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퍼블릭아트 편집부
진행 퍼블릭아트 이가진·정송 기자

작가들이 작업에만 열중하기 무척이나 어려운 요즘이다. 예술 외에 재밌는 일도 많은데다 수많은 작가들 틈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곳저곳 다니며 문 두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 중간에 작업을 접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니 각종 지원 기금과 공공사업에 의지하는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을 넘어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세계 각지에 국적 제한 없이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인터내셔널’,‘국적 불문’을 키워드로 총 14개의 어워드, 그랜트, 펠로우십을 선정했다. 상금과 장학금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기관은 물론 전시, 아트페어,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미술계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도 다수 포함했다. 현재 공모를 진행 중이거나 다음 공모(2018-2019년)를 준비하는 곳이 많으니 자신의 역량을 해외에 알리고픈 이들이라면 이 특집을 주목하시라.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며 경험을 쌓은 작가 김아영의 글도 놓치기엔 아쉽다.


| 김아영 작가 글쓴이 김아영은 한국과 영국에서 시각디자인, 현대사진,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시각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야기 장치와 수사학을 채용한 내러티브 영상, 목소리 퍼포먼스, 음악극, 사운드 설치, 스크립트, 다이어그램 등을 만든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모든 세계의 미래>에 참여했고,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
세계는 넓고, 예술 기금과 수상 제도는 도처에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국가와 지역 사이 지정학은 한시도 팽팽하지 않았던 적이 없고 오히려 더욱 심화하는 듯 보이지만, 지정학이 그간 미개척지였던 해양의 영역까지 팽창하며 국가 간 갈등이 첨예할수록, 비가시적 문화 자본의 흐름과 예술가들의 월경은 더욱 빈번해지고, 그 반경도 넓어지고 있다. 다국적 예술 프로젝트도 활성화되고 있는 듯하다. 21세기의 예술가들은 “클라우드 너머, 국경 너머”에 있는 둘 이상의 공간을 자유로이 오가며, 소속된 공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인프라나 자원, 기관의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기금과 수상 등 젊은 예술가의 성장에 있어 필수 과정처럼 되어버린 공고한 미술 ‘제도’의 안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개인이 예술가로 온전히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해당 분야 전문 집단의 동의나 지지를 필요로 한다. 희망자 수에 비해 소수만이 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예술계의 특성상, 이 동의와 지지를 창출하는 과정은 필수적인데, 특히 국내에서 각종 수상이나 기금, 공모 등을 거쳐 이러한 지지를 성취하는 방식이 일종의 교과서적 예시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제도로부터의 빗나감, 일탈, 파열, 부정 등을 통해 계열의 의미 자체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존재 가치를 획득해 왔다고 여겨지는 동시대 미술의 특성상, 이러한 제도의 안착과 이를 따르는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행보는 과연 미더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나?
지난 10년간, 다른 모두와 같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의 수혜를 크게 받은 축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본인은 본고에서 국내외에서의 기금과 수상 등이 작품을 지속하고 예술가로서 존립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었고, 어떤 변곡점을 만들어 주었는지 서술하려 한다. 국외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하되, 결정적이었던 국내에서의 기금과 수상의 경우에 대해서는 포함하기로한다.

석사를 졸업하던 해에 여러 공모에 지원했고, 몇 가지 결과를 얻었다. 그중 두 가지를 언급하면, 런던의 176/ 자블루도비치 컬렉션(176/Zabludowicz Collection)과 런던예술대학(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이 공동으로 개최하는‘퓨쳐 맵프라이즈(Future Map Prize)’의 파이널리스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이듬해 176/자블루도비치 컬렉션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Royal Academy of Arts)에서 매년 개최하는 〈여름전시(Summer Exhibition)〉란 행사에 참여했다가, 운좋게 ‘브리티쉬 인스티튜션 어워드(The British Institution Award)’라는 상을 수상했다. 이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수상항목이었다.



