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비하인드 더 뷰티 – 이강승 작가 인터뷰

posted 2023.01.20


한국 미술시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지난 9월,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아시아 지역 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아트아시아퍼시픽(Art Asia Pacific)과 함께 회화, 설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담아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조망하는 도서『Extreme Beauty: 12 Korean Artists Today』를 출간하였다.


『Extreme Beauty』는 국내외 미술계 전문가들의 비평을 통해 각 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연령에 따른 차이와 장르적 구별을 뛰어넘은 이러한 구성은 동시대 한국 미술이 지닌 다양성과 역동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이에 더아트로는 『Extreme Beauty』를 접하기에 앞서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업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연속기사 “비하인드 더 뷰티”를 준비했다. 작가 자신이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해당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Soft Water Hard Stone》 전시 전경, 2021,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뉴욕. 사진: Dario Lasagni

《Soft Water Hard Stone》 전시 전경, 2021,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뉴욕.
사진: Dario Lasagni

2021 뉴욕의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전시장에 거대한 크기의 선인장 드로잉이 눈에 띈다. 미국의 정치인 하비 밀크를 기억하고 기리며 그린 이강승 작가의 작품 〈무제(하비)〉이다. 무수히 덧칠한 흑연의 흔적이나 금실을 수놓은 자수 작업 등 노동집약적인 작업 방식이 돋보이는 이강승은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속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마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기는 듯하다. 실제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그 속에서 비주류의 역사를 발굴하는 그는 잊힌 서사를 꺼내어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동료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그 이야기에 우리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떠한 준비 과정을 거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프로젝트별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각 프로젝트는 보통 특정 인물의 삶과 작업 또는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3~4년 정도의 리서치 과정을 거칩니다. 제가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인물들은 이미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기록 보관소를 방문하기도 하고 유족이나 친구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찾은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작업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보통은 기록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각 다른 진행 단계에 있는 두세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제(하비)〉, 2020, 종이 위에 흑연, 150x114cm

〈무제(하비)〉, 2020, 종이 위에 흑연, 150x114cm

오랜 기간 작가 활동을 이어오면서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거나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특정 프로젝트의 경우 하나의 작업이나 전시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오랜 시간 제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료 작가 줄리 톨렌티노(Julie Tolentino)의 작업 〈흙속의 아카이브(Archive in Dirt)〉(2019~)에서 영감을 받아 지난 몇 년간 협업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프로젝트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줄리 톨렌티노의 작품은 살아있는 식물로, ‘하비(Harvey)’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흔히 크리스마스 선인장으로 불리는 이 다육식물은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운동가·정치인인 하비 밀크(Harvey Milk, 1930~1978)가 자신의 집에서 가꾸었던 ‘모체 식물(mother plant)’에서 번식한 것으로, 줄리가 재생시킨 것입니다. 줄리는 이 식물을 UCLA 특별 컬렉션 아키비스트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얻었는데, 제가 작품을 처음 보았던 2019년에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우 약했고 아주 작고 연한 잎사귀가 막 자라나기 시작하던 상태였습니다. 저는 ‘하비’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 즉, 이 식물을 통해 공유되는 여러 세대의 보살핌과 애정에서 받은 감동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특히 매 순간 자라나며 변화하는 이 작품이 주류 사회의 틀과 규범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작가와 운동가들의 기억과 정신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모습을 매우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2019년 이후 줄리와 친구 영청(Young Chung, LA 커먼웰스 앤 카운실 창립자)의 도움을 받아 이 식물과 관련해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줄리의 ‘하비’로부터 자라난 작은 식물들을 보살피고, 이를 퀴어 커뮤니티의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 식물들을 위한 화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이제는 여러 장소에서 자라고 있는 ‘하비’의 다음 세대 식물들을 드로잉, 사진, 그리고 자수 등의 작업을 통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 식물을 로스앤젤레스의 18번가 아트센터(18th Street Arts Center), 커먼웰스 앤 카운실(Commonwealth and Council) 그리고 뉴욕의 뉴뮤지엄(New Museum) 등에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무제(하비)〉, 2020~2022, 종이 위에 흑연, 삼베 위에 앤틱 24k 금실 자수, 사진, 월넛 액자. 5x17x11cm; 62x47x4cm; 62x47x4cm; 62x47x4cm; 26x21x4cm; 23x25x4cm; 30x23x4cm (전체 118x158x12cm) 사진: Paul Salveson

〈무제(하비)〉, 2020~2022, 종이 위에 흑연, 삼베 위에 앤틱 24k 금실 자수, 사진, 월넛 액자. 5x17x11cm; 62x47x4cm; 62x47x4cm; 62x47x4cm; 26x21x4cm; 23x25x4cm; 30x23x4cm (전체 118x158x12cm) 사진: Paul Salveson

해당 작업이 작가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하비’와 관련된 작품이 전시될 때마다, 저와 그리고 갤러리나 미술관의 스태프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생각합니다. 매우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 식물 역시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어야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듯이, 퀴어 커뮤니티의 기억과 역사를 미래 세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보살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무제 (하비)〉 세부. 사진: Paul Salveson

〈무제 (하비)〉 세부. 사진: Paul Salveson

〈무제 (하비)〉 세부. 사진: Paul Salveson

〈무제 (하비)〉 세부. 사진: Paul Salveson

작업과정에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나 작품에 얽힌 비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앞에서 언급한 선인장 ‘하비’를 뉴욕에서 전시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직접 핸드캐리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작은 선인장이 비행과 운반 과정에서 다치지 않도록 동료 작가가 맞춤 박스와 가방을 따로 만들어 주었기에 전시장인 뉴뮤지엄까지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3개월 동안 큐레이터를 비롯한 미술관 직원들은 정성을 다해 이 식물을 보살폈습니다. 작품은 유일하게 자연광이 들어오는 갤러리에 설치되었고 미술관 휴일에는 조금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볕이 드는 창문 옆으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전시 기간 ‘하비’는 여러 개의 새잎을 틔우며 건강하게 자랐고 전시가 끝난 후 무사히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약 1개월 후에 꽃을 피웠습니다.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 표현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하실 듯합니다. 작품을 제작할 때 어떤 지점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시나요?
제 작업에서 중요한 표현 방식 중 하나가 ‘전유(appropriation)’입니다. 앞선 세대의 작가나 운동가의 작업 그리고 기록을 주로 드로잉이나 자수를 통해서 저의 프로젝트로 다시 들여와 재맥락화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다양한 이미지나 기록을 흑연 드로잉, 삼베와 금실 자수, 세라믹 등 다양한 매체로 ‘번역’하고 전유하는 과정에서, 저의 손과 신체로 오랜 시간 공들여 체화(embodiment)는 데 집중합니다. 또한, 리서치 과정이 상당히 개념적이지만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저의 직관적인 결정을 따르려 노력합니다.


새 프로젝트를 위한 이강승 작가의 리서치 보드. 사진: 작가 제공

새 프로젝트를 위한 이강승 작가의 리서치 보드. 사진: 작가 제공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이 작가님 삶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다양한 동료 작가들과 협업하고 있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과 결과물에 참여, 교육, 공유의 이상적 가치를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서치와 작업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이 동료로 그리고 친구로 저의 생각과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제 삶과 작품 활동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강승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작가로 그는 초국가적인 퀴어 역사의 유산 그중에서도 특히 미술사와 교차되는 지점에 관심이 있다. 2021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진행했고 2021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제13회 광주 비엔날레 등 다양한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재 구겐하임 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Photo by Ruben Diaz)
kangle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