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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보존복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posted 2015.08.19

최근 국내에서 미술품 보존 전문가, 즉 '컨서베이터(Conservator)'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컨서베이터는 작품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정확한 연구를 통해 작품 보존의 필요성을 검토, 제어한다. 동시대의 보존은 작품을 왜 복원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보존윤리와 예방보존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함께 국내에도 올바른 보존복원 문화가 자리잡길 기대하며 컨서베이터의 명칭과 역사,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살펴본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이 알고, 그래서 더 적은 것을 합니다.”(Now we know much more, and so we do much less.) 런던의 미술품 보존 관련 학회 현장에서 권위 있는 보존과학과 교수가 언급한 말이다. 이 말은 전 세계적인 보존과학 분야의 추세를 함축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보존전문가로서의 자세와 철학을 담고 있다. 작품에 대하여 연구하고 알아갈수록, 작품 보존은 '최소한의 개입'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하는 조치만을 취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 보존과학 역사의 흐름에서, 초기에는 작품 보존의 방법론을 모색하였다면 동시대에는 점차적으로 시행착오로 겪었던 것들을 반성하고 재고하여 보존에 영향을 주는 환경연구와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작품을 ‘어떻게’ 복원하느냐보다 ‘왜’ 복원하는가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시대는 보존 윤리(Conservation Ethic), 예방 보존(Preventive Conservation)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철저한 평가와 정확한 연구를 통해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 가능성을 모색하고 작품 보존의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제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존전문가, 즉 컨서베이터(Conservator)라 한다.


왼쪽) 보존처리에 앞서 작품을 면밀히 관찰하고 조사하는 모습 (사진: 조자현) 오른쪽) 영국의 노섬브리아 대학교, 회화보존스튜디오 전경 (사진: 조자현) 왼쪽) 보존처리에 앞서 작품을 면밀히 관찰하고 조사하는 모습 (사진: 조자현)
오른쪽) 영국의 노섬브리아 대학교, 회화보존스튜디오 전경 (사진: 조자현)



작품보존의 용어와 개념들


최근 국내에서도 미술 작품 보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컨서베이터에 대한 몰이해는 올바른 컨서베이션 구축과 관리,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컨서베이션(conservation)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려면 서양에서 정립한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제보존과학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협회인 국제박물관협회 내의 보존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 Committee for Conservation, 이하 ICOM-CC)에서는 컨서베이터의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 2008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15번째 트리엔날레 학회에서 컨서베이션에 관한 모든 용어들의 통용화가 제안되였다. 이러한 과정은 보존분야 전문가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도모하고 나아가 대중에게 공표하여 혼돈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이후 관련 용어들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발표되었다. ICOM-CC에서 강조하는 개념을 인용하여 설명하자면, 컨서베이션은 유형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며 관리하는 모든 방법들과 조치를 포함하며, 후대에게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모든 방법들과 조치는 문화유산의 물리적 성질과 그 중요성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컨서베이션의 범주는 방대하면서 특화된 분야이다. 서양에서 컨서베이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시점은 1970년에 이르러서이다. 컨서베이션을 키워드로 구글에 검색해보면 환경 보존부터 시작해서 멸종위기 동물의 보호 등 매우 방대한 보존분야들이 링크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미술품 보존복원에 대해 인터넷 상에서 정보를 찾고자 할 때, ‘conservation’ 앞에 단어 하나씩을 더하면 알고자하는 분야의 검색이 더욱 용이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술품 보존복원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자 할 경우, ‘Art Conservation’, 회화보존복원 분야는 ‘Painting Conservation’, 조각 및 입체보존복원분야는 ‘Object Conservation’, 종이로 이루어진 작품의 보존복원분야는 ‘Paper Conservation’, 보존과학을 알고자 할 때는 ‘Conservation Science’등으로 분류하여 검색한다. 더불어 컨서베이션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인력들 또한 석, 박사학위의 전공별, 보존하는 대상의 재질별로 분류하여 명명한다.


