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들이 예견한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이미 우리의 '환경' 도처에서 그 실현 가능성을 검증받고 있다. 게다가 예술이 미래 사회와 연동하여 '사로운 시각과 담론'을 생산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종종 눈에 띈다. 그것이 '더 나은'사회를 위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결코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반목과 갈등을 품고 았는 불완전한 꿈의 사회가 제시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라는 점에는 깊이 공감한다. 여전히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고 있는, 여기 10여 명의 작가들처럼...
새롭긴 하지만 가볍기 짝이 없는 표면적인 모습의 자본주의 대중사회의 실패한 얼굴은 이제 마르크스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깊고 새로운 역사로 바뀔 수 있는가. 21세기 산업자본(주의)에 화답하는 예술문화의 도상을 긍정적 기호로 조망하는 작업들은 문화역서울284의 전시 《드림 소사이어티 Dream Society》에서 만날 수 있다. ‘21세기에 승리하는 기업’ 현대자동차의 첫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인 드림 소사이어티는 ‘산업과 문화의 상호조화’라는 개념의 실천이 그 취지란다. 서진석에 의해 기획된 전시는 정보사회의 뒤를 이어 도래할 사회 ‘드림 소사이어티’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는 롤프 옌센(Rolf Jensen)의 동명의 책에 동의하여 제시한 암시적이고도 추상화된 수정본이자 예술(실천)판본이다.
알다시피, 지난 1981년 사적 ‘284’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는 ‘서울’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동시대 여러 난제들을 불러 모아 ‘문화(예술)’을 통한 해결가능성을 질문하고 준비하는 스테이션으로서 장소적 특징을 갖는다. 이 같은 장소성을 부각시키며 불가능할지도 모를 미래를 향한 제안들 중 ‘지금’ ‘여기’ 문화역서울284에서의 《드림 소사이어티》전은 예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예술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새로운’ 현실과의 적극적인 접속, 다시 말해서 예술의 공공화, 예술의 산업화가 가져올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수평적 차원을 배열하고 있다. 전시는 “매력있는 유인권력과 활력있는 운명 에너지로서” 자본을 규정한다. 그간 산업자본에 종속된 예술, 즉 이 양자 간의 수직적 위계를 경계하고 수평적 길항관계가 회복되는 ‘드림 소사이어티’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래할 드림 소사이어티는 광고, 패션, 디지털그래픽 프린트 등의 산업자본주의 표상형식을 코어로 미술과 무용, 음악, 건축 등의 다양한 예술 범주가 기술과 인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융합되고 전지구화되는 과정과 서로 연결되고 있다.
왼쪽) 김용호_Hyundai Motors CF Image_size variable_2013 오른쪽) 임선옥_partspARTs 2013 F/W GREY_여의도 IFC몰_2013. 3. 26닫힌 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러 대의 모니터로 김용호의 광고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감각적인 CF 이미지는 202개의 로봇전구 ‘모던보이’와 함께 ‘자아의 실현과 대중의 행복한 반향이야말로 진정한 꿈의 실현’이라는 산업자본주의의 세계를 표상한다. 김용호의 작업에서 산업자본주의와 대중주의의 미덕은 예술과 결합되어 아름다움의 극점에 위치한다. 압축되고 파편화된 감각과 유혹의 표상인 그의 광고 속 이미지들이 ‘소비’가 약속하는 행복을 성취하라고 ‘설득’한다. 마치 내세의 행복을 약속하는 종교와도 같이 김용호의 광고는 이 세상에서 누릴 가정의 행복, 연인과의 즐거운 하루, 멋진 여행을 약속하는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압축성형 옷들은 마치 조각과도 같이 조형적 요소가 강렬하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옷을 입은 모델들의 워킹 영상과 의상의 색다른 구성적 프로젝션은 예술과 일상의 결합이 가져올 행복의 메시지이다. 재단과 봉제에서 낭비되는 자투리 옷감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채택된 그의 ‘압축성형’ 의상들은 그리하여 더욱 윤리적이다. 패션인 동시에 작품이자 판타지인 동시에 일상인 임선옥의 옷에서 유토피아주의는 맹목적인 근대적 차원에서 윤리적인 차원으로 전치되고 있다.
대중적 욕망이나 산업자본주의가 드러내는 스펙터클의 위용은 정연두의 〈Drive-In Theater〉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역사 내 플랫폼이었던 곳에 누구나 승차할 수 있는 자동차를 설치했다. 관객의 승차와 동시에 와이퍼에 설치된 조명이 켜지고 자동차 양쪽 측면에서는 거리의 풍경을 담은 거대한 스크린롤이 반복해서 회전한다. 승차한 관객을 일상으로부터 비실재적 현실의 피안으로 이동시켜 주는 것은 자동차, 조명, 실시간 카메라 등의 테크놀러지와 예술가의 상상력의 결합이 주는 선물이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지속적으로 주목해 온 이동기는 산업자본과 예술의 교차점에서 상승되는 시너지와 이를 통해 형성되는 대중적 보편가치를 현시해 왔다. 그의 그림 속 ‘박스 로봇’은 백색의 순결한 도시 모형과 그걸 내려다보는 대형 로봇으로 설치, 현실화되었다. 우리에게 로봇은 인간을 배제한 산업자본주의가 당긴 불온한 미래와 짝을 이루기 마련이지만, 이동기의 ‘박스 로봇’은 파워, 위기, 구원 등의 부정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히어로가 아닌, 편리해서 즐거운 일상을 주는 〈Box Robot Parking Tower〉일 뿐이다.
