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미술전문가

알레시오 카발라로 (Alessio Cavallaro) 독립큐레이터, FeelDance 디렉터

posted 2013.01.02

"전시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작품과 관람객이 의미있고 통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요즘 많은 미술곤에서 대중문화와 접목한 전시를 많이 기획하고 있지만, 큐레이터이자 전시 프로듀서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가능성을 엿보고 이를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적인 예술은 TV, 라디오,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한 영역이다. 반면 한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에 대한 조망은 미술관이 아니면 실제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알레시오 카발라로(Alessio Cavallaro)/독립큐레이터알레시오 카발라로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면서 독립예술감독, 큐레이터 및 ‘창의적 미디어 아트’를 다루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ReelDance 의 디렉터로서 《Dance on Screen 2012》를 기획하였다. 2000년-2010년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Australian Centre for the Moving Image (ACMI) 에서 책임큐레이터로 활동하였고, 《Transfigure》(2003), 《SenseSurround》(2004), 《World Without End》(2005), 《Contemporary Commonwealth》(2006)를 포함한 20여 개의 대형 전시를 기획하였다. 1997년-2000년 시드니에 위치한 dLux media arts 의 설립이사로서 다수의 국제 프로젝트의 프로듀싱 및 큐레이팅을 맡았다. 공동 편집한 출판물로 아트저널 [RealTime] (1996-2000), 국제아트저널 [Essays in Sound] (1994-1998), [Prefiguring Cyberculture] (MIT Press 2003), 1960년대 이후의 호주 비디오아트를 주제로 한 온라인 아카이브인 [Scanlines] (UNSW 2012) 등이 있다. ISEA 1992 Sydney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현재 ISEA 2013 Sydney의 큐레토리얼 위원회의 멤버로 시각 및 공연예술, 과학 및 테크놀러지의 다방면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나쁜 예술은 없다. 나쁜 큐레이터만이 있을 뿐이다.

12월 3일부터 시작하여 5일에 막을 내린 [Curating in Asia]는 미리 발제를 준비해오고 발제에 맞춘 질문과 준비된 답변으로 소통하는 기존의 프로그램과 달리 5명의 국내 큐레이터와 5명의 해외 큐레이터가 2박 3일 간의 타이트한 일정을 함께 하며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시도였다. 서로 배경이 다른 큐레이터들은 때로는 이슈를 공유하며, 때로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며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였고, 그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었다. 초청 큐레이터들 중 호주 출신의 Alessio Cavallaro(알레시오 카발라로)는 ACMI(Austrailian Center for the Moving Image)의 수석 큐레이터와 ReelDance 디렉터를 거치며 오랜 기간 동안 국공립기관에서 동시대 호주의 실험적인 미디어 아트신을 이끌었던 백전노장의 큐레이터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가까운 독립 큐레이터(Shankar Barua), 국립기관 디렉터(Tan Boon Hui), 사립 미술관 큐레이터(Natsumi Araki), 페스티벌 기획자(Tarek Abou El Fetouh) 등 초청자들의 서로 다른 조합 속에서 알레시오는 가장 오랫동안 큐레이터라는 직책에 고민해 온 큐레이터답게 자신의 가치관과 태도, 실험적이고 대담한 프로젝트들을 열정적으로 소개하였다. 아래의 인터뷰는 신진큐레이터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참가자로 함께하였던 김영민씨의 서면 인터뷰와 프로그램 기간 중 알레시오의 발제 및 그와의 직접 대화를 발췌한 내용이다.


이수연(이하 이): [Curating in Asia 2012]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회는 어떠한가?

알레시오 카발라로(이하 A): 우선 아시아, 오세아니아라는 지역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서로 전혀 다른 다양한 문화를 가진 여러 국적의 큐레이터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각 국가의 정치, 사회적 배경이 다른 만큼,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여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의 국가들은 현대미술의 발전상황과 발전 방향에 있어서 동일하게 서구문화의 영향 하에서도 서로 다른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의 과정에 대한 경험이 함께 모일 때 새롭게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끌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특히 한국, 인도, 중동, 일본 등은 현재 유럽 미술계와 미국 미술계에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갈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세미나와 같은 본격적인 협업 과정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번 모임에서는 각 큐레이터의 특성과 주요 이슈, 연구영역 등을 공유하고 각 이슈별로 짧게 나마 의견을 나누었다. 모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지속됨으로써 전시 협업, 작가 교환, 파일럿 프로젝트 등 좀 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Curating in Asia 2012] 워크숍에서 본인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Alessio Cavallaro
[Curating in Asia 2012] 워크숍에서 본인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Alessio Cavallaro

: 그동안 많은 전시를 기획했는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

A: 청소년기부터 나는 대중문화보다는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음악과 미술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러한 점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컸던 전시는 2003년 ACMI가 오픈한 다음 해 그곳에서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Transfigure》일 것이다. 이 전시는 시각, 청각 등 몸의 지각과 기술, 현상학에 관련한 전시로 새로 개관한 ACMI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전시이기도 했다. “모든 종류의 움직이는 이미지를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전시에는 16mm 필름, 뮤직 비디오, 바이오메디컬 시각장치, 인터랙티브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시각문화의 징후를 알리는 모든 종류의 작업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Char Davies와 같이 지각 실험을 통해 영상과 필름의 경계를 확장하는 혁신적인 작가들이 포함되었다.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한 전시답게 이 전시의 도록은 TRANSFIGURE라는 웹사이트로 남아있으며 이 웹사이트는 2004년 “Museums Australia Publications Design Awards”를 수상하였다.(Char Davies는 화가 출신의 작가로 1980년대 이후 디지털 이미지에 관심을 갖고 3D 소프트웨어 회사인 Softimage를 설립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 가상현실을 개척하며 자연, 존재의 본질 등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전시 참여작인 1995년 작 [Osmos]는 3D 그래픽과 사운드를 이용하여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관객은 가상공간의 풍경과 사운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3차원 공간 속의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이 작업은 디지털 아트의 새로운 기원을 연 작업으로 평가 받는다-필자 주)


《Transfigure》전시작


: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전시 혹은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러한 전시나 작품이 어떻게 관람객과 소통하는가?

