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공간

Beirut / 아랍 이미지 재단 아랍의 현대사, 21세기 사진관

posted 2014.12.29

아카이브를 주목하고 있는 한국 미술계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면 작가가 작업을 하든지 기획자가 전시를 하든지 간에 그 모든 질료이며 영원한 주제인 ‘이미지’ 아닐까? 아랍 이미지 재단(Arab Image Foundation)은 그 이름에서 보이듯이 아랍이라는 지역에 관한 ‘이미지’ 중심의 아카이브 기관이다. 이 아카이브는 내전의 상흔과 도시화를 통한 재건이라는 상반된 모습이 혼돈 속에 공존하는 레바논 베이루트(Beirut) 시내의 한 건물 4층에 있다. 베이루트 동쪽 항만이 내다보이는 발코니, 서가, 사무실, 수장고와 작업실, 부엌을 너덧 명의 스태프들이 조용히 오가고 쉬기도 하는 그리 크지 않은 아카이브다.


이곳에서는 필름 사진을 주 매체로 아랍권의 문화와 사람들, 아랍 디아스포라의 삶과 사회를 포착한 이미지를 발굴, 보존, 디지털화한다. 소장 자료는 펠릭스 봉피스(Felix Bonfils)와 같이 아랍권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가의 작품 외에도 아마추어 사진가의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컬렉션 매니저가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주인 모를 스냅 사진, 아랍 전 지역에서 활약하는 여러 연구원이 발견한 작은 사진관의 앨범, 신문에 실린 광고, 초기 사진 기법을 사용해 인쇄된 영수증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최근에 보유한 소장 자료 중 하나인 샤드리지 컬렉션은 이라크 건축가 리파 샤드리지(Rifat Chadirji)와 그의 아버지 카밀 샤드리지(Kamil Chadirji)가 찍은 풍경과 인물 사진, 그리고 사진들을 손수 정리한 주제어 도표와 앨범 목록을 담고 있다. 이 컬렉션은 한 건축가가 살며 영향을 받았던 시공간의 이미지를 건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준다.


아랍 이미지 재단에서 사진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장면 ⓒArab Image Foundation 아랍 이미지 재단에서 사진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장면 ⓒArab Image Foundation

이 이미지들이 기다리는 주인은 작가와 연구자다. 이미 많은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이 재단의 컬렉션으로 전시를 기획하거나 작품을 제작했고, 앞서 언급한 샤드리지 컬렉션에는 베이루트 현지에 거주하는 건축 이론가이자 이라크 바그다드의 도시화를 연구한 세실리아 피에리(Caecilia Pieri)가 재단의 컬렉션 기획안에 비평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작가 중에는 1997년 당시 아랍 이미지 재단의 공동 설립자인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의 활동을 아카이브 활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레바논 남부 사이다에서 활동한 사진가 하삼 엘 마다니(Hashem el Madani)와 북부 트리폴리(Tripoli)에서 활동한 사진가 안트라닉 아누쉬안(Antranik Anouchian)의 사진관 인물 사진 작업을 발굴하고 연구한 결과를 모은 사진집을 재단의 출판 기획으로 여러 차례 발간했고, 동료 작가이자 역시 공동 설립자인 왈리드 라드(Walid Raad)와 함께 “맵핑 씨팅: 인물 사진과 사진술에 대해(Mapping Sitting: On Portraiture and Photography)”(2005)라는 제목의 전시로 재구성해 미국 독일 싱가포르 등지에서 선보였다.


작가 미상의 가정용 가전제품 광고 사진(레바논 트리폴리, 1960-1969) Collection: ALF/Mohsen Yammine Copyrignt ⓒArab Image Foundation 작가 미상의 가정용 가전제품 광고 사진(레바논 트리폴리, 1960-1969) Collection: ALF/Mohsen Yammine Copyrignt ⓒArab Image Foundation

이 아카이브의 작업은 늘 배움과 함께 한다. 현재 재단 대표직을 맡고 있기도 한 아크람 자타리가 수년간 아랍권 사진관 관련 구술사를 채록한 비디오 컬렉션을 함께 보며 설명하고 이 자료를 정리하는 인턴이나 사서의 주도로 토론하는 워크숍은 현재 디렉터를 포함해 20대 중반에서 30대로 구성된 비교적 젊은 운영진들에게 생생한 공부의 장이 된다. 중동 지역 사진 아카이브에 관한 조사, 보존 교육, 학술 토론으로 구성된 맵피(MEPPI, Middle East Photograph Preservation Initiative)는 2009년 시작해, 올해에는 요르단 암만에 자리한 협력 기관 다라알푸눈(Darat al Funun)에서 알제리, 이집트, 이란, 팔레스타인, 튀니지, 터키, 예멘 등 각지에서 관련 아카이브에 종사하는 17명의 참여자와 함께 8일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외에도 이 아카이브를 재료 삼으려는 연구자, 큐레이터, 작가는 누구나 아랍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주제어 얼개에 따라 상세히 정리된 이미지를 웹사이트(www.fai.org.lb)의 디지털 컬렉션 브라우저에서 검색해 열람하고 아키비스트에게 이메일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사진제공. 프로젝트 비아


※ 본 기사는 프로젝트 비아(PFOJECT ViA)의 지원으로 [아트인컬처]와 더아트로가 함께 기획,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진주 / 작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형예술대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미술 작가 및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레지던시 동아시아 다이얼로그(2013), 군산 아트 레지던시(2011)에 참여하였으며, 2012년 서울문화재단에서 공모한 시각예술 기획 프로젝트로 수상한 바 있다. 개인전 “도시연구사무소:Economic Love Camp”(2012)와 “리스닝 컴퍼니:ps”(2009)를 비롯하여 “도시재생(광주도시환경협약 UNEP 전시)”(2011), “발굴의 금지”(2011), “두리안 파이 공장”(2010) 등 다수의 그룹전을 선보였다. 기획한 프로젝트 및 전시로는 “풍년슈퍼캠프”(2012), “날것과 익힌 것: 커뮤니티 지형 그리기”(2012), “산드라 유라 리: 굽이 사이”(2011), “풀 아카이브 프로젝트 3: 첫 번째 독자”(2010)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