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전시장의 영상들 – 김웅용 작가 인터뷰

posted 2023.01.03


미술과 영화의 장르적 구분이 여전히 유효할까? 요즘 세대의 관람자는 비디오 아티스트 또는 필름메이커라는 직업적인 구분에, 혹은 화이트 큐브와 블랙박스라는 장소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으며 미술관이든 영화관이든 흥미로운 작업물이라면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미술관 내 영상관을 별도로 운영해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최근 MMCA필름앤비디오 프로그램으로 《영화로, 영화를 쓰다》라는 제목의 상영전에서 차학경, 수전 손택 등의 작품을 상영한 바 있고 올해로 9회를 맞은 서울시립 북서울시립미술관의 “타이틀 매치” 전시에는 영상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가 초청되었다. 한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보더리스 스토리텔러’라는 섹션 아래 김희천, 무진형제 등의 작가 작품을 상영하고 동명의 책을 연계·발간하기도 했다.
이에 올해 더아트로에서는 “전시장의 영상들” 기획기사 시리즈를 준비하였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지난 2019년 영상 이미지를 어떻게 볼 것인지 고찰하는 전시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을 기획했던 김미정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의 ‘거울과 스크린 사이를 읽기’ 글을 필두로 하여, 서사를 이끄는 매체로 영상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용하는 작가 4인(팀) 김웅용, 류한솔, 박선호, 업체eobchae를 소개한다. 오늘날 장르와 공간을 오가며 등장하는 영상 이미지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웅용은 쓸모 없어진 것으로 남겨진 기록과 기술 이면에서 발견한 현재적 반동의 힘을 기억의 순환으로 연결하여 이 과정을 시뮬레이션 한다. 〈오호츠크해 고기압〉,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 〈밤과 안개〉 등 리얼타임 비디오 퍼포먼스 그리고 〈정크〉, 〈데모〉, 〈웨이크〉 등의 비디오를 제작했으며,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또한 《무빙 이미지 전시하기: 다시 본 역사》를 우리말로 옮겼다.
kimwoongyong.net


〈Eliza〉 (제작 중), CGI 애니메이션, 컬러, 한국어-영어, 5분

〈Eliza〉 (제작 중), CGI 애니메이션, 컬러, 한국어-영어, 5분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관심 있는 작업주제 혹은 소재가 궁금합니다.
저는 시간이 경과하며 부서진 것, 배제된 것, 사회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쓸모없어진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들에는 파괴, 움직임 그리고 이질적인 힘과 실패의 맥락이 동시에 있고 그 흔적들이 스크린을 매개로 하여 현재의 맥락에 놓였을 때 감각으로 증폭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오호츠크해 고기압〉,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 〈밤과 안개〉 등 리얼타임 비디오 퍼포먼스 그리고 〈정크〉, 〈데모〉, 〈웨이크〉 등을 제작했습니다.


영상 작업만 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다양한 매체 중 영상 이미지를 일부 작업의 수단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소한 계기로 이미지의 뒷면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편집을 배울 때였는데요. 편집을 마치고 촬영본을 확인하면서 타임라인의 사운드가 영상을 촬영할 때의 소스가 아니라 전혀 다른 출처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같은 대상을 두고도 촬영 당시의 현실 그리고 이른바 잘못 편집하여 구성된 또 다른 현실, 이렇게 두 개의 각기 다른 현실을 동시에 체험했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같은 대상에 관해 제가 안다고 믿었던 것과, 잘못된 것을 인식하는 과정 자체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영상이라는 매체를 경험하면서 제 생각의 과정을 이해하는 신비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며 계속 작업해왔습니다.
또한, 저에게 스크린이라는 것은 창문도 거울도 아닌 불투명의 영역(dimension)이지만, 그 뒤에서 만들어져 나타나는 이미지는 그 밖의 세계를 투명하게 비추는 것처럼 쉽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와 지속해서 결합하는 모순을 노출합니다. 그렇게 기록에 달라붙은 흔적들을 스크린 안과 밖이 순환하는 과정에 놓고 바라보면서 감각 결정체가 형성된 영역을 가상으로 구성하고자 했고 그것이 현재를 집약하는 수정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 작업에서 스크린 속의 스크린이 등장하고 과거처럼 여겨지는 것이 이질적인 현재의 그래픽 덩어리와 합성하는 영역으로 전개됩니다.
이에 전시를 촬영 세트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여기서 무대가 연동된 스크린 작업, 연극에서 사용하는 조명을 설치한 비디오 작업으로 나아갔습니다. 최근에는 1996년 개발된 AI 심리상담 프로그램 ‘ELIZA’에 관한 CGI 애니메이션 〈Eliza〉를 작업 중이고 이주노동자, 이주 이미지, 뇌의 감각질이 서로 매개하는 다큐멘터리 〈회백질〉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빙 이미지와 스크린의 순환을 확장하여 스크린의 얇은 막과 작업 속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설치된 공간 자체를 또 다른 영역의 세트로 구성하려는 시도로 〈오르가눔〉 시리즈도 시작했습니다.


