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 글로벌 기획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시작한 지원 프로그램이다. 그 중 하나인 '기획단체 역량강화 프로그램 지원' 은 시각예술 단체를 대상으로 기획인력을 위한 세미나, 워크숍, 컨퍼런스 등 교육 및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선정된 단체들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는지 더아트로에서 들여다보았다.
그저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롯데화랑에 들어가 인턴으로 미술계에 발을 디딘 것이 벌써 15년 전이다. 철학과 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전시기획을 어깨 너머로 배울 선배도 없었고, 알고 지내는 작가도 없었다. 롯데화랑 잠실점은 대관과 기획을 병행하는 화랑이었기에 큰 부담 없이 조금씩 전시라는 것을 감을 잡아가는 정도였다. 다행히 좋은 선배를 만나 지금도 미술계에 발을 담구고 있기는 하지만, 그때 기획과 실무에 대해서 차근히 가르쳐줄 선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지금 조금 더 나은 큐레이터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후배들이 찾아오면 바쁜 일정에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충족될 수 없기에 뭔가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Curators' Fab Lab’(이하 CFL) 은 이러한 필요에서 기획되었다. Fabrication Laboratory 의 약자인 팹랩(Fab Lab)은 MIT의 ‘닐 거셴펠트(Neil Gershenfeld)’ 교수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레이저 커터나 CNC, 조각기나 3D 프린터 등의 다양한 장비들을 비치해놓고 다양한 사물들을 제작하는 공작소를 의미한다. 이후 이 랩이 대중에게 오픈되면서 일반인들도 팹랩에 비치된 다양한 장비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로 시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CFL은 거셴펠트 교수의 Fab Lab 개념을 차용하여, 신진 기획자들과 함께 전시, 프로젝트 기획과 관련된 자료들을 공유하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기획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향후 신진 기획자들의 전시, 프로젝트를 실현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였다.
물론 그 바탕에는 2012년 겨울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기획했던 ‘Curating in Asia’라는 큐레이터 워크숍이 기폭제가 되었다. 신진큐레이터 5명,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큐레이터 5명, 그리고 해외 큐레이터 5명이 초청된 이 행사에서 우리는 신진 큐레이터-한국 큐레이터-해외 큐레이터 이렇게 3명씩 팀을 구성하여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여한 큐레이터들 간의 팀워크가 좋아서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행사 끝 무렵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를 일이었다. 기왕 이렇게 인연이 닿았는데, 이 만남을 통해서 또 다른 프로젝트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CFL은 크게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CFL 팹랩의 모태가 되었던 월간 웹진 (K.NOTe)가 있다. 예산이 제로인 상태였기에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공부하며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었고,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영어 매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온라인 매거진인 (K.NOTe)를 발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K.NOTe)는 한 달에 한 명의 작가나 팀을 선정하여 기존의 영문 텍스트를 재편집하여 해외 큐레이터들에게 일대일로 발송된다. 텍스트를 직접 생산하면 좋겠지만, 그럴 여력도 없었고, 번역비를 충당할 예산도 부족했기에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차원에서 아주 작은 첫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작은 파일럿 프로젝트였지만, 신진큐레이터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훨씬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K.NOTe_제3호매월 1회로 예정되어 있는 ‘Brunch with Curator’ 행사에서는 5명 미만으로 초청된 신진 큐레이터들과의 브런치 시간을 통해 공식석상에서는 나눌 수 없는 실무적인 궁금증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전시기획 및 국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필요한 여러 자료들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인 ‘Open your file’도 진행한다. 아직 자료를 취합하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큐레이터들에게 요청하여 작품임대서, 컨디션 리포트, 계약서 등 전시기획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들을 공유할 계획이다.
끝으로 해외 큐레이터들의 강연으로 구성된 ‘Open your project’가 있다. 최근 큐레이터들의 공개강연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CFL의 ‘Open your project’는 다른 공개강연과 달리 사전 신청자 및 초청자에 한하여 비공개 강연으로 진행한다. 이는 대중적으로 큐레이터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려는 취지보다는 참여 큐레이터들이 캐주얼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는 네트워크 파티 취지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며, 또한 비공개 강연의 경우 프로젝트의 실제 비용 조달 방법, 진행에 대한 실무적인 내용들을 묻고 답하기가 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8월 22일 뉴욕 기반의 독립큐레이터인 니나 호리사키 크리스텐스(Nina Horisaki-Christens)의 발표를 시작으로, 9월에는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루마니아 파빌리온 커미셔너인 앙카 베로나 미훌렛(Anca Verona Mihulet), 독일 괴팅겐 쿤스트할레의 디렉터인 베르너 마이어(Werner Meyer), 뭄바이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샤제프 샤이크 등 다양한 기획자들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기획자의 글로벌 기획 역량이라는 것이 프로젝트 한두 개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큐레이터들이 만나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후배들이 가는 길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근대인이 고대인보다 뛰어난 것은 고대인의 어깨 위에 앉았기 때문”이라는 베르나르 퐁트넬(Bernard Le Bovier de Fontenelle)의 말처럼, 지금 우리들의 경험 위에서 시작하는 후배들은 훨씬 멋진 큐레이터가 될 것 같다. CFL은 그런 플랫폼이 되기 위해 좀 더 많이 고민하고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더욱 개발해나갈 계획이다.
- 9월 26일 18:00 / 토탈미술관 강의실
앙카 미훌렛(2013 베니스 비엔날레 루마니아 파빌리온 커미셔너, 루마니아),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작가, 스페인)
- 9월 27일 18:00 / 토탈미술관 강의실
마우리치오 바니(루카 컨템포러리아트센터 디렉터, 이탈리아), 샤제프 샤카(독립큐레이터, 인도),
샹린(독립큐레이터, 대만)
- 9월 28일 18:00 / 토탈미술관 강의실
베르너 마이어(괴팅겐 쿤스트할레 디렉터, 독일)
CFL 문의 및 참가신청 info@totalmuseum.org
이화여대 철학과, 홍익대 미학과 석사를 거쳐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7년 미술현장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면, 지금까지 다양한 형식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해왔다. 2000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문성을 띤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제4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디지털 호모루덴스》) 전시팀장, 2005년 의정부 디지털아트페스티벌(《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2005년 독일 베를린의 《트렌스미디알레(transmediale)》, 런던 골드스미스에서의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인도 델리에서의 제1회 CeC&CaC 등 국내외 미디어아트 관련 학술행사 및 전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독일 뷔템베르크 쿤스트페어라인 슈트트가르트에서 개최된 《On_Difference》(2005),《Re-designing the East》(2010, 독일, 인도, 헝가리, 체코, 태국 공동기획), 《Acts of Voicing》(2012, 독일, 프랑스, 인도, 홍콩 등 10개국 큐레이터 공동기획)과 같은 국제전시에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미디어아트뿐 아니라 현대미술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