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1년 12월 “미술시장과 온라인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라는 주제로 미술품 감정 및 유통기반 구축(KAMS Art Market & Appraisal)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다. 컨퍼런스에서 팬데믹 이후 다양한 양상으로 확대된 온라인 미술시장의 움직임과 새로운 컬렉터층을 파악하고, 올 한해 미술시장 키워드로 급부상한 NFT와 메타버스 동향을 살펴보는 한편, 고도로 디지털화된 미술시장에서 데이터의 보안과 손실, 디지털 산업이 촉발한 환경위기, 관련 법규, 제도 및 경제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본 글은 KAMA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지가은 디렉터의 '디지털 아카이브와 재난'에 대한 발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이 글은 미팅룸1) 에서 2021년 말에 출간한 공저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에서 필자가 집필한 5장 '아카이브와 재난'을 토대로 작성되었다.2) 5장 ‘아카이브와 재난’은 아카이브가 맞닥뜨릴 수 있는 물리적인 재난과 디지털 재난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면서,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문화유산의 기록관으로서 수집하고 관리하는 아트 아카이브의 경우에 한정해서 논의한다. 그래서 책에서 다룬 아카이브 재난을 둘러싼 대비나 대응책에 관한 내용은 각기 다른 형태나 소속을 가진 다양한 아카이브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분야와 형태를 막론하고 아카이브가 처할 수 있는 재난에 대응하는 기본적인 의식을 갖추고 이에 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은 공통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는 디지털 기술 환경의 진화가 거듭되고, 환경적으로는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는 미래 세계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인류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뿐만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형태의 재난을 빈번하게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개인, 기업, 혹은 기관의 차원에서, 그리고 각 아카이브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의 특수성에 따라 미래의 잠재적인 재난에 대비하는 과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코스이다. 이 글은 특히 디지털 아카이브와 디지털 재난에 초점을 두고 그 개념과 의미, 여파를 정리하는 한편, 이를 미술계의 상황에 적용해보고 대비책을 짚어보고자 한다.
디지털 재난의 의미
먼저 디지털 재난은 ‘기술적 오류, 사이버 침해 및 해킹과 같은 사이버 테러 등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위험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국민의 생명, 재산과 국가에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재난’을 뜻한다.3)
3년 전 우리나라에 발생했던 대표적인 디지털 재난 사례는 2018년 11월에 서대문구에 있는 KT 아현지사의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다. 이 화재의 여파로 서울 서대문구를 비롯해 마포구, 중구 일대를 포함한 일부 수도권 지역까지 KT망을 사용하는 초고속 인터넷과 유무선 통신 서비스에 장애를 겪으면서 휴대폰, 공중전화, 문자는 물론이고 ATM이나 신용카드 단말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출금, 이체,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서 일대에 상거래와 금융업무가 모두 중단되었다. 화재 진압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피해 복구에는 일주일 이상이 걸렸고 피해 보상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며 피해 보상 금액도 수백억 원에 달했다. KT 정보통신망 서비스가 급작스럽게 중단되면서 말 그대로 관련 경제활동과 일상에 예기치 못한 제동이 걸린 것이다.4)
KT 화재는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화재라는 물리적 재난이 어떻게 통신망과 인터넷을 마비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한 연쇄적인 여파와 피해 규모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재난이었다. 이런 오프라인상의 재난과 온라인상의 해킹이나 서버 장애와 같은 사고가 개별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IT 기술력과 수용력이 높고,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높을수록 이런 디지털 재난의 위험도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미술계 디지털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확대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외 아트씬의 주요 무대와 시장의 주요 거래 경로가 온라인으로 대폭 옮겨갔다. 다시 말해, 미술계의 온라인 의존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온라인 미술시장의 생태계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처음에는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서,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아카이브를 개방하는 데에서부터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보유 콘텐츠를 공개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다양한 차원의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여 관람객의 참여나 개입, 관람객과의 소통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오픈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활용하면서 미술관 및 박물관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과 기능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기에 이르렀다.