〈웨이크〉, 2019, 싱글채널 4K 비디오, 프로그래밍 연동 무빙 라이트, 컬러, 스테레오, 한국어, 19분 46초

〈웨이크〉, 2019, 싱글채널 4K 비디오, 프로그래밍 연동 무빙 라이트, 컬러, 스테레오, 한국어, 19분 46초

작가님 작업에는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뉴스, 광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 자료가 활용됩니다. 이질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를 조합하여 작업하시므로 어떤 방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궁금한데요. 아카이브 단계부터 작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작업과정을 소개해주세요.
언급하신 시각 자료들은 상이해 보이지만, 지금은 쓸모없어진 것들의 기록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포맷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박물관처럼 과거를 수복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과거의 대상들은 일단 시야에서 가려져 있으므로 우연한 기회에 실수나 오류 등을 노출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현재와 연결된 구조의 윤곽을 감지합니다. 그리하여 역사가 어떤 자료로 구성되는지 어떤 내용과 기준을 포함하여 현재 우리의 인식에까지 이르는지 그 가시적인 경로 밖으로 관심이 향합니다. 거기에는 의미를 탈각하게 된 것과 경로 밖으로 밀어버린 거대한 힘 사이의 충돌이 있고, 여기서 시청각적 자료로 파생된 것들을 발견하고 추출합니다. 이러한 감각적 잔해들이 이 충돌의 결정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간극이 벌어진 층들을 뚜렷하게 보게 되고 연관되는 것들로 연결해 나갑니다. 이 역설적 결합이 저에게 현재를 여러 흐름으로 이해하고 매개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시대착오적인 것들이 두드러질 때 특히나 이질적으로 느끼는데, 그렇게 최근 이미지 재현 제작 방식과 폐기된 이미지로 그 관심이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대량으로 제작된 귀신 영화들 속 거처를 상실한 목소리에서 당시를 농축한 시간과 감각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비슷비슷하게 더빙된 목소리를 추출하였고 퍼포머가 립싱크하는 방식으로 변환한 후 리허설처럼 반복하는 유령의 모습을 〈오호츠크해 고기압〉,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 〈소프트 카피 드라마〉 등의 작업으로 제작했습니다.


