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직진하다 회전하는 변화

posted 2022.11.17


Relaxed Hurricane_ Swinging 2021, 2021,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Relaxed Hurricane_ Swinging 2021, 2021,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Relaxed Hurricane_ Swinging 2021, 2021,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해주: 2018년의 개인전 〈스윙잉〉에서 출발한 〈스윙잉 2021: Relaxed Hurricane〉이라는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이다. 그 작업에 대한 얘기들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해주: ‘Relaxed’라는 단어는 ‘아직’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앞으로 점점 세어지거나 커질 허리케인.


한나: 어쩌면 그러다 그냥 사라질 수도 있다.


해주: 작업의 형태에서 지난 번 〈스윙잉〉과는 다르게 회전하는 대열도 만들고, 음악도 새로운 버전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특히 천정에 회전 형태의 설치를 생각한 것은 어떤 필요였을까? 파급력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장치가 될까?


한나: 이전 〈스윙잉〉 작품들의 자세는 스스로 직립하는 것이었다. 그런 단순하고, 센 잣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풀어주고 싶은 의도가 있었다. 스스로 서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람이 스스로 서는 것도 힘들고 물체가, 기능성이 없는 예술 작품이 선다는 것 자체, 입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 조건을 풀어주기 시작하면 작업의 형태가 더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책임감 없는 모양을 해도 되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해주: 책임감 없는 모양?


한나: 서 있지 않아도 되기에 어떤 모양도 괜찮다는 것. 매달리기도 하고, 중력을 타지 않는 방식으로 설치된다는 것. 여기에 ‘책임감’이라는 말을 꼭 쓰고 싶은 것은, 직립이 물리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독립’의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멋대로 무슨 포즈를 취해도 되는 것이니까, 공중에서는 수직보다 평행으로 서기도 한다.


Swinging, 2018,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Swinging, 2018,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Swinging, 2018,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해주: 지난 〈스윙잉〉 전시 전체 구성의 어느 정도가 이번 작업에 다시 사용되나?


한나: 50-60퍼센트 정도. 온전하게 그 모양인 것은 40, 일부가 부서졌기 때문에 부서진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10-20, 그 외에는 새로 만드는 것들이다.


해주: 보통 작업은 전시의 시점에서 고정된 형태를 가지게 되고, 그 전시의 맥락과 공간에 맞춰 설치를 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소개될 때 그 형태를 대체로 유지하는 편이다. 물론 이 작업은 구성 요소가 많은 설치이기는 하지만 재현되지 않고, 현재 시점에 맞게 소환하여 새로운 버전으로 만든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업에 대한 특별한 입장이 있기 때문인 것인가.


한나: ‘시위대는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포맷의 작업이었다. 그래서 다른 작업에서의 재현과는 다른 것 같다. 그 순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시위대로 소개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해주: 그렇다면 앞으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입장으로 계속 변형해 갈 수 있을 텐데, 과거의 다른 작업들의 경우에도 이렇게 소환된 적이 있는지?


한나: 아직 없었다. 동물권에 대한 작업을 하고 다른 전시에서 다시 소개했던 경우는 있는데, 메세지가 고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형태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스윙잉〉은 출발부터 세상의 오합지졸, 여러 사람들의 의견, 생각, 변화의 욕망을 넣고 싶어서 소환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해주: 〈스윙잉〉은 한 방향으로 걷는 역동적인 시위대로 변화를 굳게 믿는 모습이었다. 이번 작업내부 구성 속에도 구체적인 메세지가 있는지?


한나: 구체적인 말을 못하고 있다. 그 때는 각 작업에 민감하게 구체적인 요소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이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열도 변화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무언가를 주장하는 인물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 작업의 아쉬움이기도 하고 특징이기도 하다. 특정한 무엇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그런 주장조차 주저하게 되는 상태인 것 같다. 그것이 답답하지만, 그러한 나의 상태가 이 작업에 들어간다. 뭔가를 주장하는데 주저하게 되는 이 상태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해주: 답보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지만, 재료의 사용에는 변화가 있다. 재료와 형식을 바꾸는 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한나: 전시가 끝나고 나면 다시 쓰일 수 없는 작업의 연약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업이 유지되고 보수가 가능하게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생각하면서 타벤더를 사용하여 주름이 그대로 얼은 것처럼 고정되게 하거나, 반 세라믹 정도의 강도를 갖는 점토 등 좀 더 유지 보수 능력이 있는 것들을 실험해 보게 되었다. 한편, 기존의 〈스윙잉〉의 작업들을 꺼내어보니, 색깔 점토처럼 유지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오히려 잘 남아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공들여 만든 것들은 삭고, 의외로 잘 남겨진 것들이 있는데 그러한 재료들을 강화해서 쓰게 될 것 같다.