서양회화보존처리에 안료, 접착제 등 사용되고 있는 재료 (사진: 조자현) 서양회화보존처리에 안료, 접착제 등 사용되고 있는 재료 (사진: 조자현)



다양한 장르, 새로운 보존 분야


필자의 경우 이젤 페인팅(Master of Easel Painting conservation)을 전공하였으므로 서양회화 보존복원 전문가(Painting Conservator)로써 활동하고 있다. 서구에서도 컨서베이션의 명칭은 미술사의 역사, 산업화에 따른 신소재들의 개발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천하며 세분화되었다. 컨서베이터 명칭 변화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컨서베이터에 관한 명칭의 역사, 출처:Dr Joyce Townsend, ,Science and the protection of cultural heritage, 2012 컨서베이터에 관한 명칭의 역사, 출처:Dr Joyce Townsend, ,Science and the protection of cultural heritage, 2012

2000년대에서 주목할 점은 예방보존학자와 재료역사학자, 미디어아트의 영구 보존에 종사하는 테크니션, 소장품 관리사 등의 출현이다. 이는 작가들이 새로운 재료를 모색하고 시각예술의 장르가 공연예술, 미디어아트(Time Based Media)로 확장됨에 따라 함께 요구되는 보존분야도 연구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테이트 갤러리의 시니어 보존과학자, 조이스 타운센드(Joyce Townsend)의 학회발제 모습 (사진: 조자현) 테이트 갤러리의 시니어 보존과학자, 조이스 타운센드(Joyce Townsend)의 학회발제 모습 (사진: 조자현)

국내 미술품보존 직업군의 경우 서구에 비해 경계가 불분명하고 전문화되지 않았으며, 걸음마 단계인 시점이다. 최근 국내 보존 활동의 동향 역시 미술품, 문화재를 향한 원본의 중요성은 느끼면서도 개념들에 대해서는 낯설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작품의 원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보존복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미술품 복원에 대한 인식이 하나의 전문분야로서 인정받기보다 비밀리에 하는 작업으로 생각한다. 작품에 있어 복원 이력(Conservation Treatment Record)이 생성될 경우, 작품의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실제로 작품복원에 대한 이력, 보존전문가가 작품의 상태와 훼손도를 기록해 놓은 컨디션 리포트(Condition Report) 그리고 역대 소장자들의 목록은 작품의 진위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해당 작품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핵심적 자료들이다. 미술품 보존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다면, 예술작품은 인류의 역사를 예술가의 눈으로 한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특징을 융합하여 반영한 산물로서 훼손된 상태를 개선하고 보존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보존복원의 필요성은 문화재를 후대에게 가능한 한 그대로 물려줄 책임과 의무에도 내포되어 있다.


왼쪽) 2014 국제보존학회 현장, 정보교환과 노하우 공유의 장 (사진: 조자현) 오른쪽) 2015 테이트 갤러리, 보존처리 보고서 (사진: 조자현) 왼쪽) 2014 국제보존학회 현장, 정보교환과 노하우 공유의 장 (사진: 조자현) 오른쪽) 2015 테이트 갤러리, 보존처리 보고서 (사진: 조자현)



