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인간적인, 그리고 기계적인

posted 2022.09.19


우리가 일상의 대화에서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며 ‘인간적이다’, 혹은 ‘기계적이다’라고 말하던 순간을 기억해본다. 두 가지 특징 중 인간적이거나 기계적인 측면이 한 방향으로만 내재되어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박얼은 이러한 우리의 습관적인 관념을 호출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향후 그의 작업을 통하여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예측하게 한다. 박얼이 그의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계의 존재는 다른 매체를 생성함에 있어서 도구가 되는 존재를 초월한, 기계 자체가 주체가 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얼의 작업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인간이 어떻게 한계를 만들어 왔는지 간접적으로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공감대가 없을 듯 보이는 다른 개념들의 연결을 어떤 방식으로 시도해 왔는지, 필자는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의 ‘비결정성’과 연결 지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시몽동의 비결정성은 다른 표현으로 ‘열려 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2017-2020, 로봇 1종(맞춤형 전자장치, 모터, 옴니휠, 리튬폴리머 배터리, 아크릴, 황동, 합성수지), 네오디뮴자석, 철 프레임, 나무, 110×90×90cm.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 2017-2020, 로봇 2종(맞춤형 전자장치, 해킹된 카메라, 모터, 옴니휠, 리튬 폴리머 배터리, 아크릴, 합성수지), 나무, 10×180×180cm. 2020년 대전비엔날레 《인공지능: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0)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2017-2020, 로봇 1종(맞춤형 전자장치, 모터, 옴니휠, 리튬폴리머 배터리, 아크릴, 황동, 합성수지), 네오디뮴자석, 철 프레임, 나무, 110×90×90cm.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 2017-2020, 로봇 2종(맞춤형 전자장치, 해킹된 카메라, 모터, 옴니휠, 리튬 폴리머 배터리, 아크릴, 합성수지), 나무, 10×180×180cm. 2020년 대전비엔날레 《인공지능: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0)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박얼이 가장 최근에 참여한 전시는 2020년 대전비엔날레 《인공지능: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0)이다. 이 전시를 통하여 그는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자유로부터의 도피〉(2017-2020),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2017-2020) 두 점을 선보였다. 인간과 기계가 분리된 개체가 아닌,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결합을 시도하는 박얼의 작품은 전시공간에서도 예상보다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쇠약을 경험하고 있는 인간의 상태를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박얼의 기계와 흡사하게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긁는’-경계, 방어, 공포, 강박 등의 감정 등이 연상되는-날카롭고 예민한 ‘음’이 아닐까 싶었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에서는 인간의 집착에 대한 소리, 기계의 움직임, 닿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해보는, 환상을 좇아가는 ‘음’이 그렇지 않을까, 필자가 겪었던 경험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부터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시몽동이 기계의 진면목을 비결정성에서 찾았던 것처럼 기계와 인간이 서로 끊임없이 연결, 해체, 수렴을 거듭하는 과정은 유사한 지점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고 발전하는 것처럼 기계 또한 한 가지 기능으로 국한되지 않고 진화하며 다원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과 기계의 잠재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예측할 수 없는, 흥미로운 무한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과 기계는 시몽동의 개념처럼 ‘공진화’ 한다. 서로 결합하기도 하고 헤어져서 또 다른 접점을 찾아 다른 길로 떠나기도 한다. 시몽동은 이러한 현상을 ‘변환’이라고 지칭했다. 필자는 앞으로 등장할 탁월한 기계들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술우위의 시대를 두려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시몽동은 이러한 인간이 갖는 공포의 원인을 기술적 대상들과 관련한 존재 방식을 인간이 잘못 이해함으로써, 그리고 그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부적절하게 취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화의 기계학》(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 인천, 2021)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신화의 기계학》(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 인천, 2021)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좌) 〈DIY 포터블 후광〉, 2021, 탁상조명, 하네스 조끼, 철, 합성수지, 가변설치. (우) 〈후광 증강 기계〉, 2021, LED, 철, 알루미늄, 합성수지, 섬유, 74.5×45×4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좌) 〈DIY 포터블 후광〉, 2021, 탁상조명, 하네스 조끼, 철, 합성수지, 가변설치. (우) 〈후광 증강 기계〉, 2021, LED, 철, 알루미늄, 합성수지, 섬유, 74.5×45×4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박얼의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시리즈도 시몽동이 주장한 인간과 기계의 비결정성과 변환처럼 유사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는 기술과 인간을 비교하는 차원이 아니며 기술비판의 태도는 더더욱 아니다. 박얼의 작업은 공학자와 엔지니어가 설계도를 구성하고 기획하는 과정에서부터, 그가 예측했던 대로 현장에 설치하고 공개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분명히 그의 작업이 전자와 차별되는 것은, 그가 설계한 기계의 형태와 움직임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기계(작업)가 움직이면서 사람들이 어떠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특별한 것은, 박얼이 ‘모든 것이 동작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계속 맞추어’ 설계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가 보내온 설계도를 분석하고 재해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 진행과정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초단계라 할 수 있는, 설계도가 궁금해졌다. 설계도를 근간으로 수많은 과정을 마치 컨베이어벨트를 작동시키듯 진두지휘하는 박얼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The Walking Man〉, 2016(2021 재제작), 키네틱 설치, 알루미늄, 황동, 철 프레임, 풍선, 타이밍벨트 & 도르래, 모터, 감속기, 200×120×6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The Walking Man〉, 2016(2021 재제작), 키네틱 설치, 알루미늄, 황동, 철 프레임, 풍선, 타이밍벨트 & 도르래, 모터, 감속기, 200×120×6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The Walking Man II〉, 2018(2021 제작), 키네틱 설치, 알루미늄, 황동, 철 프레임, 타이밍벨트 & 도르래, 모터, 감속기, 200×120×6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The Walking Man II〉, 2018(2021 제작), 키네틱 설치, 알루미늄, 황동, 철 프레임, 타이밍벨트 & 도르래, 모터, 감속기, 200×120×65cm.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설계도를 읽어낼 수 없는 답답함을 뒤로 하고 필자가 했던 생각은, 박얼의 기계들이 인간과 조우하는 순간에(아마 전시장일 확률이 가장 높을 듯하다) 교감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진화’를 위한 테스트였다. 기계는 오작동 혹은 오류를 수정할 수 있지만, 사람은 실험이 가능한 존재는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기계가 인간보다 적극적인 공진화의 과정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처럼 인간이 가진 리얼리티, 기계가 갖추고 있는 리얼리티를 개별적으로 존중하면서 이 두 개체가 빚어낼 새로운 리얼리티에 주목하는 박얼의 작업은, 그렇기에 우리에게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권유한다. 그의 설명처럼 “기계가 다양한 센서를 통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인식하고 받아들일지 결정하고 또 그 방식과 반응에 관해서도 결정하게 된다”는 지점은 시몽동이 주장한, 기계도 인간적이라는 설명으로 설득력을 확보한다.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외적인 정보 상황에 민감하며 기능이 다원화되고 있다. 아울러 상호작용의 단계별 진화기능과 특징을 고려해 본다면, 박얼의 작업은 인간을 지배하고 위협하기는커녕 인간과 소통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변환의 매개체로서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다고 믿는다.


