체가 오가는 행위라기보다는 이 토큰을 주고받는 과정에 가깝다. 이 과정이 블록체인 중에서도 대중화된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주로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일종의 네트워크 사용 비용으로서 가스비(Gas Fee)가 발생한다. 가스비는 모든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비용이지만, 특히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경우 분산 컴퓨팅에 드는 자원이 다른 네트워크에 비해 많은 편이라 가스비가 높게 책정되어 있다. NFT 플랫폼에 작품을 올리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에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새로운 데이터를 추가하는 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스비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 비용이 작품 한 점당 대략 60달러(한화 약 6만 8,000원)에서 300달러(한화 약 34만원) 사이로, 적지 않기 때문에2) 초기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작가가 NFT를 시작하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가스비가 많이 드는 만큼, 비효율적인 분산 컴퓨팅 시스템이 소모하는 엄청난 에너지와 이로 인해 증가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 역시 존재한다.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두 개의 NFT 플랫폼에서는 이더리움 대신 테조스(Tezos)와 비트마크(Bitmark)라는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사용해, 사용자들의 가스비 부담을 줄여주고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NFT 플랫폼은 히크엣넝크(Hic et Nunc)3)로, 라파엘 리마(Rafael Lima)라는 브라질 출신의 개발자가 테조스 블록체인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테조스는 이더리움 운영에 수반되는 과도한 연산 처리량의 원인인 작업증명방식(Proof of Work)이라는 합의 메커니즘(Consensus Mechanism)4)을 지분증명방식(Proof of Stake)으로 바꿔 연산 효율성을 개선한 블록체인이다. 그래서 테조스로 제작된 NFT 시장인 히크엣넝크는 거래 참여자들에게 이더리움 기반 시장보다 굉장히 낮은 가스비5)를 청구하여, 초기 자본금이 부족하지만 NFT에 입문해보고 싶은 작가들에게 금전적인 문턱을 낮췄다. 또한 테조스를 통해 간단해진 연산 과정 덕분에 거래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이더리움을 사용했을 때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졌다.6) 이더리움 역시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2.0 버전부터는 테조스처럼 보다 효율적인 합의 메커니즘을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히크엣넝크는 이름의 뜻7)처럼 ‘지금, 바로, 여기서’ 테조스 블록체인을 통해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다른 플랫폼에 비해 좀 더 디지털 기반의 작가들에게 특화되어, 3D 모델이나 자바스크립트 기반의 게임을 업로드 할 수 있고 이를 생동감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실시간 렌더화면도 제공하고 있다. NFT에 관심 있는 누구나 ‘지금, 여기’서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토콜 선택에서부터 인터페이스 디자인까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플랫폼이다.

다음으로 소개할 플랫폼은 페럴 파일(Feral File)8)이다. 페럴 파일은 제너러티브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코딩 라이브러리인 프로세싱(Processing)을 개발한 케이시 리스(Casey Reas)에 의해 기획, 제작된 NFT 판매 플랫폼이다. 아트페어에서 큐레이션과 판매가 함께 이루어지듯, 페럴 파일 웹사이트에서 한정된 기간의 기획 그룹전을 통해 선보여지는 작업이 같은 페이지에서 NFT로 판매까지 이뤄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히크엣넝크가 테조스 블록체인을 선택한 것처럼 이더리움 대신 ‘비트마크’라는 좀 더 효율적인, 그래서 보다 환경친화적인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NFT 거래에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페럴 파일이 다른 NFT 플랫폼보다 독특한 점은 소프트웨어 아트를 그 자체로 보여주고 판매하는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페럴 파일의 첫 번째 전시로 진행된 <소셜 코드(Social Codes)>에 포함된 작업이 모두 브라우저 기반의 제너러티브 아트라는 점에서 플랫폼의 기획 특성이 확실히 드러난다. 전시에 입장하면 10명의 작가가 자바스크립트로 작성한 10점의 작품이 하나씩 브라우저에 등장한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댄서인 마야 맨(Maya Man)의 <네가 향하는 곳으로 따라가도 될까?(Can I go where you go?)>처럼 마우스 커서를 활용해서 적극적인 인터랙션을 유도하는 작업에서부터, 새로 고침 할 때마다 랜덤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며 시선을 사로잡는 방사형 오브젝트가 등장하는 마놀로 감볼라 나온(Manolo Gambola Naon)의 <불편한 꿈(Uneasy Dream)>까지를 집중해 감상하다 보면 꼭 작품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페럴 파일 웹사이트를 통해 각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 수집하기’ 버튼을 눌러 컬렉터로서 소유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권리를 살펴보면, 각 작업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여느 웹페이지가 아니라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서 블록체인 프로토콜에 의해 보호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페럴 파일의 NFT 거래에는 이미지, 영상, 사운드 등 다른 디지털 매체 작품에 비해도 특히 소유권 개념이 쉽게 자리 잡기 어려운 웹 기반 작업을 안전하게 판매하기 위해 이에 최적화된 비트마크 블록체인9)이 사용되었다.