〈회백질〉 (제작 중), 싱글채널 4K 비디오, 흑백, 타갈로그어, 15분

〈회백질〉 (제작 중), 싱글채널 4K 비디오, 흑백, 타갈로그어, 15분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 2014, 실시간 비디오 퍼포먼스(HD 비디오, 카메라 2대, 비디오 인터페이스, 3개의 가변세트), 한국어, 60분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 2014, 실시간 비디오 퍼포먼스(HD 비디오, 카메라 2대, 비디오 인터페이스, 3개의 가변세트), 한국어, 60분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과거도 현재도 아닌 시점으로 불려 나와 완벽히 잊히지도 또 완전히 존재하지도 않는 형태를 보이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웨이크〉나 〈여자의 파장으로〉 등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에서 이러한 작업방식이 두드러지는데 의도하신 바를 조금 더 부연해주신다면요.
언급하신 두 작업은 1980년과 1996년을 모티브로 합니다. 이 시기는 그 자체로 배제된 기록을 내포하고 그것이 훼손된 만큼 그것을 재현하는 여러 기술로 더 강력하게 변환∙파생되어 1차, 2차, 3차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기술적 차이를 바라보는 일은 단순히 차이를 이루는 요소를 바라보는 동시에 사건을 이루는 힘과 성취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웨이크〉와 〈여자의 파장으로〉에서 추출한 주요한 요소는 목소리, 조명, 사소한 기억들, 리허설, 스크립트고 이들은 결과적으로 분명한 기능을 하면서도 비가시적이고, 결과물이 되기 이전 단계라는 시간성을 갖습니다. 여기서 나아간다면 상상에 불과하지만, 이 감각의 흔적들이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영화와 무빙 이미지 문화가 남긴 기록으로부터 추출되어 이질적인 것들끼리 유기적으로 결합한다고 가정할 때 아주 긴 상영시간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가상의 무빙 이미지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 생각을 밀고 나가면 궁극적으로 뇌가 학습해온 기억이나 관습도 이질적으로 바라보고 현재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가 영상 작품을 관람하는 현재의 시간, 작업의 소재가 되는 실제 사건이 벌어진 과거의 시간, 작품 내에서 여러 사건과 허구적 요소를 중첩하여 나열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시간 등 작가님 작업에서 다양한 의미의 시간이 겹치면서 비현실과 현실 세계 사이가 모호해지곤 합니다. 영상 작업을 기반으로 실시간 퍼포먼스를 진행하신 적도 있고요. 이처럼 ‘시간’이란 작가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시간과 영상 이미지 간의 관계 또는 영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제 작업에서 시간은 이미 벌어진 사건의 결과가 연상되는 내용과 감각 속에서 용해되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동일한 작업 안에서 대사나 제스처가 다른 시퀀스로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형화된 이야기 틀은 무너지고 감각들만 남아 모호하게 인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따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시간 체험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목소리에서 단순히 내용을 듣기도 하지만 그보다 시간 체험을 통해 거기 포함된 말의 속도, 성량, 억양, 주저함, 감정, 태도, 단어의 사회적 맥락, 실수 등을 감각으로 감지하고 심지어 더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억의 기술 방식, 시퀀스의 구성, 조명과 사물의 배치에서도 감각으로 환원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이로써 스크린 뒤편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이미지와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동화되는 현재의 시간이 충돌하고 합성되면서 가상의 시간 블록을 구성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제 작업에서 실시간은 시간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에 있는 우리는 시간이 실시간인지 동시적인지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제 공연 작업에서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촬영과 스크리닝이 무대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퍼포머가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립싱크하면 즉각적으로 그의 얼굴이 편집된 화면으로 스크린에 투사되어 그 시간이 인공적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따라서 저에게 실시간은 지금-현실-실제 시간이 자연에서 주어진 있는 그대로의 시간이 아니라, 구성되고 만들어진 시간이라는 모순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현재가 시대라는 그물망 위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종류의 시간 네트워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시화해보려고 했습니다.


〈데모〉, 2018, 3채널 연동 비디오, 컬러/흑백, 스테레오, 한국어-일본어, 17분 30초

〈데모〉, 2018, 3채널 연동 비디오, 컬러/흑백, 스테레오, 한국어-일본어, 17분 30초

적군파 사건을 다룬 작품 〈데모〉는 3D 시뮬레이션 게임을 포함하여 관객은 적군파 일원의 시야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됩니다. 실제 사건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일인칭시점 게임 형식으로 사건을 경험하는 인물에게 고정하여 몰입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상은 관객에게 향하는 반면 게임은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방향성의 차이가 내러티브를 이끄는 방식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관객이 전시실에서 실제 게임을 한다면 관객을 말씀하신 “끌어들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지만, 그보다 저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방식과 그 과정을 드러내는 데 주목했습니다. 일인칭시점 게임은 플레이어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과 공간이 생성되는 방식인데 공간감을 극대화하여 땅 위에서 움직여도 진공상태로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상 이미지로 무장한 적군파의 평양행 비행기 하이재킹과 김포공항 불시착 사건은 저에게 시뮬레이션과 현실 사이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인 진공상태로 보였습니다. 1960년대 극단주의 공산혁명 분파 적군파는 대체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다른 세계를 실현하려 했으나 삶에서 괴리되는 어느 시점부터 이미지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붕괴합니다. 그렇게 죽음과 게임 그리고 일그러진 유토피아 이미지를 서로 혼합해 역사의 진공상태인 불시착 사건으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데모〉에서 3개의 채널은 몰입형 게임 스크린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이지만, 관객은 오히려 붕괴하는 시뮬레이션의 기록을 마주할 것입니다. 관객이 네트워크에 접속한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가다가 마주하는 공항 내부의 풍경은 일인칭시점 게임의 풍경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으로 생성됩니다. 이 풍경은 불시착 사건 당시의 기록, 그 밖에 인물들이 동경했던 이미지들과 연결되어 있고 이미지들의 충돌로 인해 이 게임에서 실패하도록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이러한 진공 알고리즘이 뉴미디어가 파생하는 양가성에 깊숙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은 시각적인 매체일 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매체이기도 합니다. 사운드나 퍼포먼스 작업도 하고 계신데 특히 영상 작업에서 사운드를 다룰 때는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시는지요?
제 작업에서 사운드는 보조적 효과라기보다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등장하는데 일차적으로는 이미지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아서 인공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일한 목소리와 대사가 서로 다른 얼굴들에서 또는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얼굴에서 입 모양을 따라 립싱크 되어 반복해서 나타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유령에 가장 가까운 것은 가시적 형체가 아니라 사운드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작업에서 하려고 하는 바는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에 접근하는 여러 감각의 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오르가눔 I〉, 2022, 설치(더미 헤드, 무빙 라이트, 아크릴 보드), 가변 크기