왼쪽)이동기_Box robot parking tower_가변설치_2013 오른쪽)서현석_HETEROTOPIA inn 2_퍼포먼스 영상_2010-11한편, 협소한 영역주의(국가적, 연대기적, 그리고 이론적)를 벗어나 곧 다가올 미래사회, 그 아름다움에 관한 모색은 장르와 장르간의 협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건축가 조민석과 미디어 아티스트 서현석의 협업 작업 <줌 아웃/존 아웃(Zoom Out/Zone Out)>은 조민석의 설계 건축물 40개의 스틸 사진과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대사와 배경음악으로 구성되었다. 개별적이고 분절적인 사적경험과도 같은 건축 개별의 물질적 텍스처와 영화 대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물이 지닌 복합적 시공의 질서와 규칙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끌어 공적 경험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설치작가 오세인과 협업한 디제이 쿠마나 공학자 모토이 이시바시와 협업한 다이토 마나베의 작업들은 ‘드림 소사이어티’ 시대에 예술은 근대적 섹트주의를 벗어버리고 산업자본의 기술과학과 인간 간의 관계회복에 나설 때 가능성으로서 작용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출판,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에서부터 순수미술 전시까지 탈경계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오고 있는 그래픽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은 한글과 특수기호가 반복적으로 〈되풀이(Recurring)〉되어 구성된 전광판을 늘어놓았다. 강렬한 색과 빛, 특수기호와 함께 배열됨으로써 탈의미화된 한글은 일상 언어에서 테크놀로지 언어로 변용되어 디자인의 지시적인 실용성은 다층적 레이어를 지닌 추상적 예술로 화하였다. 세 개의 리어 스크린을 이용해 독립되거나 통합되는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이고 있는 문경원+전준호의 작업 〈MONOLOGUE-CORPS SANS ORGANES〉은 디오니소스 신전의 제식과도 같은 무용가들의 춤과 달을 연상케 하는 조명, 공간 설치를 통해 생명의 유한함과 그들의 시간, 그 단편들의 궤적과 의미를 상징화한다.
문경원&전준호_MONOLOGUE-CORPS SANS ORGANES_HD Film_Variable dimension_2013이로써, 《드림 소사이어티》전은 쇄도하는 반문화적 보수주의, 반관습적 태도와 융합과 통섭의 시대적 재촉에 따른 문화복합의 형태에 대한 주류의 발 빠른 반응을 가시화하고 있는 듯하다. 기획자가 의도한 바대로 “자본주의 4.0시대에 걸맞은 산업계와 예술계의 새로운 융합 모델”은 제안되었다. 산업자본주의의 결과로서 상품교환경제가 압도적이 된 이 시점에서조차 교환에는 다양한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환을 융합의 차원으로 전치시킴으로써, 근본적으로 다른 기원을 가진 것처럼 간주되던 경제, 정치, 문화의 차원 각각이 분절되어 폄하, 혹은 신비화되는 극단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결합되는 구조 속에 놓여있음을 일깨우는 것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림 소사이어티》가 자본주의 대중사회의 실패한 얼굴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마도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의 공공성’을 모호하게 설정한 것에서 비롯된다. ‘대중성’과 ‘공공성’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이 두 개념 사이를 혼돈스럽게 오가는 듯한 인상은 구성된 작가와 그들의 작품 성격, 동선, 그리고 전시의 전체적인 맥락 등에서 진하게 풍긴다. 예컨대, 이미 익숙한 바이지만 순수미술과 타장르의 협업, 즉 순수미술과 만나는 건축과 영화, 대중음악, 무용, 디자인과의 무경계적 시도나 경배에 가까운 테크놀로지와 산업자본주의, 그 결과로서의 환상 세계의 제시 등은 유토피아 그자체로서의 긍정적 차원에서만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축복과도 같은 자본의 충만한 세례가 드리울 배면의 억압, 소외, 구조적 병폐의 과정 등은 철저히 은폐된 채, 그저 반짝거리는 상품적 가치로서의 결과주의만 남은 듯한 것도 그러하다.
슬기와 민_Recurring_드림 소사이어티 전시전경_2013예술성과 경제성과의 올바른 공유와 양자 간의 수평적 길항관계는 ‘예술의 공공성’을 ‘과정’으로서 주목할 때 깊이 있지만 새로운 역사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성이라는 아름다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소외되고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시스템들이 노출하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이러저러한 과정들의 은폐는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라는 희랍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 전시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방법적 실천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것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사진제공] 대안공간 루프
김미정은 2010년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1960-70년대 한국의 공공미술, 박정희 시대의 기념물을 중심으로(Public Art of Korea in 1960-70s, On Public Monuments in the Park Jung Hee Years)」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동대학에서 한국근현대미술(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Art)을 강의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전쟁의 기억과 기념, 박정희 시대와 앵포르멜 미술(Korean Informel Art in Park Jung Hee’s regime), ‘한국적’ 모더니즘과 민족주의(‘Korean’ Modernism and Nationalism) 등 한국의 전후(戰後) 미술을 정치·사회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왔다. 2007년과 2011년 문화재청 「근대문화자료 기초조사연구」 회화와 조각 부분에 참여했고, 2008년에는 전쟁기념사업회가 추진한 「6․25 전쟁미술 조사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역사적 기억으로서의 한국 공공기념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