보존에 임하는 자세, 보존윤리의 중요성


최근 보존윤리와 예방보존을 둘러싼 움직임이 활발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보존윤리의 개념은 보존복원 활동에 앞서 ‘균형과 우선권(Balance and Priorities)’을 목적으로 윤리방침을 세우고 균형을 지키는 것이다. 예방보존(Preventive Conservation)이란 작품의 노화와 물리적인 손상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뜻한다. 나아가 작품 자체 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작품에 관한 등록, 수장환경, 핸들링, 포장, 운송, 보안, 올바른 환경 조성(조도, 온, 습도, 오염, 해충방지)과 비상대책, 미술관련 종사자, 대중의 교육까지 포함하여 적절한 방법을 모색하고 예측하는 것이다.
보존전문가는 작품을 내 것처럼 사랑하고 관심이 많아야 한다. 작품을 둘러싸고 동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형태의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작품의 물성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유기화학적 접근 태도를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보존처리에 앞서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기준에 의해 미술작품이 변형되거나 수정되지 않아야 함을 보존윤리의식으로 지키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보존처리 계획을 스스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현직작가, 큐레이터, 아키비스트, 콜렉터, 미술이론가, 국내외 동료 보존전문가 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즉 보존전문가에게 조화로운 학제간의 연구, 시각예술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최상의 보존처리를 계획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자질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국제적인 추세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보존전문가의 덕목 중 하나인 실무정보 및 기술 노하우를 함께 교환할 수 있는 열린 자세와 책임감을 갖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국제적으로 지속적인 학회들의 개최와 연이은 협회들의 출현은 바로 이 점을 시사한다. 각 보존 전문가 개개인이 과거와 현재에 진행 중인 연구들은 미래의 연구에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선행 연구지로서 이용할 수 있도록 작성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아카이브의 역할이 중추적으로 작용함을 이해하고, 후대에도 참고자료가 될 수 있도록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왼쪽)2015 테이트 스토어, 수장고 현장에서의 보존전문가의 모습 (사진: 조자현) 오른쪽)먼지, 곰팡이, 유해환경 속에서 작품에 축적된 먼지를 제거하는 장면 (사진: 조자현) 왼쪽)2015 테이트 스토어, 수장고 현장에서의 보존전문가의 모습 (사진: 조자현)
오른쪽)먼지, 곰팡이, 유해환경 속에서 작품에 축적된 먼지를 제거하는 장면 (사진: 조자현)



예술품에 담긴 잠재성과 가치를 향해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보존전문가는 스튜디오 안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정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현장에서 보존전문가의 일은 호흡이 느린 정적인 작업의 연장이며, 보존처리 이전의 준비 과정이 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지구력과 인내력을 지녀야 한다. 동시에 동적인 작업이기도 한데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서늘한 수장고나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계절에 상관없이 야외에서 또는 출장의 형태로 활동하기 때문에 늘 유연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유해한 재료들은 그들의 건강 상태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찢겨지고 화상에 의해 복원된 작품들이 건강을 되찾았을 때, 소장자나 담당자가 보존 처리된 작품을 보고 만족해 할 때 보존전문가는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학제간의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협업에 의한 보존처리는 더욱 의미 있게 기억된다.마지막으로 필자의 보존에 대한 철학과 일치하는 루브르박물관의 보존학자인 앙드레 르 프랏(Andre Le Prat)이 언급한 보존전문가의 임무에 대한 노트를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앞으로 국내의 모든 작품들이 작가의 인지도로 차별받지 않고, 하나의 문화재로 여겨지며 올바른 보존복원 문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유명한 중국 화가 석도 (石濤)의 일생의 결과인 <화어록, 1700-1720년경>에서 그는 화가의 인식에 관해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관습적이고 산만한 관찰을 거부하고 초월하라는 실로 훌륭한 가르침이다. 석도의 말을 환원하면 보존가의 임무는 예술작품에 담긴 모든 잠재성과 가치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수용해 이를 전달하는 것이라 하겠다.“
앙드레 르 프랏(Andre Le Prat, Head of Conservation Studio, Prints and Drawings Department, Musee du Louvre)

조자현 / ZENA Art Conservation, Seoul 대표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에서 회화보존(Conservation of Fine Art)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제나미술품보존연구소(ZENA Art Conservation, Seoul) 대표로서, 근, 현대회화작품을 대상으로 보존복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 미팅룸(meetingroom.co.kr)의 작품보존복원파트의 객원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http://zenaconservation.wix.com/zenastudio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