페럴 파일이 작품의 NFT화를 전제로 두고 전시 형태의 마켓플레이스를 선보였다면, 지금부터 소개할 피시스 오브 미(Pieces of Me)10)에서는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큐레이팅 된 작품들을 선보이되, 그것들을 NFT로 소장할지 여부는 컬렉터가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트랜스퍼(Transfer) 갤러리의 켈라니 니콜(Kelani Nichole)과 웨이드 왈러스타인(Wade Wallerstein)는 작가들이 생소한 NFT 거래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심리적 부담감을 갖게 되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피시스 오브 미를 기획했다. NFT 거래 플랫폼 레프트갤러리(left.gallery)11)의 운영자 함 반 덴 도르펠(Harm van den Dorpel)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협업하여 완성된 플랫폼, 피시스 오브 미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작품을 직접 민트화12)시킬 필요가 없다. 대신 컬렉터들에게 구매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여, 컬렉터가 NFT로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면 레프트갤러리에서 제공하는 민트화 인터페이스를 거쳐 작품을 소유할 수 있고, 이 방법을 원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갤러리에서의 구매 방식처럼 돈을 지불하고 작품을 받을 수도 있도록 했다. 또한 작가에게는 높은 가스비를 지불하고도 판매가 불확실한 NFT 시장에 작품을 내놓지 않아도 작품을 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현재 피시스 오브 미에는 올해 4월부터 5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고 있다. 모든 작가가 같은 방식으로 판매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며, 그중에는 NFT 시장으로의 진입을 더 무한한 경쟁이 펼쳐질 자본주의로의 편입이라고 생각해 전시에는 참여하되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 적극적으로 다른 플랫폼에서도 NFT로 작품을 판매하던 작가들도 참여하고 있어, 피시스 오브 미 자체로도 NFT 붐 초반의 혼란스러운 미술계 모습을 작게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사례 모두 별도의 기획자, 개발자가 플랫폼을 제작하고 그곳에 작가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면, 마지막으로 소개할 솔번시(Solvency)13)는 작가 개인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할 플랫폼 기획, 제작을 모두 총괄한 사례다.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에즈라 밀러(Ezra Miller)에 의해 만들어진 솔번시는 웹 제너러티브 아트에 특화된 NFT 판매 모델을 새롭게 정의한 시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NFT는 디지털 에셋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하는 가상의 오브젝트이기 때문에 그것과 연결될 디지털 에셋, 즉 작품의 형태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성을 이용해 밀러는 작품의 판매가 이뤄질 때 부여된 NFT의 해시값(hash value)14)으로부터 랜덤한 숫자를 도출해서 자신의 웹GL(WebGL)15) 제너러티브 작품을 렌더링할 때 쓰이는 변수로 사용했다. 즉 컬렉터 모두 같은 작업을 구매했지만, 그들 각자 제너러티브 아트의 특성상 다시 반복되지 않을 고유한 에디션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밀러는 기존 NFT 시장에서는 적절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지 않아 제너러티브 아트 작품을 녹화하거나 캡처한 이미지 형태로밖에 팔 수 없는 상황의 아쉬움으로부터 이 기획을 시작했다. 이렇게 개인의 작업에 특화된 솔번시의 마켓플레이스 기획은 작업 자체의 미적 가치와 더불어 수많은 NFT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결과 4월 22일 오픈한 500개의 에디션은 하나당 0.4ETH16)에 오픈 12시간 만에 완판되었다. 판매된 모든 에디션은 솔번시 홈페이지에 전시되어 있다.
히크엣넝크, 페럴 파일, 피시스 오브 미, 솔번시 모두 결과적으로 도출해낸 플랫폼 인터페이스와 NFT 판매 방식은 다르지만, 기존 NFT 시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로써 세상에 등장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을 통해 민트화된 작품이 처음 거래된 것은 약 7년 전17)으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의 관심을 받고 활발한 거래가 펼쳐지게 된 것은 올해 초부터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관련 플랫폼과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전에 없던 과도한 자본과 관심이 NFT 기반의 디지털 아트 시장에 몰리고 있는 지금, 달뜬 기대감과 조급함을 드러내는 ‘NFT 한다’, ‘NFT 할 거다’라는 선언보다는 NFT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할 시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사례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존 NFT 플랫폼으로는 ‘대체 불가능한(Non-Fungible)’ 독특한 시도(Trial)를 해 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번 NFT 시장의 유행이 기믹(gimmick)한 투자처를 찾는 암호화폐 자산가들의 변덕스러운 관심사로 끝날지, 디지털 아티스트의 작품 소유권과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는 계기로 자리 잡을지는 그런 ‘시도’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질지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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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미국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