미술시장도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전시와 판매로 온라인 유통 경로를 확대했다. 갤러리 및 경매회사는 오프라인보다 더 많은,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정보를 생성하여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이 작품의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하는 간극을 채워가고 있다. 이를테면, 블록체인을 활용한 작품 관련 정보, 거래나 소장 이력과 같은 정보의 아카이빙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토대로 한 NFT 미술시장의 등장과 약진은 디지털 플랫폼의 가능성을 크게 확장했다.5)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과 공유가 확대될수록 관리하는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많아진다. 또 디지털 콘텐츠를 공유하는 온라인 채널이 다양화될수록 전산시스템과 정보의 유통 경로 상 존재할 수 있는 취약 지점도 더 많아진다. 그래서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의 관리, 취약점의 파악, 이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에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디지털 아카이브의 넓은 의미
여기에서 다루는 디지털 아카이브는 다양한 범주와 형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컴퓨터 분야에서 디지털 아카이브는 (1)파일의 일시적인 백업을 의미하기도 하고, 온라인상에서는 더 느슨하게 과거의 자료 모음이나 각종 정보를 집적해 놓은 (2)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의 의미로 사용한다. 폭넓게는 여러 이용자가 함께 생산, 축적, 공유하는 (3)디지털 공유물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수많은 이용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지식의 조합과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술관 및 박물관의 디지털 아카이브는 그 기관이 생산하는 디지털 행정 기록물을 비롯하여 기관이 소장한 실물 소장품과 아트 아카이브의 실물 자료를 디지털화 한 디지털 컬렉션을 모두 아우른다. 한편, 미술시장에서는 갤러리나 경매회사가 보유한 각종 예술작품과 관련한 기록이나, 고객 신상 정보 같은 민감한 내용의 디지털 데이터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카이브의 뜻은 아니지만, 디지털 아트 컬렉션 그 자체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여기기도 한다. 이제는 대체불가능한 토큰으로 된 NFT 아트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도 등장했다.
미술계 디지털 재난 사례, 그 여파와 위험도
디지털 재난의 잠재성과 위험도, 그 여파를 이야기할 때 디지털 아카이브가 단순히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장고이기보다는, 하나의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는 플랫폼으로서 수많은 이용자에 의해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화하는 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유통되는 디지털 시스템의 인프라나 여기에 사용되는 IT기술의 유형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 클라우드 서비스의 랜섬웨어 공격
미술계에서도 디지털 재난은 일어난다. 첫 번째 사례는 2020년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제 기업인 블랙버드(Blackbaud)를 대상으로 한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이다. 이 랜섬웨어 공격으로 인해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과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를 포함한 미국과 영국 200여 개 문화예술기관의 개인 정보가 도난당했다. 유출된 정보는 기부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소장 작품, 기부 내역과 같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블랙버드는 고객들의 금융정보나 사회 보장 번호와 같은 민감한 데이터는 도난당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추가 피해가 없도록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블랙버드가 해커 조직에게 유출 데이터를 완전히 폐기하는 조건으로 일정 금액의 비트코인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6)
문화예술계를 포함해 수많은 기관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반으로 기관의 디지털 데이터를 백업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의 관리와 보안의 핵심적인 요소는 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위탁하게 된다. 그래서 데이터 보안에 관한 상당 부분을 외부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2차, 3차의 잠재적 피해가 도사린 데이터 해킹
두 번째는 아트바젤(Art Basel) 사례이다. 2021년 10월에 아트 바젤의 모회사인 MCH그룹의 데이터도 악성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해킹으로 침해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의 주요 데이터에 접근해서 이 정보를 노리고 실제 데이터를 빼 간 사건이다.
아트바젤 측은 해커가 고객의 연락처와 같은 데이터에 접근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수위의 데이터까지 접근했는지 정확하게 파악 중이라고만 밝혔다. 그리고 덧붙여 고객들에게 모든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권고했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해킹으로 인한 고객들의 혼란과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바젤 측이 이미 해커들과 협상해서 일정 금액을 지불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아트바젤에 한 번이라도 참가했던 갤러리나 구매 이력이 있는 컬렉터들은 이 데이터 도난으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2, 3차적 금융 사기나 피해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되었다.7)
□ 이메일 피싱
미술계 현장에서는 이메일 피싱으로 인한 금전 사기도 일어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업무 이메일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2020년 네덜란드 에스헤데(Enschede) 지역에 있는 트웬테 국립미술관(Rijksmuseum Twenthe)은 런던의 디킨슨 갤러리(Dickinson Gallery)를 통해서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이메일로 협상하는 과정 중에 있었다. 그런데 이 이메일 대화에 개입한 해커에게 속아서 미술관이 사기 은행 계좌에 수십억의 작품 값을 송금한 사건이었다.8)