본고는 기금과 수상 부분에 초점을 맞춘 토픽이지만, 단순 공간 제공 외의 프로젝트 지원제도를 가진 레지던시의 경우 간단한 소개로 지면을 할애하려 한다. 2010년 가을,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비자가 종료되면서, 마침 신청해 둔 프랑스 파리의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e Internationale des Arts)로 레지던시를 위해 떠났다. 당시 6년간의 영국 생활로 누적된 이삿짐을 벤에 싣고서 도버 해협을 건너는 대형 페리에 올라 칼레에 도착, 칼레에서 파리까지 이동했다. 파리에서의 짧은 겨울을 보내며 마침 지원해 두었던, 독일 베를린의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Kunstlerhaus Bethanien)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약 3개월 동안, 런던, 파리를 지나 베를린에 다다를 때까지, 일종의 주거 불분명의 신분으로 겪었던 불안감이 상당했기에, 이제 1년을 온전히 한 곳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는 깊은 안도감은, 장기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도 훨씬 큰 것이었다.
베타니엔은 잘 알려졌듯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장기적 파트너십을 맺고 매년 1년 동안 한국 작가를 맞이한다. 생활비와 약간의 제작 지원금, 그리고 작업/주거 공간을 제공하는데, 2011년 당시 그곳에 머물며 작업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연간 하나의 프로젝트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때 조사한 자료들을 엮어 만든 프로젝트가 ‘PH 익스프레스’로, 19세기말 영국 해군의 거문도 점령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프로덕션을 위해 장기간의 스크립트 제작기간 후, 베를린 현지에서 프로듀서를 구했고,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모집했다. 또한, 제작기간 중 실제 거문도의 풍경을 위해 짧게 귀국하여, 소규모 촬영팀을 꾸려 거문도로 며칠간 촬영을 다녀오기도 했다. 본 프로젝트는 2012년 초 베타니엔에서 동명의 개인전으로 처음 선보여졌고, 이후 2012년 여름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 스펙트럼>전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56th Venice Biennale)’의 본 전시 <모든 세계의 미래>에 참여하며 국제예술교류 지원기금을 수혜 받았다. 이 지원기금으로 베니스에서의 전시를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고, 더불어 베니스 현지에서의 퍼포먼스를 조직했다. 또한 그해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신진작가 지원 기금을받아,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시리즈를 정리하는 출판물을 발간할 수 있었다. 출판물은 두껍지 않았으나 한영 병기되어 번역료와 원고료 등에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했다. 이러한 기금의 수혜가 없었다면 ‘제페트’시리즈와 같은 복잡한 프로젝트를 정리할 만한 출판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같은 해 겨울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2015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머물렀던, 프랑스 팔레 드 도쿄의 파비옹 리서치 랩이라는 독특한 레지던시이자 지원 제도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싶다. 작가이자 교육자인 앙쥬 레치아(Ange Leccia)가 2001년에 설립한 파비옹 리서치 랩은, 팔레 드 도쿄의 창의적 상징 중 하나로 존재하다가 2016년을 마지막으로 레지던시가 종료되기까지 15년간, 매년 소수의 아티스트를 선별해 프랑스 내의 각종 예술기관과 협업 체계를 구상해 독특한 프로젝트를 도모해왔다.
본인은 ‘2015-2016년의 한국 프랑스 상호 교류의 해’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팔레 드 도쿄 레지던시 교류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2015년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해에 6인의 다국적 예술가가 선발되어 약 10인의 레지던시 관계자들과 호흡했다. 통상적 레지던시와 구별되는 작가의 프로젝트에 따라 맞춤형 솔루션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프로덕션 중심 체제로, 안정적인 생활비와 생활공간, 작품 제작 지원금이 제공되었고, 각종 미술 이벤트를 방문하기 위한 리서치 트립을 빈번히 조직했다. 10인의 관계자는 전 방위로 움직이며 작가들을 돕고, 개별 프로젝트를 위해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수소문했는데, 본인의 경우 보이스 퍼포머와 지휘자를 섭외하기 위해 광고를 내고 섭외하고 리허설을 조율하는 등 프로덕션 전반적인 매니지먼트가 그것이었다.