해주: 작업의 보존에 대한 고민들과 함께, 이 시리즈는 작업의 맥락은 기존의 변형이지만, 재료에 있어서는 고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나: 보존 그리고 보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보존을 생각하면 다음 작업으로 나아가기 어렵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시즌 1의 작품의 최소 1-5개는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해주: 물질 자체가 쉽게 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많이 사라질 것 같은지?


한나: 과연 유지할 가치가 있나를 생각하다 보면 앞으로 계속 갖고 있게 될지 의문인 것도 있다.


해주: 이 작업은 작가와 함께 늙어가는 작업인 것인데 시간의 축으로 보자면, 매우 스케일이 큰 작업인 셈이다.


한나: 정치적 스탠스로 봤을 때 작가는 진보, 그 보다 더 앞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야만 존재하는 거라고 늘 생각하고 배워 오기도 했다. 인간 우한나로서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할 때도 그 생각을 유지하고픈 마음을 이 작업에 투영하는 것이다. 〈스윙잉〉은 변화를 바라는 시위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광장에 나가서 정권 퇴진을 바라던 나의 몸이 있었던, 그 처음 버전에 쏟아낸 후, 그렇게 바뀐 정권에서 그다지 만족할 만한 변화가 없었던 것, 나 자신도 그 때와는 다른 생활인이 되었다는 변화가 이 작업에 들어 있다. 일종의 회의감도 있지만 그것에 마냥 휩쓸리고 싶지만은 않은 그런 상태, 그 스모그 상태를 허리케인으로 드러낸다.


Swinging, 2018,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Swinging, 2018, 설치,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우한나.

해주: 작업에 천을 많이 사용하는데, 천을 사용하는 여러가지 방식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들었다.


한나: 천 하면 바느질을 생각하기 쉬운데, 바느질도 촘촘하게 하거나 실오라기가 풀리도록 느슨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끈끈한 군집이 되는 것으로서 직조도 있고 매듭도 있다.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직조는 결이 같아야 하는데 매듭은 결이 같지 않아도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서 절대 풀리지 않게 된다. 그런 부분들이 쾌감을 준다. 여러 방법들 중 매듭을 가장 좋아하고, 꽉 묶인 것 아래로 떨어지는 드레이프를 좋아한다. 그것이 늘 하나의 개인보다 오합지졸의 다수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 작법에 맞아 떨어진다. 넥타이도 남성적 상징 때문이 아니라 패턴이 다양해서 좋아한다. 원래 매듭과 드레이프 요소가 있는 그 사물이 서로 다른 천과 묶였을 때가 흥미롭다.


해주: 선택하는 천의 재질, 색깔들도 일부 상징을 담는지? 혹은 그림, 드로잉을 하듯이 선택하는지? 자주 쓰는 물감처럼 주로 선택하는 천의 색감이 있는 것 같다.


한나: 드로잉처럼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마 소재는 갑자기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 같아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광택이 있는 천을 좋아한다. 컬러 팔레트가 하늘색을 기준으로 하여 연둣빛 하늘, 핑크빛 하늘 등의 계열로 가고, 그것과 어울릴 만한 색감들로 구성된다. 여기서 의외성을 가미할 수 있는 주황색이 선택되는 등의 방식이다. 가끔 검정으로만 구성된 멋들어진 작업을 꿈에 선 가 보고 연구해보지만 결국 거기에 파란 리본이 하나 달리는, 그런 식이다.


해주: 예전에 앨리스 캐릭터를 다양한 형태와 색으로 변형하는 드로잉 연습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한나: 늘 그러한 그림, 드로잉 연습을 하고 그 연습의 결과가 본 작업의 컬러에 많이 반영된다. 그런데 올해는 물성과 형태에 대한 연습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주: 고정성이 있는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형태의 결정에 더욱 신중하거나 ‘이미 나와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인정해 버리거나 이런 재료를 대하는 마음이랄까, 작가와 재료 사이의 에너지의 교환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한나: 아직은 그 교환에서 이기지 못한 상태인데 그래도 좀 어떻게 싸우면 될 것 같다. (웃음)
좋은 것을 봐도 모방을 잘 못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기도 한데, 새로운 것, 새로운 재료를 대하면서 생긴 이상한 어떤 방법이 나의 방식이 되지 않을까.


해주: 그게 또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달라지고.


한나: 아무도 나를 규정할 수 없어. (웃음)


※ 이 원고는 『2021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해주 / 큐레이터

김해주는 전시 기획자이며 2022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