블록체인 기술과 NFT 아트의 등장
위와 같은 사례들처럼 하나의 클라우드 서버에 집중된 데이터 보관이나 안전장치가 빈약한 온라인 금융 거래는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 덕분에 데이터의 동시 분산 저장이나 스마트 계약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미술계에서도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작품의 데이터 관리나 작품 보증, 감정 및 평가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생겨났고, NFT 아트가 등장했다.9)
NFT 파일은 파일마다 고유 식별 값이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유일한 가치를 가지는 일종의 디지털 자산이자 보증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간 복제 가능성에 따른 원본성의 문제나 진위 여부 때문에 소장 가치가 저평가되었던 디지털 아트의 판매 활로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10) 데이터의 무결성, 거래의 투명성과 같은 높은 보안성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지만 사실 암호화폐 거래소의 해킹 뉴스는 끊이지 않고 보도된다. 그중에 실제로 몇몇 해킹은 성공해서 어마어마한 금액이 도난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블록체인이 위조나 변조, 삭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해킹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NFT 아트 해킹 사례
NFT 미술시장의 해킹 사례도 자주 들려온다. 그 중 하나는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 해킹 사례이다. NFT 마켓 플레이스 중 하나인 니프티 게이트웨이의 한 사용자 계정이 해킹당해서 수만 달러 이상의 NFT 소장품을 도난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11) 마이클 미러플러(Michael Miraflor)라는 사용자는 2021년 3월에 자신의 트위터에 쓰기를,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자신의 NFT를 훔쳐 다른 소장품을 구입하고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이체했다고 말했다. 12)
또 다른 유명한 해킹 사례는 비주얼 아티스트 비플(Beeple) 작품의 ‘슬립 민팅(Sleepminting)’ 사건이다. 비플은 13년 동안 매일 제작한 이미지 한 점을 5천일 동안 자신의 SNS에 지속적으로 업로드했는데, 이 이미지 5천 점을 모아서 <매일: 첫 5천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이를 NFT로 민팅했다. 그런데 무슈 페르소네(Monsieur Personne)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한 해커가 작가 비플이 만든 이 작품의 두 번째 에디션을 슬립 민팅했다. 즉, 이를 슬립 민팅했다는 의미는 해커가 비플의 지갑에 접근하여 비플의 암호화폐 서명을 통해 NFT를 발행하고 그 소유권을 다시 자신에게 양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NFTHEFT’ 시리즈로 명명하고, 자신이 NFT 보안의 취약성과 그 틈새를 보여주기 위해 고의로 실행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13)
돈이 몰려드는 곳에 해커들이 몰려든다. 미술시장이 호황 분위기를 타면서, 새로운 기술의 신생 온라인 마켓이 등장하고 이를 노리는 해커들과 고도의 수법들이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 일 것이다. 그렇지만 NFT 시장의 보안 안정성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이에 따른 NFT 시장의 안정화된 지속성도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디지털 재난 대비책과 시사점
지금까지 살펴본 디지털 재난 사례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짚어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NFT 미술시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술관 및 박물관의 디지털 아카이브 재난 관리도 그 점검과 보완이 시급하다. 국내외 모두 디지털 재난 관리 체제나 대비책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기관별로 화재나 홍수 등 물리적인 재난 시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재난 대응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디지털 재난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포함한 매뉴얼을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 미술계 재난 유형 연구와 온·오프라인 통합 재난 관리 프로그램 설계
가장 먼저 미술계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재난 유형을 특화하여 연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난 관리의 기본 요소는 예방, 대비, 대응, 복구의 4단계에 따른 온·오프라인 통합 재난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술관 및 박물관에서부터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회사에 이르기까지, 각종 온라인 전시나 마켓 플레이스와 같은 각기 다른 유형과 특징을 가진 기관 및 기업들이 온·오프라인상에서 겪을 수 있는 재난을 분류하고 연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미술계의 기록물이나 데이터는 아트 아카이브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여전히 예술에서는 실물 작품이나 자료의 가치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진품성, 원본성, 저작권과 같은 민감한 사안들을 함께 다루어야 하는 난제도 존재한다. 이러한 특수성을 반영한 미술계 재난 유형을 파악해야 이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보유 디지털 데이터의 중요도와 우선순위 분석
두 번째로 각 기관 및 기업별로 보유한 데이터의 종류나 그 데이터의 거래 형태에 따라서 데이터의 중요도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이에 따른 각각의 잠재적인 재난의 위험 요인을 사전 평가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어떤 기록물이나 데이터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할 것인가, 어떤 백업 절차나 복구 절차를 밟을 것인가,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와 같은 부분이다. 각자 보유한 기록물에 대한 사전 분류와 평가, 분석 과정이 있어야 실제로 재난이 닥쳤을 때 중요도와 우선순위에 따라 순차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응급 복구와 사후처리 방안도 구체적으로 마련해 둘 수 있다.