그해에 진행했던 일명 ‘오페라 프로젝트’에 대해 짧게 서술해보면, ‘오페라 프로젝트’는 2015년의 파비옹 활동 작가들을 위해 프랑스의 팔레 드 도쿄와 파리 국립오페라단, 프랑스 시청각자료원(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이 맺은 파트너십 프로젝트였다. 미술, 오페라, 시청각자료 등을 다루는 서로 상이한 성격의 기관들이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유연하게 경계를 넘나드는 자세를 보여주었던, 그리고 참여 작가로서 그 과정의 시작과 끝을 지켜볼 수 있었던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작가 개인의 역량으로는 거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3개 공공기관의 지원 결과, 파리 국립오페라단의 안무가 세바스티앙 베르토(Sebastien Bertaud)와의 협업으로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라는 15분 분량의 목소리와 움직임 퍼포먼스를 제작해 파리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선보였고, 이의 사운드 설치 버전을 팔레 드 도쿄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였다. 또한 퍼포먼스의 촬영본은 퍼포먼스 자체와 분리된 영상작업으로 발전시켜, 프랑스 시청각자료원으로부터 파리 오페라극장과 관련된 아카이브 푸티지(편집자 주: Footage, 특정사건의 장면)를 제공받아 완성할 수 있었고, 이는 프랑스 시청각자료원의 헤리티지 컬렉션의 일부로 등재되기도 했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상당히 짧은 시간에 큰 규모의 기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가 개인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에너지를 따로 비축해야 했었기에, 이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팔레 드 도쿄의 파비옹 레지던시 이후에도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2017년 호주 최대의 공연으로 다원예술 및 퍼포먼스 페스티벌인 ‘멜버른 페스티벌(Melbourne Festival)’로부터 개인전 커미션을 의뢰받게 되었다. 약 10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페스티벌의 전시 파트를 위해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이는 ‘멜버른 페스티벌’의 커미션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프로젝트의 구상이 커지면서,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간 소통하고 있던 각국의 여러 기관들과의 작업을 하나로 수렴해 가능했던 프로젝트였다.먼저, 프랑스의 아트센터 중 하나인 브레티니 현대미술센터(CAC Bretigny)와 마침 단체전 참여에 대해 논의하던 중, 본 프로젝트를 공동제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보태 2018년 2월의 단체전에서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이후, 일민미술관에서 ‘이마 픽스(IMA Picks)’라는 프로그램에 속하는 개인전 제의가 있었고, 일민미술관 자체의 제작지원금을 조금 떼어 본 프로젝트의 영상 프로덕션 제작비에 포함시켰다. 마지막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주요플랫폼진출 지원기금의 도움으로 본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이렇듯 3개국의 4개 기관이 협력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힘써 주었다는 점, 어느 하나라도 모자랐더라면 완성이 몹시 힘들었을 거란 점 등 본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제작 지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아무리 표현해도 모자랄 것 같다. 그 결과 본 프로젝트는 2017년 10월 ‘멜버른 페스티벌’에서의 개인전 이후, 2018년 2월 브레티니 현대미술센터의 기획전, 〈데스크 세트(Desk Set)〉, 같은 달 일민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거쳐, 2018년 9월 열릴 〈광주비엔날레 〉에서의 전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다수의 기관이 출자하여 프로젝트 하나를 완성하는 공동 제작 방식이 국내 기관에서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닌 듯 보이지만, 프로덕션 규모가 커지고 제작 기간이 길어질 때 기존의 인프라를 조금씩 활용하여 공동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좀 더 유연하게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으로 본인이 지난 10년간 경험한 국내외의 지원과 수상, 그리고 그 파급 효과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지난 10년 활동하며, 매 걸음이 불확실성 속에 있었으며, 각국을 오가며 종종 주거 불분명과 불법체류의 틈새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기도 했다. 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도 확실했던 것은, 앞서 서술한 각종 지원제도와 수상이 없이 매 순간 작업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했을 거란 점이다. 다행히 전 세계 수많은 지역에는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다양한 전문기관과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이들 사이를 부드럽게 이동하며 생겨나는 불확실성 속에 시간의 일부를 맡겨 보는 것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만 가능한 모험일 것이다.