시몽동과 마찬가지로 정보기술에 주목하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지구촌의 형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감했던 백남준을 떠올려본다. 그는 기계에 대한 저항으로서 기계를 사용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간과 기계, 자연이 서로 매개하고 어우러지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출현시키듯, 이에 더하여 정동적인 공감과 정서가 전파되는 박얼의 새로운 작업이 인간과 기계의 아우라를 넘어선 ‘앙상블의 미학’과 ‘유희’로 보는 이들과 교감하는 순간을 필자는 기대해 마지않는다.


질베르 시몽동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은 철학자로 프랑스 생-에티엔에서 태어났다. ‘기계철학’의 창시자라 불린다. 1958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소르본과 푸아티에, 파리 4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는 박사학위 논문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1958), 부논문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1958)가 있다.


시몽동 철학의 핵심개념은 ‘개체화’이다. 과학철학, 기술철학, 기계철학을 일신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존재론을 전개해 나갔다. 이런 시도는 당대의 들뢰즈(Gilles DELUZE, 1925-1995)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후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 등의 정치철학,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 1956-)와 베르나르 스테글러(Bernard STIEGLER, 1952-)와 같은 과학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1)


[각주]


1) https://nomadist.tistory.com/590


※ 이 원고는 『2020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보고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현정

김현정은 대학원에서 박물관학, 현대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디어의 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디지털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감정과 감각의 흐름, 특히 사람들이 나누는 소통에 관심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전 트레버 페글렌: 기계비전》(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9), 《웅얼거리고 일렁거리는》(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8), 《수퍼전파-미디어 바이러스》(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3), 《한국-호주 뉴미디어 아트 교류전: 도깨비 방망이》(경기도미술관, 안산, 2010), 《한국-아랍에미리트연합 교류전: 불사조의 심장》(경기도미술관, 안산, 2011)을 기획하였으며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경기창작센터, 한국-뉴질랜드 협력 프로젝트 등 다수의 전시 프로젝트 및 현대미술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현재 경기도미술관 선임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