□ 디지털 재난 시나리오 설계 및 관리에 대한 인식
세 번째로는 디지털 재난 시나리오의 설계와 관리에 대한 인식의 확대이다. 이는 사실 꼭 디지털 재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각 기관이 보유한 기록물의 특성과 업무에 따라 재난 유형별로 재난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체계는 꼭 필요하다. 이제는 기본적인 재난 관리 프로그램 안에 기관별 맞춤형 디지털 재난 유형을 명시하는 것과 더불어 직급별, 부서별로 세분된 대응 지침이나 사이버 보안 프로그램 설계와 운영에 관한 내용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활용하거나 이에 적용된 새로운 IT기술의 진화에 따른 기술 업데이트도 필요하고, 이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취약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 디지털 보안전문가 확보
마지막으로 디지털 보안전문가 인력의 확보의 문제이다. 각종 디지털 재난의 위협에 대응하는 재난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 기관 내 보안전문가가 상주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기관의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 아래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와 보안 플랜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주도할 수 있는 디지털 전담 부서가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14)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외부 보안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력 아래, 신뢰할 수 있는 보안 안전망을 전문적이고 안정적으로 구축,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 업체와 협력하더라도 디지털 아카이브의 보유 주체가 보안 관리의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디지털화의 가속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 따른 확장된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넘어서 그 이면에 자리한 문제점과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 디지털 세계에 잠재적으로 도사린 또 다른 재난의 위협을 살피고 대비할 때, 미술계도 현명한 생존의 길을 열수 있다.
1)미팅룸(meetingroom): 큐레이터, 작품보존가, 연구자로 구성된 비영리 연구 단체. ‘미팅룸’은 ‘독립적으로 머물면서, 함께 생각하고, 서로 협력한다’는 모토 아래, 구성원 각자의 관심사와 전문성을 존중하고 현대미술 현장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면서 개인과 그룹으로서의 활동을 모색해왔다. 미술계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는 채널이자 리서치 플랫폼으로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협업의 가능성과 범위를 탐구한다. 현재 전시기획, 아트 아카이브, 작품보존, 미술시장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는 동명의 웹 플랫폼 ‘미팅룸(meetingroom.co.kr)’과 시각예술 연구를 위한 권역별 리서치 플랫폼 ‘인덱스룸(indexroom.co.kr)’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시, 연구, 교육, 출판 등의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2)지가은, 「아카이브와 재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온·오프라인 아카이브 재난 관리」, 미팅룸,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211-262.
3)임종인, 백승조, 「신 IT기술 응용 확산과 디지털 재난 유형 예측 연구」,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10), 56.
4) 강은성, “최악 통신대란 KT아현 화재, 5개월만에 마침표…무엇을 남겼나”, 뉴스1 (2019.4.30.) https://www.news1.kr/articles/?3610428
5)이경민, 「온라인 미술시장 연대기: OVR과 기술, NFT의 움직임과 한계, 가능성, 그리고 전망」, 미팅룸,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60-61, 88-89.
6)Sarah Cascone, “Hackers Have Stolen Private Information From Donor Lists to 200 Instituitions, Including the Smithsonian and the UK’s National Trust”, Artnet News (September 2, 2020) https://news.artnet.com/art-world/hackers-hit-smithsonian-parrish-corning-1905256
7)Nate Freeman, “Why Hackers Love Cracking the Art World”, Vaniyfair (November 5, 2021) https://www.vanityfair.com/style/2021/11/true-colors-art-basel-email-hack
8)Tim Maxwell and Tamara Bell, “It’s High Time Art Businesses Beefed up Their Cybersecurity”, Apollo (April 20, 2020) https://www.apollo-magazine.com/cybersecurity-art-businesses-constable-dickinson-rijksmuseum-twenthe/
9)이경민 앞의 글, 77-83.
10)이경민 앞의 글, 88.
11)Valentina Di Liscia, “Reports of Stolen Art on NFT Marketplace Raise Issues for Crypto Collectors”, Hyperallergic (March 16, 2021) https://hyperallergic.com/629328/reports-of-stolen-art-on-nft-marketplace-raise-issues-for-crypto-collectors/
12)해당 사건에 대한 마이클 미러플러의 트위터 멘션 페이지, https://twitter.com/michaelmiraflor/status/1371199359996456960
13)Tim Schneider, “The Gary Market: How a Brazen Hack of That $69 Million Beeple Revealed the True Vulnerability of the NFT Market (and Other Insights)”, Artnet News (April 21, 2021) https://news.artnet.com/opinion/sleepminting-nftheft-monsieur-personne-1960744
14)황정인,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서의 미술관: 교육용 자료 배급에서 온라인 공개 수업까지」, 미팅룸,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136-138.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현대미술이론(Contemporary Art Theory)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동대학원에서 시각문화(Visual Cultures)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팅룸(meetingroom)의 아트 아카이브 연구팀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는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 (스위밍꿀, 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이 있다.
미팅룸 http://www.meetingroom.co.kr/
인덱스룸 https://indexro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