〈오르가눔 I〉, 2022, 설치(더미 헤드, 무빙 라이트, 아크릴 보드), 가변 크기

과거 영상은 영화관 혹은 브라운관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블랙박스의 공간에서 ‘상영’되어 왔습니다. 이제 다양한 영상 작품이 화이트 큐브에 놓이면서 장르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한편 오늘날 모바일 기기의 보급, 인터넷 시대의 도래 등으로 어디서든 영상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요. 그럼에도 화이트 큐브라는 미술관 공간에서 영상 작업을 선보임에 있어 고려하는 또는 고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블랙박스뿐 아니라 화이트 큐브 및 각종 미디어가 단순히 다른 물리적 공간의 종류가 아니고 각각 하나의 매체로 기능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매체와 전시는 다른 실질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들 사이에 위계나 이행(shift)보다는 제도와 지원에 관한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제도냐 그 밖의 인터넷 등 디지털 플랫폼 전시냐, 얼핏 둘 중 하나를 미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로 보여도 정확히 이분화해서 보기는 힘듭니다. 저의 경우에 한정해서 말씀드리면, 제 작업은 일정한 공간과 제작비가 필요하고 금전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공연의 형태 또는 무빙 이미지 설치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즉 “화이트 큐브라는 미술관 공간”, 특히 국공립 기관의 지원으로 제작∙전시되어야 가능했습니다. 제도와는 전혀 무관한 전시 방법 가운데 일례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선보이는 것은 기관을 통해 진행하는 것과 달리, 공공적 영역이라기보다 광범위한 사적인 행위의 영역으로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사적 행위를 이후에 예술적 가치로 보게 된다면 그 역할을 제도 혹은 그것에 포함된 무언가가 수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편, 기관에서 지원받아 디지털 플랫폼을 제작한다면 그 플랫폼의 사용기한을 정하거나 내용 구성에서 계약을 준수해야 하는 등의 지점을 무시할 수는 없어도 제도와 그 밖의 활동이 양립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전히 결과물을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에 이러한 가치와 무관한 걸 보면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아직 전시와 포트폴리오 그리고 쇼케이스 사이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지만, 이 중간 지점을 확장해서 진행할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간을 비롯해 제도적 지원과 표현 매체는 상호보완 관계가 필요하고 그렇게 볼 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미정 큐레이터님의 글을 잠시 인용하자면, “영상이기에 가능한 발화의 형식”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관련하여 의견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영상이기에 가능한 발화의 형식”은 우리가 우리 행위 그 자체를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영상, 즉 카메라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무빙 이미지 예술의 표현과 형태는 시공간을 어떻게 행위로 지각하는지와의 관계 그리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가 그 행위의 가능/불가능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윤리적 관계를 갖습니다. 무빙 이미지는 무언가 실제로 존재하든 아니든 단순히 묘사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통해 그 행위의 감각을 무의식중에 모방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과정을 물리적 시간 안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빵을 먹는 사람의 얼굴만이 아니라 어떤 입 모양으로 먹는지, 턱의 힘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먹으면서 말하는지, 그의 표정은 어떠한지, 얼마만큼의 시간 길이로 먹고 있는지를 보면서 동시에 식사라는 평범한 행위를 우리가 알던 것과 달리 아주 낯설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무빙 이미지가 보편화된 시점 이후 역사 서술과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했고 세계를 인식하는 지각 구조에 특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웅용

김웅용은 쓸모 없어진 것으로 남겨진 기록과 기술 이면에서 발견한 현재적 반동의 힘을 기억의 순환으로 연결하여 이 과정을 시뮬레이션 한다. 〈오호츠크해 고기압〉,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 〈밤과 안개〉 등 리얼타임 비디오 퍼포먼스 그리고 〈정크〉, 〈데모〉, 〈웨이크〉 등의 비디오를 제작했으며,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또한 《무빙 이미지 전시하기: 다시 본 역사》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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