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조경재: 신체 현존의 기억을 환기시키는-조경재의 구성적 장면과 사진의 현실성

posted 2022.09.16


이미지01

《Live옥상전: 여좌본부Ⅱ》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인천,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얼개라는 신체


그의 눈은 건축적 현상(現象)을 이루는 어떤 요소들이 전체를 짜면서 이루는 ‘얼개(構造)’에 자주 가 닿았다. 가 닿을 때 그의 눈은 카메라 프레임이 되고 조리개가 되었다. 얼개는 그 안에서 재구성되었다. 1910년대의 라리오노프, 말레비치, 타틀린, 피카소, 가보, 리시츠키, 칸딘스키 등이 실험한 비재현적 릴리프의 구성과 엇비슷했다. 현상의 ‘어떤 요소들’은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금속이나 유리, 그 밖의 근대 공업적 신재료”를 회화적(혹은 디자인적) 이미지로 과감히 활용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00여 년에 미학적으로 확보한 “사실주의를 배격하고 기계적·기하학적 형태의 합리적, 합목적적 구성에 의해 새 형식의 미를 창조하려는 창작 태도”의 구성주의 개념은 그의 사진에서 새로운 재해석의 참조점이 된 듯했다. 그가 보내준 포트폴리오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2012년과 2016년의 사진 작품들을 살피면 그런 구성주의 경향이 강력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엇비슷한’ 인상에 불과할 수도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포트폴리오는 2019년까지의 작품을 담고 있는데, 그사이 그러니까 5-6년의 작품들이 모두 구성주의가 지향했던 “일체의 재현 묘사적 요소를 거부하고, 순수 형태의 구성을 취지로 하며, 따라서 회화나 조각의 영역에서는 기하학적 추상 방향을 취하고, 자기표출로서의 예술이기보다는 공간구성 또는 환경형성”의 미션을 은연중 전복시키거나, 혹은 그 개념을 납작하게 누르면서 가차 없이 횡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성주의가 회화라는 2차원의 기하학적 이미지로 탄생한 데 반해 그의 사진은 실제의 3차원 공간을 직접적으로 담아내고/촬영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사진 속의 ‘구성공간’은 ‘얼개’라는 신체로 실존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얼개의 추상이 아닌 얼개라는 (실존적) 신체로 불러야 마땅하리라.


이미지02

《Live옥상전: 여좌본부Ⅱ》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인천,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이미지03

《Live옥상전: 여좌본부Ⅱ》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인천,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여기와 저기의 깊이


언뜻, (위에서 하나의 인상에 빗대었듯이) 그의 사진은 회화적이다.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색과면과 선, 그리고 그 ‘색·면·선’을 이루는 사물들의 그림자는 이미지의 리얼리티를 극사실적으로 끌어 올린다. 일체의 재현 묘사적 요소를 거부하려는 구성주의적 태도는 유보되었거나,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도 읽힌다. 사진은 색·면·선과 그림자를 가진 사물들의 실체적 표면으로 가득하고, 그것들이 서로 붙어서 기대고 밀어내고 당기는 포즈는 매우 현실적이다. 한두 발짝 앞에서 작품을 자세히(혹은 깊이) 살펴보면, 사실 그 내부의 사물들은 어이없게도 날 것 같은, 거칠고 투박하고 정교하지 않은 구성체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과는 하등 상관없는 어떤 공간의 구성요소를 카메라 프레임에 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잉여로 남은 사물 그대로의 무위(無爲)와 약간의 구성적 요소를 가미한 작가의 인위(人爲)가 적절하게 혼합되어서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것인데, 그것들이 하나의 인상으로 뿜어내는 구성주의 미학의 힘은 흥미롭게도 아주 막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적 인상사진 속 현실사물의 깊이”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일으키는 시각적 착란 때문에 ‘자기표출의 예술성’을 부정했던 구성주의는 설 자리를 상실한다. 나는 바로 그 상실의 자리에서 ‘조경재’라는 한 작가의 미술세계가 다시 잉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진은 구성주의가 갖지 못했던 현실 속 ‘사물의 깊이’를 획득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미학적 개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04

《여좌본부》 (SeMA창고, 서울,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사진과 현실’에서 ‘과’를 지우는 작업들


그는 2012년에 〈ㅁ ㄱ 002〉를 보여준 바 있다. 사진과 설치가 동시에 펼쳐진 양상인데, 흰 벽에 사진과 사진을 연결하는 ‘ㅁ’이라는 격자와 ‘ㄱ’이라는 선의 구성이 특징이다. 사진을 벽에 붙이고 그것을 다시 액자형 프레임으로 연결해가는 방식에서 시선의 ‘이중구조’를 고민하게 한다.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프레임인데, 그것 위에 다시 액자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미학적 리얼리티(사진)와 현실적 리얼리티(액자틀)라는 이중구조를 ‘하나’의 구조로 인식케 하는 전략이 숨어 있다. 이러한 의도는 〈Block Block〉(2014)에서 좀 더 구체적인 사건으로 연출된다. 사진과 사물들이 어떤 공간에서 자유롭게(물론 그것들은 작가가 정교하게 연출·설치해 놓은 것이지만) 구성되어진 모습들로 등장한다. ‘사진 속의 현실’과 ‘현실 속의 오브제들’이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이 작업은 ‘~과 ~’ 사이의 ‘과’를 지우는 실험이기도 하다. ‘Block과 Block’이 아니라 ‘Block Block’인 것처럼 ‘사진과 현실’이라는 주제어도 ‘사진 현실’로 바꿔 불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미술세계는 사진이라는 작품- 현실이라는 장면의 이중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사진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사진이 되는 미학적 사건은 가능한 일일까? 그 둘은 어떻게 하나의 구조로 완성될 수 있을까? 사실 2014년에 보여준 〈Block Block〉은 작품으로서의 사진과 사진을 가능케 하는 오브제들의 연출 방식을 하나의 공간에 설치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둘은 혼합이나 통합처럼 보일 뿐 명확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런 시도는 그 이후로도 지속되면서 ‘개념적 우물면’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사진세계를 펼쳐낸다.