A: 전시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작품과 관람객이 의미있고 통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어떤 전시를 하든 모든 관람객이 모든 작품에 대해서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자의 생각과 감성에 따른 각각의 경험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실험적인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작업을 감상하면서 각자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감동을 얻는다. 특히 미디어 전시에서 이러한 감동을 위해 중요한 것은 감상환경이다. 미디어 소장품 전시를 위하여 특별히 화이트 큐브 공간 안에 블랙박스를 제작 하였듯이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업을 진지하게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전시장에서 구현하도록 노력하여야한다.(미디어 전시환경에 관한 대화에서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첫 미디어 소장품 전시인《조용한 행성의 바깥》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이 전시에서 미디어 작품이 관람객에게 회화와 조각과 같은 아우라를 갖고 다가가도록 하기 위하여 미술관의 전시공간을 빛, 소리에 최적화시킨 블랙박스로 개조하여 감상환경을 제공하였다.-필자 주) 나는 전시를 구현할 때 소리와 빛의 울림 등이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지각되는지 예민하게 관찰하는 편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외로운 70대 관람객이 Stelarc의 [Prosthetic Head](2002)에 대고 한 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거나 브뤼셀에서 온 어린 꼬마소녀가 Jon McCormack의 [Eden](2000)의 새로운 생태계에 매혹되어 전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Stelarc는 몸을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로 [Prosthetic Head]는 관람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도록 만들어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장착한 3D 아바타 머리이다. 프로그램에 불과하지만 작가와 닮도록 만들어진 얼굴이 끄덕이거나 고개를 갸웃할 때의 제스처 등을 통해 관람객은 이 소프트웨어를 의인화 시키고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된다. Jon McCormack은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로 인공생명에 큰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한다. [Eden]은 그가 리치필드 국립공원을 다녀와서 대자연에 감명을 받고 제작한 작품으로 이 가상공간 속의 자연계는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며, 주변 환경의 소리와 빛에 반응한다. 또한 스스로 자가발전하고,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전시기간이 지날수록 이 환상적인 자연계는 점점 더 자라게 되는 것이다.-필자 주)


: 큐레이터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3일의 세미나 기간 동안 알레시오는 큐레이터로서의 “임무” 혹은 “역할”에 대한 언급을 특히 많이 했다. ACMI의 수석 큐레이터에서 ReelDance 디렉터로, 다시 독립큐레이터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모로 생각한 바가 많았던 만큼 큐레이터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동시대 문화의 프로듀서이자, 협력자, 심지어 후원자로서의 큐레이터의 역할을 계속해서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하였다.-필자 주)
특히 요즘 많은 미술관에서 대중문화와 접목한 전시를 많이 기획하고 있지만, 큐레이터이자 전시 프로듀서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가능성을 엿보고 이를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적인 예술은 TV, 라디오,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한 영역이다. 반면 한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에 대한 조망은 미술관이 아니면 실제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반, 필름, 회화, 시, 조각 등 전 영역에 걸쳐서 가장 혁신적인 성과를 이루었던 작가 Len Lye에 대한 조망이 2009년 ACMI에서 회고전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좋은 예이다. 특히 공적인 자금의 지원을 받은 국공립 기관들은 이러한 의무를 망기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던 시대에 국공립 지원을 받는 미술관이 있었다면 당시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미술관 큐레이터는 반 고흐의 실험성과 동시대성을 담론화 시키고, 공공의 영역, 즉 전시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큐레이터의 소양이다.-필자 주, 대화 중 삽입내용) ACMI가 팀 버튼 전시를 개최하였을 때 나는 반드시 전시장 한 쪽에 호주 혹은 아시아의 동시대 실험 미술을 소개하는 섹션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중적인 전시의 한 편에 실험적인 전시를 함께 개최함으로써 더 많은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 문화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큐레이터의 역할과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작품의 제작과 설치, 전시 과정이 점점 더 일체화되어가는 현대 미술에서 많은 경우 큐레이터가 선택한 방향을 통해서 동시대 미술과 대중이 소통하는 방식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큐레이터들을 만날 때마다 큐레이터의 막중한 책임에 관하여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나쁜 예술은 없다. 나쁜 큐레이터만이 있을 뿐이다. There is no bad art, only bad Curators."

이수연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학위논문으로 《백남준의 퍼포먼스 연구-매체의 변화와 감각의 확장을 중심으로》(2007)가 있으며 사무소(SAMUSO)를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중이다. 동시대 미디어 아트와 영화, 퍼포먼스 등 예술 외연의 확장에 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미디어 소장품 전시 《조용한 행성의 바깥》(2010)에 이어 2011년 《청계천 프로젝트》, 《소통의 기술: 안리살라, 함양아, 필립 파레노, 호르헤 파르도》(2011) 및 2012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와 함께 퍼포먼스 전시 《MOVE》(2012)를 기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