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유원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에 시작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양한 유형의 공공예술을 국내에 소개해 온 APAP는 안양시를 대표할 뿐 아니라, 공공미술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 대표적인 문화행사 중에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올해 APAP는 ‘공공예술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대안적 시도’라는 선행 프로젝트들에 대한 점검과 고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더해, ‘모두를 향한 지식’, ‘각자를 위한 이야기’, ‘서로를 통한 듣기’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만나 ‘공공예술’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과정형 행사인 ‘퍼블릭 스토리’를 마련하였다. 주요 작품은 새롭게 개관한 김중업박물관에 전시되었고 전문가나 지역주민 대상 참여 프로그램들은 안양파빌리온에서 열렸다.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두 번째 퍼블릭 스토리텔링: 모두가 예술을 사용합니다>, 안양파빌리온, 2014. 4. 5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가 건축한 안양파빌리온에는 APAP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있어 전시를 위해 제출된 작가들의 제안서를 비롯해, 안양 관련 전시와 자료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자료들을 들춰보자, 2-3년에 한 번씩 도시 전역에서 벌어진 APAP는 그야말로 공공예술의 급진적인 실험실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프로젝트가 탄생한지 1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공공예술’의 위치와 역할을 점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 특히, 3회 프로젝트 이후 APAP에 대한 정치적 견해차이로 존폐 위기에 처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잠시 멈춰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4회 APAP의 판단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생산과 개발을 반복해온 위성도시, 안양의 입장에서는 축제형 도시 예술행사가 ‘기존의 프로젝트들을 돌아보고 재고하는 일에 몰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프로젝트는 더욱 차분하고 정적으로 보였다.
‘새로운 생산’을 가급적 최소화한 이번 APAP는 미디어 위주의 기록 작업과 기존 작업을 참조하는 레퍼런스 작업이 전시에 출품된 경우가 많았다. 작품에 대한 보수 및 문헌자료들의 수집과 분류,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지식’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고, 다양한 워크숍과 매개를 위한 가이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4월5일 식목일에 열린 두 번째 퍼블릭 스토리텔링 <모두가 예술을 사용합니다> 컨퍼런스에는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라이즈데일 아츠(Grizedale Arts)가 주축이 되어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이번 컨퍼런스는 건축가 신혜원 씨가 디자인한 골판지 공간 안에서 진행됐는데, 발제자들이 준비한 다양한 사례 발표와 함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워크숍이 끝난 후에는 30명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정도의 <야외 공동의 장>으로 가는 소풍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라이즈데일 아츠, <예술의 유익함을 생각하는 예술위원회: 야외 공동의 장>, 2014, 기존 작품에 산화철 안료, 모래놀이터, 수목, 가구 등
<야외 공동의 장>으로 향하며 준비한 소풍 음식과 이를 운반하기 위한 보자기와 도구그라이즈데일 아츠는 예술의 활용가치와 실질적인 예술의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큐레토리얼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은 완성된 형태의 작품을 생산하기 보다는 작가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관객들에게 폭넓게 전달하고 과정을 중요시 하는 프로젝트를 실천해오고 있다. 이들은 이번 4회 APAP 과정에 동참하며 기존 프로젝트 고찰, 작품에 대한 유지 보수 및 이전, 철거 등을 함께 고민했다. <공동의 장, 예술의 유익함을 생각해보는 예술위원회> 프로젝트라는 명명아래 그라이즈데일 아츠와 실행한 상세한 과정이 컨퍼런스에서 소개되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과제는 2회 APAP에 참여한 리암 길릭(Liam Gilick)의 작품 <안양광장을 위한 사회적 구조물의 제안(2007)>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설치할 당시, 사회적 광장이라는 잠재적 구조와 휴식 공간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이용 시민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그라이즈데일 아츠는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리암 길릭과 공조하여 작품의 구조를 개선했다. 작품으로의 진입이 어려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화강암으로 진입로 계단을 제작하였다. 둘째는 플라잉시티에 의해 설치된 <미로 언덕(2007)>을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재설계하여 <야외 공동의 장>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놀이터 시설의 안전법규가 변경되면서 철거가 결정되었는데, 철거이후에 주변 환경과 어울리면서 사용자들이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선됐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시민들이 손수 만든 물건을 직접 판매하고 수익을 얻어가는 <정직한 안양 상점>이었다. ‘모두가 예술을 사용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시작한 상점에서는 목수, 농부, 식품개발자 등의 작가들과 그라이즈데일 아츠의 디렉터 아담 서덜랜드(Adam Sutherland)가 안양의 대안 경제 공동체를 비롯하여 안양시학 모임등과 만나 판화기법의 보자기를 제작하는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그라이즈데일 아츠, <예술의 유익함을 생각하는 예술위원회: 정직한 안양>, 지역 주민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임시가게컨퍼런스의 첫 번째 논의는 그라이즈데일 아츠의 아담 서덜랜드와 농부 존 앳킨슨(John Atkinson), 그리고 안양시청 녹지공원과 최용순과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두 번째 논의에서는 영화와 도서관 등에 초점을 맞춰 사회 참여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던 마리아 벤자민(Maria Benjamin)과 예술사회를 식물에 빗대어 표현한 손혜민의 “성장교본” 작업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종합토론에서는 APAP가 안양유원지 개발프로젝트와 맞물려 출발했던 당시를 회상하는 최용순의 발언에 청중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제1회 APAP가 주변 환경이나 조경전문가들과 협의하지 않아 설치작업과 조경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비판했다. 필자도 당시 <예술가의 정원>,프로젝트에 아홉 명의 작가와 참여한 바 있기에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많은 공공예술프로젝트의 수행에 있어서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 작품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자리였다, 사실 프로젝트의 현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런저런 상황들을 고려할 시간적 여유 없이 급하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우리는 언제 즈음 문화적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토론 분위기를 더욱 무르익게 했다. 다시 돌이켜보면 APAP는 이영철 감독의 말대로 하나의 ‘비계(Scaffolding)’ 시스템으로 출발하였다. 사실 APAP는 유원지개발을 위한 조경계획의 수정으로 나타난 결과였으며, 충돌과 불안정을 전제로 시작했다. 서울 청계천 개발 사업을 참조한 안양유원지 개발 사업은 조경가들의 무차별한 유원지 파괴로 이어졌다. 수백억 대의 예산은 조경석들을 획일적으로 하천 유역에 적재하는 일과 목재 데크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왼쪽) 창의적 농부(존 앳킨슨) 발표장면지금 APAP는 공공 공간의 아름다운 화합의 결과라기보다는 ‘충돌’과 ‘견제’, ‘상호각축의 장’으로 일종의 전쟁터와 같다. 사회 각 영역이 만나는 그 어정쩡한 결합은 매우 부조리해 보인다. 지금도 안양유원지의 조경은 작품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에 들어선 건축물들도 이질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안양예술공원에서 쓰려져가던 집들을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화려하게 개조했지만, 이러한 상업공간들의 난립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방침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컬러풀하게 아웃도어를 차려입은 등산객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벌이는 유원지 내 상가들은 지난 10년 동안 꽤나 호황을 누려온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욕망으로 가득 찬 유원지 개발의 싸움터에서 예술작품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유원지’가 ‘예술 공원’이 되었다는 것, 이것이 지금의 APAP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사진촬영] 홍철기, 김중원
[사진제공]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을 전공하였다.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거쳐, 2007년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디렉터를 역임하였다. 2009년 경기창작센터 개관부터 학예팀장으로 일하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지냈다. 최근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지원팀 수석학예사로서 문예지원사업, 섬머아카데미 등 교육사업도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