이미지05

〈정원〉, 2020, 혼합매체, 가변설치 (700x700cm).
《여좌본부》 (SeMA창고, 서울,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우물면


고요하고 투명한 우물면은 두 개의 표층이 완벽하게 하나의 실재를 이루는 장관을 이뤄낸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초상화론)’라고 부르는 것의 미학적 원형이 바로 우물신화 구조이다. 달리 말하면, 실재라는 것은 우물면에 어리는 우물 바깥 풍경(外形)과 우물면 아래의 심연(深淵/내면세계)이 동시에 표상되어서 ‘하나’가 될 때이다. 조경재는 2016년 작업부터 오브제 설치와 사진을 구분하지 않는 실험을 시작한다. 현장 설치와 설치된 것의 촬영(사진 작품)이 그의 세계에서 의미론적으로 구분되지 않을 때,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관객의 눈은 카메라 눈과 달라서 일정한 사각 프레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작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전시장을 맴맴 돌면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현장에 따라서, 또 전시장에 따라서 구성적 설치와 작품이 공간 연출로 드러나게 한 것도 그 이후의 한 특징이다. 보는 방식을 질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의도한 것을 은연중에 체험하는 것인지 알 듯 모를 듯 헷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하나의 지점, 하나의 시선, 하나의 장면이 있고, 그 지점과 시선과 장면들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감각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표층과 심층이 한 공간에서 연출되었기 때문에 사진도 그 내부에서는 하나의 오브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는 연기적 구성과 상상은 그 사물들이 드러내는 리얼리티로 생생하다. 생생화화(生生化化), 그러니까 낳고 낳고 되고 되는 어떤 구조, 어떤 구성, 어떤 실체가 사물의 기억(시간성)을 피워 올리면서 기묘한 현실의 기억과 만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06

《제12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전》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이곳저곳 이승저승 차안(此岸)은, 피안(彼岸)은,


2020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Live 옥상전: 여좌본부Ⅱ》(이하《옥상전》)는 2017년의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전시《부서진 모서리》에서 이어진다. “무겁고 강하면서도 가변적이고 즉흥적인 감각 추구”가《옥상전》에서도 보여지니까. 그런데 《옥상전》은 그가 사진에서 출발시켰던 화두의 한 자락을 완전히 날려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옥상전》은 구성적 설치, 연출적 구성, 프레임의 장면성, 어떤 지점과 시선 따위를 크게 고려치 않고, 관객이 공간의 내부로 ‘개입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타동사의 개념을 자동사의 개념으로 바꾼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 게다가 GG Ludens팀의 퍼포먼스와 영상이 끼어들어 설치공간을 ‘살아있게’ 작동시켰다는 점이 이전과 달랐다.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기억의 현존이 날것으로 호명되어서 찰나로 쌓이는 순간들이었다. 역설이다! 찰나로 쌓이는 순간들이 기억의 현존으로서 사진일 터인데, 사진은 온데간데없고 체험의 기억만 남아서 잔상을 머릿속으로 인화하고 있는 꼴이라니! 사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거나 사라진다는 것은 미학적 현실과 실존적 현실이 맞붙어서 ‘신화’라는 아우라를 생짜로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저곳이 없고 이승저승도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상은 상상이 아니고 현실이므로. 어쩌면 그는 미학이라는 관념과 개념을 흔들어서 무화시키거나, 예술가의 상상을 현실화한 뒤 관객의 상상이 그 내부에서 증식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상상적 콜렉티브의 그물코를 짓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 이 원고는 『2020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보고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관장. 김종길은 1968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국민대에서 미술이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문화패 갯돌 산하 미술패 대반동에 들어가 활동했고, 해원 씻김굿 형식의 실험극 「숲」을 쓰고 연출했다. 이후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살면서 우리 근현대사의 옹이진 사건들과 생태미학에 주목하며 행위예술, 민중미술, 제주4·3미술, 자연미술, 바깥미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녹색대학에서 강의했고, 성프란시스대학, 경기지역 자활 인문학, 지순협 대안대학, 다사리문화기획학교, 하늘배곧의 생성과 기획에 참여했다. 모란미술관,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에서 일하며 《경기천년도큐페스타: 경기 아카이브_지금,》,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 등을 기획했고, 저서로 『포스트 민중미술 샤먼 리얼리즘』(서울: 삶창, 2013), 『한국현대미술연대기 1987–2017』(서울: 디어북스, 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